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놈에 접속해서 바탕화면(월 페이퍼)을 고르고 있다.
리눅스에서도 접속이 느린데, 윈도우에서는 더욱 느리다.
마치 전화선 접속 시대 같다.
아무리 생각해도, 미국에서는 무료가 추진되는 인터넷(IP 전화 포함)이라고 하는 것
바이러스 노출, 정보 유출 통로로 사용, 더 나아가서 통제 수단으로 응용되는 것에다
매달 30,000원씩 낸다는 게 너무 심한 것이라 본다.
그래서 광케이블 인터넷을 끊고 다른 방법을 생각 중이다.
간단히 미국으로 이사가면 되지만 아직은..
1. 신의 역사가 기록될 수 있는가?
우리가 기억하는 시간은 40억년이다.
그러니 우주의 역사는 기록된다는 게 의미가 없다.
그것도 우리의 상상 안에서의 시간이다.
현 우주의 앞과 뒤는 우리의 상상 밖에 있다.
왜 그것(우주, 우주의 시간)은 끝이 있다고도, 없다고도 볼 수 없는 것일까?
기록한다면 어디까지 기록해야 하는가?
폭포수를 타고 따라내려가는 모래 한 알까지?
무한 항해 중인 빛 한 방울까지?
지난 여름 나를 스치고 지나간 시원한 바람 한 줄기까지?
사람에게 물어보면 사람의 입 맛에 맞는 역사를 말할 것이다.
풀 한 포기나, 기러기 한 마리의 역사 같은 것은 제외하자고 할 테니..
우주의 의미는 우리가 우리의 말로 느끼는대로 기술한 정도이지
우주를 정확히 설명한 것은 아니고, 이러한 일들이 우주 전체로 보아 별달리 의미 같은 게 있을 수 없는 것들이다.
2. 신에게 인간이 의미가 있는가?
40억년을 인간 비슷(유인원)하게 살다간 전체 존재의 수가 얼마나 될까?
그리고 전 우주에서 이러한 생명 현상이 있다면, 또 얼마나 많아질까?
그러한 많고 많은 일들이 신에 의해서 모두 기억되고 있다고?
그런데, 왜 그 모든 하찮은 현상들을 신이 기억할 의무를 인간은 신에게 부여하려고 하는 것인가?
그러면 우리는 공기 한 방울이 어디에서 어디로 가고 하는 궤적을 수십년간 전부 기록이라도 해두고 있다는 말인가? 모든 자연의 기록을 다 가지고 있는가?
우리가 신성을 닮았다고 진정 믿고 있다면, 우리도 신으로부터 잊혀져야 하는 게 아주 당연하고도 자연스러운 일이다. 마땅히 그래야 하는 일이다.
만약 이러한 내용을 부정하려고 한다면, 신의 뇌는 도대체 얼마나 커야 하겠는가?
태양의 몇배의 크기가 되어야 하겠는가?
머리가 태양보다 큰 이 모습이 인간의 모습을 닮았다고 말 할 수는 없지 않겠는가?
우리가 생각하는 모든 것은, 우리가 그럴 것이라고, 또는 그랬으면 좋겠다는 생각의 고착이다. 그것이 글로 형태를 갖추고, 오랜 세월 전해지면서, 역사처럼, 사실처럼, 규범처럼 익숙한 것이다. 그러나 진리값은 아니다. 우주의 언어도 아니고, 생긴대로의 습성이다.
3. 신은 신의 생각을 하고 있다.
우리에게는 이성이 있고, 배우자가 있다.
왜 우리는 신성에서 그것을 배제하고 있을까?
우리 식대로의 신이라면, 나는 우리의 신이 되고싶은 마음이 없다.
보람도 없는 외로운 싸움을 40억년이라 계속하라는 말인가?
이런 인간은 얼마나 이기적인가?
또, 이런 인간에 신으로서의 내가 얼마나 애정을 갖게 되겠는가?
4. 사후의 세계에 대해
사촌이 와서 갑자기 혼잣말을 한다.
전생이 없다는 게 말이 되느냐고.
전생이 있으면 후생이 있을 터인데, 나는 그것을 허락할 수 없다.
인정이나 이해의 문제가 아니다.
내가 신이라면 인간에게 가여운 80년을 살게하고 덤으로 긴 휴식기를 줄 것이다.
살아서 피터지게 싸우는 일보다, 조용히 잊혀지는 게 아름다운 것을 모른다고 제삼자가 책임질 일은 아니다.
영생.
영원히 죽지도 못하고, 어딘가에서 마당이나 쓸고 있어야된다면, 나는 인간이라는 '생명'으로 낚인 게 너무나도 억울하다.
