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uesday 26 May 2015

이 것이 한국인가?


어느 신문 뉴스 사진이다.
어느 대학 교수의 사진이란다.
이 나라는 이 게 통한단다.

아무리 대학의 목적이 돈구녕, 정신교육장 딱 두 기능만 있는 것이라 해도..
어떻게 이 게 가능하냔 말이다.
교수란 사람을 창구에 앉혀뒀다.

이 게 통하는 사회나, 대학 재단이나, 이런 대학에 있는 직업인이나, 유령처럼 조용히 등록금만 꼬박꼬박 내는 학생들이나..
모두 A+++이다.  (쇠고기 육질 분류 기호)

이 사회, 웃기는 사회였다.
youtube에서 60억 서명 한번 받아보자.

Monday 25 May 2015

여대 군기

'과대표로서 혼날 일이 있다면 당연히 혼날 수 있다고 생각한다'

피해자가 한 말이다.
나는 이 대목이 더 놀라운 이야기였다.

보호할 실익이 있는 피해자였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아무나 꾸짖는 일에 너무나도 익숙해 있는 아시안이다.  인권 의식이 없다.

담당 교수의 발언에서 '통제'가 대학의 중요 규칙임을 알 수 있다.

군대나 학교나 피해자는 보호 받지 않고 사건은 완벽히 은폐된다.
강간 당한 여학생이 여자 담임 선생에게 피해 사실을 이야기 하자, 선생이 하는 말, '그냥 그런 줄 알고 넘어가자.'였다.

인사 체계가 군대나 학교나, 비리를 은폐할 수 밖에 없게 돼 있다.
비리가 노출되면 책임자의 승진에 크게 영향을 미친다.
규칙이 본래 그러한 용도(소리 소문 없도록)로 만들어져 있다.

대학생이면 독재나 전체주의에 알레르기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이런 군대 향수가 어느 대학에나 있다는 이야기를 접하니 한국의 모든 대학 학력을 믿을 수가 없게 되었다.
나는 한국의 대학 학력을 믿지 않기로 했다.
자유롭지 않은 정신은 기계적 가치 밖에 없다.  상상력을 기대한다는 게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지배 복종 관계의 도구는 폭력이고, 결과는 비효율이다.
이런 존재는 항상 누군가의 지령을 기다리고 있다.  가축처럼 자신의 존재에 의미 부여를 못한다.
스스로 쳇바퀴에 들어가 그것을 운명으로 받아들이는 세대를 동정해야 할 지 방관해야 할 지 망설여진다.

하버드 대학에서 이승만에게 박사 학위를 준 사실이 있다면, 하버드의 학위도 가치가 있는 지 검증 받아야 한다.




(대학의 목표는 을의 운명 순응 학습이었다.)

왜란

왜란은 경고이다.
전쟁 준비란 하루 이틀에 끝낼 수가 없다.
이미 주변 나라에 준비할 기회가 충분히 있다는 이야기가 된다.

정탐을 위해서 일본에 두 사람을 보냈다.
한 사람은 일본은 한국(조선)을 침략할 능력이 부족하다고 했다.
나중에 밝혀졌다고 나온 이야기는, 백성이 놀랄까봐 그랬다고 했다.
'강도가 집에 든다고 했는데, 그냥 불 끄고 집 안에 숨어있으면 된다'는 논리로 해석 된다.

이 대목을 어찌 해석해야 될까?
당시 당파라는 게 지금과도 같이 반대당이라는 점은 이해한다.
'저 당이 o 라고 하면 이 당은 x 라고 하는 것'을 말한다.
좋은 정책이라도 나오면 무단 카피해서 도용을 하기 때문에 정책 경쟁을 할 수도 없다.  정치에 대해서 공부한 적도 없기 때문에, 그냥 상대방 흉만 잡으면 되는 게, 그리고 그것이 가장 효과적인 게 이 나라 정치이다.
즉, 국민도 정치 공범이라는 이야기이다.

나는 임진왜란을 임진란이라고 부른다.  굳이 난을 일으킨 자를 이름에 넣어야 한다면, 임진선조란이라고 부르는 게 더 맞겠다.
주변 4국이 각각 접경국에 대한 정보가 있었을 것인데, 당시 쿠데타를 방지하기 위하여 군대라는 개념 자체가 없었다.

김성일의 발언은 무슨 이유였을까?
당시 왜척의 농간이 있었고 그와 관련, 일본에 매수 이 두 가지만 추축된다.
선조를 생각하면 역사에서 선조라는 이름 자체를 빼버렸으면 좋겠다.
선조라는 인간 됨됨이를 생각하면서, 역사를 일본의 힘을 빌어 뒤집버리고도 싶었는 지도 모른다.

이순신은 유명한데, 왜 유성룡은 그러지 않았을까?
항상 궁금했다.
징비록을 먼저 읽고, 난중일기를 읽었더라면 이해가 되는 부분이 많은데, 난중일기를 먼저 읽으면 그것은 이해가 안 된다.
군관민 시대에 이순신을 추켜세운 터라 이순신에 대해서는 과대평가가 분명할 것이라 추측하고 이순신에 대해서는 난중일기 외에는 알고 싶은 내용이 없었다.
그런데 지금은 왜 이순신인가?
5,000년 역사라면서 인물이 이순신 한 사람 뿐인 역사였던 것이다.
그런데 합방이 있었다.
일본은 이순신에게 배운 게 있었지만, 한국은 이순신에게 배운 게 없었다는 이야기가 된다.

이순신 영화가 나오고 배씨 후손은 소송하겠다고 했다.
일본의 여러 기록을 보니, 원균이 곤장을 맞고 반드시 죽을 길로 접어든 것을 배설이 반대하고 선단을 이끌고 나온 것으로 돼 있다.
선조의 입장에서 보면, 나라가 망하든 말든 어쨌든 포구에 갇혀 죽는 게 충성이었을 것 같다.  상을 주지는 못하겠지만, 찾아내서 죽이는 것은 잘못된 정보를 섣부르게 믿고 참했던 선조의 늘 있었던 과오였을 것이다.
배씨 후손의 입장은 이런 점에서 소홀한 것으로 보인다.  이런 연구도 없이 소송부터 하고 보겠다는 태도는 칭찬해 줄 수 없다.
역사의 인물이 후대 국민으로부터 평가 받는 일은 당연한 일이다.  그래야 능력 없는 인사가 함부로 관리에 나서는 일이 줄어들 것이다.
그러한 이유로 나는 배설에게는 잘못이 없다고 본다.  같은 이유로 그 후손의 행위는 인정하기 어렵다.
나도 그 영화를 봤지만, 순전히 액션 영화이고, 고증할 수 없는 로맨스로 엮여있다.  이 영화를 보는데 5분도 걸리지 않았다.  그리고 영화라고 부르지도 않는다.  이런 것을 천 몇백만이 봤다는 기사를 보고, 일본의 재침에 준비를 못하고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버렸다.

지혜를 키우지 못하고 감정만 쌓아두면 반드시 지게된다.

유성룡이 원균과 이순신을 추천한 것으로 돼 있다.  원균은 잘못 했고, 이순신은 잘 했다.  원균 추천은 큰 실수라는 말이다.  당파의 가운데 있던 인물의 기록이라 다 믿을 수도 없지만, 임진란의 mvp는 이순신이 아니고 유성룡이었다.  징비록에는 난잡한 정치가 들어있지만, 난중일기에는 노예로 팔려간 조선 백성의 기록이나 코무덤, 귀무덤의 내용이 있는지 모르겠다.

내가 당시 이순신이었다고 해도 그리 했을 것이나, 전쟁이 끝나고 선조의 핍박에 못 이겨 자결했을 것이다.
한국의 역사는 이와 같이 감정의 기름덩이로 가득 차 있다.  19금의 역사이고 온통 도둑의 역사이다.  어린아이에게 가르칠 과목이 아니다.







Thursday 21 May 2015

복종

애국, 복종, 충성

사람을 침팬치나 세우떼로 만드는 용어이다.

Wednesday 20 May 2015

서울? 그 놈이 그 놈이다.

어느 놈이 서울에서 장난을 했다.
뉴타운 한다고 세입자만 탈탈 털린다.  용산 2이다.

다 아는 얘기이다.
천년 전 사람이나, 천년 뒤 사람이나 다 아는 이야기이다.
여기 저기 너 나 할 것 없이 다 아는 사실들..

서울이 깨끗해지면 좋겠다.
가난한 시민도 지분이 있기는 하지만, 지저분한 꼴에 미안스럽기는 했다.
하지만 아파트 놀이로는 안 하는 것만 못하다.
마당도 없는 곳에서 인성이 자랄 리는 없다.
차라리 대전이나 다른 곳으로 수도를 옮기는 게 훨씬 이롭다.

서울은 땅 값이 제일 비싼 곳이다.  경제성이 제일 떨어진 곳에서 이젠 제발 그만 했으면 하는 아파트를 세운다?

이제 도시는 미국에서 볼 수 있는 쾌적한 곳으로도 충분하다.  그래서 대전보다 다른 계획 도시가 수도가 되어야 한다.

서울에서 뭘 볼 수 있는가?
북적거리는 싸구려 외엔 볼 것이 하나도 없다.
외국인이 내게 보여달라는 서울은 무엇인가?
100% nothing이다.  아무리 깨끗이 해도 일본의 뒷골목 2이다.
아무리 잘 해도 미국 산타모니카 동네보다 보여줄 게 없다.

자금성 대신 경복궁을 보여주랴?
롯데 2를 보여주랴?  중국에는 더 큰 놈 있다.
뭘 해도 우리 것이 아니면, 그냥 2(number two)이다.

녹번동에서 뉴타운 한다고 하더니 나는 그냥 그대로 쫓겨났다.  시장 박씨가 있는 시청에 메일을 보냈는데 아무런 소식이 없다.  홍보 기사만 열심히 도착한다.

그 놈 가고나니 똑똑한 놈이 와서, 아파트 장난 않겠거니 했는데, 알고보니
그 놈이 그 놈이다.

돈 안 생기면 안 되는 게 정치라는 괴물이었던 모양이다.
뉴타운 놀이는 그것을 입증했다.

사람이 아무리 높은 데 살아도 영원히 돈의 신하이다.
뉴타운 개발은 식인 인간 놀이이다.
취해서 쓰러져야만 밤이 온다.
서울은 나를 외로움으로 결박해버렸다.
지금은 동지도 없는 홀로 똑딱이 세대이다.

서울은,
아파트 값 올려주겠다고 꼬셔서 서민만 마지막까지 탈탈 털어먹는다.
뉴타운은 피해자도 공범이다.
전주 땅에 이어, 나는 다시는 서울 땅을 밟지 않는다.
작은 돈이라도 있다면, 차라리 산타모니카에 집을 사겠다.
내 썩은 시체라도 서울을 돌아보지는 않는다.

박가와 함께 나는 휴지통에 서울을 버린다.
박가도 서울도 나는 믿지 않는다.

내게 서울은 체르노빌만 못하다.
구글로도, 다음 지도로도 만나지 못 할 곳에 있다.

서울, 너희는 한 마음으로 서민을 갈취했고
나는, 서울을 모든 지도에서 휴지통으로 보낸다.
그것이 괜찮은 거랜 거지?
너희는 본래 아픔이 없고, 나는 그 것으로 아픔을 잊겠고..




Tuesday 19 May 2015

아시아 병

아시안은 아시아에 관심이 없는 사람들로 이루어진 거대 집단이다.

아시아가 유럽처럼 화폐를 통합할 날이 오게나 될까?
100년 내에는 있지 못 할 일이다.

아직도 전쟁을 찬양하는 나라는 북한, 일본, 중국, 러시아, 중동, 이스라엘
일본은 천+황이라는 것에다 신사까지 있다.  일본은 시대를 뒤로 간다.  셋 다 일본의 고치기 어려운 병이다.

인도는 다섯 계급병이 있다.  100 년 안에 이 누더기를 벗어내지 못한다.
계급은 상속처럼 가장 약한 것을 물려준다.  다섯 계급으로 나눠 한 군데에서만 지도자를 선책하는 것이 정상은 아니다.  튼튼해질 수 없다.
중국은 가난한 우월감이 있다.  남을 깔보는 자는 발전할 수 없다.  중국이나 일본의 불필요한 영토 싸움은 미성숙한 각국 정치의 표출이다.
한국은 내분이 심화되고 있다.  남북으로 갈라져 있고, 또 두 세 조각을 더 내려고 하고 있다.  조만간 한국도 체코슬로바키아의 뒤를 따르게 된다.  어린 아이들이 이 일에 전사로 나서고 있다.  가장 안 좋은 시나리오가 쿠르드의 운명이다.  그것은 불곰들의 연어 축제를 부른다.

한국이 강대국 사이에서 '지리적 잇점과 중재자 역할?'  웃기는 이야기이다.  중국이나 러시아가 미취학 아동도 아니고 무슨 수렴 청정과 같은 망상도 아닐테고..
모든 걸 던져버리고 일본처럼 강국에게서 힘이라는 것이 어떻게 생겼는 지 배워야 한다.  그래야 조금이라도 일본처럼은 될 수 있다.  미국은 남북 전쟁을 하고 강해졌지만, 한국은 남북전쟁을 하고 1/4로 약해졌다.  '우리'라는 전체주의, 'gnp 몇 위', '수출 몇 위', '한류'.. 이런 걸로 뻐기고 늘어질 때 더욱 더 약해지겠지..

한국의 재벌: 군역도 면제이고, 외국인 면허를 갖고 있다.  철 모르는 국민은 이 외국인들의 제품을 사다 쓰면서 '애국'이라는 염불을 외우고 있다.

일본은 아시아에서 가장 먼저 일어섰으나 이제 포물선을 그리며 추락하고 있다.  지금 모습은 북한의 모습과 다를 바 없이 추해지고 있다.

한국이 북한과 통일하는 것은 가장 잘못된 선택이다.  내적으로 더욱 갈등이 깊어지고 결국 여러 나라로 분산된다.  그것도 일본이나 중국이 드시기 좋은 상태로..
지역별 완전 자치제를 유지해야 그나마 나라의 이름을 새로 만드는 일은 줄일 수 있다.

아시안의 착각: 올려다 보는 문화와 내려다 보는 문화가 다르다는 차이를 알지 못하면 그로부터 벗어나지 못한다.  발전하기 위해서는 국수적 발언을 유치하게 보아야 한다.

100 년 안에 태어날 아시안은 이와 같은 가축 같은 저질 운명을 타고난다.




(한국이 망한다면 '우리'라는 말 때문이다.)
(임진란은 선조난이다.  잘못이 타인에게 있다는 신념은 자신을 퇴보로 이끈다.)
(일본이 저토록 자극을 하는데, 임진란이나 지금이나 자기끼리 싸우고 있는 한국은 특이한 양상이다.)

후회

대구의 한 쇼핑몰에서 압력 밥솥 뚜껑 패킹 하나를 주문했더니,  엉터리를 보냈다.
제목을 모델 번호로 해서 질문을 했는데 질문 제목 한 줄 바로 아래 모델 번호가 뭐냐는 답변 한 줄이 올라왔다.
전화를 해서 밥통 뚜껑이 100% 휘었다고 말한다.

