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nday 27 November 2016

덜덜덜

나는 동영상을 만들면서 '새' 영상 나오는 것은 스토리를 설명하는데 필요하지 않으면 빼버린다.  공격적인 자세가 나오는 영상은 뺀다.  독수리가 날면 까마귀, 갈매기 같은 게 방해를 한다.  신경을 많이 쓰는 부분이다.  의외로 새를 무서워하는 사람이 많다.  내 영상은 원칙적으로 무료라서 마음의 준비 없이 들어와 보는 사람을 배려하고 싶었다.  더구나 가난한 사람이 내 영상을 보고 두려워한다면 나는 미안함을 느낄 것이다.

어려서 우리 집은 꽤나 부자였다.  마당이 아주아주 넓었다.  지금 생각하니 나는 할아버지의 경제 능력의 1/1000 규모도 이뤄내지 못했다.  이런 점에서는 내가 할아버지를 탓할 수 있는 것이 줄어든다.  적어도 할아버지는 나에게 그 것을 보여주기는 했으니 말이다.

배수로가 있었는데,  그 쪽으로 가지를 못 했다.  빠지면 혼자 힘으로 나올 수 없었던 곳이다.  어른이 되어 가보니 도움닫기를 하지 않고도 가볍게 건널 수 있는 작은 배수로였다.  이 피사체는 내가 성장하면서 상대적으로 점점 작아져간다.   어려서 과자 같은 것을 들고있다 새의 부리에 찔릴 뻔 했다던지 새 알이 있는 둥지 근처를 지나가다가 방심한 상태에서 뒤통수를 찔린 적이 있다면 많이 놀랐을 것이다.  그런데 공포를 준 이 새는 놀란 사람이 커가면서도 그 크기가 상상에 비례해서 커져만 간다.  마음 속에서는 그 공포가 하나도 줄어들지 않는다.  학교 가는 길에 새가 있어 못 가다 학교에 늦은 사람도 있다는데 누군지 기억이 안 난다.  정신과 치료를 받아야 한다.  그 게 자손들에게 전달될 수가 있다.  후손은 DNA로 심리가 전달될 뿐 아니라,  부모의 모든 행동 패턴도 자기도 모르게 그대로 따라한다.

제목은 덜덜덜 떠는 모습을 그린 의태어이다.  오디션에 나와서 음악은 잘 하는데 덜덜덜 떨며 오디션을 마친 사람들을 많이 보았다.  나도 이 느낌을 잘 안다.  그리고 그 이유도 잘 안다.  특히 직계 모성에 그런 공포 경험이 있는 사람에게 많다.  이 것도 정신과 치료가 필요하다.  반드시 고쳐야 그 증상이 다음 세대로 넘어가는 것을 막을 것을 기대라도 해본다.  흔히 자신감 부족, 실력 부족이라고들 말하지만,  그런 경험이 없거나 원인을 모르면 그렇게 말 할 수 있다.  말이란,  철학을 바탕으로 논리정연하게 설파하는 것을 생활주변에서 보는 게 아니다.  그런 태도로 남을 놀려먹고 그러지도 않는다.  나와 단 1mm라도 다르면 때려부수고 싶어지는, 책을 평생 안 읽고 살아서 남을 조금도 이해하고 싶지 않은 현 사회에 대한 이야기이다.

유제이양이 뉴욕으로 보이는,  저 건물은 뉴욕 아니면 볼 수 없겠다는 묘한 디자인의 건물 아래에서, 길거리에서 아시안 두 명의 반주를 배경으로 노래하는 영상이다.  무척 실망을 했다.  실망했다고 몇 자 적었다가 예의 그 한국어 비속어에 나의 다음 행동 지침까지 친절하게 적어둔 사람이 있다.  내가 한국어로 comment 달지 않는다는 결의를 잠시 잊었던 보상을 톡톡히 받았다.  노래 부르는 사람의 마음 상태는, 표정이 다 말해준다.  여기와서 노래하다 혼나면 어쩌나의 표정이다.  나는 죄가 없는데..의 표정이다.  이 떨림은 나이 50이 된다고 저절로 없어지지 않는다.  배짱을 두둑하게 하는 방법은 내가 아는 바로는 딱 세가지 밖에 없다.

술을 마시고 간댕이 부은 것처럼 떠벌이거나, 욕을 잔뜩 얻어먹고 얼굴 새빨개져서 악으로 노래를 부르거나,  나는 마지막이 걱정이 되었다.  보통 사람들은 마약으로 간단히 해결을 본다.  마약은 종류도 많고 할렘가에서는 얼마든지 구할 수 있다.  멕시코 국경을 넘어가면 또 쉽게 구할 수 있다.  할렘에서는 영상에 찍힐 수도 있겠지만,  멕시코에서 증거물을 확보하기는 쉽지 않다.  또 미국은 친구 중에도 이런 것을 권하는 자가 많다.

