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는 대로 기사를 쓰는 것은 아니다.
잘 읽히지 않는 기사도 안 써진다.
이해를 잘 못하고 기사를 쓰기도 한다.
오바마가 말한 한국식 교육은 두 가지의 의미로 기사화 될 수 있다.
1. 교육 한류
2. 할렘 교육의 극약 처방
본질은 2인데 기자는 1을 썼다.
2를 쓰면 욕을 많이 먹을 것이다. 그래서 한국 사회는 발전하지 못한다.
학교에 가지 않는 것보다는 한국식으로라도 교육이라도 받게하는 게 낫겠다는 뜻이다.
한국에서 영어 교육을 하던 사람이 이 모델을 할렘에 적용하고 의회로부터 100억 (정확한 지 모르겠다. 원인 것으로 알지만, 단위도 모르겠다.) 승인을 받았다고 한다.
한국식 교육에서 배울 것은 두 가지이다.
1. 세금
2. 복종
부모들도 같은 과정을 겪었고 교육에 관련된 직업을 갖는 모든 이도 같은 생각을 하고 있다. 교육에 대해서 아무 것도 모른다는 공통점이 있다. 복종 교육에서 금기 시 하는 게 자유로운 사상이다. 획일화 되어야 하고 책을 읽지 않아야 한다. 시험 과목만 16년을 암기하다 청소년기는 끝나버려야 하는 것이 교육의 주요 목표이다. 교육 제도, 관리도 철저히 서열화 되어있어야 하고 문제도 넷 중에 하나만 있어야 한다. 자유 서술도 금지 사항이다. 한국에서 공부 (한국식 암기)를 못하던 학생도 L.A.에 가면 수학에서 천재 소리를 듣는다는 이야기를 자랑스럽게 하는 사람이 있었다. 미적분 답을 외워가서 쓰면 교수도 놀랠 것이다. 중요한 것은 어떻게 풀었냐는 것이다. 미국은 그 과정을 알려주지만 여기선 그 과정을 안 가르쳐준다. 너무 똑똑해지면 곤란한 일이 생기기 때문이다. 가축이나 머슴이 너무 나대면 불편해지는 사회라는 것이다. 교원 직급도 철저히 서열화 되어있어 문제가 생기면 그 선에서 알아서 차단해야 한다. 교감 승진하는데 무려 7년 동안이나 최고의 평점을 받아야 한다면 교원 사이에서 인기 유지를 해야 한다는 말인가? 실수를 단 한 번도 안 해야 한다는 말인가? 아니면, 문제를 요령껏 잘 파기해야 한다는 말인가?
하나마나 한 농사를 그만 두지 못하게 하는 것도 농업 정책이다. 그 시간에 더 중요한 무엇을 하지 못하게 한다. 그리고 6년 묵은 쌀을 창고에 쳐박아두고 있다. 6년 동안이나 인력을 적체하고 있다는 말이 된다. 비교 인구가 많은 것도 아닌데 농촌의 그 많은 인력을 무가치한 노동으로 소일 거리 삼게 방치하는 것은 국가적 손실이다. 추곡 수매의 숨은 뜻은 거기에 있다.
YAHOO 철수
1. 다음이나 네이버의 벽을 넘지 못하고 철수
2. 정보 공유 금지 정책을 위반할 수 없어 철수
기자는 1을 말하지, 2는 말할 수 없었다.
yahoo는 일본에서 많이 사용한다. 당연히 다음과 네이버보다는 세계적으로 유명하다. 다음, 네이버 ceo가 청와대에 들어갔다는 것과 대조적으로 야후는 기관에 정보 유출을 하지 않는다고 알려져 있다. 반면에 다음 미디어 뉴스는 종편 수준이다.
기자가 이해를 잘 못하고 기사를 썼는 지, 알면서도 그렇게 밖에 쓸 수 없었는 지는 그 기자가 작성한 글을 많이 읽어봐야 하지만, 대개는 기사를 보지 기자를 확인하지는 않는다. 생각을 자유롭게 하는 것이 허용되지 않는 사회라면 왜 그렇게 기사를 썼는 지 이해가 간다.
자기는 뭐든 지 잘 한다고 생각한다면 이런 입증이 있어야 한다. 사람이 어리석은 것은 믿고 싶은 것만 말해주기를 바라고 믿고 싶은 것만 믿어서 그리 된다. '한글'이 세계 시장에서 ms-word보다 순수익이 많다든 지, 훈민정음이 세계 최고의 문서편집기라든 지 하는 말을 들어본 적이 없다. 이런 입증을 시도조차 해서는 안 되는 이 이상한 사회 분위기, 국경을 닫고 자화자찬만 하고 있겠다면 나라가 얼마나 발전하게 될까?