앞으로 40억년이나 그 짓을 해야한다고?
고작 80년도 제대로 살지 못하고 갖은 패악을 다 하면서 40억년이나 더 또 그러겠다고?
지구에서는 도구를 만드는 것이 반칙이다.
도구는 전투 도구의 파생이고 새로운 도구로의 발전이다.
언제나 전투 준비를 잊지 않는다는 말이다.
5. 어떻게들 하고 있나?
사람들이 하고 있는 것을 지켜보면, 신에 대해서 이런 판단이 내려진다.
사람으로부터 그 많은 재화를 그 많은 세월 모아서 어디에 쓰려는 거지?
누구에게 자랑하려는 거지? 안드로메다에서?
신은 인간에게 생명을 팔고, 영구 노예를 삼다.
여기까지 생각해보면 사람은 피라미드라는 것을 쌓을만큼 저능하다.
그것도 모자라 역사로 기록하고, 비행기를 잡아타고 구경가서 사진까지 찍어온다.
돌아와 남는 인생 자랑거리삼아 늙어간다.
인간은 용서받지 못할만큼 미련하다.
각자 자신 일개체에게 부여된 생명만큼 현실적으로 가치있는 것은 없다.
인간이 사흘 수를 계획하면 머리가 병들기 시작한다.
신은 우리에게 80년을 햇빛을 쬐면서 편히 있다 잊혀지길 바라고 있다.
우리가 이 생각에서 벗어나면, 모두에게 생명은 지옥이다.
사는 동안 편하게 자연을 누리면서 fade out 하는 게 인생의 가장 훌륭한 기법이다.
이것은 기록되어서는 안 된다. 자연의 세포는 복제는 해도, 기록은 하지 않는다. 변하지 않고 아직남아있는 것(화석)과는 다르다.
(복제에도 기록의 의미가 있지만, 같은 뜻은 아니다. 남긴다는 뜻이 없다. 전달한다는 뉴앙스에서는 구분하기 어려운 면도 있다.)
(독일은 인간의 40년대의 잔인성을 잊기 위해 역사를 배우고, 일본은 40년대의 향수를 잊지 못해 역사를 부정한다. 오래도록 잊지 않아주기를 바라며..)
(다시는 일본이 아시아의 선두에 서는 일은 없다. 아시아의 한 마리 이무기)
(미국의 저글링)
리눅스에서도 접속이 느린데, 윈도우에서는 더욱 느리다.
마치 전화선 접속 시대 같다.
아무리 생각해도, 미국에서는 무료가 추진되는 인터넷(IP 전화 포함)이라고 하는 것
바이러스 노출, 정보 유출 통로로 사용, 더 나아가서 통제 수단으로 응용되는 것에다
매달 30,000원씩 낸다는 게 너무 심한 것이라 본다.
그래서 광케이블 인터넷을 끊고 다른 방법을 생각 중이다.
간단히 미국으로 이사가면 되지만 아직은..
1. 신의 역사가 기록될 수 있는가?
우리가 기억하는 시간은 40억년이다.
그러니 우주의 역사는 기록된다는 게 의미가 없다.
그것도 우리의 상상 안에서의 시간이다.
현 우주의 앞과 뒤는 우리의 상상 밖에 있다.
왜 그것(우주, 우주의 시간)은 끝이 있다고도, 없다고도 볼 수 없는 것일까?
기록한다면 어디까지 기록해야 하는가?
폭포수를 타고 따라내려가는 모래 한 알까지?
무한 항해 중인 빛 한 방울까지?
지난 여름 나를 스치고 지나간 시원한 바람 한 줄기까지?
사람에게 물어보면 사람의 입 맛에 맞는 역사를 말할 것이다.
풀 한 포기나, 기러기 한 마리의 역사 같은 것은 제외하자고 할 테니..
우주의 의미는 우리가 우리의 말로 느끼는대로 기술한 정도이지
우주를 정확히 설명한 것은 아니고, 이러한 일들이 우주 전체로 보아 별달리 의미 같은 게 있을 수 없는 것들이다.
2. 신에게 인간이 의미가 있는가?
40억년을 인간 비슷(유인원)하게 살다간 전체 존재의 수가 얼마나 될까?
그리고 전 우주에서 이러한 생명 현상이 있다면, 또 얼마나 많아질까?
그러한 많고 많은 일들이 신에 의해서 모두 기억되고 있다고?
그런데, 왜 그 모든 하찮은 현상들을 신이 기억할 의무를 인간은 신에게 부여하려고 하는 것인가?
