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중파 tv에 소개된 적이 있는 단어이다.
사람을 기쁘게 하는 물질로 알려져 있다.
펜잘, 아스피린이 사람을 기쁘게 하는가?
통증을 완화시키는 것과 기쁨을 유발하는 것과는 다른 말이다.
부인과 이혼한, 출연자는 나중에 나와 거짓이었다고 말했다. 이 것과 짝을 이룬 게 숟가락 구부리는 쇼였다. 이 쇼를 하는 사람은 우리 집안에도 있다. 독일 갔다와 무슨 번역서를 냈는데 그 비슷한 것이다. 읽을 가치가 없어서 버렸지만, 그 사람도 이혼 했다. 그 주장이 스스로의 가정 문제도 해결하지 못하는 별 쓸모 없는 도구였다는 것을 말해주는 것인데, 아직도 그 주장을 하고 있다. 녹음된 인형처럼..
저 단어의 배경에는 정확히, '통증'이라는 말이 박혀있다. '통증'을 빼면 저 단어를 설명할 수 없다. 앞으로 좋아진다는 말은 아니다. 잠시 못 느끼게 신경을 둔화시킨다는 뜻이다. 좀 참고 열심히 해보자는 표어가 적당하겠다. 그런데, 왜 세상을 참으면서 살아야 하지? 그게 인생의 목표였나? 우리는 참기 위해서 이 땅에 태어났다? 그냥 아무 생각 없이 편하게 살면 안 되는 세상이라는 말이잖아.. 국민이 잘 사는 방법은 그냥 내버려두는 방법 말고는 없어.
엔돌핀 쇼는 정치 쇼라는 뜻이다.
이 엔돌핀의 농도가 낮아질 수록 선진국 가까이에 있다.
이 쇼가 가장 부풀려져 있는 곳이 아마 북한일 것이다.
이 세상 단 한 사람도 안 믿을 것 같은 강성대국
그러나 단 한 사람도 안 믿는 사람이 없는 체해야 하는 사회
우리도 열심히 겪었고, 지금도 진행 중이다.
새마을 기를 제대로 나부끼고 싶으면, 초가집을 일단 다시 지어놔야 하는 게 아닌가?
요즘 나부끼는 새마을 기의 정확한 의도를 모르겠다. 60년대의 가난을 체험하자는 말 같기는 한데 말이다.
정치를 하면서 제일 먼저 챙겨야 하는 게 이 엔돌핀 쇼이다.
내가 정치에 나서면 세상에 좋은 일이 생길 것 같다는 이야기는 국민학교 1학년 반장 선거에서도 써먹는 기법이다. 그 사회의 모든 사람들이 다 고만고만한 수준에 있으므로 오히려 독려되기도 한다. 그런데 그런 세상이 어디 있을 수 있나? 나 한 사람도 나는 80년을 어찌 운영해야 할 지 모르는데..
프랑스에가서 에펠탑만 사진으로 담아오지 선진국의 정신은 구분도 못하고 표현도 못하니 가봐야 보지도 못한다. 사람 뒤통수만 따라다니는 유치원 깃발 따라다니는, 뒤통수 여행이 그런 것을 보여줄 리 없다. 부작용은 이런 것이다. 친구가 중국에 일주일 다녀와서는 중국 이야기를 5개월 이상 하고 있다. 그 말은 자신의 머리 안에 다른 대화 소스는 전혀 없다는 말이 되기도 한다.
주차장 구획선은 일자형이다. 그게 네모인 나라도 있고, U자 모양인 나라도 있다. google map으로도 확인 할 수 있는 것으로는 산타모니카의 어느 회사 주차장에서 직사각형 구획선을 볼 수 있고, 일본 관광지의 어느 주차장에서는 U자 구획선을 볼 수도 있다.
구획선은 배려를 말하고 있다. 결국 그 배려는 사회에 나갔다가 다시 내게 돌아오는, 나에 대한 배려였던 것이다. 자기의 가치를 높인 결과이다. 입만 벌리면 험담을 하는 사회에서는 통용될 수 없는 매너이다. 동남아 뒤통수 여행을 하고 온 사람들은 가난을 이야기 한다. 우리는 잘 산다는 말을 하고 싶은 게 아니라, 내가 풍족해서 외국 여행을 좀 다녀왔다는 이야기를 그 주제로 대신하고 싶은 것이다. 그 것 밖에 말할 게 없다. 내 몸에 붙은 것과 내 집에 붙은 것을 제외하면 세상에 말 할 게 단 한 마디도 없는 사람들. 부풀려보여 풍족하다는 것은, 그 부풀려진 것이 모두 도둑품이라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말하지는 못 한다.
노벨상. 한국에 '정신'을 말하는 사람은 없다. 앞으로 300년은 있지 않을 것 같다. 노벨상이 위대한 것이 아니라, 다들 가져가는 그 것 하나를 외면하는 정신이 정상은 아니라는 말을 하고 싶다. 이만큼 온 것도 얼마나 간신히 한 것인데? 미국이나 일본이 얼마나 도와줘서 이만큼인데?라는 말을 그런 식으로 표현해야 했을까? 외면한다고 해서 그 가치가 나로 해서 떨어져버린다면 얼마나 좋을까만, 그렇다면 내가 미워하는 그 수 억 인구가 다 계속 추락만 경험해야 한다는 말인가? 내가 무슨 마술사라도 된다는 망령.