세계 시장을 폭넓게 파고 들기 위해서는 yahoo보다 ms 정책이 사업적 성과에 있어서 더 유리할 것이다. 적당히 협조하고 대충 사바사바하고..
처절하리만큼 스스로를 비판해야만 나라가 1mm 발전할 것을 기대라도 할 수 있다. 이 것을 방해하는 것은 국민 스스로이기도 하지만, 주변국도 한 몫 거든다. 미국이나 독일이 백 가지를 고쳐야 한다면, 한국은 백만 가지를 고쳐야 같은 레벨 위에 앉아 회담이라는 것도 할 수 있다. 지금처럼 심부름 하는 사환 같은 입장에서 하루 빨리 벗어나야 한다.
혼자 쓰는 개인 홈 페이지에 글을 남기면 어떻게 알고들어와 이상한 말들을 써놓고 간다. 남이 자기 페이지에 뭐가 좋으니 싫으니를 써둔 게 왜 그렇게 보기 싫을까? 왜 남이 하는 말 사사건건 나무라고 싶을까? 지식이 없어서 그렇다. 뇌 속에 쌓아둔 데이터가 없어서 남이 하는 행위는 다 잘 못처럼 인식된다. 개인이 정치하는 사람에게 여론을 형성할 수 있다. 당연한 권리이다. 그런데 이 말을 하는 사람에게 옆 사람이 나무라는 것은 무권행위이다. 대리권자가 잘못하는 것을 말하는 것은 여론이 되지만 - kbs에서 괴담이라고 말 하는 것 - 그 여론에 대해서 토를 다는 것은 불법행위이다. youtube에 글을 올리면 유난히 한글이 차갑다. 결코 한글은 세계 무대에서 따뜻한 언어가 아니다. 영어로 쓰인 Thank라는 많이 봤어도 한글로 '감사'라는 말은 찾아보기도 힘들었다. 욕 안 한 것만으로도 고마울 지경이다.
이 번에 google 계정 하나를 모두 New York으로 바꿨더니 한결 편해졌다. comment도 차단했다. 내가 내 글을 수정하기 위해서 보긴 봐야하는데, 그 comment가 싫어서 들여다보기 싫다.
한국 사회는 무가치한 경쟁으로 에너지만 낭비하고 있다. 국민은 어리석어서 국산품 애용이 회사를 키우고 자식을 그 회사에 취직시키고 하는 상호 서포트 개념을 버리지 못 할 것이다. 일용직이나 비정규직, 심지어 외국인 근로자까지 기업은 마음대로 생산 비용을 선택할 수 있다. 외국인 근로자는 월급을 받아서 본국으로 송금하지 국내에서 소비하지 않는다. 공장을 외국에 세우는 것은 또 어떤가?
재벌이 외국에서 매출이 증가하면 국민은 자긍심을 느끼는 모양이다. 대기업이 그러면 국민은 불안해져야 한다. 결코 좋은 일이 아니다. 반드시 정치가 오염되고 악순환에 빠지게 된다. 아무리 나쁜 짓을 해도 통제할 수도 없게 된다. 대표는 구속조차 되지 않는다. 정권이 바뀐다 해도 언젠가는 사면 복권된다. 일사부재리까지 자동 방어막으로 써먹는다.
모든 대기업은 일정 규모 이하로 분해되어야 마땅한데 어느 국회의원도 관련법을 만들 지 않는다. 왜 그럴까? 국민이 사악한 것을 아름답다고 보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언제쯤이나 그 무서운 통치 관습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1,000년 뒤에 다시 돌아와보면 그 때는 그럴 수 있을까? 어려워 보인다.
할아버지들은 손주들에게 아름다운 땅을 선물하고 싶은 의지가 전혀 없다. 이 땅의 할아버지들은 존경 받을 수 없다. 손주를 사랑한다면 원자력 발전소를 폐기해야 한다. 원자력 발전소 해체 비용을 손주들에게 떠넘기는 것은 도둑놈 심보이다. 지가 쓰고 버린 것을 왜 타인이 청소해야 된다는 말인가? 북한 핵이 남한을 제외하고는 위협이 되지 못하 듯, 잔류 핵은 주변국에 위협도 되지 않는다. 용도 전환의 가치가 없다. 주장만 하고 책임은 안 지는 풍토를 바꾸지 않으면 그 무엇을 해도 업적이 없게 된다. 그래서 역사 책을 소설로 바꾸는 작업들을 시도하는 것이다.
