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dnesday 7 December 2016

악의 시효

악의 시효는 상당히 짧다.
대체로 포맷을 바꾸지는 않는다.
모든 것을 완전히 감추고 행할 수는 없을 것이다.
장마처럼 저절로 끝나지 않는다.
반드시 다시 돌아오고, 자연 발생적이다.  주변의 누구나 하려고 한다.
부가 많이 쌓이면 권력이 주변에 모여든다.
이 것은 악의 방어무기가 되고 더욱 속도를 내어 부를 쌓게한다.
권력에 부수적인 검사, 판사, 헌재판사, 폭력배, 경찰, 장관, 대다수의 국회의원, 교수, 장군, 외교관, 외국 권력..

이렇게 악은 완성을 보고 상속을 한다.  동시에 악은 선의 꽃을 피우기 시작한다.  이 때의 선은 장신구이고 사실은 아무 쓸 모도 없는 것이다.  이 선이라는 것 어떻게 사용하는 지도 모른다.  명예교수도 되었다가 훈장도 받았다가, 문화재단도 만들었다가 한다.  정말 곤란해지면 사망했다고 하고 숨어버리기도 하고, 식물 인간 상태라고 하고는 세상에 나타나지도 못한다.

선이 뭔가를 알아서 선을 택하지는 않는다.  그 것이 익숙해서 그렇고 선으로부터 탈출할 기회를 아직 잡지 못 해서 그런다.  마치 물성 대기 상태와도 같다.  최연소 합격으로 눈에 힘주고 다니면서 갖은 경제 비리를 다 저지르고 권력을 주무르는 것을 보면 어느 누가 또 그 짓을 따라할 지 아무도 알 수 없다.

1번 비행기를 타고가서 대학생을 강간을 하고도 입이 가만(또 '많'이라고 씀)히 있지를 못 하는 것은,  그만큼 힘이 있다는 것을 믿고 있기 때문이다.  악은 무엇이든 지 한다.  손해를 보더라도 한다.  그 피해자는 대부분 선량한 서민들이다.  법의 취지가 원래 서민을 효과적으로 통제하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라 피해를 항변할 대책은 없다.  피해에 대한 고소를 하고 법원에 가는 날은 업무를 중단해야 하는데 실직의 큰 원인이 된다.  변호사가 있어야 하는데 월급의 몇 배나 되고 그 것도 결과를 알 수도 없다.  (결과야 뻔하지만 그렇게 말하면 너무 가슴 아프다.)  악은 돈 한 푼 안들이고도 인맥으로 말 한 마디 없이도 승소할 수 있다.  법 좋다는 말은 이럴 때 하는 말이다.

악은 부를 쌓고 상속하면서 힘들어질 게 없다.  사무실에 나가서 호통만 치면 된다.  어쩌다 주머니에서 금화 몇닢 떨어지면 세상이 다 밝아지고 향기까지 나는 것 같다.  주변 사람들의 표정이 다 밝아진 탓이다.

악은 전략을 짜주는 팀이 있다.  없어도 대학 교수든, 아직도 또는 지금 권력을 휘두를 수 있는 그 누구든 연락만 하면 빠른 걸음으로 달려온다.  서민은 주머니에 학자금을 넣고 버스를 타고가다 소매치기 당하는 수가 있지만,  악은 아무 것도 가지고 다니지 않아도 되고 자기의 목소리만 공중에서 일갈해도 그 의미대로 세상이 움직여 간다.

없던 사실도 얼마든 지 만들어 간첩도 만들고 증거라고 사진도 조작해서 뉴스에 올린다.  뉴스를 덮기 위해 서해안을 오염시킬 수도 있고 쇠고기 때문에 광화문에 사람들이 몰려들면 전국에 구제역을 뿌리는 방법도 있다.  환율을 조작한다든 지, 유정을 샀다고 하면서 수십 조원씩 빼먹는 수도 있다.  회장이 수십 조원씩 빼먹었다고 판결을 하고도 회수조차 하지 못한다.  이미 권력층이라면 금화를 충분히 넋을 잃어가면 껴안아봤을 테니까..  사람들이 지켜봐도 얼마든 지 할 짓은 한다.  위성을 억단위에 팔고 100억 단위로 자기 회사에 사용료를 내도 아무도 뭐라는 사람도 없다.  뉴스에서 몇자 끄적이던 글자들은 흔적도 없이 사라지게 된다.