몇 마디 더 하면 나보다 안과 치료를 받으라고 할 것 같다.

그런데, 그 불쾌감은 지금까지도 남아있다.

압력 밥솥 패킹을 바꾼다고 밥 맛이 나아지는 것은 하나도 없었다.
이제야 알았지만, 패킹으로 밥 솥 기능에 에러가 나는 경우가 있다.  이런 경우만 밥솥 제조자에 수리를 맡겨야 한다.  밥 솥 패킹은 쇼핑몰에서 구입하는 물건 자체가 아니었다.

에누리 닷 컴에 들어가 한 때는 많은 상품을 주문했다.  오래 전 냉장고, 세탁기까지 주문해서 구입했다.  지금은?  전혀 택배나 쇼핑몰로 구입하지 않는다.

택배 주문을 하지 않으니..
우선 택배 기사들에게 시달리지 않아서 좋다.  부여군 연화리 택배 기사는 3초를 못 기다리고 물건을 던져놓고 간다.  문 기둥 새로 눈이 마주쳤는데 그 3초를 안 기다린다.
이럴까봐 배달비를 후불로 했는데, 이 의도를 묵사발 내는 신 기술을 장착했다.  배달비를 다음 날이나 그 다음 날 따로 받아가는 신 기술..

충주 서운리의 경우는 택배 기사(옐로우 택배)가 인사도 안 받고 말 대꾸 한 마디 않는다.  (평생 처음 보는 퍼포먼스이다.) 다른 택배는 우체국 택배로 자비로 보내버리고 오지도 않는다.  주문품은 당연히 몇일 늦어진다.  이 말은 '식품'은 상해서 오게 될 거라는 이야기이다.  우체국 택배비 별도로 부담하겠다고 해도 계좌번호도 불러주지 않는다.

이런 기억들이 하나 둘 잊혀져 가지만 잊혀지지 않는 것도 있다.  용산이다.  기억을 더듬어 보면 가물가물해서 왜 그랬는지 생각도 안 나지만, 용산에서는 물건을 구입하지 않기로 했다.

뉴타운 개발 한다고 해서 용산역에 갈 일이 생겼다.  용산역은 높은 산 위에 있었다.  내가 나이가 더 들면 저 높은 계단을 어찌 오를까 겁이 났다.  따로 승강기가 있겠지만..

용산은 많이 갔었다.  처음 pc가 개발 될 때라 용산 갈 일이 많았다.  이상하게 못 쓸 물건을 새 제품이라고 많이 팔았다.  그리고 어린 학생들에게 강매(폭매)하고 고객 뒤에서 수신호로 다음 가게에 메시지를 보내고 하는 프로그램을 봐버렸다.

가족 중 한 사람이 용산에서 전자제품을 구입할 일이 생겼다.  여기서는 에누리를 검색해서 정보를 보내주었다.  하필 눈 나쁜 사림인 것을 알아서 같은 모델 제품의 최하 등급을 최상 등급으로 속여 팔고 있었다.  직접 구입자는 용산 사람들이 이렇게까지 사악할까? 하는 생각에 얼마간 믿으려고 애쓰고 있었다.  최하 등급과 최상 등급의 가격차는 제품 두개 값과 하나 값의 차이가 난다.  (평생 처음 보는 퍼포먼스이다.) 카드 할부로 지급하고, 나중에 지급 정지를 시키기는 했지만 큰 피해를 보았다.

언젠가 삼성 전자 제품을 수리를 부탁했더니 하청 삼성이 왔다.  수리 서비스는 지역마다 다르다.  충주 서운리에서는 김치 냉장고 수리비를 새 김치 냉장고 가격을 요구했다.  (평생 처음 보는 퍼포먼스이다.) 부여 연화리에서는 삼성 김치 냉장고 온도계를 뚜껑을 열면 보이게 김치 냉장고 밖으로 노출되게 설치했다.  (평생 처음 보는 퍼포먼스이다.) 나는 차라리 삼성 김치 냉장고를 버리고 수리 받지 않겠다고 했는데 가족 의견을 따라 그 이상한 상태로 쓰기로 했다.

kt는 처음 인터넷 설치를 부탁하면 kt 정식 직원이 나오는 것 같다.  이 것을 어찌 짐작하느냐면, 두번째 수리차 오는 사람과 첫번째 설치차 오는 사람은 분명히 말투가 다르기 때문이다.  김제에서는 누렇게 때가 낀 케이블을 빈 집에서 거둬다 덜렁덜렁 걸리적거리게 설치해두고 가벼렸다.  (평생 처음 보는 퍼포먼스이다.)  그것도 그 케이블 걷어오느라 몇 시간이나 기다리게 한 것이 그 모양이었다. 가족들 누구도 항의할 의욕 자체를 날려버릴만큼 한심했다.  그리고는 100번 전화를 받더니 고래고래 소리를 지른다.  다음 고객에게 전화를 백번도 더 했는데 안 받는다는 것이다. 사과 전화를 어디에 하는 것을 한번도 못 봤다.  마음 속으로 많이 사과 했던 모양이다.
그런데 이 사람은 kt 정식 직원 맞는 걸까?

오늘은 오수관 점검을 나온다고 한다.  서울과 달리 스피커로만 예고를 해줘도 감지덕지이다.  '너무나도 주문이 많다.  물을 틀어라.  싱크대에 물을 흘려라.  변기물을 내려라.  고무 장갑을 가져와라.  수도 호스를 연결해 달라.  차를 빼라.  휘는 긴 파이프를 달라.'

그리고는 긴장 시키는 말을 잊지 않고 한다.
'조금만 늦었어도 사망' 식의 언사가 기술자들의 상투어이다.
집 안에서 배수관이 막히면 사용자 책임이라는 것인데, 그 많은 말 중 듣는 사람을 긴장시키는 단어만 골라 뱉는다.  '생활배수로가 막혔다.'  '원래는 안 해주는 것인데 해준다.'

그런데, 한번도 경험하지 못한 것을 겪게된다.
차가 대문 밖을 나갈 때 문 기둥이 좁아서 여유가 없다.  그래서 차를 들여놓는 게 쉬운 일이 아니다.  차를 왜 집 안에?  부여 연화리 인심이 그렇다.  내 집 앞에 차를 못 세우는 게 이 동네 인심이라는 것이다.  이 동네 사람들은 그럴 운명으로 태어나고 죽는다.  살아서도, 죽어서도 사람 미워하는 즐거움으로 산다.

문이 잘 열리지 않기 때문에 대문 열 때 쓰려고 1m짜리 쇠막대(빠루)를 문 옆에 두었는데 그걸 가져갔다.  식구들 속만 상하는 일이 생겼다.  딱 잡아떼고 절대 안 가져갔다고 말한다.   뻔뻔스런 것들만 발을 뻗고 자는 멋진 세상이 되어 버렸다.  사람이 많았는데, 다 지켜봤다는 듯이..

이 일로 공사자에게 친절할 이유를 삭제했다.  그리고 뒷짐 지고 편한하게 지켜봐야 한다는 것을 알게되었다.  잘 해 주니까 무시하는 세상이 되었다.  나이 어린 사람이 아랫 직원 다루듯이 하대를 한다.  저런 무지는 도대체 왜 달고 다니는 것이냐?
공사 인부가 뭘 훔쳐가는 지도 지켜봐야 하는 세상이다.  재판으로도 찾을 수 없는 세상이라 이런 불쾌감은 서민들에게 늘 용인되는 현상이다.

도둑질은 전주역에서도 일어나고, 전주 터미널에서도 일어나고, 전주 대형면허 시험장에서도 일어나고, 부여 초촌면에서도 일어나고 있다.  누구를 손가락질 할 때이겠는가?  권력에게는 모든 서민이 편이 되는 수 있지만, 서민의 편은 서민이 아니다.  '국민'으로 말을 바꿔써도 결과는 같다.

전주 시청 뒤에 가면 무슨 클리닉이 있다.  경기도만 가도 입 벌려 고정시키는 작은 플라스틱을 사용한다.  값으로 쳐도 100원이 될까말까한 턱 고정 플라스틱이다.  돈 아낀다고 큰 클리닉에서 그것을 안 쓴다.  그러면 치과 환자만 고생을 한다.  왜 그렇게 시달리게 했을까?  나는 몸이 축 늘어진 상태에서(치석 제거 작업 하나로 사람을 이렇게 만든다.) 생니를 뽑자하니 그러자고 했다.  나는 어금니 생니 뽑은 것을 아직도 후회한다.

어금니 하나를 빼버리면 이가 하나가 부족한 것일까?
안쪽 어금니는 커서 이가 두개분의 일을 한다.  또 아랫니가 없으면 윗니가 있어도 쓸모가 없다.  한쪽으로만 씹을 수는 없으니까..  어금니 하나를 없애면 이가 네개가 사라지는 효과를 느낀다.

충주 서운리에서 전엔 70만원이면 우물(지하수) 하나를 파줬다. (정확히는, 덤으로 하나 더 파줬다.) 지금은 전화를 하면 '거긴 암석이 많아서 700 만원은 줘야 한다.'고 한다.  여러군데 전화를 해도 이상하게 같은 곳에서 받는다. (이것도 정경유착의 한 형태인가?) 또, 요즘은 지하수에 계량기까지 붙는다.  내가 내 돈 주고 판 우물에 붙는 계량기이다. (그럼 이 수수료는 간판 설치비는 누가 부담하는 것일까?  내 생각은 이 우물은 정부에서 당연히 파줘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수질 검사 한 번 하려고 전화를 해보면, 깨끗한 용기를 어디서 구입해서 시료를 건대 병원 옆 어디에 제출해라..  끝.) 어디에 우물 사용료를 내라는 것인가?  이러니 70만원짜리 우물이 700만원으로 바뀌지 않을 방법이 없겠다.

나는 후회 한다.  무엇을?
이 말을 후대에게 말하는 것은 어리석다.  후대를 만드는 그 행위가 천치 같은 행위였던 것이지..

시골은 배양지이다.  사악한 마음들을 기르고 걸러 서울로 보낸다.  한 여름에도 악취 때문에 문도 열 수 없는 환경을 어디에나 가면 호소라도 해 볼 수 있을까?
'시골 살면 그런 줄 알아야 한다'는데..
시골에서는 무슨 이야기를 해도 새로 흉이 잡힌다.

투표하라고 가 보면 다 최저 수준인 몇 사람만 등록 돼 있다.  관리소는 이 중 누군가를 뽑으라고 한다.  아무 것도 아닌 것 같지만, 이 웃기는 작업은 앞으로 발생할 수 많은 부당함에 대한 권리 포기를 포함한다.  '니가 뽑았으니 잘못은 뽑은 너에게 있다.'
거기에는 반대표라는 것도 없다.

얼마나 큰 구멍이 난 지도 모를, 밑 빠진 독 안에서 씩씩함과 의욕은 언제까지 전해줘야 하는 걸까?  인생은 거짓과 도둑으로 살면 횡재한다는 말을 누구에게 전해야 할까?
'진실은 승리한다.'는 말을 하는 바보의 곁에도 가지 말기를 바랄 뿐이다.

플라톤의 국가론에 망령 같은 이상한 말이 나온다.  종족을 솎아내자는 이야기..
이제는 그 말도 이해가 된다.

정직병, 사실병
내가 처음 쓰는 말이니, 아무도 들어본 적 없을 것이다.
누군가가 살며시 다가와 거짓말을 하려고 할 때 느끼는 기분이 있을 것이다.
이 기분을 이 사회는 질병이라고 말한다.
이런 사회에서 정직병, 사실병의 고통을 감쇄하는 방법은 무엇일까?
모두가 아는 저 처방전을 따르느니, 차라리 그만 사는 게 오히려 편한 일이다.

처음 오수배관 공사를 한다고 문을 열어주고 연기접합점검한다고 또 문 열어준 것을 후회한다.

동네 아주머니 하나가 어느 집 학교 선생이 그 공사를 거부했다고 머리 나쁘다고 수십분을 앉은 자리에서 욕을 했었는데, 이제 그 교사의 거부 이유를 이해할 것 같았다.

연기접합검사를 한다고 해서, 장기적인 싱크홀 사고에 대비하는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다.  배수관 공사할 때 옆에서 지켜보니 본드 통을 열어두고도 배관 연결점에 본드를 바르지 않았다.  한 바퀴 돌려 바르는데 100원어치나 될까?  그 걸 아끼는 사람들이다.  그래서 그 확인을 하는 게 오늘 연기 시험인 줄 알았는데 사용자 부주의에 대해서만 경고를 하명하고 있었다.





(한국은 '우리' 때문에 망한다.)


Tuesday 12 May 2015

결혼

결혼을 한다.
결혼은 위대함으로의 어떤 안내를 따라서가 아니라, 뭔가에 이끌려 하고 마는 것이다.

먼 세월 뒤에 객관적 확인에 의하면, 병 든 사과와 같은 것인데..

처음 이끌림은 온통 좋은 무지개를 따라가면서부터이다.
상대의 나쁜 것은 안 보인다.
그냥 절실하다.  이루어졌으면 좋겠다.  성립되었으면 좋겠다.

배우자가 정신 질환이 있는 지, 마약을 하는 지, 낭비벽이 있는 지, 저능한 지, 불필요한 주장으로 한 평생을 낭비하는 지, 별 쓸모 없는 인생인 지, 엉터리인 지..
아무도 알 수 없다.  철저히 감추고 속이니까..
알려고 하지도 않는다.  지금 관심사가 아니다.

결혼 후 아이를 낳고, 다른 성에 직찹할 지는 더욱 알 수 없다.

지금 우리는 온통 그러한 세상을 보게 된다.
어디에 정의가 있겠는가?
무엇 때문에 그 탑을 굳이 쌓아야 하겠는가?

이 모든 것을 알고나면 결혼의 대상으로 생각할 만한 사람은 지구 상에는 없다.
그러한 이유로 자기분열생식도 옳은 결과는 아니다.

이에 대해 우주의 대답은 없다.  미아가 된다.




좋은 사람

좋은 사람은 나쁜 사람이 같이 살 곳을 인정한다.
나쁜 사람은 좋은 사람이 살아갈 곳을 빼앗는다.

좋은 사람은 나쁜 사람의 악행을 기억하게 된다.
환경은 점점 오염되고 좋은 사람은 위태롭게 된다.

나쁜 사람은 점점 많아져 저수지(숙영지)에 모여 있다.

좋은 사람은 끝까지 좋은 사람으로 남겠는가?  서로 섞여 혼탁한 세상을 이룰 것인가?

무기가 없는 것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겠는가?

Friday 8 May 2015

시골 집

어느 지역에 있는 주택을 검토해보라고 해서, 정보를 보니 처음에는 별 내용이 없었다.
여러번 찾아보니, 단서가 붙어있다.

임차인이 따로 존재하는데, 주택에 대한 권리(전세금 등)가 250만원으로 돼 있다.
임차인 존재 확인도 불확실한 것처럼 처음에는 알고 있었다.
사진을 보니 비료 포대 같은 게 출입구쪽에 쌓여있었다.
정상적이라면 출입구쪽에 가까이 쌓아둘 물건이 아니다.
옆 집의 누군가가 빈 집을 그런 용도로 사용하는 것은 흔한 일이다.

