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ursday, 16 April 2015

슬픔

1.
국민이 닭장의 닭
역사의 대부분은 그렇게 서술된다.
국민이 머리가 커서는 안 된다.
하루하루 근근히 살아내야 말 잘 듣는 로봇이 된다.
하루도 빠짐 없이 radio, tv에서 지령을 자기도 모르는 새 받아들인다.
어려운 주변 정세는 뉴스를 통해서 악용된다.  그것이 지령이다.
생각도 없고 미련해서 서로 싸우기 쉬워야 애국심으로 쉽게 마비시켜 총알받이로 쓰기 좋다.
닭장 속의 닭 마냥, 알 낳고, 세금 낳고, 국경에 목숨 걸고, 반 시위에 전력하고..
그런 모든 행동이 스스로 대견스러워 보일 것이 요구된다.

언젠가 권력은 분산된다.  누리던 자의 손자는 그 파편의 피해를 견뎌내지 못한다.
오물통에서 헤어나지 못한다.

행복은 다른 개념 때문에 상이한 것이 아니다.
어디선가 가져오거나, 빼앗아 오거나 하는 것까지 행복에 포함시키니 이렇게 된다.

세상에는 원래부터 좋다 나쁘다의 개념이 없다.  선과 악 같은 것도 존재하지 않는다.
내게 피해를 주는 것은 악일 것이고, 내게 배푸는 것은 선이라고 여기겠지..
따라서 악한 애비는 자식에게는 선일 수 있지 않겠는가?

우리는 그 어느 것 하나 내 마음대로 못하면서 무슨 인생을 논하겠는가?
지하철 타고 왔다갔다.  미디엄 인간 코스로 80년짜리 한 끼 식사로 땡?

우리는 인간을 살아냈다고 말하지 말자.  그런 것을 기록으로 남기는 것도 웃기는 일이다.
1급짜리 공무원이 그대들에게는 그렇게도 자랑스러웠을까?
내게는 더 큰 흠결만 보이는데?..

존재로서 유감이다.


2.
우리는 질 낮은 사회, 역사 속에 산다.  그것이 불편한 줄을 모르는 것은 그렇게 훈련 받았고, 그렇게 교육 받았기 때문이다.  우리는 스스로 생각하지 못하므로 내일의 나를 알아낼 방법은 없다.  정확히 표현하자면, 나는 pc 기판 중 별 달리 이름도 안 알려진 부품 하나이다.  그래도 생일 파티는 해야지?  그 다음 대의 생일 파티를 위해서도..
궤도를 따라가는 사회는 나는 아무 것도 안 하면 된다.  그런데 그 즐거움이 내 것이라고, 나의 창조물이라고 착각은 왜 하지?  머릿 속에 아무 씨도 뿌리지 않았으므로 아무 결과도 없는 것은 당연하다.


3.
정의가 있다고 믿는 것은 함정이다.
서민은 늘 그런 여유 속에서 방어를 늦춘다.  고작 울먹이며 경찰에 전화하는 것이 전부이다.  복수?  그 순간 바닷 속에 발을 한 발 들여놓은 때이다.  추가 비용과 추가 시간은 복구되지 않는다.  감정은 그 상황을 더욱 위태롭게 만들어버린다.  자신의 감정을 믿지 마라.  그것은 기저귀 같은 것이다.


4.
그것은 바보 게임이었다.  누가 얼마나 바보일 수 있는 지 몸으로 진지하게 보여주는 게임이었다.


5.
사랑은 모든 무장을 제거, 마비시키고 만나는 과정이다.  서로의 다른 DNA가 충돌하면 걷잡을 수 없게된다.  이것을 감당하기 어려우면 행위로만 만족하라.


6.
가족은 언제나 내 편이다?  착각이다.  곰에게 쫓길 때 제일 늦게 오는 가족은 피해를 본다.  누군가 한 사람은 흔히 위험을 노출시키고 있다.  이 것을 감당하는 것도 능력이다.  pc를 사용할 때 제일 먼저 보안을 알아야 하듯이..
대화를 중단 시킨 사람은 나머지는 책임을 져야 한다.  '화'가 나서 안 들리게 된 것이 면책의 주 이유가 될 수 없다.


7.
옳다고 즉석에 옮기는 행동은 위험하다.  세상은 나의 어리석은 확실한 판단 아래 간단히 보호될 수 있는 게 아니다.


8.
우리 대의 이익은 대부분 손자 대에서 훔쳐온 것들이다.


9.
서로 괴롭히는 인간 구도를 벗어나면 인간의 모습은 어떤 것일까?
사람이 얼마나 오락가락 하는 지를.. 알면서 왜 그럴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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