악이 간첩을 가짜로 만들어 뉴스에 올리면 선도 같은 방법을 써야 한다.  역사를 통해 충분히 미화 작업이 끝난 원로나 권력들에 대해 간첩 평가를 해도 된다.  국민은 어리석어서 교과서에 있는대로 행동하고 생각한다.  교과서의 용인은 사회 전체의 동의라고 생각한다.  미군이 주둔하고 있는 지역에서 쿠데타가 일어나면 일반 국민은 미국이 지지하고 있다고 믿는다.  미군에게 유리한 것은 썩은 정부이다.  잘 나고 똑똑한 정부는 주둔국에게는 아주 불편하기만 하다.  미국에 대해 반체제로 저항만 하지 않으면 정부가 무슨 짓을 하든 아무런 상관이 없다.  국민이 이 내용을 어찌 다 간파하겠는가?  지적 능력이라는 게 고작 그 만큼인 사람들의 집단 총합이 '국가'라는 것이다.  약하니까 촛불만 들고 배회하는 것이다.  모든 증거가 다 증발해서 없어지기를 기다리는 것은 악을 행한 뒤에 구속된 사람들만 그리 하는 것은 아니다.  모든 국민들도 내심은 아닐 것이라고 믿고 있다.  '설마?'라는 말이 국민의 입에서 튀어나오면?  그 소리가 그 소리이다.  행동 하지 않겠다는 말이다.  나는 다치기 싫으니까 주변의 다른 사람이 나가라는 뜻이다.  이 말고 4,900만 명이 뭐하느냐는 질문에 대한 답이 되었을까?  이 행동을 신념 깊이 간직할 때 군중심리는 완성된다.  사건을 정확히 알고 있으면 행동해야 하는데 그러지 못하는 내 자신이 너무 형편 없어 보인다.  그러니 사건을 외면하고 사건에 대해서 기억하지 않는 게 생존에 유리하다는 것,  승진에 유리하다는 것을 안다.  영악하다.

악은 너무나도 높은 곳에 앉아 선의 이런 심리까지 까마귀의 눈으로 살펴보고 있다.  비리의 온상인 공립대, 재벌, 국회의원, 상속, 사회 특권층, 어느 하나 폐쇄하지 않으면서도 그 안에서 선이 싹트기를 국민은 바라고 있다.  바위 틈에 연꽃 한 송이 피었다고 평화의 실마리를 보았다고 말 할 수 있겠는가?  설마?라고 말하면서 뒤로 물러나고 다치기 싫다는 사람들은 실제로도 악에 우호적인 발언을 한다.  옆에 있는 답답해진 선의 투사만 홀로 대문 밖을 바차고 나간 다음 돌아오지 못할 것도 둘 다 안다.  조력자가 별로 나쁘지 않다고 생각하겠지만,  그 조력자가 있어 악은 창궐한다.  망보는 놈이나 도둑질 한 놈이나 한 묶음이 되는 순간이다.

차가운 바람이 분다.  선의 세계는 엄청난 추위에 난방을 해야 하지만,  악은 모든 자연이 그들을 도와준다.  서민은 보일러가 고장나면 새벽에 추위에 떨어야 하지만 악은 보일러가 어디 있는 지도 모른다.  아는 게 차라리 이상하다.  이런 대답이나 듣게 된다.  '그런 걸 내가 왜 알아야 하는데?'  나도 실제로 이런 말을 역삼동에서 들어봤다.  이럴 때 신은 악의 편이냐 선의 편이냐 하면 당연히 악의 편이다.  모든 물성을 악을 도와주게 만들어 놓았다.  지금 조용한 선진국들을 보면 과거에 식민지를 약탈해서 부를 쌓았다.  묘한 게 악이 창궐할 수록 기도는 많아지고 그 집들도 부를 쌓는다.

