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젠가 누군가 이 내용을 정리할 것이라 생각한다.
처음 쓰는 말이라 더 적확한 이름이 있을 것 같다. 이름은 상황과 최단 거리의 생각 거리가 유지되어야 한다.
인생은, 가장 쉽게 말하면 '시간 죽이기'이다.
역사에 자국(상처)를 남기고 싶어 하는 사람이 대부분이다.
잘못 각인된 행동 패키지이다.
역사에 등장하는 인물은 거의 100%가 역사에 상처를 남긴 결과물이다. 스크래치라는 표현이 맞겠다. historical scratch 정도로 이름을 정하면 되겠다. 역사마다 영웅이 등장하는데, 모두 미화 작업을 거쳐서 나온 기록이라서 확인할 방법이 없다. 자식이 부모에 대해서 별로 나쁘 게 기억하지 않 듯.. 모든 생각, 모든 행동, 모든 존재, 모든 물질에서 이데아를 구한다는 것은 현명하지 못하다. 어떤 인간의 생각도, 행위도 80년을 위대하게 꽉 채울 수는 없다. 한 순간의 어떤 결과물이 다른 나쁜 결과물과 비교 우위에 있을 때만, 후세가 적당히 버무려 이용해먹을 수 있을 때 역사로 기록된다. 어떤 나라 역사나 어떤 경전의 첫 부분의 기록이 합리적이다거나 현명하다거나 하는 내용과 거리가 있는 이유를 생각해보면 짐작이 갈 것이다.
'각인'은 오리가 알에서 태어날 때 제일 가까이 있는 움직이는 물체를 모성으로 인식하는 것으로 설명하면 비슷한 설명이 되겠다. (지금, 여기서 '각인'에 대한 정의를 내리지 못 해서 예를 든다. 이 것이 학위가 없는 사람의 한계점이다.) 사람에게서 유지되는 각인은 대부분 서로 상관관계가 없는 억지 결합의 형태이다. 그 것이 행동으로 거의 한 존재에 영속적으로 반복 행위를 하게 하는 것은, 행위라고 하는 것의 특성이 균형 (unbalance)이 맞지 않고 파괴적인 결과가 예상된다고 해도 이미 시작되어야 비로소 그 출발점에 서는 것에 있다. 사람이 외출을 할 때 모든 것을 다 (100.00%) 갖추려 한다면 문 앞에 나설 수 없다는 것을 생각하면 이해가 되겠다. 다시 갔다가 되돌아오더라도 사람은 출발한다. 지적 능력 중에서 '기억'이 인간에게 완벽하지 않다는 것, 그리고 급하다던 지 하는 시간적 조건이 더해지면 그렇게 되기 쉽다. 그 출발점에 서서 내딛지 못하면 행위는 이루어지지 않거나 유보된다.
처음의 행동이 반복적으로 계속되는 것을 나는 행동 패키지라고 말한다. 첫 날 머뭇거리던 유치원 입학생이 언젠가 매일 당연히 생각하고 유치원 버스를 기다리는 때가 있을 것이다. 이 때의 행동 패키지는 행위자의 마음 속에 '당연'이란 단어를 떠올리 게 한다. 당연이란 표현에는 '의심할 것도 없이'라는 표현도 들어있다.
이 것은 무엇인가를 '빠르게 시작'하게 한다는 점에서는 아주 유리하지만, 편성이 잘 못 되어있는 경우에는 고칠 기회를 잃고 계속하게 되는 위험이 있다. 유치원에 들어가면 이미 사회의 코스에 들어가는 것이고 두 번 생각할 것도 없이 명문대를 졸업하고 더 높은 클래스에 들어가려고 한다. 그 것도 당연히.. 이 과정이 순식간에 끝나버리므로 뭔가 잘 못 된 것을 안 때에도 수정하지는 못한다. 시간적으로짧기는 하지만, 학습해야할 성장기는 이미 지나가버렸으므로 비슷한 과정을 다시 할 수도 없게된다.
사람은 자신의 행동을 검증하지 못한다. 생각들과 몸 짓들의 불균형 상태의 결합을 스스로 수정할 방법은 없다. 스스로 고치기 위해서는 대단히 많은 데이터와 그 데이터의 편중 없는 분석 능력이 있어야 하는데 사회적 인간에게 이 것을 학습할 시간과 기회가 없다. 학교에 가서 평균 행동을 그대로 따라하다 인생이 다 흘러가버리고 말기 때문에 자신의 고유한 생각이 있고말고할 여지가 없다는 말이다. 다른 말로 하자면 '행동 copy'이다. 부화기에서 같은 시각에 태어난 수 많은 병아리가 이 상태에서 스스로를 우주의 아름다운 별과 견주기는 상황이 어렵고 그렇게 느긋하지도 못 할 것이다. 그 느긋하지 못한 상태가 인간의 상태이다.
전쟁, 내전, 소요 등에 휩쓸리면 점점 더 어려운 환경에 들어가게 되고 스스로의 행동을 고쳐나간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까워진다.
