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riday 25 November 2016

강직

'정직'은 유치의 상위 개념이다.
국민이 이 유치함을 치졸함으로 보기 쉽다.
충분히 이해시키고,  인정되는 시간이 필요하다.
국민이 약간 지루하다 싶을 때 다시 한번 동의를 구하고 집행하면 된다.

'민주'란 깊은, 오랜 이해 과정까지 포함한다.
'민주'의 묘미는 적확한 '기다림'의 시점에 있다.

독재, 사회주의, 공산주의는 선동과 함께 성급한 결과물이 필요하다.
국민이 사상에 혼란을 겪는다면,  한 번도 기다려보지 못하고 그런 취지의 고육도 받아본 적이 없어서 그리 된 것이다.

'민주'란 국민 일원 모두의 공유 부분을 최대 피치로 올려둔 상태이다.  쉬운 개념이 아니다.  선출된 자라고 아무나 구사할 수 있는 기술이 아니다.  또 국민에겐 성숙도에서 일천하기 때문에 그런 사람을 선별할 능력이 없다.

국토를 손자에게 물려주고 흐뭇하게 지켜보는 세상에 이르려면 너무나도 먼 길을 가야한다.
이런 할애비의 진정을 파악한다면,  어느 누구도 근처 국가와 마음대로 협정을 맺어서도 안 되고 원자력 발전소를 만들어서도 안 되는 것이다.

사람은 인격으로 살지 않고 투사로 살아왔다.  우리의 유산이라는 게 고작 그 것 밖에 안 된다.

용서란,  많이 계산해보고 서로 좋은 방향으로 갈 수 있어야 사회적 이익을 얻는다.
죄를 지은 자라도 물 세는 둑을 팔둑으로 막을 수 있다면 방면해야 한다.  (이 건 외국에 있었던 다들 아는대로의 실화가 아니다.  그냥 동화이다.)

개인 감정에 따르는 사면은 국가를 위태롭게 한다.  국가 부채도 같은 경우에 해당된다.  이유 없는 국가 부채의 증가는 최고 책임자가 전적으로 물어내야 하는 부분이다.  이는 헌법에 명시되어야 하는 중요 사항이다.

정직한 자가 고급 공무원이 될 수는 없다.  탐욕스러운 자만이 재벌 총수를 하고 대통령이 되고 국회의원이 되는 것이다.  국민은 여기까지의 이해에 도달해야 한다.  국민은 마대 자루에 아무렇게나 담겨져 있는 감자여서는 안 된다.  국민은 국가의 운용에 공동 책임이 있다.  방관의 책임을 면할 수 없다.  이 국민을 누가 처벌하는가?  그 혼란은 국민 스스로 부담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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