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day 24 October 2016

나 2

생각해보면, '나'라는 것보다 골치 아픈 게 없다.
자신을 나무랠 수도 없고,  자책한다고 해도 실감도 나지 않는다.  얼렁뚱땅..
실수했는 지도 모른다.  자기 행동이라 나빠보이지도 않는다.  이 것을 아는데도 수십년이 걸렸다.  처벌 같은 것도 못한다.

실수는 끝도 없이 반복된다.  누가 지적이라도 해주면 감사하다는 생각은 들지 않고 화부터 낸다.  단어 한 자를 듣는 순간 화낼 준비를 하고 있다.  '화'의 효과는 대화의 단절이고 나의 발전의 지체이다.  정말 터무니 없는 인생을 운영하고 있다는 것,  그 대상이 남도 아니고 자신의 인생이라는 것을 아는 시간이 그렇게도 많이 걸린다.  죽을 때까지 모르고 가는 사람이 훨씬 많긴 하지만..

자기 생각과 자기 행동을 비교해보면 딱 맞는다.  합동이다.  그래서 100점이고 완전한 가치이다.  그래서 습관을 버리지 못한다.  담배도 남이 피우면 공해지만,  자기에게는 낙이다.  담배 끊은 뒤의 몸에 일어나는 변화에 대해서 가족이 아무리 설명을 해줘도 끊으려고 하지 않는다.  처칠 효과 때문이다.  그래서 처칠은 나쁜 놈이다.  처칠의 사진은,  생각이 많은 것처럼 보여준다.  위장이다.  술도 자기가 마시면 위로이지만, 남이 마시면 추태의 입구에 서있는 상상이다.

씩씩거리며 자기 말이 맞다는 것을 입증하려고 애쓰는 사람이 많다.  아무도 그 말에 관심이 없는데 혼자 그 애를 쓴다.  이런 신과도 같은 완벽한 사람이 어디에 있을까?  나이가 많으면 지식이 풍선처럼 늘어나지 않는다.  나이 많은 것으로 경험치가 올라갔다는 자기 신앙이 생겨난다.  일을 처리하는 방법, 생각은 수천억 가지가 된다.  그런데 무슨 재주로 평범한 사람의 생각 하나가 그 중 가장 우수하다는 생각을 할 수 있을까?

인생을 돌이켜보면,  사람은 싸우는 일 외에 실감나게 할 일이 없었던 것이다.  자존심이고 감정이고 하는 것들 흙으로 되돌아 갈 때는 흔적도 없이 증발해버린다.  증발이란, 어딘가에 잘 안 보이는 형태로 존재한다는 말인데,  이 우주 안에 아예 처음부터 끝까지 존재도하지 않는 게 '생각'이니까,  엄밀히 증발이라는 단어도 쓸 수 없다.  곤란하게도,  이 존재하지도 않는 것 (생각)으로 존재를 입증하려는 사람도 있다.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

밖에 나가면 모기만 나를 반겨준다.  낮이든, 불빛도 없는 밤이든, 새벽이든, 몇 초 안에 몸 어딘가에 달라붙는다.  목숨을 건 대범한 밀착이다.  처음부터 왜 그런 생식을 택했는 지 모르겠지만 잘못된 선택이다.  그런데 모기류는 그 것을 알고 있을까?  후회할까?  뉘우칠까?  안다고 해도 1,000년 안에 DNA 개조가 이루어질 수 있을까?  생각 많이 한다는 사람도 스스로를 이렇게 방치하는데..





......
독재의 기술에서 중요한 내용 중에 '성 차단'이라는 게 있다.  성적인 금지 사항이다.  오래 써온 정치 기술에서도 아시아인들이 대부분 경험한 '남녀 칠세 부동석'이 있다.  자신은 그 성이라는 것을 통해서 태어났으면서도 성을 금기 시 한다.  정치적으로도 크게 이용 당해왔다.  그래서 남의 성에 호기심이 넘친다.  질투도 강해진다.  뉴스의 대부분이 그 것으로 채워진다.  이제는 스스로를 놓아줄 때가 되었다.  스스로를 새장에 그만 가두어도 된다.  2세를 생산하지 않는 성은 남용이다.  그 것은 질환이기도 하다.  조용히 치료할 수 있도록 사회나 가족이 도와줘야 한다.  인재가 자기 길을 갈 수 있도록 길을 열어주어야 한다.  사회에서 매장하려는 지금 사회 분위기에서는 강도나 도둑 말고는 할 일이 없어진다.  우리는 도둑을 기르는 것인가?  사회가 손해보는 짓을 강요한다면 사회는 개선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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