그 정보 중에 이런 말이 있었다.

선 순위 임차인이 경매 배당에 참여하지 않았으니, 본 주택의 구입자가 임차인에게 직접 별도로 지불하여야 한다.

최초 입주일이 1900년대로 돼 있다.  20년도 넘었다.

집들은 다 작았다.  높이도 낮고, 내부 공간도 좁다.  어느 집이나 다 이렇다.
건축법 제한이 있어 작은 규모 이상으로 집을 지을 때는 건축 허가가 있어야 한다.
그 제한 숫자가 너무 작아 전국의 시골 집은 높이도 조심스럽고, 크기도 용기가 없다.

농촌의 평범한 주택은 도서실, 음악실, 다실, 사랑방, 화실, 서재.. 이런 것들을 포기하게 돼 있었던 것이다. 60년대 후반부터는 호화주택이라 하여 마당에 풀장도 못 만들게 만들어놨다.  그래서 따로 물 저장 시설을 마련할 수 없게 됐다. 다 여유로운 삶을 제한한 술수들이다.
법이 공공의 이익을 규정하기보다는, 지시적 성격이 강해서 이렇다.
변태법은 툭하면 특별법으로 풀어주고, 또 일사부재리로 방어 하다가 사면으로 마무리 한다.

권리금 250만원은 어떤 의미가 있을까?

충주 서운리 권종구의 예를 들어보자.

주택을 구입했는데, 다운 계약서를 작성해달라고 부탁한다.  다른 땅도 매물로 내어놓았는데, 전체 가격(총 판매금액)이 낮아야 된다고 사정해서 1/3도 안 되는 낮은 계약서가 작성되었다.
훗날 이 주택에 재판이 있어, 이 계약서를 근거로 그 주택을 빼앗기는데, 돌려받은 금액은 계약서 상에 작성된 금액이었다.

엄청나게 많은 이삿짐이 있었는데, 몇달 째 집을 비워주지 않아, 내 차에 내 연료비에 내 노동력만으로 이삿짐을 옮겨주어야 했다.  그 집 주인은 그런 때면 전화도 못 쓰게 문 잠그고 시내버스 타고 나가버린다.  짐 옮길 곳이 좁다하여 증축을 하는데 그곳에서 오래오래 노동력을 무상 제공해야 하였다.

이삿짐은 5mX20m 크기의 비닐 하우스 두 동에 들어갈 많은 양이었다.

창고 벽의 벽지 속에 좀 벌레가 수만 마리나 되었다.  이삿짐 옮기면서 피부병으로 오래 고생했다.

전기요금 밀린 50만원 중에 5만원은 사용자가 직접 내고 나머지 45만원으로 경고장이 날아왔다.  나중을 생각해서 내가 현금으로 내줬지만 받을 수 없었다.

그런데, 이 주택의 전기를 자기 집에 연결해서 쓰고 있다.  전기를 끊을 방법이 없다.  자기 냉장고 음식이 상하면 책임지라고 협박까지 한다.

훗날, 이 전기는 모두 내가 사용한 것이라고 동네에 소문을 내고 다녔다.  마을 회관 같은데서 조용히 이런 소문을 퍼뜨릴 수 있다.

수도는 당시 두 개를 팠는데 70만원 줬다고 했다.  옮긴 집 근처에 있는 수도는 연결 비용(15m 거리)이 들어간다고, 판매한 집 수도를 사용하고 있는데, 나중에는 그 수도(지하수)가 자기 것이라고 우긴다.
이 것으로 동네에 소문을 낸다.  전기 끊고, 수도 끊어서 사람 못 살게 한다고..
당시에 수도(지하수)를 파도 보통 70만원씩 받던 것을 지금은 700만원씩 부른다.  물이 안 나오는 지역이라고 하면서 오지도 않는다.  전화도 여러둔데가 있기는 한데 보통 한 가게에서 여러 전화번호를 만든 경우가 많다.

아래 700평 수자원공사 땅을 사용하고 있었다.  몇년 농사를 지었는데, 어느 날 가보니 교회 대학생들이 들어와 옥수수를 뽑고 있었다.  대학생 근로 봉사를 그쪽으로 끌어온 것이다.
그 땅의 권리도 권종구에게 사용료를 주고 사용권을 넘겨받았는데, 자기 땅이라고 온동네 아뢰고 다닌다.  동네 친구 몇 사람에게 그 땅을 쓰라고 아량을 베풀어 이쪽과 그 동네 사람 사이에 또 싸움이 붙도록 만든다.

훗날 이 주택 소유자, 땅 소유자, 전 세입자 사이에 끼어 모든 사람들로부터 한번도 좋은 소리를 못 들었다.  주택 소유자는 재판에서 집을 빼앗기는 상황이 되자, 다운 계약서의 다운된 금액을 근거로 '사기꾼'이라는 소리까지 들어야 했다.  주택 보수비만도 내 돈으로 수백만원이 들어갔는데, 이 것은 입증할 필요성을 미리 알지 못했다.  재판에서 진 이유 중에 큰 역할을 했던 것은, 얼마든지 동원할 수 있는 가짜 증인들이다.  판사가 이런 가짜 증인들로 해서 짜증을 부리기는 했지만, 패소했다.

집 뒤로 10m 내의 거리에 물 저장 시설(작은 연못)이 있어 그 물이 집 쪽으로 흘러 집 벽이 벌어지고 있어서 그 조치를 하려는데 모든 사람들이 나서서 방해를 한다.

집이 비어있는 시간이 많아 외부 사람들이 자주 드나드는데, 쓰레기 보따리 같은 것을 버리고 가는 일이 많은데, 다 내가 버린 것으로 동네 사람들은 알고 있다.

수십년된 벽돌 하나 없어져도 내 이름이 오르락거린다.  가서 따지면 다른 사람이라고는 하지만, 이제는 말 하는 사람이나, 듣는 사람이나 자동적으로 그리 생각한다는 것이 문제이다.
시골에서는 멍청이 벽돌이라고 하는데, 오래 전 개인들이 집에서 흙이나 시멘트를 섞어 만든 벽돌인데 오래 돼서 쉽게 부스러진다.  이런 걸 가져갔다고 동네 사람들이 오래도록 알고 있었다.

이런 소문 활동이 종교 단체와 결합되어 심심하던 시골 생활에 매일 뉴스 거리를 제공한다.

저 250만원짜리 권리는 얼마로 커질 지 상상할 수도 없다.  이삿짐도 옮겨주어야 한다?  한 동네로 간다면 모를까 100km나 되는 곳으로 간다면?
이사를 안 간다면?  병이 심하다면?  돈이 한 푼도 없다면?
늘 하는 말이다.
결국 권리금은 몇 배의 금액으로 불어난다.

땅만 매매의 대상 물건이라, 아직 건축물이 남아있다.  거기에는 비닐하우스 등 별 쓸모 없는 것도 많은데, 다 설치 시 사용된 금액으로 계산들을 한다.  즉, 다시 만들 비용을 달라는 것이다.
또 세입자 교체를 집 주인이 몰래한다면?  시골 집을 구입하러 다니면 집 입구 쪽에 비료, 컨테이너 같은 것을 쌓아두고 있다.  오래 빈 집이었으면, 집 안에까지 쌓아두곤 하는데, 이 일을 처리하는게 그리 만만하지 않다.  붠가 저항을 하는 것처럼 보이면 바로 군기 잡힌다.  물렁하게 보여도 마찬가지이다.  솔로몬의 지혜?  여기서는 권력이 그 역할을 한다.

땅 신소유자는 주택 소유자, 주택 임차인, 동네 사람들과 외로운 싸움을 해나가야 한다.
집에 노인이라도 계시면 밖에 나가서 친목활동을 할 수 없는 상황에 처하게된다.  동네 사람과 어울리지 못하는 것은 말할 것도 없고, 노인회관 같은데도 가기 어렵다는 이야기이다.

바로 첫 마디에 90 노인에게서도 비꼬는 말이 튀어나온다.
이제는 감시자가 많아져서 집 수리로 뭔가를 하려하면 바로 신고가 들어간다.
이쪽에서는 큰 불편이 있어도 신고 못한다.  동네 사람들 나쁜 짓은 상상할 수 그 종류도 많다.

매일 쓰레기를 바람의 방향에 맞춰 태우는 일, 개를 이쪽 방향으로 짖게 만드는 일, 개를 수백마리씩 키우는 일, 새벽 두 세시에 피아노를 치고 노래를 부르는 일, 그리고 5미터 내의 거리에 소 분비물을 4m 높이로 쌓는 일..  이 때는 한 여름에도 창문을 열지 못한다.  유폐이다.

빨래를 널어두면 가장 친하다는 사람이 갑자기 옆에서 농약을 뿌려댄다.  빨래, 무우 말랭이, 호박 말랭이도 마음 놓고 널어두고 외출할 수 없다.  늦잠도 못 잔다.

탈곡을 도와줘도 왜 그러는지 경운기 매연을 우리쪽으로 꺾어놓는다.  사람 없는 반대쪽으로 왜 안 하는 지.. 폐 질환으로 오래 고생했다.

집 짓는 데 도와주러 간다.  수박을 내오더니, 스티로폼을 바닥에 깐다고 던지니 온 방에 먼지가 날려 수박 위로 쌓인다.  그걸 먹으라고 한다.

일 거들어주니 고구마를 먹으라고 해서 가보니 흙 묻은 그대로 물에 졌다.  그릇은 몇년 사용한 쪼그라진 개밥그릇 같은 모양 그대로이다.

버섯 막사를 짓는데 도와줬다.  구식 화장실을 지나가야 하는데, 버섯 나무가 물이 먹어 너무 무겁다.  땅 속에 쌓인 인분을 밟고 가서 옮겨줬다.  그것도 혼자..  버섯 수확철이 되니 잊고 있던 버섯을 가져왔다.  버섯 갓 아래 모래가 얼마나 많은 지 모른다.  모래 박힌 버섯만 골라 우리에게 가져왔다.  얼마 후 다른 집에 가서 보니 다 멀쩡한 버섯들이었다.

뭘 주겠다고 말 할 때는 우리가 일을 도와줬을 때 뿐이다.
산에 송이 버섯 나는 데를 알려준다고 따라 오라고 하더니 중간에 사라지고 대답을 안 한다.  몇 번을 그리 속았다.

토지 사용료는 갑자기 두 배 또는 수십배씩 오른다.  서울의 주차요금 계산법을 그대로 쓴다.  빈 땅 노는 땅이라도 차 한 대 주차하면 뒷 소문이 무섭게 돈다.  다른 사람이라면 전혀 문제가 안 되는 일들이다.  서울에서 오면 이런 피해를 피할 수 없다.  서울 사람들 작은 일에도 여기저기 신고한다고 미리 공격하는 습성이 있다.

시골에 가서 함부로 도와주는 친밀감 쌓으려는 태도는 해서는 안 된다.  크게 손해 본다.
나는 할 수 없이 그 집을 버려두고 나왔다.  집 천정에 값 나가는 게 있는데 가져오지도 못 했다.

주의 할 일은, 토지 사용료 현금으로 주면 나중에 한 번도 받은 적이 없다고 말한다.
시골은 인심도 인심이지만, 공해, 소음, 악취, 생활 불편(방벽 주차해서 차를 못 다니게 하는..), 지하수 오염, 혐오 시설물 방치.. 같은 것은 참아낼 수 없다.

단 한 군데 담을 허물지 않은 곳이 없었다.  담을 허물면 경계선이 그쪽은 커지고 이쪽은 작아진다는 생각이다.  대답?  돌 담 제일 아랫돌을 몇개 빼버리면 돌이 그쪽으로 무너진다.  그러면 피해 보상 운운 하면서 그 돌을 경운기에 싣고 가버린다.  그러더니 맹렬한 쓰레기 소작장을 근처에 만든다.  평생 자기가 돌을 주워냈으니 땅을 쓸 수 있다.  그리고 여기까지 자기 땅이다 하고 말뚝도 손수 박아두고 그런다.  자기 아들이 고등학교 토목과 출신이라고 그리 해도 괜찮다고 말한다.  이런 것을 동네 사람들은 누구 하나 뭐라는 사람이 없다.
이런 경우도 있었다.  싸게 나온 집이 있어 가보니, 동네 사람이 트럭으로 밀어 담을 허물어놓았다.  자기 집이라고 들어가지 말라고 하던 옆 집 아주머니 생각이 난다.

늘 하는 생각이지만, 싸워도 서울은 그냥 잊지만, 농촌은 그게 수십년 입방에 오른다.  제도도 서울이 잘 돼 있다.  한국에서 제일 좋은 법률, 행정, 문화 서비스를 받는 곳이다.  시골은 차를 막아놓고 운전가가 사라져도 어쩔 방법이 없다.  그날 영업을 포기하거나 몇 일 뒤에나 일보러 가거나 해야한다.  견인 제도 자체가 없다고 말 하는 충주 시청이 있는가 하면, 롯데 마트 주변 도로에는 견인차가 매 시간 순찰을 해준다.







자연은 생각이 없어도 룰은 지킨다.
토네이도가 생기는 것은 그러한 연유다.
물이 끓는 것도 그러한 연유다.

룰이 어떤 상황에서든 정확히 지켜진다.
선과는 다른 의미가 있다.

고정되고 변하지 않는 것을 선으로 말한다면,
가장 적당한 대상으로 '무(nothing)'가 어울리겠다.
그것은 움직이는 것과 움직이지 않는 것과의 비교이므로 맞지 않다.

범위를 지정하거나, 높이를 규정한 것 안 어디에 선이라는 게 있다.
서민이 흔히 '선'할 것이라고 막연히 믿고 먼저 행동해버리는 것의 결과는 선에의 기대, 오해, 예측이지, 선은 아니다.

선은 인간 사이에서 가장 간소한 절차이다.

Thursday 7 May 2015

세대

얼마 전 누군가가 이 나라 모든 사람을 한 마디로 때려잡은 적이 있다.
미개인..

긍정도 부정도 할 수 없는 말이다.

그 덕분에 기업하는 사람, 정치하는 사람들의 국민에 대한 인식이 얼마나
심각한 수준인 지를 알게 되었다.
발언자에 대한 평가를 하려는 이유로 이 페이지가 할당되지는 않았다.

시간이 좀 흐른 뒤 나는 이런 생각을 하게 되었다.
'아! 나도 표현의 자유를 구속하고 있었구나..'

'또, 나를 너무 지나치게 남과 구분하는 습관도 있구나..'

그 누군가가 내 가족이었다면 나는 어떻게 감싸는 발언을 했을까?
내 자식이었다면 그렇게까지 삿대질을 할 수 있었을까?

거의 모든 죄수들에게도 면회는 있을 것이다.
그토록 지탄을 받는다면, 면회자가 거의 없어야 할 텐데, 그러지 않는다.

나는, 공동의 노력이 없다는 말을 하고 싶다.
공동체의 공동의 이익을 위해 뭘 하고 있었던가를 내게 묻고 있다.

앞 세대에 대해서 젊은 이들이 모르는 게 있다.

