Thursday, 3 November 2016

iso

복권 회사에 다닐 때이다.
나는 iso 과정을 도입하기를 주장했다.
pc를 통해 전 세계 iso 과정을 학습하고 정보를 모으느라,
A4지 도둑으로 의심받을 정도로 많은 용지가 필요했다.
경비까지 이해할 수 있을 정도로 쉽게 풀이해야 했으니 용지는 더 많이 필요했다.
퇴직할 때 다 놔두고 나왔으니,  그 동안 쏟아냈던 욕들은 다 어디로 주워담아야 할까?
A4 용지는 한 봉지를 사왔는데, 5년 넘도록 개봉도 못하고 있다.  프린터가 집에 많아도 이젠 쓸 일이 없다.  어쩌다 계약서 작성할 때나 필요할까?  그런 의심을 뒤집어 생각하면,  그들은 집에 A4를 가져간다는 말이된다.

잘 모르기는 하지만, 아마 그 관리 책임으로 과장 한 사람이 사표를 쓴 것으로 짐작한다.
구성원이 이렇게 이간질 능한 사람들인데다,  복권 사업이 '정치 세력'과 깊은 관련성이 있는 사업이어서 정치로부터 독립하는 길은 기술 하나 밖에 없었다.

iso는 후진 기술을 가진 직원 각자 한 사람 한 사람까지 선진 시민으로 만드는 과정이 담겨져 있다.  나는 그 무지몽매한 이간질 선수들을 제대로 된 기능사로 훈련시키고 싶었던 것이다.  정권이 바뀌면 반드시 이 사업은 폐쇄될 것이고,  직원들은 각자 흩어질 것이 분명했다.  다음 로드 뷰로 보면 그 직장은 없어졌고, '공장 판매' 현수막이 걸려있다.  공장 판매라는 말이 무슨 말인 지는, 공장 건축물과 울타리 안의 토지까지 포함되는 지, 건축물 임대차인 지, 건축물만 판매인 지는 따로 알아봐야 한다.

한 경쟁사는 유럽에 복권을 수출했다.  인구는 한국의 1/10인데, 복권은 한국의 10배 매출을 기록한다.  유명 관광 국가에서는 외국 여행 기념으로도 많이 판매된다.  자동차 번호판이 수집 대상이 듯..  싸고 작고 저장 공간을 많이 차지하지 않으면서 여행을 회상하게 해주는 기념품으로 많이 팔려나가는 것 같다.  경쟁사가 두 번이나 실수해서 복권 1등 당첨자가 무려 100명이나 나온 적이 있다.  그 것도 두번이나..  그래서 그 복권 사업은 그 나라에서는 경찰이 개입하게 되었다.  

전에 다니던 그 회사는 전직 대통령 아들이 시작한 사업이다.  내가 복권 품질 문제로 제주도에 불려갔다 온 것을 생각하면 이 사업이 아무나 할 수 있는 사업이 아닌 것을 짐작할 것이다.  한강 모래 사업처럼..

회사를 설립할 때 제일 중요한 것은 무엇일까?  정치판을 보면 알게 된다.  구성원이다.  회사의 지분이 없으면 직원들은 뭔가를 하나씩 들고 퇴근을 한다.  본능적이다.  비누, 화장지, A4지..
별 것 아닌 것 같지만, 저 것이 허용되는 직장은 이간질에 빠진다.  누구 말이 옳은 지 짐작도 못하는 그룹이 된다.  밑둥이 없는 전봇대처럼 다른 그룹이 쓰러지면 반드시 쓰러지게 되어있다.

다눈치오라고 기성복 제조 판매 회사가 역삼동에 있었다.  부도난 회사에 대표이사로 새로 등기한 사람이 가족 중에 있다.  그 부채를 혼자 다 뒤집어 쓰고도 잘못을 아직도 모른다.  전 대표이사는 그 새 돈을 얼마 챙겼다고 말할 정도로 이 사람이 저능아이다.  몇 번 빈 사무실에 놀러갔다가 창 끝 쪽 빈 데스크에 누가 있었느냐고 물었다.  본부장 자리라고 한다.  그 회사의 소문도 들은 적이 없고, 그 사람 얼굴도 본 적이 없는데,  그 사람 위험한 사람 같다고 말했더니,  제조 공장장하고 짜고 생산 단가를 터무니 없이 높게잡아 회사가 망했다고 한다.  사람이 빠져나가고 오래 빈 자리도 아우라가 머무는 것은 이상한 일이다.

아무리 회사 지분을 가지고 있다고 해도,  부정한 돈을 하청업체에서 직접 받는 것과 매출 이익을 골고루 나누는 것과는 액수가 크게 차이가 난다.  그런데 그 지분마저 없으면 스스로 감시 기능이 사라진다.  아시아 시장에서는 '도덕성'이라는 의문이 사라졌다.  도덕성의 뜻이 뭐냐고 묻는 게 순서일 것이다.  다음엔, 도덕성의 범위가 어디까지인가 하는 의문이 따른다.  왜, 그 것을 나만 가져야 하는가를 대답할 사람은 없다.  하버드에서 '정의'를 강의하는 것은,  시중에 정의가 있다는 말일까?  없다는 말일까?  이런 것을 자식들에게 강요할 일이 아니다.  인생을 자기 판단에 맡겨 인생을 스스로 설계하도록 해야지, 표준 세포의 준칙을 답습하라고 해서는 안 된다.  무슨 이유로 내 자식이 나를 판박이 하는 게 정의란 말인가?  같이 망했으면 망했지..  뉴스를 보아라.  그래서 다들 도둑질들 밖에 더 하나?  아무리 부정하려 해도 나의 행동은 DNA 안에 고스란히 지표를 간직하고 있다 다시 내가 현신한 것처럼 행동으로 세상에 나타난다.  이 것을 확인하는 기쁨도 다 DNA 안에 포함되어 있는 것이다.  자세히 생명체를 들여다 보면,  나는 내가 아닌 것이고 이상한 DNA의 하청이다.  나는 그 웃기는 DNA를 열심히 보좌하고 있지?  그 게 나의, 우리의, 부모의, 자식의, 친구의, 사람의 인생이라는 것이다.




No comments:

Post a Comment

Note: only a member of this blog may post a com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