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uesday 3 February 2015

나쁜 기도

한 어머니가 대학 정문에서 기도를 한다.
아름다운 모습일까?
내겐 나쁜 사람으로 보인다.

무슨 내용의 기도일까?

우리 아이 합격하게 해 주십시오?
한 학과의 정원이 25명이면, 그 25명에 아이가 들게해달라는 말이다.
그러면 제26명은 내 아이가 아니어야 한다는 말이다.
같은 기도가 어딘가에 동시에 이르고 이쪽의 기도만 받아들여진다면, 이는 형제 자매의 눈물을 짓밟고 얻는 기쁨이다.

내가 말한다.
'기도하는 자여, 제26인을 네가 직접 지목해라.'

나는 이런 기도에 응답하지 않는다.

기도는 이런 것이다.

'사고 안 나게 해 주십시오.'
'모두 건강하게 해 주십시오.'

다른 아이가 떨어지고, 우리 아이가 붙게 해 주십시오?
사악하다.
뱀이 이브를 유혹했다고 하는 말이 있는데, 뱀은 우리 자신을 말한다.
그 뱀은 우리 안에 늘 있다.

왜 나쁜 역할은 꼭 남이 하는 것이고, 왜 나는 꼭 좋은 역할만 하게 하는가?
왜 내가 나쁘면 유혹을 받았다고 말하고, 누구를 도와줬다면 굳이 내가 선하다고 말 하는가?  '나는 본래 선하다'고 하는 것은 억지 분류이다.

이런 판단이 얼마나 바보 같은 생각인지 나열해 보자.

내 컴퓨터는 좋은 컴퓨터이다.
내 집은 세상에서 제일 좋은 집이다.
내 어머니는 세상에서 제일 착하다.
우리는 성품에 좋은 것은 다 가지고 있다.
우리는 항상 옳다.
우리는 정의롭다.
내 차는 좋은 차다.

불이나 칼과도 같은 특성을 가진 것을 나쁜 특성만 골라내에 뱀이라고 상징했다.
잘못된 표현이다.  그렇다면, 뱀은 이 세상에서 사라져야 하는 생명체이고, 누군가의 오류로 비롯되었다는 말이 되는 것이고, 그 오류의 당사자는 누구인가 하는 문제를 들썩이면, 대답하기 곤란해진다.  착한 것으로 말하자면, 뱀이 사람보다는 1,000배도 더 착한 생명체이다.

뱀이 무슨 이득이 있어 사람에게 과일을 준다는 말인가?  지가 먹지 않고..
그것을 굳이 뱀으로 표현한 억지가, 사람에게서 아이디어가 나왔으므로, 그 사람이 죄 없는  뱀보다 나쁘다는 결과를 보여주고 말았다.

배고픔도 질투도 섹스도 그 뱀이 있어 느낀다.
그것은 생명이 있는 곳에 언제 어디든 있다.
그래서 생명체 스스로 조절하고 억제해야 한다.

그것은 생명체 스스로의 지속성을 위해 여유 있게 체내에 채워넣도록 해준다.

24시간 먹고 있는 것을 자유라고 말하지 않는다.
24시간 자고 있는 것을 자유라고 말하지 않는다.
24시간의 섹스를 정상이라고 말하지 않는다.
중독이라고 말한다.
뒤에 독이 독극물의 독자라면, 중독이라는 말을 잘못 사용하고 있었다.
빠져있는데 거기서 빨리 벗어나야 한다는 뜻을 포함하는 말이다.

생명체는 호르몬의 지시를 받고 활동을 한다.
호르몬에는 방향과 시간과 양이 명시되어있다.
무엇을 어디에서 어떻게 얼마 동안 얼마나 많이..

콜라가 맛 있다고, 콜라 공장에가서 모든 콜라를 다 마시려 한다면?
뇌가 스스로 억제하도록 해야 한다.

기도라는 것 자체가 의미가 없다.
그것은 마술사의 주문인데, 자타의 시선에 노출 목적의 제스쳐이다.
변질된 미신의 한 형태이다.

습관상 꼭 해야 한다면, 공평한 기도가 되어야 한다.
바람직한 것이라면, 최선을 다 하고, 구태는 버리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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