그들은, 일제의 전쟁을 대신 치뤄야 했다.
그 때의 습관이 지금도 남아 있다.
그 때까지의 한국의 농사에 비료, 농약이 없었다.
일본이 전쟁 물자를 빨리 조달하기 위해서 농사에 농약과 비료가 꼭 필요했던 것이고, 같은 이유로 대규모 간척지 공사, 댐 공사, 제방 공사, 산 중 연못들을 만들었던 것이다.
빠른 운반을 위해서 신작로도 필요했다.

남의 전쟁에 쓰라고 이 땅에서 전쟁물자를 만들어 일본에 바쳤다.
따로 공부할 시간도 없었고, 자식들을 훈육할 기회도 없었다.
일본의 명령을 이해하기 위해서 일본어를 모국어로 배워야 했다.

그래서 지금도 쉬지 못하고 작은 텃밭이라도 있으면, 농약과 비료로 농사를 짓는다.
땅들이 다 작아서, 지나가는 자동차 매연에도 어쩌지 못하고 농사를 짓는다.
쉬지 못하게 훈련 받아서, 쉬면 주변 눈치가 보인다.
지금도 그런다.

우리가 부지런해서 부지런한 게 아니다.
'빨리빨리'를 한국 문화로 잘못 아는 사람들이 있다.
일본 제국의 공출문화이다.

일본이 항복한 뒤로는 정치가 나라 전체를 망치기 시작했다.
아주 부자나 되어야 학교라는 걸 다닐 수 있었고
멀쩡한 옷이 없어 거지처럼 옷에 헝겁을 덧대어 입고 다니고, 떨어진 양말을 신고다니는 것은 흔히 볼 수 있는 일이었다.
동네 사람들이 다 그러고 사니, 그것이 흉이 아니었다.

그래서 벌어먹을 일도 막막한데, 우리끼리의 전쟁으로, 또 개인의 지적 성장을 다음 세대의 몫으로 포기해야 했다.

우리들 할머니는 그래서, 허리가 꼬부라지도록 일 하는 것 밖에 뭘 할 여유가 없다.

지금은 밥 할 때, 깨끗한 쌀을 사다 물로 씻어서 밥 솥에 넣어 버튼만 누르면 된다.
그 때는, 하루 밥 세번 하는 것만으로도 할머니의 하루 시간은 다 가버린다.

밥 하는 과정은 이렇다.
일단 절구에 넣고 쌀을 찧는다.
그러면 쌀과 쌀 껍질이 분리된다.
쌀을 키로 까불어서 쌀만 남게 한다.
이 쌀을 물로 씻고 복조리라는 것으로 돌을 골라내는데 이 것도 상당한 인내력이 필요하다.
산에서 나무를 해다가 부엌에서 연기를 다 마셔가며 밥하는 과정을 지켜보아야 한다.
반찬 만드는 과정도 대충 이렇다.
모든 반찬은 다 직접 농사를 지어야 했으므로, 텃밭에서 또는 근처 자기 밭에서 식료를 가져와야 한다.  집에서 하는 일년 농사에는 고추, 들깨, 참깨, 배추, 무.. 등 모든 농산물을 기르는 작업이 따른다.  소, 돼지, 닭, 토끼 같은 것도 일년 중 길러내야 한다.

즉, 지금처럼 어떤 것 하나 사다 먹는 것이 없다.  물론 가게라는 것도 없었고 있다고 해야 담배 가게 같은 초미니 가게 정도이다.

돈이 필요하면, 머리에 배추나 무 같은 채소를 이고, 10km고 20km고 장터가 있는 곳까지 걸어 가서 팔아온다.  쌀 같은 것을 머리에 이고 장거리를 다녀오는 생활이니 허리가 멀쩡한 할머니 보기가 어렵다.  산아 제한 같은 기술이 없어서 아이들은 저절로 늘어났다.  그래서 아이들이 적어도 한 집에 넷은 된다.

아이들도 반쯤은 한 살이 되기 전에 병으로 죽었다.  병원이라는 것도 주변에 없지만, 병원 입원이라는 것은 생각지도 못한다.  그냥 몇 일 앓다가 죽는 것 외에 부모가 어찔할 방법도 없던 세월이었다.  식량이 없어서 아이를 남의 집 머슴으로 보내는 일도 많았다.  아이를 살리는 다른 방법이라는 게 따로 없었던 것이다.
전쟁 고아도 많았지만, 자식을 먹일 방법이 없으니 아이를 홀트 아동복지 같은 데로 보낼 수 밖에 달리 방법이라는 게 없었다.
그래서 한국이 고아 수출 1위국이 된 것이다.

옷도 집에서 배틀에서 직접 만들어 입었는데, 품질이 좋지 않아서 오래 쓰지 못한다.  신도 잘 해야 고무신이었다.  그것도 바닥에 구멍이 나도록 신어야 한다.  운동화 같은 것은 아주아주 부잣집 아이들이나 신는 호화 사치품이었다.

방 두 칸 사이에 작은 구멍 하나를 뚤어서 거기에 5w짜리 전구 하나를 켰다.  전기세를 낼 돈이 있지 않았다.  다들 그리 살았다.  그것도 잠깐만 그렇게 썼다.  저녁내 그렇게 불 켜는 게 아니다.  식사할 때, 아이들 숙제할 때, 바느질 할 때.. 그 외는 불은 무조건 꺼야 한다.

벽은 그냥 흙벽으로 단열 시공이 안 돼 있어, 겨울이면 너무 추웠다.  방 안에 떠놓은 물이 얼기도 하니까..
매일 연탄 한장씩 사다 난방용으로 썼다.

명절 때면 집주인 댁에 선물을 해야 하는데, 지금으로서는 이해가 안 되겠지만, 계란 꾸러미라고 해서 짚으로 엮은 지푸라기 포장에 계란 열개가 고작이었다.
계란 열개가 명절날 선물이라는 것이다.  플라스틱, 비닐 같은 것은 구경도 할 수 없는 때였다.  아무리 먼 거리라도 걸어서 갔다.  그보다 좀 전에는 서울에서 지방까지 몇달씩 걸어서 다녔다.  그때 무슨 노선버스 같은 게 있었겠는가?

그래서, 아들 하나 공부 잘 하면, 이만한 보험이 없겠다 싶어 웬만큼 굶더라도 자식 공부는 시켜야 했다.  그것이 지금까지 계속되고 있다.  지금은 살만한데 말이다.  그것을 그만 두지 못하고 대학 시험 보러가는 자식을 따라 대학 정문까지 간다.

우리는 뭔가를 말 하기 전에, 싸우기 전에 이런 과정에 이런 결과와 어떻게 만나는 지를 알아둬야 한다.  사람은 침팬치보다 더 나을 것도 없고 다 고만고만한 고민을 하고 대충 살아간다.

나 자신도 남의 입장에서 보면 똑 같은 '남'이다.

얼마 전 뉴욕의 한 마트 주차장에서 벌어진 싸움을 봤다.
아이는 말리고, 부모는 한 여자를 눕혀놓고 계속해서 코를 주먹으로 내리치고 있었다.

나는 이 것을 보면서, 이 사람들 피가 수백년 뒤에 우리 피와 반드시 섞일 거라는 것을 안다.
우리가 인간 사회에 소속되어 사는 한, 이런 경력을 서로 얼마씩 교차해서 지니고 있다.

자세히 살펴보면, 타인과 나의 구분점이 애매해진다.
그리고 왜 남과 나를 구태여 구분하려고 하지?
왜 인간이 국경이라는 것을 만들어 국경 너머 사람들과 싸우고 있지?
왜 스스로를 국경 안에 가두고 그것을 애국이라고 말하는 거지?

인간은 이런 한심한 모순 속에서 공존하고 있다.
보지 않는 것도 믿고, 빤히 보고도 왜곡한다.
자기를 위해서는 좋은 것 따로 챙겨두고, 남에게는 함량 미달, 나쁜 것을 골라준다.
이게 우리의 참 모습이다.

우리는 하나도 스스로의 개선점을 찾으로 노력하지 않는다.
인간 스스로 수양하는데 100년으로도 부족한데, 어느 누가 그리 하고 있는가 말이다.
tv 앞에 앉아서 리모콘 깔짝거리며, '재미가 없네..' 하던 경험은 없는가?

우리는 살면서 왜 사는 지 모른다.
없어도 안 빼앗기는 것, 모르면 살짝 가져오는 것..
이런 것 말고 우리가 제대로 해내는 것은 없다.


어쨌든 그 할머니들이 이 나라를 지켜왔다.

그런데 한 젊은 이가 조상의 사당을 엎어버린 일이 발생한 것이다.
'미개인이라는 발언 하나로..'

그런데, 다들 이런 것 아나?
앞으로도 긴 세월 우리는 그 상태에 머물 수 밖에 없다는 것
우리는 우리의 땅조차 지킬 힘이 없다는 것..
우리의 역사 속에서 재능 있는 사람을 모함해서 늘 죽이고 있었고, 그런 재능을 반에서 반으로, 또 반으로 줄여나가는 작업을 했다.
그 것은 부지런히 우리가 답습하고 있다.

천년 넘도록 그리 하고 있다.  이미 나라가 반으로 갈렸는데, 또 그러려고 한다.
다들 우리를 지키지 못 할 거면서, '우리'라는 표현은 아주아주 많이 쓴다.

우리는 우리의 우리가 아니다.

우리는 표현의 자유 운운하기 전에, 누구를 탓하고 할 권리라는 게 없다.

우리의 전 세대는 다음 세대에게 생명을 연결해주기 위해 살아견뎌내는데 시간을 온통 쏟아왔다.  책을 볼 돈도 없었지만, 시간이 없었다.

저 발언에 교수들도 맞장구를 쳤는데, 저런 할머니보다 하나도 나을 것은 없다.
교수직은 그런 할머니들이 만들어낸 것을 할머니는 말 하지 않는다.
그런 사실 자체도 알지 못하니까..

스스로는 아무 것도 안 하면서, 일본을 욕하면 뭣 하나?
미국이나, 중국에 아부하면 나라를 공짜로 지켜준다던가?
신기한 일이 하나 있다.  기적 같은 일본의 성장을 한국은 배울 생각이 전혀 없다는 것이다.
한강의 기적이 기적이면?  미국과 맞붙은 일본의 기적은 기기기기적일까?

이 글은 자료가 부족하다.  글 잘 쓰는 사람이 이 내용을 정리해줘야 할 것 같다.
쓰다보니 더 쓰기가 귀찮아진다.  보람도 없고..
이 시간에 발을 씻는 일이 내게는 더 중요한 일이다.




Wednesday 6 May 2015

노화

나이 들어가면서 전에 되던 게 이제는 안 되는 게 있다.
그러나 본인은 잘 모른다.
아주 서서히 바뀌기 때문에 알지 못한다.

어렸을 때 외국어를 배우면서 듣던 외국어 발음과 나이 든 후에 듣는 것과는 다르다.

프랑스어는 대충 들을만 했다.  어떻게 들으면 영어보다 곱게 들렸다.
지금은 영어보다 부드러운 언어는 없다.  r 발음 같은 게 많이 쓰이는 미국어는 영국어보다 부드럽게 들린다.  중국어에도 권설이라고 혀를 말아올리는 발음이 있다.  하지만 중국어는 영 딴판으로 들린다.
이제는 프랑스어는 코맹맹이 소리로 들린다.  이런 소리는 소리가 밖으로 시원하게 퍼져나오지 못하는 동남어권 언어 발음과도 비슷하게 들린다.

독일어도 처음 배울 때는 몰랐는데, YouTube에서 독일 방송을 들어보니, 발음이 듣기에 끔찍했다.  어떻게 독일 사람들은 저런 소리를 듣고 살지?라는 생각

일본어보다, 스페인, 포루투갈어는 상당히 투박하다.  처음 발음 배우기는 쉽지만, 부드러운 언어는 아니다.  러시아어는 더욱 심하다.  야만적이고 천박해보이기까지 한다.  (이 지역 사람의 귀에 그렇게 들린다는 이야기이다.  나쁘다는 말을 하는 게 아니니 오해들 없으시길.. )
러시아 상류 계급 사회에서는 프랑스어를 썼다는 말이 이해되는 점이 있었다.

중국어에 대해서는 평가를 않는 게 좋겠다.  다만 한자를 빨리 버렸으면 좋겠다.  번체나 간체나 그게 그거다.  가난한 나라에 뭔가를 말한다는 일이 즐겁지 않다.  어찌 됐건 그냥 시끄러워지기 때문이다.  우리 모습이라고 많이 다르지 않다.

어제 YouTube에서 우연히 naked island (Butil-ulan) (1984)라는 영화를 보았다.  몇일 전 보았던 비슷한 이름의 일본 영화 (1960)와 이름이 비슷해서 보게 된 것이다. 필리핀 영화였다.  오디오 더빙 시 하이키를 많이 써서 그렇게 들리는 것도 있겠지만, 소리가 너무 날카로웠다.  쩌렁쩌렁 소리 지르면 싸우는 대사에서는 오디오를 끄고 화면만 보고 싶었다.
또, '쩌렁쩌렁'과도 같이 자주 반복되는 발음도 이상하게 들렸다.
조용히 하는 말도 싸우는 말로 들린다.

나는 이런 영화들에서 찾는 게 있다.
거리, 의복, 머리 모양, 주택 형태, 도로 사정..  한 번도 본 적 없는 그림들이 많이 나오는 영화들이라 볼만하다.  어차피 요새는 스토리가 없는 영화, 드라마, 노래들 뿐인 세상이라 기대하지도 않는다.

언젠가 보았던 물의 나라?(이름이 생각 안 남)인가 하는 일본 화면은 참으로 놀라웠다.
집 부엌에까지 살아있는 고기들이 배수로를 타고 드나들었다.  밥풀 몇 알을 고기들이 먹게 흘려주기도 했다.  시궁창이 아니고 상수도와도 같은 기능이었다.  어떻게 이럴 수가 있다는 말인가?  일본에는 이런 잔잔한 화면을 올리는 유명한 사람이 있다. (YouTube 이름이 가물가물)

나이 들어가면서 듣는 게 전과 다른 무엇이 있는 모양이다.  그래서 잔 소리도 그렇게 듣기 싫은 지 모르겠다.  그런데?  노인들 잔 소리는 왜 그리도 많이 해댈까?

또 하나는 자기 확신이다.  자신감을 넘어서는 이 확신은, 자기의 판단이 마치 확실하게 무엇인가를 본 것과 동일시 한다는 게 문제이다.
'내 판단은 완전하게 옳다.'
나이 들어가면서 판단력은 점점 어두워 간다.  쌓인 지식들은 점점 현실에 맞지 않게 된다.  그런데, 마치 본 것처럼 자신도 모르게 확신하고 있다.  주변에서 보면 '고집'인 것처럼 보이는 그런 성격이다.  여기서는 나이가 별 도움이 안 되는데, 오히려 그 점점 커가는 숫자가 오류를 만드는데 한 몫을 한다.

나이 들어가면서 부드러워질 것 같은데 그렇지 않다.  참을성도 줄어만 간다.
심하게 감정에 시달린다.  그래서 이성적으로 뭐를 설명하기 힘들다.
특히 어휘가 딸리는 사람의 경우는 비슷한 발음의 다른 단어로 대체 해석하기 때문에 싸움나기 쉽다.  어떤 tv 광고에 나왔던 '돼지털' 같은 예가 이해가 빠른 것이다.  잘못 들은 것이 아니다.  다를 수 있다는 것을 부인해버린다.  결론에 쉽게 앞질러 가버리는 표현을 자주 한다.
'그래, 빨리 죽으란 말이냐?'
그리고, 이 말을 직접 들은 것처럼 알고 다닌다.