그러면 우리는 공기 한 방울이 어디에서 어디로 가고 하는 궤적을 수십년간 전부 기록이라도 해두고 있다는 말인가? 모든 자연의 기록을 다 가지고 있는가?
우리가 신성을 닮았다고 진정 믿고 있다면, 우리도 신으로부터 잊혀져야 하는 게 아주 당연하고도 자연스러운 일이다. 마땅히 그래야 하는 일이다.
만약 이러한 내용을 부정하려고 한다면, 신의 뇌는 도대체 얼마나 커야 하겠는가?
태양의 몇배의 크기가 되어야 하겠는가?
머리가 태양보다 큰 이 모습이 인간의 모습을 닮았다고 말 할 수는 없지 않겠는가?
우리가 생각하는 모든 것은, 우리가 그럴 것이라고, 또는 그랬으면 좋겠다는 생각의 고착이다. 그것이 글로 형태를 갖추고, 오랜 세월 전해지면서, 역사처럼, 사실처럼, 규범처럼 익숙한 것이다. 그러나 진리값은 아니다. 우주의 언어도 아니고, 생긴대로의 습성이다.
3. 신은 신의 생각을 하고 있다.
우리에게는 이성이 있고, 배우자가 있다.
왜 우리는 신성에서 그것을 배제하고 있을까?
우리 식대로의 신이라면, 나는 우리의 신이 되고싶은 마음이 없다.
보람도 없는 외로운 싸움을 40억년이라 계속하라는 말인가?
이런 인간은 얼마나 이기적인가?
또, 이런 인간에 신으로서의 내가 얼마나 애정을 갖게 되겠는가?
4. 사후의 세계에 대해
사촌이 와서 갑자기 혼잣말을 한다.
전생이 없다는 게 말이 되느냐고.
전생이 있으면 후생이 있을 터인데, 나는 그것을 허락할 수 없다.
인정이나 이해의 문제가 아니다.
내가 신이라면 인간에게 가여운 80년을 살게하고 덤으로 긴 휴식기를 줄 것이다.
살아서 피터지게 싸우는 일보다, 조용히 잊혀지는 게 아름다운 것을 모른다고 제삼자가 책임질 일은 아니다.
영생.
영원히 죽지도 못하고, 어딘가에서 마당이나 쓸고 있어야된다면, 나는 인간이라는 '생명'으로 낚인 게 너무나도 억울하다.
앞으로 40억년이나 그 짓을 해야한다고?
고작 80년도 제대로 살지 못하고 갖은 패악을 다 하면서 40억년이나 더 또 그러겠다고?
지구에서는 도구를 만드는 것이 반칙이다.
도구는 전투 도구의 파생이고 새로운 도구로의 발전이다.
언제나 전투 준비를 잊지 않는다는 말이다.
5. 어떻게들 하고 있나?
사람들이 하고 있는 것을 지켜보면, 신에 대해서 이런 판단이 내려진다.
사람으로부터 그 많은 재화를 그 많은 세월 모아서 어디에 쓰려는 거지?
누구에게 자랑하려는 거지? 안드로메다에서?
신은 인간에게 생명을 팔고, 영구 노예를 삼다.
여기까지 생각해보면 사람은 피라미드라는 것을 쌓을만큼 저능하다.
그것도 모자라 역사로 기록하고, 비행기를 잡아타고 구경가서 사진까지 찍어온다.
돌아와 남는 인생 자랑거리삼아 늙어간다.
인간은 용서받지 못할만큼 미련하다.
각자 자신 일개체에게 부여된 생명만큼 현실적으로 가치있는 것은 없다.
인간이 사흘 수를 계획하면 머리가 병들기 시작한다.
신은 우리에게 80년을 햇빛을 쬐면서 편히 있다 잊혀지길 바라고 있다.
우리가 이 생각에서 벗어나면, 모두에게 생명은 지옥이다.
사는 동안 편하게 자연을 누리면서 fade out 하는 게 인생의 가장 훌륭한 기법이다.
이것은 기록되어서는 안 된다. 자연의 세포는 복제는 해도, 기록은 하지 않는다. 변하지 않고 아직남아있는 것(화석)과는 다르다.
(복제에도 기록의 의미가 있지만, 같은 뜻은 아니다. 남긴다는 뜻이 없다. 전달한다는 뉴앙스에서는 구분하기 어려운 면도 있다.)
(독일은 인간의 40년대의 잔인성을 잊기 위해 역사를 배우고, 일본은 40년대의 향수를 잊지 못해 역사를 부정한다. 오래도록 잊지 않아주기를 바라며..)
(다시는 일본이 아시아의 선두에 서는 일은 없다. 아시아의 한 마리 이무기)
(미국의 저글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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