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새 교수라는 사람들
학교 재단에 얼마 기부하면 그냥 면허증이 나오는가?
아니면, 댓병에 찬 기름 한병 채워다 주면 교수 자격증 같은 게 나오는가?
어째, 배설 기관들이 다 입이나 손으로 올라왔을꼬?
왜 자기 방식대로 안 하는 행동이면, 죄다 잘못된 것이라고 말 할 수 있는 것인가?
무엇을 근거로 하여?
남의 행동은 다 잘못인 것처럼 말하도록 자동 프로그램된 사회가 되었나?
비난을 비난하다.
교수의 잘못
1. 패기, 젊음 운운:
화난다고 세상 어디론가 돌팔매질 하는 게 다 용기라 할 수 있는가?
몇 분 뒤에 반응하고 행동하는가 하는 것은 기질이고 개인마다 다르다.
첫번째 던지는 돌, 두번째 던지는 돌, 안 던져지는 돌
이런 것으로 패기를 구분하지 않는다.
우리는 국가에 충성하라고 배운다.
우리는 부모에 효도하라고 배운다.
우리는 직장 상사에 복종하라고도 배운다.
또 이런 말은 안 배워도 안다. 교수의 말을 따르라.
여기는 아시아이고 한국이다. 우리는 공자도 배우고 맹자도 배운다.
우리는 대대로 복종을 훈련한다. 요새는 '애국'도 그런 뜻으로 쓰인다.
그런데 갑자기 누군가가 저항하라고 꾸짖는다.
수십년간 미덕으로 간직한 사상을 던져버리라고 한다.
무슨 권한으로? 어찌 보상하실려고?
브라만 계급은 위에서 매의 눈으로 내려다보고 있다.
썩은 감자 하나라도 얻어먹을 것이냐?
바다를 헤엄치다 지쳐 죽을 것이냐?
사람이 사는 게 그리 위대하던가?
풀 한 포기처럼 조용히 사라지는 수 많은 인생도 있다.
이것은 세상을 대하는 개인의 문제이다. 어떤 사람이 패기 몇 %로 인생을 데코레이션 하던 어찌하던 다 개인의 역량이고, 개인의 존재 방식이다. 세상에 많이 지쳐있으면, 작은 눈뭉치 하나에도 일어서기 힘들 수 있다.
일당이 어떤 사람에게는 몇일 치 생명일 수도 있다. 그것은 공포이기도 하다. 나는 파괴적이지 않고 참아줘서 차라리 고마운 면도 있다. 그러나 나도 여력이 없으니 그 근로자를 돕지 못한다. 그럼 선생 그대라도 도와주겠지? 그렇게라도 지저분한 입을 씻었으면 한다.
(자학이라면 이미 그것도 파괴이긴 하다.)
일당 몇일이라고 말 했는데, 차라리 변호사 쓰지 그랬냐 하지 않은 게 다행이다. 나는 이 부분에서 가난한 사람에게 어떤 혐오감이 커서 이런 발언을 하지는 않는가 생각해본다.
이 추운날 패기와 박치기는 같을 수가 없는 것으로 보인다.
너무 편한 눈으로 세상을 방관하는 선생이 썰을 해도 될만큼 이 세상은 만만하거나 단순하지 않다.
버릇 없이, 아무에게나 훈계하지 않았으면 한다. 이게 '미개인 2'가 아니면 무엇인가?
2. 전직 대통령 운운:
입(손)이 실수하니까 돌아가신 분 뒤로 숨는 모습이다. 그 분도 결국 패기있다 말하기는 어렵다. 결국 이미지가 사망으로 연결되어지는데, 백화점 근무하던 그 젊은이도 그 이미지와 중첩되는 그림을 그려보았다는 말인가? 그게 자극적이어서 재벌을 공격할 가십거리로 더 쓸모라도 있었다는 말인가? 채찍을 맞을 땐, 남 이름 들먹거리지 마라.
나는 정치에 대해서 하나도 알고 싶지 않다.
나는 그 분이 손녀를 자전거에 태우고 동네 가게 아이스크림을 사주는 모습이 너무나도 아름다웠다. 어느나라에서 이리 할 수 있겠는가? 조용히 쉬는 분 이름 더럽히지 마라.
3. 귿 나잇 운운:
나는 이 부분이 가관이었다. 글을 읽다가 어떻게 교수라고 아무나 청와대에 데려다 쓸 수 있는 거지?하는 생각이 떠올랐을 때이다. 이 대목에서 나는 이 대학은 폐교시켜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 데서 졸업 면허나 따려고 학비내는 학생들이 가여웠다. 물론, 나는 이 학교 학생을 고용 대상으로 삼을 생각은 없다. 나는 이 편견을 오래 유지할 것이다.
4. 말에 말:
끝도 없이 말에 말을 주고받는다. 생각도 없이 생각을 튕긴다. 이 사람 이미지가 항공사 자녀들과 많이 다르지 않다. 그냥 조신하면 빨리 잊혀질 일이다. 권력자도 의원도 재벌도 아무도 인권 개선에는 힘 쓰지 않는다. 그것은 '국민의 분명한 용도'를 그들은 현명하게도 알아버린 때문이다.
한 아르바이트 근로자에게 그 큰 짐을 떠 넘기면서 미안한 마음도 없었나? 세상이 이 꼴이 되도록 왜 그대는 쟌 다르크라도 되시지 않고 그리도 조용히 지내셨는가?