어려서 노인학(대학 교재)을 읽어보기는 했지만, 노인을 제대로 이해하는데 도움은 되지 않았다.
노벨문학상이고 뭐고를 말하기 전에 우리 손으로 좀 쓸만한 글 좀 써줬으면 고맙겠다.

언어가 세계 공용어로 채택이 빨리 되어야 한다고 본다.  에스페란토어는 학겹점을 줄 수 없다.  러시아어처럼 9격까지 있는 언어도 마땅하지 않다.

어떤 언어에서 보면 별 쓸모 없는 품사들: 정관사, 관사, 복수, 단수, 불확실한 전치사..
또, 스페인어 같은 경우, 형용사나 명사가 동시에 복수 적용이 되는 경우 등은 불필요한 언어 생활이라고 본다.

일본어의 카타카나는 아무런 소용이 없다고 본다.  한국은 그냥 고딕체로 외래어를 구분하는 것으로도 충분했다.  또, 한문을 많이 쓰면서 소리는 일본어로 내버리면 그냥 히라까나로 써도 될 것을 외국어인 한자를 그리고 많이 차용할까?  이건, 일본어를 배우는 외국인에게는 보통으로 복잡한 경우일 수가 없다.

공용어를 고르지 못한다면, 우선 영어가 임시로 사용되길 바란다.
이런 것도 국제대회에서 비교언어를 자주 해야 가능한 일일 것이다.
나는 세계 의사 소통이, 자국어 껴안고 뒹굴기보다 유익하다고 본다.




(우리나라?  어떻게 번역하지?  '한국'이라고 표기하면 안 될까?  '우리'라는 말은 이젠 그만 쓰면 좋겠다.  대학 시험 보는데, 어머니들 학교 앞까지 따라가는 것 안 좋아보이는데, 이 말도 그렇다.  유럽의 10대들 목소리만 들으면 어른 같다.  우리도 청소년을 그렇게 보호했으면 좋겠다.)

리눅스

windows 8.1이 나에게 이런 말을 하는 것처럼 들렸다.

'왜 굳이 windows를 쓰려하는가?'

그래서 리눅스를 설치해본다.
하드디스크에 usb 단자를 연결해서 많은 리눅스를 설치했다.
usb나 dvd에 저장하는 단계를 생략하니 설치한 리눅스만 몇 십개는 된다.
다행히, 내가 가진 모든 bios는 이 것을 usb+하드디스크 또는 하드디스크로 인식해줘서 설치하는데 불편함이 없었다.
(YUMI – Multiboot USB Creator)

여러 대의 pc가 있는데, 각 pc에 하드디스크 두개씩 설치를 했다.

멀티부팅이니 뭐니, 포맷할 때 여러 가지를 생각해야 하니 불편하다.
하드디스크마다 파티션을 미리 셋으로 나누어 제일 뒷 파티션은 ntfs로 하여 다른 os간 파일 공유를 한다. (파티션 설정 시, /windows - ntfs 파티션으로 그 파티션 전체를 할당)

리눅스?  칙칙하다.  바탕화면(특히 우분투), 메뉴, 폴더..
검은색 바탕에 메뉴가 뜨는 것은 그냥 보아 넘기기도 힘들다.
흔히 블로그를 아예 검은 바탕에 회색 문자를 쓰는 경우가 있는데, 이런 블로그는 읽을 수 없다.  더구나 이런 부족한 배려심으로 블로그를 운영하는 사람에게서, 어떤 기대감을 충족시켜줄 문서가 나올 것 같지는 않다.

리눅스도 각각 다르고 성격이 있는 리눅스는 ntfs를 아예 무시하기까지 한다.
미리 나누어둔 세 파티션을, 자동 설정 파티션에 맡기면 기존 파티션 무시하고 마구 설치하는 경우도 있다.

다음은 8.1 화면이다.  화면도 좁은데 저 큰 것들을 다 보려면 오른쪽 2번 손가락이 앞뒤로 휠 굴리느라 고생을하게 된다.  2번 손가락?  중요하다.  그러므로 보호받아야 한다.
(캡쳐하고 보니,그림엔 악명 높은 인터넷 익스플로러와 원 드라이브 아이콘이 보인다.)






이 놀라운 불편함 !

red hat 6를 가지고 있다가 지금까지 설치도 못 해봤는데, 덕분에 쉽게 리눅스로 오게 되었다.

그런데, 리눅스로 넘어가면 다음과 같은 windows 화면을 볼 수 없다.  이 디자인 아주 훌륭하다.


다음 화면처럼 해놓고 쓰지는 않는다.
이 걸 쓰게되면, 화면이 상대적으로 좁아지고 눈이 바빠진다.


리눅스 민트를 설치하면서 아 설치 참 편하다..라고 생각했는데, 다른 리눅스를 설치하면서 오래된 pc의 그래픽, 오디오, 랜 드라이버가 문제가 된다.  유명한 회사의 드라이버도 어디서 받는 지 알기도 어렵다.  아무 거나 받았다가는, 중국의 어느 쇼핑 광고에 시달리게도 된다.  모델명도 뭘로 해서 받아야 하는 지도 난감하다.

오래 된 pc, 예를 들면, 삼성전자의 구 모델 모니터 드라이버는 삼성전자 홈페이지에 가면 있다.  엘지는 메일로 신청하고나서 받았다.  나머지는 열심히 구글해야 한다.  인텔 랜카드는 xp에서 읽지 못 했다.  인텔은 인텔로 유명했지, 랜카드로 유명했던 게 아니었던 모양이다.

저 삼성 드라이버는 windows 7에서 읽지 못했다.  더 정확한 표현을 쓰자면, 거부했다.
보통 호환성이라고들 표현하는 모양이지만, 왜, 모든 소비자가 구형 드라이버에 대한 업그레이드 비용을 분담해야 한단 말인가?

아는 사람에게는 뭐든 문제될 게 없다.  모르는 사람이 문제인 것이지..

랜이 연결이 안 되면 별 방법이 없다. 마치 오래 전 플라피디스크에 어떤 중학생 아이가 게임을 열심히 복사해 나르던 일이 생각난다. 피시 통신 할 때 나던 팩시밀리 소리 같은 것도..

민트를 쓰면서 뭔가 허전했다.  firefox는 오래 전부터 써오던 거라 웹 검색을 하는데 지장이 없었다.  나는 그 많은 web browser 중에 인터넷 익스플로러만 안 쓴다.  작업 표시줄에서도 안 보이는 곳으로 밀려나 있다.

리눅스용 스파르탄을 만들어낼 수 있는가?라는 질문에 어떤 대답을 할 수 있는가?
그럴 자신감이 있느냐는 말이다.  이익을 제대로 계산 하는 방법을 알고 있는 지에 대한 질문이다.  끝 없는 반칙 플레이,  내가 그들에 대해 느끼는 생각이다.

크롬, 크로미엄, 오페라, 오페라 넥스트, 사파리, 파이어팍스
그리고 이들을 기반으로 만들어진 다른 web browser는 아주 많다.
요즘은 믿었던 파이어팍스가 변칙 플레이 중이다.  html 5? 이게 어떤 건 되고, 어떤 건 360P 초과한 youtube 화면을 보면 창이 깨져나온다.  저 html 5 없이도 오페라나 크롬은 720P 이상에서 잘 작동한다.  예-전-처-럼.. (예전처럼 = 이거 하나만 지켜도 사업은 되는데..)

Mate에서 Cinnamon으로 바꿨다.  조금 나은 것 같았다.
뭐가?  아래 있던 것들이 위로 올라 갔다.  그 작은 차이가 무엇을 의미할까?

8.1에서도 작업표시줄 위치 변경이 가능하다.  하지만, 말하고자 하는 것은?  기본 설정값이 너무 떨어져 있다는 것이다.

디자인도 의미가 있다.  디자인이 없으면 불편하다는 말과 비슷한 말이다.

처음 적응이 어려웠던 것은 커서 손가락 모양과 폴더 크기와 색상이다.
저 위 windows 그림처럼 만들어보려다 그만 두었다.  그 대신 다른 리눅스를 설치했다.

찾는 게 있기는 있었지만(엘러멘터리 Elementary OS 등), 민트만큼 하드웨어 적응성이 뛰어난 것은 없었다.

8.1에서 벗어나려던 이유는 또 있었다.
내부 network 공유와 자격증명이다.
공유가 풀리는 이유 가운데 하나는 V3이다.  파일 하나라도 적용 실행을 하면 부팅이 아닌 사용 중 공유를 풀어버린다.  이 오해는 고스란히 8.1이 뒤집어 썼다.  이 해결은 알약으로 된다.  알약이 그래서 좋다는 뜻이 아니다.  백신 사용을 하는데, 외부 연결선을 일시적으로 끊고 하면 더 효과적일 것이다.  기억을 더듬어 보니, 오른쪽 하단에 V3 광고가 뜨기 시작한 때부터 그랬던 것으로 보인다.  지금은 network 공유의 의미가 커졌다.  공유 설정은 회복되어야 한다.

이런 일은, xp to xp 내부 network 구성 중에는 한번도 발견하지 못한 점이었다.

자격 증명은 별 쓸모도 없었다.  뭘 특별히 건드리지 않아도 되었다.  그러나, 저쪽 memory가 바쁜 경우 같은 때는 짜증 섞인 '자격 증명'이 튀어나온다.  기다렸다 되고, 몇 시간 있다 되고, 즉, 되었다 말다...

반면에?
리눅스는 부지런히 암호를 타이핑 해줘야 한다.  화면 정지시, 관리자 모드에서, 소프트웨어 매니저에서도..

8.1 폴더에서 확실히 보여주는 것은, 크기, 간격이다.
문자간 간격은 좌우 간격, 상하 간격도 황금률이 있다.  8.1은 이 걸 쓰고 있고, 리눅스는 그렇지 않다.

다음은 민트 폴더 화면이다.



아무리 해봐도, 8.1의 폴더 색상, 간격을 만들어낼 수 없었다.

8.1을 사용하다보면 몇가지 이유로 pc가 꺼지지 않는 경우가 있다.  그리고 켜지면서 다시 몇 시간을 사용할 수 없다.
업그레이드?  windows 새로 설치 시간보다 더 긴 시간 잠식이다.  어제 새벽에 쓰던 pc는 다음 날 아침까지 그러고 있었다.

요새 악성소프트웨어 제거 도구라고 해서 mrt인지를 설치하고 있다.
또 신기술 도입이다.
본격적으로 개인 시스템을 뒤져 보겠다는 말씀?

8.1에서 여러 언어 설치의 경우, 한글 사용을 위해서 마우스 클릭을 해줘야 하는 경우가 있다.  이것도 상당히 불편한 점이다.

리눅스 사용시 한글 사용 문제, 오디오 볼륨 조정 문제가 흔히 있다.  동영상 플레이 같은 것도 문제 되는 게 있다.  오디오 볼륨이나 동영상 플레이 문제는 windows에서는 못 보던 문제였다.

모든 windows가 다 문제가 있어 왔다.  리눅스라고 안 그럴 수는 없을 것이다.
windows의 사용이 정보 기관에서의 트집 거리가 되는 수도 있을 것이다.

개인정보의 유통
이 것으로 하려면 많은 돈을 벌 수 있을 것이다.  누가 언제 어디서 무엇을 하고 무엇을 구입하고.. 개인의 소비 패턴, 행동 패턴 등을 분석하면 투자의 범위, 투자 시기, 투자 형태 등 모든 기업적 행위가 유리해질 것이다.

즉, 마트에서 물건을 구입하면 모든 데이터가 마트에 남는다.  그러므로 물량 유통을 미리 계산할 수 있다.  그래서 모든 영업장은 이런 데이터를 보존 유지하려고 한다.  다만 이 것을 죄의식 없이 공매해서 데이터 장사를 하게 되면, 각각의 개인 정보가 어떻게 악용될 지를 모른다.

지구 상 어느 지점에 특정인 누가 현재 위치할 확률을 누군가 정확히 알게되면 어찌 해야 하는가?  어떤 사건의 인과관계를 분석해 내기가 어려워진다.  뒤따라 가는 게 아니고 미리 대기하고 있었다면 말이다.
프랑스 어느 잡지사의 폭발 문제..
타인 신분증으로 얼마든지 입국이 가능한 문제 등..
신변의 위험을 느낀다고, 경찰력이 동원되지는 않는다.
기껏 이런 소리나 듣게 된다.
'죽거나 다치거나 뭔가 피해가 발행해야 나설 것 아니냐..'

장 시간 OS에 pc가 정지 상태인 것을 보면서 저 위험성을 고려 안 할 수 없었다.

인터넷 익스플로러, 원 드라이브..  무료 같지만 소비자에게 가장 피해를 많이 주는 것이다.
더구나, 이런 것들에 의해서 우수한 소프트웨어가 사라지게 되는 것은 소비자에게 더 큰 손해인데, 다들 자기 문제가 아닌 것으로 안다.

리눅스 설치 전 신경 써야 할 것은, 파티션 분할이다.  검색해서 어느 정도는 알고 들어가야 한다.  이 부분이 리눅스로 건너 가면서 만나는 귀찮은 장애물이다.

간단히 클릭 한 번으로 마운트 되는 리눅스도 있긴 하지만, 대개 콘설에서 마운트 작업을 해줘야 한다.  이 것이 여러 pc를 마운트 했는데, 중간 어느 pc가 꺼진 상태라면 나머지 후순위 pc는 마운트가 안 되는 경우가 있다.

kbuntu 15.04를 다른 pc에 설치 중이다.
첫 인상은 '쓸만 하겠다.'
내가 YouTube에 올린 동영상을 firefox에서 720P로 보니 안정적으로 잘 나왔는데, 1080P로 보니 화면이 사선으로 깨졌다.  이 것도 windows에서 경험하지 못 했던 것이다.  그래픽 카드 드라이버를 확인해봐야겠다.
뭔지 모르겠지만, 이상하게도 8.1+firefox로 본 영상보다 실감 난다.
(8.1에서 다시 보니 별 차이를 모르겠다.  신뢰와 불신의 감정 교차가 있었던 것으로 이해한다.  8.1+firefox에서 확인하니, 1080P로 자연스럽게 재생 되었다.)

한글 표현 방법은 찾아봐야겠다.  nabi 찾기가 쉽지 않다.

kbuntu 15.04 폴더 화면이다.  좀 나아졌다.


다시 확인 해 보니, 오픈 수세와 비슷하다.
오픈 수세가 먹통이 돼(리눅스를 여럿 설치하다보면, 가끔 먹통되는 게 있다.) Zorin OS를 설치했는데 이것도 괜찮다.  오디오 소리도 크게 잘 나고, 한글도 바로 쓸 수 있었다.  그런데, 한/영 전환은 마우스 클릭으로 변경했다.  그래픽 카드도 잘 잡힌 것 같다.
이것도 usb+하드디스크로 설치했다.