지금은 어디서도 볼 수 없는 그림이다. 저기에 한국기가 자랑스럽게 들어가 있었다. 그러나 그 공은 모두 권력들이 가져갔다. 뭘 했기에? LA에서 배를 저어 여기까지 끌어왔나? 가만히 앉아 벼락 맞 듯이 구호물자를 받아먹었다. 북한에 쌀 보내주면 권력들이 챙긴다고 6년 씩이나 창고에 쌓아두는데, 그 논리라면, 저 때 들어온 쌀은 누가 다 챙겼을까? 이제 내놓을 때 지난 것 아닌가?
이 사회는 왜 짖는가? 자기 가치가 개만큼은 낮기 때문에 개처럼 짖어야 상대방이 반응한다. 고상하게 시 같은 소리하면 서로 알아듣지 못하는 사회 구성원이기에, 귀여운 자식에게도 알지 못하니 알려주지도 못한다. 사람의 입에서, 자기의 입에서 80년 동안 가치 있는 소리가 얼마나 맴돌았을까? 말하지는 못한다고 해도, 읽기는 하나? 읽지는 못한다고 해도, 생각은 하나?
지금 이 나라에 살며, 내게는 세상 아무 소리도 안 들릴 때가 가장 아름다운 음악을 듣는 순간이며, 아무 냄새도 안 날 때가, 가장 향기로운 순간이다. 아무도 안 만날 때가 가장 흥미로운 순간이다. 아무 대화도 하지 않을 때가 우주와 비밀스러운 이야기를 쏟아내는 순간이다.
서로 도토리만한 세계에서는 나눌 말이라는 게 있지 않다. 인간이 인생으로서, 인생으로써 인간을 살지 못한다면, 인간으로 살았었다고 말해서는 안 된다. 인생 활동의 총합이 '해코지'로 분류된다면, 그 것은 개미나 벌들도 그 만한 능력은 있는데?
......
무료, 세상에 무료란 없다. 무료는 동시 이행을 완화시킨 것이다. 실패한 인생의 척도이기도 하다. 저 악수표 붙은 쌀, 옥수수 배급에 대해 지금 열심히 갚고 있지 않나? 이자가 너무 세다. 만기는 없다.
사람을 기쁘게 하는 물질로 알려져 있다.
펜잘, 아스피린이 사람을 기쁘게 하는가?
통증을 완화시키는 것과 기쁨을 유발하는 것과는 다른 말이다.
부인과 이혼한, 출연자는 나중에 나와 거짓이었다고 말했다. 이 것과 짝을 이룬 게 숟가락 구부리는 쇼였다. 이 쇼를 하는 사람은 우리 집안에도 있다. 독일 갔다와 무슨 번역서를 냈는데 그 비슷한 것이다. 읽을 가치가 없어서 버렸지만, 그 사람도 이혼 했다. 그 주장이 스스로의 가정 문제도 해결하지 못하는 별 쓸모 없는 도구였다는 것을 말해주는 것인데, 아직도 그 주장을 하고 있다. 녹음된 인형처럼..
저 단어의 배경에는 정확히, '통증'이라는 말이 박혀있다. '통증'을 빼면 저 단어를 설명할 수 없다. 앞으로 좋아진다는 말은 아니다. 잠시 못 느끼게 신경을 둔화시킨다는 뜻이다. 좀 참고 열심히 해보자는 표어가 적당하겠다. 그런데, 왜 세상을 참으면서 살아야 하지? 그게 인생의 목표였나? 우리는 참기 위해서 이 땅에 태어났다? 그냥 아무 생각 없이 편하게 살면 안 되는 세상이라는 말이잖아.. 국민이 잘 사는 방법은 그냥 내버려두는 방법 말고는 없어.
엔돌핀 쇼는 정치 쇼라는 뜻이다.
이 엔돌핀의 농도가 낮아질 수록 선진국 가까이에 있다.
이 쇼가 가장 부풀려져 있는 곳이 아마 북한일 것이다.
이 세상 단 한 사람도 안 믿을 것 같은 강성대국
그러나 단 한 사람도 안 믿는 사람이 없는 체해야 하는 사회
우리도 열심히 겪었고, 지금도 진행 중이다.
새마을 기를 제대로 나부끼고 싶으면, 초가집을 일단 다시 지어놔야 하는 게 아닌가?
요즘 나부끼는 새마을 기의 정확한 의도를 모르겠다. 60년대의 가난을 체험하자는 말 같기는 한데 말이다.
정치를 하면서 제일 먼저 챙겨야 하는 게 이 엔돌핀 쇼이다.