생각은 대나무가 자라 듯 끝도 없이 성장해야 한다. 평생 데이터를 모으고 분석하고 가공하고 적용해야 한다. 이 것은 누가 가르쳐주는 것이 아니다. 할 테면 스스로 알아서 해야 한다. 할 것인 지 말 것인 지를 생각하면서 산다는 것도 행운이다. 부모도 친구도 서적도 가르쳐 주지 못 하는 것이다. 팔을 뻗어서 어느 쪽 지식이든 지 흡수할 자세가 되어있어야, 필요한 정보가 의미 없이 멀어지지 않는다. '중용'이란 말과 비슷해보이지만, 같은 뜻이 아니다. 양 팔을 다 벌리고 있으라는 말이다. 한 쪽에 집착하여 작은 정보를 분석하고 있는 사이에 등 뒤에서 더 많은 중요한 정보가 다가왔다 사라지는 게 명시적이라는 말이다.
중용은 사회적 관계 (처세술)에서 쓰이는 말이다. 중용과 다른 이 태도는 이 우주에 단독으로 존재하는 자신에게 꼭 필요하다. 외롭다는 것을 느낄 때는 이미 '시간 죽이기'에 합류해버린 뒤이고 급류에 쓸려 멈추지 못하게 된다. 폭포에서 떨어지면서 어떤 방향 감각을 찾았다고 해도 저 행동 패키지를 놓지 않으면 그 행동 패키지에 스스로를 묻고 말게된다.
우주를 바라보고 있으면, 우주와 1:1로 대면하고 있으면, 인생 80을 어떻게 스스로가 채워나가야 하는 지를 알게된다. 역사 책에 내 이름이 올라간다고 해도 우주에서는 '아무리 작은' 의미도 없다. 5성 호텔에 들어가 송로버섯을 먹고 나온다고, 강릉까지 벤츠를 몰고가서 싱싱한 고래 고기 한 접시 먹고온다고 포만감과 함께 내 몸이 1g 불어나는 것 말고, 지적 성장은 없다. 오히려 그 때문에 놓친 시간을 고려하면 이미 그 만큼 지적 퇴보 지점에서 다시 출발해야 한다.
어떻게 살아내도 이 인생은 행동 패키지에 스스로를 가두고 산 결과를 보게 된다. 오리는 절대로, 죽어도 오리알 밖으로 나갈 기회가 없다. 오리알 안에서 대물려가며 '시간 죽이기'를 하는 일 외엔..
제대로 된 선생은 자기 자신이다.
처음 쓰는 말이라 더 적확한 이름이 있을 것 같다. 이름은 상황과 최단 거리의 생각 거리가 유지되어야 한다.
인생은, 가장 쉽게 말하면 '시간 죽이기'이다.
역사에 자국(상처)를 남기고 싶어 하는 사람이 대부분이다.
잘못 각인된 행동 패키지이다.
역사에 등장하는 인물은 거의 100%가 역사에 상처를 남긴 결과물이다. 스크래치라는 표현이 맞겠다. historical scratch 정도로 이름을 정하면 되겠다. 역사마다 영웅이 등장하는데, 모두 미화 작업을 거쳐서 나온 기록이라서 확인할 방법이 없다. 자식이 부모에 대해서 별로 나쁘 게 기억하지 않 듯.. 모든 생각, 모든 행동, 모든 존재, 모든 물질에서 이데아를 구한다는 것은 현명하지 못하다. 어떤 인간의 생각도, 행위도 80년을 위대하게 꽉 채울 수는 없다. 한 순간의 어떤 결과물이 다른 나쁜 결과물과 비교 우위에 있을 때만, 후세가 적당히 버무려 이용해먹을 수 있을 때 역사로 기록된다. 어떤 나라 역사나 어떤 경전의 첫 부분의 기록이 합리적이다거나 현명하다거나 하는 내용과 거리가 있는 이유를 생각해보면 짐작이 갈 것이다.
'각인'은 오리가 알에서 태어날 때 제일 가까이 있는 움직이는 물체를 모성으로 인식하는 것으로 설명하면 비슷한 설명이 되겠다. (지금, 여기서 '각인'에 대한 정의를 내리지 못 해서 예를 든다. 이 것이 학위가 없는 사람의 한계점이다.) 사람에게서 유지되는 각인은 대부분 서로 상관관계가 없는 억지 결합의 형태이다. 그 것이 행동으로 거의 한 존재에 영속적으로 반복 행위를 하게 하는 것은, 행위라고 하는 것의 특성이 균형 (unbalance)이 맞지 않고 파괴적인 결과가 예상된다고 해도 이미 시작되어야 비로소 그 출발점에 서는 것에 있다. 사람이 외출을 할 때 모든 것을 다 (100.00%) 갖추려 한다면 문 앞에 나설 수 없다는 것을 생각하면 이해가 되겠다. 다시 갔다가 되돌아오더라도 사람은 출발한다. 지적 능력 중에서 '기억'이 인간에게 완벽하지 않다는 것, 그리고 급하다던 지 하는 시간적 조건이 더해지면 그렇게 되기 쉽다. 그 출발점에 서서 내딛지 못하면 행위는 이루어지지 않거나 유보된다.