?, 설치하고 하루도 안 돼, grub rescue> _ 이런 게 뜬다?
PCLinuxOS

debian-8.0.0-i386-DVD-1.iso 설치 중..
debian은 dvd 외에도 용량을 줄인 live가 있다.

debian-live-8.0.0-i386-gnome-desktop.iso
debian-live-8.0.0-i386-kde-desktop.iso
debian-live-8.0.0-i386-lxde-desktop.iso
debian-live-8.0.0-i386-xfce-desktop.iso
debian-live-8.0.0-i386-mate-desktop.iso
debian-live-8.0.0-i386-cinnamon-desktop.iso
debian-live-8.0.0-i386-standard.iso

그런데, 이 것들이 usb+하드디스크로는 설치가 안 되게 되어있다.
cd가 아니란다..

할 수 없이 dvd로 구워서 작업을 해야했다.
그런데, 도메인 이름을 넣을 것을 요구한다.
파티션 설정도 다른 리눅스와 다르다.  당황한다.  스타일이 다르다.
그래픽처럼 보여 응답이 없을 것 같은 문자 뒤에 설정 내용이 숨어있다.

모르는 단어들이 나온다.
부팅 가능 플래그: 끄기
파티션 준비를 마쳤습니다.
파티션 크기부터 정하고 나머지 설정을 한다.

파티션 설정을 마치고나서 생각해보니, 결국은 같은 내용이었다.

windows 마운트는 fat32로 해야한다.  ntfs로 하면 마운트가 안 된다.
/home도 fat32로는 안 된다.
ntfs에 100 gbs 넘는 파일이 있었는데..  fat32로 진행해버려서 파일이 온전할 지 모르겠다.

몇몇 리눅스가 ntfs에 등을 돌리고 있는데, 데비안도 그러고 있다.
dvd 2, 3 삽입은 dvd 또 굽지 않으려고 생략했다.  인터넷에서 받아서 설치하는 모양이다.

설치할 소프트웨어가 나온다.
이야기 하다보니, '데비안 설치'가 되어버렸다.

[*] Debian desktop environment
[ ]
[ ]
[*]
[*]
[*]
[*]
[*]
[*]

뒤에는 저 위의 일곱가지 .iso들 이름 외에도 몇가지가 더 있다.
*(체크 표시)도 몇 군데나 했는 지도 생각이 안 난다.

이 글을 적는 중에 <뒤로 가기>를 했더니 그냥 뭔가를 설치해버린다.
뒤로 안 가는 건가?

그런데, 저걸 다 설치해버리면?  하드디스크 부족할 텐데...
설마 세번째 /windows 파티션까지 리눅스가 덮어쓰거나 점유하는 것은 아니겠지?

아무래도 수상하다.
파일 받아오는 중 : 1544 중 .... ( .... of 1544 )이라고 진행 중이다.
나머지 dvd 두 장이라면 9 gbs 쯤 될 것이다.

데비안 설치 동작을 지금이라도 재빨리 멈춰야 100 gbs 중 나머지 데이터라도 살릴 수 있을 것도 같은데..
데비안에게, 설치하다 혼나고 있나보다.

어쨌든 대용량 파일은 날아가고 있겠지?
마음먹고 책을 읽고 있다가 이 지경이 되었다.

데비안에서 /windows 폴더에 가보니 아무 것도 안 보인다.

MiniTool Partition Wizard Professional Edition 9.0으로 작업을 했더니, 사용 중이라고 파일이 있기는 한데, 오직 숫자만 있지, 어디서도 파일 내용을 볼 수 없었다.

EaseUS Data Recovery Wizard로 작업을 하니 180gbs 파일 옮길 곳을 지명하란다.

옆 pc를 보니, 세번째 파티션 빈 공간 용량이 147gbs이다.  두번째 파티션은 39gbs이다.  합하면 180gbs가 되는 걸까? 안 되면 첫번째 파티션까지 하나로 합해서 옮겨야 한다.

MiniTool Partition Wizard로 파티션 내의 데이터 손실 없이 합해질까?
일단 옆 pc의 두번째 세번째 파티션을 합했다.  그런데 이쪽 pc에서는 나눠진 것으로 보여줬다.  이쪽의 부팅이 필요한 것인가?
저쪽에선 이미 옮긴 파일을 이쪽에서는 읽기까지 가능했다.

파티션 뒤의 두개를 합하고, 첫번째 파티션의 일부도 뒤로 합해주는 작업을 했다.
데이터 손실 없이 합해질까?  일단 os에서 빠져나가면서 작업이 진행되었다.  부팅을 두번 하니 저쪽 파티션은 파티션 조정이 데이터 손실 없이 이루어졌다.
그런데 이쪽에서 아직도 옆 pc의 파티션을 세개로 읽고, 더구나 지금은 없어진 파티션의 파일까지 보여주고 있다.  부팅을 두번이나 하고나서도 말이다...

? 있을 수 없는 일이다.. 확인해보니, 다른 pc를 내내 들여다보고 있었다.

EaseUS Data Recovery Wizard, 이 작업을 다시 해야한다.  몇시간 걸리게 됐다.

Data Recovery (X Partition Recovery)
Complete Recovery (X Deleted File Recovery, Partition Recovery)
Search all lost files automatically (X Search lost files by types)
NEXT
데이터를 복구할 하드디스크 클릭(Capacity, Information 용량과 하드디스크 이름 참고)
NEXT
(Intelligent Searching) 여기서 시간이 많이 걸린다.
그 다음에 보이는 파일 중에서 또 골라내야 하는 작업이 남는다.  이것은 많은 시간이 걸린다.

(나는 프로그램 사용 방법을 말하려는 게 아니다.  나는 이렇게 해본다... 그래서 내 모든 글은 참고 사항 그 이상은 아니다.)

이 방법은 아주 복잡해진다.  파일을 이리저리 옮기며 정리를 한 뒤라면, 여기서 보게된 파일들이 어디엔가 옮겨져 있을 수 있다.  pc가 한 대라면 걱정할 일이 아니겠으나, pc가 아주 많다면?  그리고 데이터를 따로 보관한 하드디스크가 수십 개라면?

과정을 정리하자면..
세 파티션으로 나뉜 하드디스크에 데비안을 설치하였다.
두번째 파티션은 fat32, 세번째 파티션은 ntfs
windows에서도 두 개의 파티션에서 읽고 쓸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이다.
그런데, 데비안에서 fat32를 /home에 마운트 할 수 없다고 하여 바꿨고, ntfs 역시 /windows를 마운트 할 수 없다고 하여 fat32로 바꿨는데(다른 리눅스는 이 방법이 가능), 그 후 fat32 파티션에 데이터가 있었던 게 생각이 났다.
다시 ntfs로 바꿨으나 파일이 되돌아오지 않았고, 파티션 프로그램 둘을 사용해본다...
복구 예고된 파일 크기가 복구 작업 중인 곳에 공간이 없어, network 연결 pc에 저장해야 하는데, 각 파티션 크기가 복구 파일 크기보다 작아서 파티션 크기를 조정해야 하는 상황..

하드디스크 파티션 하나를 크게해두면 이렇게 복구할 때, 이보다 더 큰 공간이 없으면 대책이 없게 된다.

다시 복구 작업으로 와서..
Select partition(s) and click Next to scan files:
모두 선택
NEXT
Select files and click NEXT to recover.
모두 선택
NEXT
You have XXX.XX GB selected in XXX files
Select location to recover to and click NEXT button:
path
네트워크
옆 pc 파티션 지정
NEXT
Recovering
Remaining Time: 05:22:59  Elapsed Time: 00:13:10

파일명을 임의로 하여 복구하고 있었다.
FILE004.XXX처럼..

파일은 하나도 복구하지 못 했다.  의미 없는 압축 파일로 쪼개져 있거나, 중복된 폴더에 중복된 파일들이 있었다.  마치 미러 폴더인 것처럼..  몇개의 파일 중 하나가 정상적으로 복구되었나 그마저 파일 일부가 손상되어 있었다.  모두 삭제하였다.

다음은 파티션별로 복구 작업을 하기로 하였다.
1회 작업에 10시간 정도 걸렸다.  어떤 방법으로도 파일은 온전히 복구하지 못했다.

데비안을 다시 설치하는데, dvd 읽기 에러가 계속된다.

위에서 기록하다 만 부분이다.

'[!] 소프트웨어 선택
현재 시스템의 핵심적인 부분만 설치되어 있습니다.  필요에 맞게 시스템을 조정하려면, 다음 소프트웨어 모음 중 설치하고자 하는 소프트웨어 모음을 선택하십시오.

설치할 소프트웨어 선택:

[*]  Debian desktop environment
[*]  ... GNOME
[*]  ... Xfce
[*]  ... KDE
[*]  ... Cinnamon
[*]  ... KATE
[*]  web server
[*]  print server
[*]  SSH server
[*]  표준 시스템 유틸리티

<뒤로 가기>                                                                                  <계속>'

이거 기록하느라 [*] 표시를 하나도 추가하지 못 했다.

모두 추가 했더니 설치 에러
그래서 다음과 같이 설치했다.

[*]  Debian desktop environment
[*]  ... KDE
[*]  web server
[*]  print server
[*]  SSH server
[*]  표준 시스템 유틸리티

데비안을 생각지도 못하게 오래 이야기 하는 것은 아마, 설치하기가 어려웠던 때문인 것 같다.

windows 8.1, xp 폴더를 읽어 오는 것은 간단했다.  민트는 콘설 창에서 부팅 시 network 폴더를 읽어오도록 파일을 작성해야 했으나, 데비안에서는 네트워크 - 네트워크 폴더 추가하기 에서 마운트가 되었고, 부팅시 다시 자동 마운트가 되었다.

네트워크 폴더 추가하기 - 마이크로소프트 windows 네트워크 드라이브(R)
- 다음 (N) - 이름 (구분하기 위한 임의의 명칭) - 서버 (네부 network ip) - 폴더 (C: 같으면 c, D: 같으면 d) - 저장하고 연결하기 (O)

이것이 매뉴얼 없이 직관적으로 되었다는 것으로 보아 '그렇지, 이런 식으로 만들어야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 작업까지 찾아들어가는 과정은 덜 직관적이었지만..

(매뉴얼 그러니깐, 땅콩 먹고싶어진다.  땅콩은 죽은 암도 살려낸다고 해서, 옥수수와 함께 절대 먹지 말아야 할 식품으로 분류해뒀는데 말이다.)

이번엔 민트나 다른 리눅스 폴더 읽어오기, windows에서 데비안 폴더 읽기를 해봐야겠다.  민트 폴더 공유는 간단해서 windows에서 바로 읽을 수 있었는데, 언젠가 '자격증명'이 뜬 후로는 다시 읽을 수 없었다.  그 때는 삼바로 공유 했던 것 같다.

특이한 점은, xp 시스템의 리눅스 탑재 하드디스크 파티션(시스템 하나에 하드디스크가 두 개 설치되어 있는데, 하나는 windows, 나머지 하나는 여러 리눅스가 모두 설치 돼 있다.)은 데비안 쪽에서 읽어오지 못했다.  8.1에서는 이 문제를 '고급 공유, 보안, 네트워크 공유 센터' 세 군데에서 공유 설정을 해줘서 폴더를 읽어올 수 있게 되었는데, xp는 이 보안 과정이 없다.  xp의 공유 하드디스크 파티션은 민트에서 사용 중인 마지막 파티션이고 ntfs이다.

누군가가, 고급 공유와 그 밑에 있는 일반 공유까지 공유 설정을 같이 해주면 공유가 풀리지 않는다고 했는데, 그렇게 해도 공유 설정은 풀린다.

windows 드라이브 이름에 공유 표시가 되어있는 것은 믿을 수 없다.  공유 표시가 되어 있어도 공유가 풀려있는 경우는 많았다.

불러올 폴더가 windows 폴더가 아닌 경우는?

windows 폴더 공유는 각 폴더에서 이루어진다.  그리고 상대방이 이와 같은 작업을 마쳤다면, windows 폴더는 자연히 이쪽에서 검색할 수 있게 된다.

아마도, windows를 사용하다 리눅스를 사용하는 사람들이 제일 곤란한 경우가 이 공유 문제가 될 것이다.  어디를 검색해도 시원한 답변을 접하기도 쉬운 일이 아니면 더욱 그리 될 것이다.

클릭해서 해결이 안 되면, 타이핑을 하던지 붙여넣기를 해야 한다.  그러러면 도스창 같은 것을 메뉴에서 찾아야 한다.

program - utility에 보니 비슷한 게 보인다.  UXTerm과 XTerm이다.  그런데 붙여넣기가 안 된다.  그래서 또 찾는다.
프로그램 - 시스템 - 터미널(bash - Konsole), 또는 XTerm에서 밑으로 내려가면 있다.

주문을 외우 듯이, 데비안 데비안을 검색해갔으나, 데비안 설명서는 구하기 어려웠다.
22회 짜리 강좌([강좌] 데비안 리눅스로 구축하는 가벼운 데스크탑 환경)라는 것을 발견해서 읽어보았다.  문맥을 보니 기술적이 설명이 가능할 것 같았는데, 필요한 정보는 제공하지 못 했다.

더 검색을 해도 구입해야 할 도서 목록만 보였다.
책을 구입해서까지 os를 사용할 생각이라면 이미 아는 지식인 windows를 활용하면 되는데 무슨 이유로 리눅스의 초보자가 되겠는가?

리눅스를 배우면서 필요한 게 무엇일까?

카드 드라이버 설치:
사운드 카드, 그래픽 카드, 랜 카드, 사운드 설정, 그래픽 설정, 프로그램(패키지) 설치, network 공유 설정, 볼륨 설정, 한글 표현 등이다.

windows라면 웹 검색을 해서 실행 파일들을 받아서 클릭만 해주면 된다.
리눅스는 다르다.  패키지를 받기까지는 되는데 받은 파일이 어디 있는 지 조차 알기 어렵다.  이는 windows에서 마찬가지인데 다운로드 파일의 위치를 지정해두지 않으면 받은 파일을 찾아다녀야 한다.  windows는 한 눈에 폴더 구조가 확인이 되는 반면, 리눅스는 디렉터리 이동의 편이성이 windows를 따라가지 못한다.  더구나 콘솔에서 작업하는 경우라면 내가 어디쯤 있는 지도 알기 어렵다.

압축 파일을 받았으면, windows의 경우 몇번 클릭으로 설치가 된다.

Youtube에서 특이하게 이중 설치과정을 겪게 하는 플래시 플레이어 설치의 경우, 다운 받은 파일을 찾아 한 두번 설치만 해주면 된다.  리눅스의 경우는 압축 파일을 어떻게 해야 하는 지 답답해진다.

도스에서 windows 3.1로 갈 때, 아이콘을 찾아 클릭한다는 게, 도스 커맨드 창에서 한 줄만 타이핑 하는 것보다 덜 경제적이라는 생각이 들었는데, 지금은 그 반대 생각이 든다.

리눅스 콘설 창을 열어서 작업을 하려면 수 많은 리눅스 중 선별해서 자기가 찾는 방법을 찾아 일일이 타이핑해야 한다.  리눅스는 그런 것이다는 생각으로 이런 작업을 계속하다 보면 계속 검색에 의존해야 하는 것도 문제이다.  이는 그냥 자기의 pc 안에 있는 아이콘 중에서 하나를 찾아 클릭하는 게 차라리 경제적인 것처럼 보인다.