잘 읽히지 않는 기사도 안 써진다.
이해를 잘 못하고 기사를 쓰기도 한다.
오바마가 말한 한국식 교육은 두 가지의 의미로 기사화 될 수 있다.
1. 교육 한류
2. 할렘 교육의 극약 처방
본질은 2인데 기자는 1을 썼다.
2를 쓰면 욕을 많이 먹을 것이다. 그래서 한국 사회는 발전하지 못한다.
학교에 가지 않는 것보다는 한국식으로라도 교육이라도 받게하는 게 낫겠다는 뜻이다.
한국에서 영어 교육을 하던 사람이 이 모델을 할렘에 적용하고 의회로부터 100억 (정확한 지 모르겠다. 원인 것으로 알지만, 단위도 모르겠다.) 승인을 받았다고 한다.
한국식 교육에서 배울 것은 두 가지이다.
1. 세금
2. 복종
부모들도 같은 과정을 겪었고 교육에 관련된 직업을 갖는 모든 이도 같은 생각을 하고 있다. 교육에 대해서 아무 것도 모른다는 공통점이 있다. 복종 교육에서 금기 시 하는 게 자유로운 사상이다. 획일화 되어야 하고 책을 읽지 않아야 한다. 시험 과목만 16년을 암기하다 청소년기는 끝나버려야 하는 것이 교육의 주요 목표이다. 교육 제도, 관리도 철저히 서열화 되어있어야 하고 문제도 넷 중에 하나만 있어야 한다. 자유 서술도 금지 사항이다. 한국에서 공부 (한국식 암기)를 못하던 학생도 L.A.에 가면 수학에서 천재 소리를 듣는다는 이야기를 자랑스럽게 하는 사람이 있었다. 미적분 답을 외워가서 쓰면 교수도 놀랠 것이다. 중요한 것은 어떻게 풀었냐는 것이다. 미국은 그 과정을 알려주지만 여기선 그 과정을 안 가르쳐준다. 너무 똑똑해지면 곤란한 일이 생기기 때문이다. 가축이나 머슴이 너무 나대면 불편해지는 사회라는 것이다. 교원 직급도 철저히 서열화 되어있어 문제가 생기면 그 선에서 알아서 차단해야 한다. 교감 승진하는데 무려 7년 동안이나 최고의 평점을 받아야 한다면 교원 사이에서 인기 유지를 해야 한다는 말인가? 실수를 단 한 번도 안 해야 한다는 말인가? 아니면, 문제를 요령껏 잘 파기해야 한다는 말인가?
하나마나 한 농사를 그만 두지 못하게 하는 것도 농업 정책이다. 그 시간에 더 중요한 무엇을 하지 못하게 한다. 그리고 6년 묵은 쌀을 창고에 쳐박아두고 있다. 6년 동안이나 인력을 적체하고 있다는 말이 된다. 비교 인구가 많은 것도 아닌데 농촌의 그 많은 인력을 무가치한 노동으로 소일 거리 삼게 방치하는 것은 국가적 손실이다. 추곡 수매의 숨은 뜻은 거기에 있다.
YAHOO 철수
1. 다음이나 네이버의 벽을 넘지 못하고 철수
2. 정보 공유 금지 정책을 위반할 수 없어 철수
기자는 1을 말하지, 2는 말할 수 없었다.
yahoo는 일본에서 많이 사용한다. 당연히 다음과 네이버보다는 세계적으로 유명하다. 다음, 네이버 ceo가 청와대에 들어갔다는 것과 대조적으로 야후는 기관에 정보 유출을 하지 않는다고 알려져 있다. 반면에 다음 미디어 뉴스는 종편 수준이다.
기자가 이해를 잘 못하고 기사를 썼는 지, 알면서도 그렇게 밖에 쓸 수 없었는 지는 그 기자가 작성한 글을 많이 읽어봐야 하지만, 대개는 기사를 보지 기자를 확인하지는 않는다. 생각을 자유롭게 하는 것이 허용되지 않는 사회라면 왜 그렇게 기사를 썼는 지 이해가 간다.
자기는 뭐든 지 잘 한다고 생각한다면 이런 입증이 있어야 한다. 사람이 어리석은 것은 믿고 싶은 것만 말해주기를 바라고 믿고 싶은 것만 믿어서 그리 된다. '한글'이 세계 시장에서 ms-word보다 순수익이 많다든 지, 훈민정음이 세계 최고의 문서편집기라든 지 하는 말을 들어본 적이 없다. 이런 입증을 시도조차 해서는 안 되는 이 이상한 사회 분위기, 국경을 닫고 자화자찬만 하고 있겠다면 나라가 얼마나 발전하게 될까?