5. 항공사 직원 운운:
항공사는 유통사와 달라서 외국계 항공사로 전근하기 전엔 직장 구하기가 더 어려울 것 같다. 뒷짐지고 앉아서 이사람 저사람 직장 배치해주는 선생의 모습만이 실루엣으로 번쩍인다. 어째 개인 홍보 같다. 그런데 너무 스크래치가 강해서 도움될 것은 없겠다.
6. 끝이 흐리다:
갑질을 말라는 말씀인지, 갑질은 그러니, 그러려니 하란 말씀인지, 석폭행 당한 것이, 그런 옷을 입어서라는 건지, 그러려면 호신술이라도 배워둬야 한다는 말씀인지, 이 사람 잘 하면, 음계 하나 가지고 이 우주를 모두 설명할 수도 있을 것 같다.
무릎 꿇고 얻어맞으면, 앞으로 쓰러지거나 뒤로 쓰러지거나 옆으로 쓰러지거나 한다. 나는 어째 비석처럼 버티며 '꿋꿋이 맞는 영상'아니라 유감인 듯한 인상을 받는 걸까?
이것도 비굴하다. 백화점만 하나만 물어뜯을 일이지..
이것 먹다 저것 먹다 식성도 번거롭다.
나도 이 짓을 하다보니 하잘 것도 없는 일로 열을 내리고 있었다.
덕분에 이제 나도 대학이라는 거 수십개는 만들 수 있겠다.
7. 오락가락
(다음에 교수가 남긴 글을 비슷하게 옮긴다.)
a. '단체로 무릎을 꿇을만큼 우리 사회가 그렇게 엉터리인가요?'
b. '정치가 그렇게 빨리 바뀌지 않잖아요'
(교수란 사람 국어문법이 엉망이다. 어디다 글 쓰면 안 되겠다. 학생들이 얼마나 바보로 볼까?)
a: 그러니 당당하게 맞서라라는 뜻이 들어있는데
b: 내(교수)가 나설 일은 아니라는 뉴앙스
즉, 너는 해라, 나는 지시하고 구경하노라
그냥 구경만 해도 된다. 무슨 지식인이라고..
그냥 따뜻한 말 한 마디라도 해줬으면 좋은 결과가 있었을 텐데..
(오류동에 한 쇼핑센터가 있는데, 그쪽 직원들 (개점 전)교육 때는 칼바람이 인다. 한국 내의 거의 모든 직장에 있는 이런 기괴한 서열 규칙을 모른단 말인가?
발안이라는 데가 있다. 유명한 물류센터가 있다. 직원은 본사(안산) 직원과 하청 업체 직원으로 나뉜다. 하청업체 직원은 본사 직원에게 말을 건넬 수도 없다. 대꾸를 안 하니까. 본사 직원은 사람이고, 하청 업체 직원은 사람 아닌 취급을 받고도 잘 산다. 이 일들이 아주 오래된 것이다.)
왜 아시아 DNA에는 '배려, 격려, 칭찬'이라는 게 빠져있는 것인가?
이 좋은 것들이 계륵보다 못한 취급을 받는고?
선생이라면 이런 것으로 머리가 아파야 한다.
책 읽고 연구하노라면 남 삿대질 할 시간이 없다.
얼마나 노닥거리고 심심했으면 그랬을까?하는 걱정도 된다.
이 사회는 아무리 좋게 말해줘도 지탄을 받게된다.
자유롭게 말하는 풍토가 아니어서 그렇다. 이 사회는 오래도록 이 질병을 안고가야 할 것 같다.
질병이라고 말했으니, 이런 대응도 있겠지?
'그럼 고치자'라거나, '웃기는 소리'
뒤엣 말을 하는 사람이 많으면 못 고치는 병이된다.
이 것을 각자가 소속한 자리 안에서 제대로 해야한다.
정치한답시고 들락거리는 것부터가 잘한 것이라 볼 수 없다.
나는 이 사회가 '귀도 없고, 머리도 없고, 삿대질만 분주히 해대는 심각한 상황'인 것으로 본다. 다들 걱정 없다는 듯 사는 게 믿기지 않는다.
현대백화점 아르바이트 근로자는 사회를 맑게하는데 도움이 되었다.
그러나 삿대질하는 교수는 학교가 오염되지 않았나 하는 경보를 남긴다.
다들 상처 깊은 아픈 가슴이다. 삿대질 하지 말자.
벤츠 타고 가다 엎어지면 주사 맞을 일이 걱정이지만,
스쿠터 타고 가다 넘어지면, 월세나 학비, 노모가 걱정이다.
가난은 지금 한참 그 속에 있는 사람들의 현실적인 문제이지,
높은 자리에서 내려다보며 감독질 할 일이 아니다.
내가 굳이 시간을 내어 이 짓까지 한 것은 뭔가 너무 이상해서이다.
교수가 부를 옹호하고 가난을 천대해서, 아르바이트 근로자라 말을 마구뱉어도 괜찮다는 사고 방식으로 사는 사람은 아닌지,
부자는 그럴 수도 있지 뭐 그런 걸 가지고? 라고 하려던 말은 아니었는지,
'패기'라는 말로 뭔가 숨은 뜻을 은폐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근로자는 생명을 걸고 배팅을 했다면,
교수는 농지꺼리로 배팅을 한 것으로 보인다.
내가 책임질 일이 아니면, 또 도와주지 않을 거라면 나서지 않는 것이 옳겠다.
(교수를 '불쌍하다'고 표현하면 월권이다.)
(사람들 = '애들'이라는 제목으로 하려다 만다.)
(이런 추잡한 글 안 쓰려고 노력하는 중, 나는 이글을 빨리 지웠으면 한다. '내가 나에게 하는 부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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