악은 몸에 피가 돌면서 온통 희열을 느끼지만 서민은 언제 만져볼 지도 모를 알량한 '행복'을 꿈꾸고 있다.  서민이 사는 이유는 자기의 모든 것,  자손의 모든 것을 악에게 헌사하기 위한 목적 딱 하나이다.  악에 특별한 비법이 있는 것은 아니다.  그냥 나빠지면 된다.  그냥 파괴하면 된다.  그냥 삿대질 하면 된다.  단,  지지 세력을 만든 다음에 해야 한다.

선은 언제나 악의 경계선을 넘어 들어갈 수 있지만,  악은 선의 경계선을 다시는 넘지 않는다.  불편한 것을 알아버린 것이다.  선이라는 게 별 쓰임새가 없다는 것을 알아버린 것이다.  뉘우치면 용서가 된다?고 가르치는 책도 있지만,  인간 속성과 신의 속성 중 둘 다 이해하지 못하고 말 했을까?  둘 다 이해하고 그리 말한다.  이유?  사람은 그냥 믿고 싶은 만큼 낭만적이지 못하다.

내 이 말을 믿지 못하겠으면,  조용히 일년 쯤 시간을 내어 자기의 친처과 인척에 대해 생각을 해보라.  광화문에서 강풍이 불 듯,  친인척 사이에서도 나만 모르는 광풍이 불고 있다.  어머니란 단어 생각만 해도 눈물이 난다?  이런 맹목적인 신앙이 서민에게 지혜를 빼앗아간다.  서민은 눈탱이 맞는 것을 단 한 순간도 멈출 수 없다.

완전히 악할 수도 또 완전히 선할 수도 없다.  모든 생명체는 악의 씨앗을 스스로의 몸 속에 지니고 있다.  집에 들어온 도둑을 때려서 물리치는 때는 이 악이 필요하다.  100층짜리 빌딩만한 행성이 내 머리 위를 지나가더니 내 집 위에 꽂혔다면?  이 악에 대한 죄는 어디에서 물어야 하나?  나만 해도,  좋합적인 환경에서의 나의 상태를 생각해볼 수 있다.  노란 설탕을 넣었으면 노란 솜사탕, 하얀 설탕을 넣었으면 하얀 솜사탕이 나오 듯.  나는 나에게 적응을 한 것이 지,  나의 선의 순도는 몇 %인가를 스스로에게 묻지 않는다.  72억 인구 중에 이런 고민을 하는 사람은 단 한 사람도 없다.

뇌 안에 단어들이 칸마다 들어가 있다.  이 단어 중 몇 개가 연결되면 생각이 된다.  이 생각은 생명체의 기본 활동을 가능하게 한다.  그래서 그 것이 잘못되었다고 해도 행동을 하게 하는 기본 동기는 된다.  사람은 그 생각이 오류인 지 잘 판단하지 못한다.  모든 장소 모든 생각마다 소크라테스를 대동할 수는 없다.  어떤 주제로 말을 하기 시작하면 이제는 오류의 커다란 덩어리를 보게 될 것이다.  스스로 검증한 결과로 입 밖으로 말이 튀어나왔을 텐데,  상대방 입장에서 듣다보면 다르거나 잘못된 생각이 많다.  말 하는 사람은 같은 생각을 두 번 한다.  생각할 때 한번, 말 할 때 또 한번.  그런데 같은 사람이 같은 생각으로 검증하면 이상하게도 100점짜리 답이 나온다.  자기의 생각의 옳고 그름을 스스로 판단하기 어렵다는 말이다.  국민학교 때 써놓은 일기를 다시 읽을 기회가 있다면?  얼마나 오류가 많았었는 지 알 수 있다.  그 게 자신의 글이라서 정확한 판단을 할 수 없다면?  쓰레기통에 버려지는 남의 일기도 의미는 있다.  (이 것은 어떤 경우라도 공개되어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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