세계 시장을 폭넓게 파고 들기 위해서는 yahoo보다 ms 정책이 사업적 성과에 있어서 더 유리할 것이다. 적당히 협조하고 대충 사바사바하고..
처절하리만큼 스스로를 비판해야만 나라가 1mm 발전할 것을 기대라도 할 수 있다. 이 것을 방해하는 것은 국민 스스로이기도 하지만, 주변국도 한 몫 거든다. 미국이나 독일이 백 가지를 고쳐야 한다면, 한국은 백만 가지를 고쳐야 같은 레벨 위에 앉아 회담이라는 것도 할 수 있다. 지금처럼 심부름 하는 사환 같은 입장에서 하루 빨리 벗어나야 한다.
혼자 쓰는 개인 홈 페이지에 글을 남기면 어떻게 알고들어와 이상한 말들을 써놓고 간다. 남이 자기 페이지에 뭐가 좋으니 싫으니를 써둔 게 왜 그렇게 보기 싫을까? 왜 남이 하는 말 사사건건 나무라고 싶을까? 지식이 없어서 그렇다. 뇌 속에 쌓아둔 데이터가 없어서 남이 하는 행위는 다 잘 못처럼 인식된다. 개인이 정치하는 사람에게 여론을 형성할 수 있다. 당연한 권리이다. 그런데 이 말을 하는 사람에게 옆 사람이 나무라는 것은 무권행위이다. 대리권자가 잘못하는 것을 말하는 것은 여론이 되지만 - kbs에서 괴담이라고 말 하는 것 - 그 여론에 대해서 토를 다는 것은 불법행위이다. youtube에 글을 올리면 유난히 한글이 차갑다. 결코 한글은 세계 무대에서 따뜻한 언어가 아니다. 영어로 쓰인 Thank라는 많이 봤어도 한글로 '감사'라는 말은 찾아보기도 힘들었다. 욕 안 한 것만으로도 고마울 지경이다.
이 번에 google 계정 하나를 모두 New York으로 바꿨더니 한결 편해졌다. comment도 차단했다. 내가 내 글을 수정하기 위해서 보긴 봐야하는데, 그 comment가 싫어서 들여다보기 싫다.
한국 사회는 무가치한 경쟁으로 에너지만 낭비하고 있다. 국민은 어리석어서 국산품 애용이 회사를 키우고 자식을 그 회사에 취직시키고 하는 상호 서포트 개념을 버리지 못 할 것이다. 일용직이나 비정규직, 심지어 외국인 근로자까지 기업은 마음대로 생산 비용을 선택할 수 있다. 외국인 근로자는 월급을 받아서 본국으로 송금하지 국내에서 소비하지 않는다. 공장을 외국에 세우는 것은 또 어떤가?
재벌이 외국에서 매출이 증가하면 국민은 자긍심을 느끼는 모양이다. 대기업이 그러면 국민은 불안해져야 한다. 결코 좋은 일이 아니다. 반드시 정치가 오염되고 악순환에 빠지게 된다. 아무리 나쁜 짓을 해도 통제할 수도 없게 된다. 대표는 구속조차 되지 않는다. 정권이 바뀐다 해도 언젠가는 사면 복권된다. 일사부재리까지 자동 방어막으로 써먹는다.
모든 대기업은 일정 규모 이하로 분해되어야 마땅한데 어느 국회의원도 관련법을 만들 지 않는다. 왜 그럴까? 국민이 사악한 것을 아름답다고 보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언제쯤이나 그 무서운 통치 관습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1,000년 뒤에 다시 돌아와보면 그 때는 그럴 수 있을까? 어려워 보인다.
할아버지들은 손주들에게 아름다운 땅을 선물하고 싶은 의지가 전혀 없다. 이 땅의 할아버지들은 존경 받을 수 없다. 손주를 사랑한다면 원자력 발전소를 폐기해야 한다. 원자력 발전소 해체 비용을 손주들에게 떠넘기는 것은 도둑놈 심보이다. 지가 쓰고 버린 것을 왜 타인이 청소해야 된다는 말인가? 북한 핵이 남한을 제외하고는 위협이 되지 못하 듯, 잔류 핵은 주변국에 위협도 되지 않는다. 용도 전환의 가치가 없다. 주장만 하고 책임은 안 지는 풍토를 바꾸지 않으면 그 무엇을 해도 업적이 없게 된다. 그래서 역사 책을 소설로 바꾸는 작업들을 시도하는 것이다.
No comments:
Post a Comment
Note: only a member of this blog may post a com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