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ursday, 1 December 2016

무지증

이런 용어가 있는 지 모른다.
요즘 생각 중인 것을 한 마디로 말하면 무지증 외에 적당한 단어가 생각나지 않는다.

무지증을 이렇게 설명하면 무난하다.
'데이터 부족'

쉽게 말하면 '무식'이다.

이 말을 들을 때 당장 이런 생각이 머리에 떠돌아다니면 그 게 바로 무지증이다.
'너는 얼마나?'
말은 데이터의 이동이다.  이 이동이 불쾌하다면 그 데이터를 해석하고 저장할 능력이 안 된다는 뜻이다.  뭐든 지 자랑하면서 말을 하는 사람이 있는데,  지적 성장이 어려워진다.  자랑도 무지증이다.  데이터의 내용이 '지적'이라면 듣는 사람이 수정해야 할 바를 알려주는 것이고,  이야기 하는 사람의 것과 비교할 일은 아니다.  여기서 수정 작업이 이루어지지 않으면 평생 같은 대화를 다시 해야 한다.  같은 불쾌감을 느끼면서..
한글을 모르는 사람도 있는데,  한 번만 배우면 되는데 평생을 글 없이 살아가려는 용기가 대단하다.  거기서 발생되는 그 많은 불쾌감은 어찌 다 처리하려나?  글을 안 배울 때 나타나는 애매한 표정도 무지증의 표시이다.

'너는 성격이 나하고 너무 틀려.'
많이 쓰는 말이다.  무지증의 대표적인 경우이다.

'역전 앞'이 잘못된 말이라는 것은 많이들 알 것이다.
그럼 종갓집은?

나는 언어학자가 아니다.

얼굴이 다르 듯, 사람은 말하는 스타일이 다 다르다.  당연히 달라야 한다.  만약 한 포장에서 나온 A4지 크기처럼 다 같다면?  인생 살기 싫다고 팽개치겠다는 사람 많아질 것이다.  지구에 뭐하러 그 많은 생명체가 있을까?  두 사람 사이에 있는 공간에 눈에 안 보이는 생명체는 또 얼마나 많을 지 생각은 해보고 살아왔는가?  적어도 자연은 인간을 배려해주고 있다.

남이 처음 듣는 말을 할 때 불쾌해진다면?  질투 때문이 아니라 무지증 때문이다.  이 것은 지식이랄 게 없는 때, 어릴 때 많이 나타난다.  지식이 늘면서 이해를 많이 하게 되지만,  획일 사상으로 무장된 국민에겐 일탈이라는 게 허용이 안 된다.  지독한 전체주의이다.  어쩌면 북한보다 심할 지도 모른다.  북한은 통제라는 틀 속에서의 전체주의이지만,  남한은 개방된 정치 형태 속에서 스스로를 전체주의로 가두고 안주하고 있다.  그래야 안심이 된다는 말인가?

사람이 욕을 하는 것은,  자신의 가치를 꼭 그 만큼의 높이에서 보기 때문에 가능한 행위이다.  자신의 가치를 높이 볼 때,  상대방에 대한 배려도 생기고 인적 여유도 품을 수 있다.  이 상태가 되어야 '존중'의 개념도 생긴다.  국회의원도 욕을 하고 장관도 욕을 하고 대통령도 욕을 하고 총리도 욕을 하는 사회는 어떤 사회라고 평가해야 되나?  교육의 탓이라면 교육의 어떤 카트리지가 빠져서 그리 되었을까?  핵심은 '자신의 가치 평가'이다.  아무리 비밀 금고에다 꿀벌처럼 화폐를 훔쳐다 쌓았다고 이 가치가 높아지는 것이 아니다.  반대로 추락한다.  단 한 번만 꿈을 꿔도 뇌적 손상을 회복할 수 없게 된다.  이 것은 용서가 되고 말고의 문제가 아니다.  U턴 코스가 없다.  배 타고 나가서 어느 섬에 가서 회 한 접시 멋지게 먹고 온다고 가치가 올라갈까?  삼각기 하나 달랑거리며 싸구려 동남아 뒤통수 여행을 다녀온다고 가치가 올라갈까?  돈으로는 망가지면 망가졌지 회복이 안 된다.  오직 뇌의 활동으로만 가능하다.




......
역설적이게도, 중소기업을 만들 수 없으므로 큰 것 하나 우뚝 돋보이게 만든 게 대기업이다.  대기업은 부정부패의 온상이다.  그래서 쿠데타가 나쁜 것이다.  쿠데타엔 큰 돈이 필요하고 이를 지원할 대기업이 필요한 것이고,  빨리 성과를 내니 국민이 자긍심을 갖게되고, 이 쳇 바퀴는 멈출 수 없고 되돌릴 수 없다.  미국을 배우기 힘들면,  대만의 중소기업이라도 배워야 한다.  대기업을 분할하고 주식회사 본래의 조직 구조로 바꿔야 한다.  굶지 않는다고 잘 살고 있다고 착각하지 않아도 된다.

국가가 부채가 많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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