내가 정치에 나서면 세상에 좋은 일이 생길 것 같다는 이야기는 국민학교 1학년 반장 선거에서도 써먹는 기법이다. 그 사회의 모든 사람들이 다 고만고만한 수준에 있으므로 오히려 독려되기도 한다. 그런데 그런 세상이 어디 있을 수 있나? 나 한 사람도 나는 80년을 어찌 운영해야 할 지 모르는데..
프랑스에가서 에펠탑만 사진으로 담아오지 선진국의 정신은 구분도 못하고 표현도 못하니 가봐야 보지도 못한다. 사람 뒤통수만 따라다니는 유치원 깃발 따라다니는, 뒤통수 여행이 그런 것을 보여줄 리 없다. 부작용은 이런 것이다. 친구가 중국에 일주일 다녀와서는 중국 이야기를 5개월 이상 하고 있다. 그 말은 자신의 머리 안에 다른 대화 소스는 전혀 없다는 말이 되기도 한다.
주차장 구획선은 일자형이다. 그게 네모인 나라도 있고, U자 모양인 나라도 있다. google map으로도 확인 할 수 있는 것으로는 산타모니카의 어느 회사 주차장에서 직사각형 구획선을 볼 수 있고, 일본 관광지의 어느 주차장에서는 U자 구획선을 볼 수도 있다.
구획선은 배려를 말하고 있다. 결국 그 배려는 사회에 나갔다가 다시 내게 돌아오는, 나에 대한 배려였던 것이다. 자기의 가치를 높인 결과이다. 입만 벌리면 험담을 하는 사회에서는 통용될 수 없는 매너이다. 동남아 뒤통수 여행을 하고 온 사람들은 가난을 이야기 한다. 우리는 잘 산다는 말을 하고 싶은 게 아니라, 내가 풍족해서 외국 여행을 좀 다녀왔다는 이야기를 그 주제로 대신하고 싶은 것이다. 그 것 밖에 말할 게 없다. 내 몸에 붙은 것과 내 집에 붙은 것을 제외하면 세상에 말 할 게 단 한 마디도 없는 사람들. 부풀려보여 풍족하다는 것은, 그 부풀려진 것이 모두 도둑품이라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말하지는 못 한다.
노벨상. 한국에 '정신'을 말하는 사람은 없다. 앞으로 300년은 있지 않을 것 같다. 노벨상이 위대한 것이 아니라, 다들 가져가는 그 것 하나를 외면하는 정신이 정상은 아니라는 말을 하고 싶다. 이만큼 온 것도 얼마나 간신히 한 것인데? 미국이나 일본이 얼마나 도와줘서 이만큼인데?라는 말을 그런 식으로 표현해야 했을까? 외면한다고 해서 그 가치가 나로 해서 떨어져버린다면 얼마나 좋을까만, 그렇다면 내가 미워하는 그 수 억 인구가 다 계속 추락만 경험해야 한다는 말인가? 내가 무슨 마술사라도 된다는 망령.
지금은 어디서도 볼 수 없는 그림이다. 저기에 한국기가 자랑스럽게 들어가 있었다. 그러나 그 공은 모두 권력들이 가져갔다. 뭘 했기에? LA에서 배를 저어 여기까지 끌어왔나? 가만히 앉아 벼락 맞 듯이 구호물자를 받아먹었다. 북한에 쌀 보내주면 권력들이 챙긴다고 6년 씩이나 창고에 쌓아두는데, 그 논리라면, 저 때 들어온 쌀은 누가 다 챙겼을까? 이제 내놓을 때 지난 것 아닌가?
이 사회는 왜 짖는가? 자기 가치가 개만큼은 낮기 때문에 개처럼 짖어야 상대방이 반응한다. 고상하게 시 같은 소리하면 서로 알아듣지 못하는 사회 구성원이기에, 귀여운 자식에게도 알지 못하니 알려주지도 못한다. 사람의 입에서, 자기의 입에서 80년 동안 가치 있는 소리가 얼마나 맴돌았을까? 말하지는 못한다고 해도, 읽기는 하나? 읽지는 못한다고 해도, 생각은 하나?
지금 이 나라에 살며, 내게는 세상 아무 소리도 안 들릴 때가 가장 아름다운 음악을 듣는 순간이며, 아무 냄새도 안 날 때가, 가장 향기로운 순간이다. 아무도 안 만날 때가 가장 흥미로운 순간이다. 아무 대화도 하지 않을 때가 우주와 비밀스러운 이야기를 쏟아내는 순간이다.
서로 도토리만한 세계에서는 나눌 말이라는 게 있지 않다. 인간이 인생으로서, 인생으로써 인간을 살지 못한다면, 인간으로 살았었다고 말해서는 안 된다. 인생 활동의 총합이 '해코지'로 분류된다면, 그 것은 개미나 벌들도 그 만한 능력은 있는데?
......
무료, 세상에 무료란 없다. 무료는 동시 이행을 완화시킨 것이다. 실패한 인생의 척도이기도 하다. 저 악수표 붙은 쌀, 옥수수 배급에 대해 지금 열심히 갚고 있지 않나? 이자가 너무 세다. 만기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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