하드웨어 드라이버를 구하는 것도 어렵지만, 그것을 설치하는 방법도 만만한 게 아니다.  나는 지금도 플레시 플레이어 파일을 받으면, windows에서는 어떻게 하는 지를 알지만, 리눅스에서는 막막하다.  일단 의욕이 떨어진다.

드라이버 설치 문제 뒤에는, network 설정이라는 것도 남아있다.
이 것은, windows끼리, windows 파일을 리눅스에서 읽는 것은 비교적 쉽다.  그런데 리눅스 파일을 windos나 다른 리눅스에서 읽기가 어렵다.  우분투나 민트라면 모르겠는데, 데비안에서 이 방법을 찾는 것은 어렵다.

마지막으로 찾을 수 있는 방법은 그 큰 데비안 설치 설명서이다.  이런 설명서에서 저 방법을 간단하게 찾아내는 일이 잘 있을 것 같지는 않지만..

콘설 창에서 apt-get 이런 걸 씌인 대로 따라 해도 잘 되는 일이 있었던가?  민트만큼 잘 되지는 않는다.  방법이라고 기록된 글에서 방법을 찾기가 어렵다.

리눅스는 gui 외에도 이런 문제들 때문에 늘 windows로의 도돌이표 앞에 머물게 된다.
어쨌거나, windows나 리눅스 어느 쪽에 있건 유쾌한 일은 아니다.
재미도 없고 보람도 없는 일에 그렇게 많은 시간을 보낸 결과 치고는 너무 작은 소득이다.

그런 면에서, 데비안 제씨 설치 후, 오디오, 그래픽, 볼륨, 한글 표현은 물론이고, 한/영 키 사용 모두 별도로 설정하지 않아도 잘 되었다.  이것이 windows였다면 당연한 것이었는데, 리눅스에서는 신기했다.

내가 죽고 난 다음 날의 하늘

그 건 여러분의 하늘과 똑 같은 것이다.

권력을 쥐면 긴긴 역사 끝까지 내 이름 남길 것으로 한 짓들

이쁘게 지어놓은 모시옷에 핏자국을 남기는 일이다.

죽기 전에 꼭 만나할 사람이 있다.

먼저 돌아가신 가족이다.

자살로 지구를 떠난 분이다.

말은 길었지만, 우리 모두 지구에서 볼 일 다시는 없을 것이다.

그래도 그 날은 맑고 푸른 날이었으면 좋겠다.

그 날은 그동안 보물처럼 간직해왔던, 바보 같이 지니고 있었던, 공평, 정의, 권리, 자유, 연민, 책임, 저주의 개념으로부터도 자유롭게 된다.

모두는 각자 손가락의 금반지보다 오래 살아내지는 못한다.

선악이 뭔지도 모르고, 자신의 행동이 위대하다고 믿는 나 같은 바보를 우리들은 어찌 용서해야 하느냐?

듣기 좋으라고 한 소리..
인간은 '위대한 결함'이다.
(인간은 위대하지 않다.  쓰레기통 안에서 발견한 땅콩 껍질만도 쓸모가 없다.)

내게는 대나무에서 막 떨어지는 한 잎만 못하지만..

내가 선택할 수는 없었지만, 인간이었던 것을 부끄러워 한다.






Monday 4 May 2015

지명

여기서 지도 앞에 붙는 단어는 공식 표현이 아니다.
각 나라 말로 지도를 검색했을 때 이런 결과를 보인다.
즉, 현실적으로 사용되고 있는 지도이다.

구글 지도
구글: 일본해로 표기 돼 있다.
범위: 러시아, 북한, 남한, 일본 네 나라가 공유하는 바다(독도보다 한참 위쪽)를 일본해로 표기한다.  이성적이지 못하다.

가장 이익이 남는 지도를 배포하는 것은 기업가의 정신이기도 하다.
기업에서는 제품 하나에 500원 추가도 부담스러워 한다.  가격에 포함 되는 것도 마찬가지이다.  가격이 커져버리니까, 부품 자체를 빼버리는 게 우리의 현실이다.

동해는 한국에서 보면 남남해쯤에나 있다.

구글 지도는 나라의 국경을 지나가면서 각 나라의 언어로 표기가 바뀐다.
그런데, 한국의 국명은 중국어로 표기 되어있다.  마치 중국의 지방처럼 표기 되어있다.
우리의 정치는 이를 알고도 참아주었을까?  구글의 이익은 그런데 있었을까?
우리에게 돈은 그렇게도 맛 있는 절대 가치였을까?

영해를 자기의 육지 거리로 주장하는 것은 옳지 않다.  타국에게 다니는 길이 있어야 하고, 안전 거리도 있어야 한다.

일본 지도

바다 이름이 세개 보인다.  일본 영화 裸の島(1960)의 위치를 검색하다 이 지도를 만난다.
일본해로 표기 되어있다.  죽도라는 표기도 보인다.
이런 것을 해결하는 게 정치다.  큰 소리 치고 가서 다 빼앗기고 오는 게 정치가 아니다.  그런 건 아무나 할 수 있으니까 굳이 이름을 붙일 이유가 없다.


중국 지도


중국 지도에는 황해로 표기 되어 있다.  동해는 중국을 중심으로 표기 되어 있다.  그 근처에는 섬이 없기는 하지만, 동 서 남 북을 붙이는 것은 제 삼자의 입장에서는 의미가 없다.
따라서 바다의 지명에 방위를 표기하는 것은 잘못이다.

황해가 황하(黃河)의 하류라는 뜻을 포함하고 있다면, 이는 중국이 붙인 이름을 한국은 불만 없이 차용해 쓰고 있는 것이 된다.


한국 지도


한국의 지도 표기도 잘못 돼 있다.  더구나 영문 표기를 한 것은 더 그렇다.  영문으로 표기 되어서는 안 된다.  서해, 황해, 동해, 남해 다 잘못된 표현이다.  대한해협도 마찬가지이다.
대한해협이라 함은, 한국 지도 상에 동해로 표기된 부분에 일본해로 써도 된다는 허용 외에 무슨 뜻이겠는가?

황해의 표기가 역사적으로 무난하기는 해도 물 색깔이 나쁘다고 굳이 황해라고 부를 이유가 있겠는가?  나쁜 이름이다.  일본의 동쪽 태평양을 방사능해라고 부르지 않 듯이..

제시한 지도 네 개 모두 표기 오류이다.  내가 공평하지 못하므로 타인의 불공평을 초래한다.  '초대'와 다를 게 무엇인가?
그러고도 본인은 잘못이 없다고 한다면, 이는 치매적 표현이다.
나라라고 하는 거대한 규모의 생각이 이처럼 탐욕스러운 한 개인보다 나을 게 없다.
그 아래 지배되고 있는 것이 가엾은 국민이라는 게 문제가 된다.

고쳐지지 않는 오류는 각자가 다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삿대질만 하고 있었던 이유는 분명히 있다.  즉, 고치지 않을 충분한 이유 말이다.  그것이 애국심을 부채질 하고?  그것은 충성심으로 바뀌고?

이런 야바위 근성을 없애지 못하는 것도 문제가 있지만, 그것을 그렇게 하도록 방치한 '가정 교육', 아비로서의 역할, 애미로서의 역할, 국민의 방관
말하자면 오위일체의 결과이다.

이거 였다. (그냥 놔둬, 써먹을 데 많찮아?)

속 없이 애만 탓던 것은 가난한 국민이다.
무지하고 이용만 당하는..

현실적으로 가능한 이름은, 황해를 한국해, 동해를 일본해로 하는 경우이지만, 경기 나는 일본기를 더 가까이에서 봐야 할 '일본해'는 한국이 인정할 수 없고, '한국해'는 이유 없다고 하여도 중국이 허가할 리 없다.



(영화의 촬영지는 내해에 있는 작은 섬이다.  영화를 하나 찍기 위해 섬을 온통 뒤엎어놓았다.)
(국민은 새우잡이 노예가 아니다?)



인생

그거 알고 쓰는 놈 있나?
쓰다보니 인생이라는 거지..

더럽게도 살아낸 인생
지구를 살아낸 모든 인생들이여
그대가 가련하다.

모든 그대는 날파리와 궤를 같이한다.
너무 섭섭해 마라.

우리는?  어떤 인생이라고 해도 믿어야 할만큼
가냘프다.

인간 확인

우리는 우리에 대해서 뭐라고 말할까?
우리는 박테리아다.
우리는 말하는 박테리아다.
우리는 쫑알대는 전염병이다.

이해를 하건 말건, 그 시간은 다가온다.

그대들의 모든 신에게 말한다.

그리 하기 전에 모든 인간이 알아야 할 일이다.

그대가 믿는 모든 신에게 말한다.

이제는 인간을 쉬게 하라.

모든 그대들은 신의 하수인으로 살지 말고 그냥 인간으로 살도록 하라.

그 어떤 신도 수천억년을 그 많은 모래알 같은 생명을 보호하지 못한다.

모든 신은 인간이 만들었고,  지가 만든 신을 지가 숭배하는 것으로 인생은 끝난다.

미몽이다.

인간들이여 그대들도 아는가?

그대도 수백억의 자손(정자)을 내지만 그 많은 생명을 다 기억이나 하는가?

지구는 착각이다.



Sunday 3 May 2015

물 한 방울

지구는 바다가 하나로 연결 돼 있다.

만약 바다에 누군가 물 한 방울을 떨어뜨린다고 하면?

지구의 모든 바다에서, 물 한 방울 추가분에 대해 수평을 맞추기 위해 자연은 얼마나 복잡한 계산을 하고 있을까?

왜, 그 혜택을 꼭 인간만이 누리는 것처럼 느껴질까?

지구가 자전을 하는 속도는 지금의 속도여야 우리는 살아갈 수 있다.
공전의 속도도 지금의 속도여야 한다.
자전의 자전, 공전의 공전도 그러하다.

지구의 자전 속도가 늦어지면, 우리는 짜부라질 것이고, 지구의 내부로부터의 대규모 폭발이 일어날 것이다.

육지의 모든 것은 계속 바다로 쓸려가고, 용암이 다시 치솟아주어 평형을 맞춘다.

자연의 균형이 있어, 우리의 생존은 가능했다.
그 것에 감사하지 않는 우리는 공평한 것일까?

빗방울은 증명한다.  모든 물방울에 같은 규칙이 적용된다는 것.
즉, 낙하다.
왜 모든 물방울은 그 규칙에 따르는 걸까?
그 규칙은 보람이 없다.

우주를 정리하기 위한 도구가, 규칙이었을까?

물은 규칙 액체일 때, 내려오고, 물은 규칙 기체일 때, 다시 올라간다.
물은 규칙 고체일 때, 이동성이 없으므로 서서히 분배 공급하는 기능까지 가지고 있다.

Saturday 2 May 2015

성산대교 색깔

성산대교 색깔 좀 바꾸자!

중국의 오성기는 피딱지 색이다.  피 흘린 결과물이라는 말이다.
태양 빛이 아니다.

그런데,
성산대교의 색이 왜 그 모양이냐?
구조물도 흉한데 색깔까지 피딱지 색이다.

Mo Yan과 장이머우 감독의 중국 영화 'happy times'에 나오는 페인트이다.
쓰고남은 주워온 페인트 색이고 가난한 색이다.

한 때는 생산대교 근처에 오래 있었지만 지금,
내가 가양동이나 성산대교가 보이는 강변 아파트에 살지 않길 다행으로 여긴다.

건축물 구조상 페인트가 많이 들어가서 방청제만 바른 것이라면 다리를 다시 만들어야 한다.

YouTube가 노망이다.

자막 올리는 게 불편해졌다.
방법도 그렇지만, 시간도 문제가 생겼다.
자막 파일 하나 올리는데, 한 시간 이상 걸린다.
동영상 파일 하나 올리는 것보다 오래 걸린다.

내게는 동영상 업로딩보다, 자막 파일이 더 중요하다.
파일 하나에 외국어 자막을 스무개 올린다고 가정하면 나는 외국어 자막을 완성하는데 몇 일을 소모해야 한다는 이야기가 된다.

다른 자막 편집을 위해서 내 자막 내려받기도 몇 시간이나 기다려야 한다.
자막 삭제도 그러하다.

침팬치 정치(한국 쇄신)

실화다.
약한 침팬치 한 마리가 어디선가 식유통 두 개를 주워왔다.
통을 두드리니 위협적인 소리가 난다.  이 침팬치는 이걸로 서열 1위가 된다.
장장 2년을 지역사회를 그렇게 통치해갔다.
정치를 사기와 협잡, 이간으로 하면 얼마든지 서열 1위가 될 수 있다.

선거 때마다 왜 북한이 이상한 행동을 할까?
그렇게해서 남한의 선거결과가 바뀌는 걸 보고 싶은 것이다.
남한의 머리 좋은 사람이, 정직한 사람이 선거에 뽑히면 북한에 이로울 게 없다는 계산이다.
대충 썩고 대충 나쁜 정치가 남한에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북한의 생각이다.
이익이 없어도 남 잘 되는 것 보면 배 아프다는 이야기..

그러면, 뒤에서는(국민에게) 안 보이게, 혀를 내민다던지, 입, 코 모양이나 눈을 부라려 상대를 자극하면 어찌될까?  북한이 이상한 행동을 하도록 말이다.

우리에게 이럴 여유가 애초에 있었을까?
풍전등화
우리에게 딱 맞는 표현이다.
우리는 강해져야 한다.  그것도 엄청나게..
일본보다 아주아주 빠르게, 이스라엘보다 강하게..

gdp로 말하자면, 중국, 러시아, 일본, 미국을 합한 것보다 많아야 한다.  한국이 말이다.
일본이 백제로부터 문화를 받아 쓰다가, 언젠가 네덜란드로부터 소총을 수입하더니.. 미국의 남북 전쟁에서 쓰고남은 총기를 거둬들이더니, 중국, 러시아를 쳐들어가더니 어느 날? 아시아에서 제일 강한 나라가 됐다.  다른 어느 나라에서도 가능하리라 상상도할 수 없는 신기한 일이다.  만주족이 중국을 점령한 것보다 훨씬 이상한 일이다.
또, 많은 나라에 둘러쌓인 가운데 증오를 견뎌내고 있는 이스라엘도 신기하다.

주문:
북한이나, 북한 이탈자, 고려족, 조선족, 중국, 러시아, 일본에 대해서 싫은 소리를 멈춰야 한다.  상황이 이상하게 돌아가면, 언제 그들로부터 해코지 당할 지 모른다.  내국인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이다.  상황만 말하면 될 것을, 굳이 사람을 지목하고 인신 공격을 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한국이 당장 내일 어찌 될 지 모르는 상황이다.

한국은 한 없이 약해지고 있다.  우수한 두뇌는 다 이탈할 것이며, 가엾고 불쌍한 사람들만 남아서 삽이라도 들고 어떻게 해보자는 모양이 된다.