오래 걸리겠지만, 꾸준히 심리치료를 받기를 바란다.  유제이양 노래 너무나 좋아했다.  좋아하지 않았으면 실망 자체가 없었을 것이다.  기억도 안 났을 테니..  '진짜 동생' 유지니양 노래 한 곡을 세시간짜리로 만들어 듣고 있다.  벌써 일주일 째 하루 종일 그 '천사가 노래하는 음악 세계'에 빠져들었다.  원곡은 1분도 들어줄 수 없었다.  애들이 '의문의 1패'라고 말하는데,  무문의 1패이다.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1패라는 소리이다.  애들이 하도 지 멋대로 말을 만드니 저 말은 이해했을까 해서 써본다.

욕한 사람에게:  욕을 그렇게 사납게 하면 뇌 정서가 회복이 안 된다.  그 것도 유전된다.  청중이 도와줄 수 있는 것은,  독기를 제대로 올려주는 것 뿐이다.

욕을 심하게 먹고,  돌이켜 생각해보았다.  나도 정치하는 사람에게 심한 욕을 많이 했다.  몇일 전에 국회의원 사무실에 항의 전화가 빗발치더라는 소리를 기억하면서,  아 나 같은 사람에게도 욕을 먹는 국회의원들은, 일 할 맛 안 나겠다는 걱정을 처음 해본다.  나 같으면 '이쁜 법' 같은 것 진작 포기했을 것도 같다.

내가 tv에서 딱 하나 보는 게 있다.  오디션 프로그램이다.  youtube에서 가끔 실수로 클릭을 하고 보면,  낯익은 이름이 나온다.  오디션 프로그램 참가자의 영상이다.  얼굴도 전혀 기억나지 않고, 노래도 생각나지 않는다.  오직 이름만 본 기억이 난다.

언젠가 많은 사람 앞에서 노래부르려면, '아우라'가 있어야 한다고 말한 사람이 있다.  나쁜 말로 하면 깔보거나 아래로 내려다보거나 한다는 말이 된다.  그런데 관객이 무서워지면 '집에 빨리 가고 싶다.'만 생각난다.

또 하나 느낀 것,  미국 사람처럼 생긴 미국인은 그러지 않는데,  유난히 미국에 사는 교포가 그런 것을 보면서, 미국에도 인종 편견이 심하고 많은 굴욕을 경험했겠구나 하는 생각을 해봤다.  그 부모 세대가 마음 고생이 아주 심했을 것이라고 짐작해본다.  왜 필리핀 여자가 미국이 아닌 캐나다 이민을 선호하는 지도 짐작할 수 있었다.  캐나다에는 아시안이 많아서 신경을 별로 안 쓴다네..

또 하나 더,  미국엔 학원도 많지 않을 텐데,  학교도 일찍 끝나던데,  열 세살, 열 다섯살 아이들이 보여주는 연주, 노래는 평범한 수준이 아니었다.  그 이유를, 간섭하지 않고, 포대기에 키우지 않고, 반말하지 않고, 문제를 사지선다형으로 내지 않고,  집에서 책을 못 읽게 학교에 묶어두지도 않고,  서울대만 대학이라고 유도하지 않고, 옆에 재우지 않고 자기 침대에서 재우고, 자유로운 영혼으로 존중해주는 부모나 사회의 태도 때문이라고 본다.  옆에서 누가 무슨 말만 하면 자기에게 한 말이 아닌데도 따지고 욕하는 사회에서는, 구경도 할 수 없는 인생관이다.

전에 충주 롯데마트 앞에서 일 할 때의 일이다.  나는 주차장에 차가 몇 대나 들어갈 수 있나하고 주차장 길이를 재는데 이런 기계를 사용하고 있었다.




좀 떨어져서 보면 이렇게 보인다.  한 여고생이 이 모습을 보고,  그 짧은 시간에 얼굴 표정이 볼만했다.  이 사람 미쳤네 어른이 애들 장난감을 갖고 놀다니..의 표정이 만들어졌다.




중간에 검은 색 마디도 없었으니 더 그렇게 보였을 것 같다.  저 용도를 알기 전까지는 아직도 그 생각 중일 것이다.   그토록 많은 편견이 사람을 잠식하고 있는데도 불편함을 모르고 잘 살아간다.

몇 일 뒤,  이런 욕 잘하는 아이들에 의해 망가지는 kpop이라는 생각이 계속 되면서,  k가 한국이 아닌 다른 지방을 의미한다는 것을 다시 한 번 확인하며, 내가 이 경박스러운 음악을 왜 듣고 있었나 하는 반성에까지 이른다.  Beethoven이나 들어야 하겠다.  유지나양 음악도 내려야 하겠다.  재미가 없어진다.  한글로 된 아이템은 어떤 것도 지원을 안 하기로 결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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