처음의 행동이 반복적으로 계속되는 것을 나는 행동 패키지라고 말한다. 첫 날 머뭇거리던 유치원 입학생이 언젠가 매일 당연히 생각하고 유치원 버스를 기다리는 때가 있을 것이다. 이 때의 행동 패키지는 행위자의 마음 속에 '당연'이란 단어를 떠올리 게 한다. 당연이란 표현에는 '의심할 것도 없이'라는 표현도 들어있다.
이 것은 무엇인가를 '빠르게 시작'하게 한다는 점에서는 아주 유리하지만, 편성이 잘 못 되어있는 경우에는 고칠 기회를 잃고 계속하게 되는 위험이 있다. 유치원에 들어가면 이미 사회의 코스에 들어가는 것이고 두 번 생각할 것도 없이 명문대를 졸업하고 더 높은 클래스에 들어가려고 한다. 그 것도 당연히.. 이 과정이 순식간에 끝나버리므로 뭔가 잘 못 된 것을 안 때에도 수정하지는 못한다. 시간적으로짧기는 하지만, 학습해야할 성장기는 이미 지나가버렸으므로 비슷한 과정을 다시 할 수도 없게된다.
사람은 자신의 행동을 검증하지 못한다. 생각들과 몸 짓들의 불균형 상태의 결합을 스스로 수정할 방법은 없다. 스스로 고치기 위해서는 대단히 많은 데이터와 그 데이터의 편중 없는 분석 능력이 있어야 하는데 사회적 인간에게 이 것을 학습할 시간과 기회가 없다. 학교에 가서 평균 행동을 그대로 따라하다 인생이 다 흘러가버리고 말기 때문에 자신의 고유한 생각이 있고말고할 여지가 없다는 말이다. 다른 말로 하자면 '행동 copy'이다. 부화기에서 같은 시각에 태어난 수 많은 병아리가 이 상태에서 스스로를 우주의 아름다운 별과 견주기는 상황이 어렵고 그렇게 느긋하지도 못 할 것이다. 그 느긋하지 못한 상태가 인간의 상태이다.
전쟁, 내전, 소요 등에 휩쓸리면 점점 더 어려운 환경에 들어가게 되고 스스로의 행동을 고쳐나간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까워진다.
생각은 대나무가 자라 듯 끝도 없이 성장해야 한다. 평생 데이터를 모으고 분석하고 가공하고 적용해야 한다. 이 것은 누가 가르쳐주는 것이 아니다. 할 테면 스스로 알아서 해야 한다. 할 것인 지 말 것인 지를 생각하면서 산다는 것도 행운이다. 부모도 친구도 서적도 가르쳐 주지 못 하는 것이다. 팔을 뻗어서 어느 쪽 지식이든 지 흡수할 자세가 되어있어야, 필요한 정보가 의미 없이 멀어지지 않는다. '중용'이란 말과 비슷해보이지만, 같은 뜻이 아니다. 양 팔을 다 벌리고 있으라는 말이다. 한 쪽에 집착하여 작은 정보를 분석하고 있는 사이에 등 뒤에서 더 많은 중요한 정보가 다가왔다 사라지는 게 명시적이라는 말이다.
중용은 사회적 관계 (처세술)에서 쓰이는 말이다. 중용과 다른 이 태도는 이 우주에 단독으로 존재하는 자신에게 꼭 필요하다. 외롭다는 것을 느낄 때는 이미 '시간 죽이기'에 합류해버린 뒤이고 급류에 쓸려 멈추지 못하게 된다. 폭포에서 떨어지면서 어떤 방향 감각을 찾았다고 해도 저 행동 패키지를 놓지 않으면 그 행동 패키지에 스스로를 묻고 말게된다.
우주를 바라보고 있으면, 우주와 1:1로 대면하고 있으면, 인생 80을 어떻게 스스로가 채워나가야 하는 지를 알게된다. 역사 책에 내 이름이 올라간다고 해도 우주에서는 '아무리 작은' 의미도 없다. 5성 호텔에 들어가 송로버섯을 먹고 나온다고, 강릉까지 벤츠를 몰고가서 싱싱한 고래 고기 한 접시 먹고온다고 포만감과 함께 내 몸이 1g 불어나는 것 말고, 지적 성장은 없다. 오히려 그 때문에 놓친 시간을 고려하면 이미 그 만큼 지적 퇴보 지점에서 다시 출발해야 한다.
어떻게 살아내도 이 인생은 행동 패키지에 스스로를 가두고 산 결과를 보게 된다. 오리는 절대로, 죽어도 오리알 밖으로 나갈 기회가 없다. 오리알 안에서 대물려가며 '시간 죽이기'를 하는 일 외엔..
제대로 된 선생은 자기 자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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