1. 우리는 자랑할 것이 없다.
한글 우수?  일본은 그 엉터리 같은 문자, 더구나 한문을 그렇게 많이 쓰면서도 음으로 읽지 않고 소리로 읽어버린다.  내가 일본어를 국어로 배운다면 아주 피곤한 일이다.  그래도 지배국가이다.  자랑할 때 초고속 성장은 모두 멈춘다.  자랑은 쉬는 시간이기 때문에 그렇다.
한류?  오래 전 일이다.  주말이면 모든 tv에서 홍콩 영화를 방영했다.  몇년 간을..
또, 모든 방송에서 미국 서부 영화를 방영했다.
그래서?  일류, 홍류, 미류, 중류... 라고 들어본 적이 없다.  단순히 '한국식'을 표현한 말들을,  '한국의 우수한 문화'로 착각하기 쉽게 만든 말은 아닐까?

2. 반말은 금지하고 모두 존대말만 써야한다.
반말은, 상놈에게 존대를 할 수 없어 만들어진 말이다.  2중 언어를 쓰는 언어가 얼마나 되나?  또, 반말은 상대방을 깔보는 언어이다.

3. 입법자(의원)는 100.00% 법률 전공 정규과정 졸업자여야 한다.
탤런트, 영화배우, 운동 선수 출신이 의원이 되면 이런 일이 일어난다.  24세 음주광고 금지법

4. 대통령이나 고위 공무원이 보호받아서는 안 된다.
은평구청에 갔더니, 주민을 차 댈 곳이 없어 시간을 낭비하고 있는데, 구청장 주차장은 따로 구획해뒀다.  이런 차별이 주민으로부터 주인의식을 증발시킨다.
대통령도 동네 사람과 주먹 다툼하다 맞을 수 있고 그런 나라가 강해진다.
왜 대통령은 지하철 타고 못 다니는 지 그것이 수상하다.

5. 역사는 우리부터 제대로 해야한다.
어떻게 시조가 곰일까?  왜 곰일까?  선량하다는 표현을 대신해서? 자기가 안 착한 사람이 어디 있나?  역사에서 '곰'을 삭제해야 한다.
단일 민족? 단일 민족 아니다.  삼국 말, 조선 초, 조선 말에, 안에서 바깥에서 역사를 가짜로 만드는 과정을 지켜봤다.  만주족도 청나라 왕이 만들어낸 말이다.  지구 속속들이 자유롭게 이동하던 영혼들이 어떻게 하나의 씨앗에서 나올 수 있겠는가?  역사는 최대한 정직해야 자식에게 가르칠 수 있다.  공민왕 소설 역사를 보면, 어떻게 당시에 그런 웃기는 사관을 가질 수 있었을까 이해가 안 되는 부분이다.

6. 모두가 경쟁해서 강한 놈만 남아야 한다.
거짓말하고 사기치고 이간질 하는 놈들만 남아서는 최대한 약해지고 만다.  정치하고 기업하고 고위층 공무원 하고 매스컴하는 놈들까지 한 통속이 되어 우리끼리 짝짜꿍하면 이탈리아처럼 된다.

7. 지금도 독재하는 나라가 있다면?
우리는 후진국입니다.  그래서 이게 필요했습니다..라는 고백이다.
지금 그 걸 하자고 한다면 가난해지겠다는 소린데, 하자?

8. 학교는 4시간 이상 학생을 붙잡아두어서는 안 된다.
자유롭게 사고할 수 있도록 개인의 시간을 구속해서는 안 된다.
과목도 고정되어서는 안 된다.  교육이라는 미명으로 국민을 착취 훈련의 대상으로 삼아서는 안 된다.  단 한 과목이라도 학습능력 하나만 채점해라..
말 같지도 않은 '역사, 도덕'을 뭐하러 외우니?
임진란의 인물은 이순신이 아니고 유성룡이었다.  역사는 가짜로 쓰지 말자..

9. 모든 tv 방송은 중단해야 한다.
비방과 홍보 목적 외에는 쓰임새가 없다.  당장 폐기해야 한다.  국민의 시간을 완전히 빼앗는 악물이다.

10. 모든 파당은 사라져야 한다.
그게 국가 발전에 이바지 하니?

11. 내 지능은 여기까지이다.
나머지는 두뇌 발달한 사람의 몫.



(나는 모얀이 그렇게 부러울 수 없다.  언젠가 그 사람 작품을 본 적이 있다.  장 이머우 감독이 영상으로 실현했지만, 원본은 너무나도 훌륭했다.  훌륭한 글에 우수한 감독..
World Leaders Forum Mo Yan and Chinese Literature
https://www.youtube.com/watch?v=K2DjOPGWX5w
미국 뉴욕의 어느 대학에서 중국어로 말씀 내리신다.
중국은 가난하고 독재를 해도 이런다만..
우리?  멍충아 너는 뭐하니?

애들 말로 부러우면 지는 거라지?  나는 가난한 동네, 독재하는 동네의 이 사람이 그렇게 부러울 수 없다.
이런 건 부러워해야 우리가 제대로 큰다.)

머릿 속 구슬을 두개로 놀든, 10,000개로 놀든 다 같은 인생이라고 말하면 공평한가?
이디 아민 같은 자들은 사람들에게 어떻게 기억될까?
잠시 배부른 게 그렇게도 좋았을꼬?
머리 나쁜 놈들은 제 1 궤도에서 논다.  제 2 궤도와는 언어도 다르고 생각도 다르다.  힘은 통일 돼 있다고 보여지겠지만, 생각으론 그리 하지 못한다.

피라미드를 짓는 놈들은 다 그 과에 속한다.  뭐 인생이 그리 대단들 하다고..

그대는 기억 되는 악으로 남고, 나는 기억에 없는 평범으로 사라진다.

묻고 싶은 말은, 돌 탑을 그리 높이 쌓으면 재미 있냐는 말이다.
피라미드 놀이가 재미 있냐는 말이다.
20조원씩 다 쓰지도 못할 경쟁을 쌓아두는 게 재미 있냐는 말이다.
그 틈으로 너의 모든 시간은 빠져나간다.

우리 인간은 그 누구도 예외 없이 시간의 거품이다.

내 말이 불만이라면 저 우주 끝으로 나에게 편지를 보내라..






범위

어느 날,
제이 피 모건이 웨스팅 하우스에 찾아갔다.
에디슨은 직류 전기 발전기를 만들고, 고류 전기 발전기의 나쁜 소문을 퍼뜨리고 있었다.
직류 전기가 아닌 교류 전기를 사용하여 전기 의자를 만들어 사형수를 태워죽이기까지 하였다.
에디슨은 웨스팅 하우스의 고류 발전기에 밀려 사업적으로 고전하고 있었다.

모건은 에디슨 몰래 회사의 대주주가 되어가고 있었다.
직류만 고집하는 에디슨을 쫓아내고 회사 이름을 제너럴 일렉트릭으로 바꾼다.

고류 발전기 특허는 에디슨 밑에서 일하던 조수가 가지고 있었다.
웨스팅 하우스에 갔으나 웨스팅 하우스가 자금 사정이 어려웠다.
할 수 없이 조수는 특허권리를 웨스팅 하우스에 주장하지 않게 되었다.

어느 날 모건이 웨스팅 하우스에 찾아갔다.
특허 소송을 할 테니 한번 해보자고 했다.

결국 모건은 특허권 지불 없이 교류 전기를 만들어 냈다.

참고:
니콜라 테슬라
http://ko.wikipedia.org/wiki/%EB%8B%88%EC%BD%9C%EB%9D%BC_%ED%85%8C%EC%8A%AC%EB%9D%BC


카네기, 롸커 펠러(Rockefeller, 흔히 록펠러) 등 미국의 기업가들 이야기이다.
가물가물한 얘기들을 타이핑 한 거라, 사실과 얼마나 일치되는 지 알 수 없다.

조조, 이성계, 칭기스, 남북전쟁 이야기를 해도 같은 내용이 들어있다.

하고자 하는 이야기는?

착하다? 도덕적이다?  하는 말은 다 어느 범위를 지정하느냐가 각자 다르다.
시대나 지역에 따라 다르다.  종교에 따라 다르다.
그렇다 아니다는 그 범위 밖이냐 안이냐의 구분이다.

어떤 종교는 여자가 얼굴을 가리고 다녀야 하고, 매일 몇번씩 기도를 해야 하고,
또 어떤 곳에서는 구조물(마니차, 법륜)을 돌려줘야 하고..

말하자면, 지금까지 보지 못 했던 반칙에 대한 이야기가 된다.

애플이 삼성이 버린 기술을 모아 만든 제품
애플이 삼성을 상대로 특허 소송을 해서 2,000억, 3,000억 승소를 했다?
모서리 라운드까지 특허이다?

모든 대화 중심은 지배하고 권력하는 데에 있다.
주변 서민들, 국민들에게 할당될 수 없는 전설이다.
사회주의에서는 더욱 그렇다.

이는 또 무슨 말인가?

어떤 이야기도 '공평'에서 출발할 수 없다는 것이다.
국민의 착각은 거기에 있다.

칭기스는 유인 작전을 많이 썼다.  말이 많고 빨리 달려서 탱크처럼 달릴 수 있었다.
유인 한다는 것은 대장이 적에게 등을 돌리고 도망간다는 말이다.
당시에는 이는 항복의 의사 표시이다.
항복한 자를 역사는 승리자로 기록한다.
이 내용으로 몽골 사람에게 질문하면 승리라고 당당하게 말하겠지만,
나는 패배, 비굴이라고 말한다.
이게 서민의 의식이다.
지금까지의 룰을 어겼다는 것이다.

그러면 룰은 혁신과 어떻게 다를까?
그들은 '혁신'이라고 말할 테고, 나는 '멍충이'라고 말한다면?
그리고 그 혁신이라는 게 모든 개념을 지배하게 된다면?

남북전쟁(미국) 전까지, 말 탄 사람은 총을 맞지 않았다.
말 탄 사람은 쏘지 않는 게 룰이었으니까..
이 규칙이 남북전쟁에서 깨졌다.
말 탄 사람을 죽이면 승리할 수 있을 테니까..
(참고: America, The History of Us)(지금은 Youtube에 업로드나 공개가 금지 되어 있을 것이다.)

이 것이다, 저 것이다 말 할 수 없고, 판사에게 판단을 맡길 수도 없는 언어의 범위는 어떻게 설명될 수 있는가?

각각의 열쇠는 다르다.
대중은 '포드'를 생각하면서 질문을 하면, 답은 'Rockefeller'라는 현실로 돌아오기 마련이다.
그래서 지구에서 '승자'를 묻는 게 바보 같은 일이다.
a가 무너지면서 b를 따르면 또 다른 c가 준비하고 있다.
언제나 향수를 느끼는 일은, 가난하거나 덜 배웠거나 늙은 자들에게 많다.




(지금 그대는 그때의 칭기스를 만났다면 어찌하겠는가?  나라면?  복종하거나, 도망가거나, 숨어지내거나, 죽거나 했을 테지..  매일 보던 문양에 배열이 있고 없고의 차이다.  보호하는 게 고귀한 것이지, 꺾어버리는 잔인함이 능력인 것은 아니다.)




Friday 1 May 2015

비교 (경제)

15라는 수
믿어야 하나?
물론 믿지 않았지..

믿지 않았으니 확인 할 이유가 없었다.

우연히 클릭하다 이런 데이터를 본다.

         대한민국
수도 서울특별시
언어 한국어
면적 99,720㎢ / 세계 109위 (CIA The World Factbook )
인구 약 51,378,174명 / 세계 26위 (행정자치부 2015.03 / CIA The World Factbook 2014.07)
화폐 원 (KRW)
GDP 14,495억$ / 세계 13위 (IMF 2014)
1인당GDP 28,739$ / 세계 29위 (IMF 2014)

벨기에

수도 브뤼셀
언어 프랑스어, 네덜란드어, 독일어
면적 30,528㎢ / 세계 141위 (CIA The World Factbook )
인구 약 10,449,361명 / 세계 83위 (CIA The World Factbook 2014.07)
화폐 유로 (EUR)
GDP 5,278억$ / 세계 25위 (IMF 2014)
1인당GDP 47,164$ / 세계 17위 (IMF 2014)


15라는 수는 어디서 뽑아냈을까?

GDP 14,495억$ / 세계 13위 (IMF 2014)

이거다.

거짓말을 이렇게 한다.  알고 싶은 걸 감추고, 알 이유가 없는 걸 보여준다.
알고 싶은 것은 이거다.

1인당GDP 28,739$ / 세계 29위 (IMF 2014)

29위라면 숫자 상으로 별 의미가 없다.  10 위라면 모를까..

그러면 얼마나 효율적인지, 얼마나 비효율적인지 대충 봐보자.

면적 환산, 인구 환산,
(로열티, 저작권 같은 것은 각자 암산할 것 - 자동차, pc를 수출하고 이익금의 많은 부분을 선진국에 줘야 하는 상황 그리고 외국에서는 반 값에, 국내에서는 두 배 값에 사는 것도 각자 암산할 것)

면적:  저 면적이 한반도 전체인지 고려하지 않고, 권리 행사 가능한 지역이었을 것으로 보고 정리한다.

면적은 한국이 3배가 넘는다.  3배로 계산하고, 평지라고 계산하면, 1인당 gdp는 벨기에가 1.64배 크다.

3배면 4.92배

인구가 약 5배
여기에 5배면 24.6배

이게 엉터리 계산이었으면 좋겠다.  효율성은 벨기에가 24.6배이다.

그렇다면, 이 계산도 맞는 지 모르겠다.

누구는 한 시간만 일 할 것을, 누구는 24 시간을 일 해야 한다?

선진국 주변 프리미엄, 유로화 프리미엄, 주변 정치 상황의 어부지리를 고려한다면
저 수가 좀 작아질 수는 있겠다.

15 위라고 말 하려면, 중국이 세계에서 가장 부유한 나라라고 하는 말을 반드시 덧붙여야 한다.

또 낮은 순위로 갈 수록 가파르게 그 숫자는 작아지니, 윗 순위 몇 나라를 제외하면 숫자 자체가 의미가 없는 것을 굳이 15라고 하는 것은, 국민이 하찮게 보여서 그리해도 되었던 것이다.

수박이 금덩이보다 크니 수박이 더 비싸다고 우기는 꼴이다.
화법 자체가 항상 거짓말이라 그러려니 했는데, 어느 정도인지는 이렇게 확인이 된다.

어떤 나라는 빈 땅, 하다못해 개천 주변 땅에도 차량 매연 상관 않고 온통 콩을 심는데, 또 어떤 나라들은 집터에 온통 잔디를 심는 것을 보면 효율성 격차는 훨씬 커지게 된다.  또 언젠가 의정부 미군부대(공군) 막사를 보니 한국의 밀집형 막사와 달리 작은 크기로 방갈로처럼 띄엄띄엄 지어진 것을 보고 놀랐던 게 생각이 난다..
시골 할머니들, 유모차까지 끌고다니면서 한시도 못 쉬고 밭을 가는데, 욕심을 못 버리니 인생의 시간을 버리게 된다.  서울 자식들에게 농산물 보내주고, 손주들 용돈 벌이에 그렇게 한다지만, 그러다 병원 입원하면 생전 본 적도 없는 병원 사람들에게 수백만원씩 안겨주고 오게된다.  100원 줍자고 10,000원 잃는 모양새이다.

일본에서는, 어정쩡한 주차공간에 화초를 심는 것은 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