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aturday 28 January 2017

감의 전략 (?)

사과를 먹으면 장이 활성화 된다.
요즘 귤 뿌리에 뭘 뿌리는 지, 귤은 설사를 유발하고 귤을 하루 하나라도 계속 먹으면 설사는 그치지 않는다.
사과 과육의 기능은 장 내에 남아 있을 지도 모를 씨앗을 가까운 곳에 퍼뜨려주게 하려는 의도가 있는 것으로 이해된다.  대개 과육이 이런 기능을 가지고 있다.
그럼 감의 역전된 기능은 어떻게 이해가 될까?
감을 많이 먹으면 용변 보기가 어려워 진다.
씨앗이 멀리 가기를 바라는 것과 한 이동체에 의해서 소비되지 않기를 바라는 것으로 이해될 수 있다.  동일인에 의해서 소비되는 과일은 그 씨가 모이는 곳은 씨앗의 성장 배경에서 지역적 유사성을 갖겠지만 모체와 먼 곳에서 모체와 다른 환경에서 자랄 가능성이 커진다.  그렇다면 D.N.A.의 임의 선택으로 먼 지역을 택했을까?

사람에게는 꼬리가 없다.  사람이 걷기 시작하면서부터 두 발로만의 걸음이 느려져 도주에 불리하게 되면서, 원시 인류가 걷기 시작하는 당시에 이런 말이 유행했을 것 같다.  '꼬리가 길면 잡힌다.'  당연히 꼬리는 사람에게 절대적으로 불필요하다.  서는 것과 앉는 것은 같은 행동 패턴이다.  서서 작업할 수 있으면 앉아서도 작업을 할 수 있는데 또 이 꼬리가 불편하다. 빨리 달리면서 중심추 역할을 할 때의 꼬리의 기능은 사라졌다.  더구나 옷까지 입을 생각을 하게되면서부터 이 꼬리는 더욱 불필요해졌다.

사람의 맹장의 기능이 밝혀졌다고 한다.  생명체는 그 상태가 환경에 가장 적합한 구성을 갖는다고 보여진다.  꼬리를 예로 들면,  장기의 필요성과 불필요성이 공존하는 것으로 이해된다.  사람에게서 꼬리가 떨어져가는데 얼마의 시간이 걸렸을까?  모든 인간의 모든 D.N.A. 협의체가 찬성하고 확인하고 검증하고 하는 세월이 최소 100,000년은 걸렸을 것이라 짐작한다.  (나는 이 분야의 학자가 아니다.  이 수에는 의미가 없다.)  꼬리로 해서 사망률이 높아지면, 게다가 원인이 꼬리라는 게 확증되면 꼬리의 변천사는 더 짧아졌을 것이고 관련성이 없다면 1,000,000년은 걸렸을 것이다.  인간의 사회적 성격은 공동체를 형성하면서도 배타적 성격도 강하다.  이와 같이 서로 반대되는 성격으로 해서 집단으로 이주하려면 먼 길을 떠나지 않을 수 없게 된다.  나무 위의 군집 활동과 군집 이동이 가능해야 한다.

생명체의 장기 구성은 외견 상 특정한 패턴이 있다.  두뇌부가 있고 데이터 수집 기관이 집중되어 있다. 네 개의 다리가 있는데 인간은 두 개를 다른 용도로 전용하고 있다.  만약 식물에도 이런 패턴이 있다면 이 패턴은 생명체가 어떤 방법으로 공통적으로 보유하게 되었는 지 연구 대상이다.  '합리'가 있다면 그 합리성은 누가 어디서 찾아냈는가도 의문이다.  나머지는 소화 기관으로 되어 있다.





......
이런 의문이 어린 학생 머리를 스쳐지나갈 때, 여행 경비를 지원하고 루트를 잡아주는 나라는 복지가 정상 가동하고 있는 나라이다.  칠판에 끄적이는 것은 교육이라고 할 수 없다.  모든 교사는 학위가 있어야 하며, 학생의 질문에만 대답할 수 있으면 된다.  뜻도 모르면서 '참 교육'이라는 단어를 사용하는데,  그 엉터리 해석에는 '매'도 포함 되어 있을 것고 '국수'도 포함되어 있을 것이고 '최고'라는 변태적인 인생관도 담겨져 있을 것이다.

앞으로의 제목에는 모두 물음표가 붙어있다.  (그러나 물음표는 생략)  공식 문서가 아니기 때문에, 학자로서의 자격 요건을 갗추지 못 했기 때문에 보는 사람이 잘 못 이해하지 않기를 바란다.  모든 사람의 말은 다른 모든 사람에게 오로지 데이터로서만 의미가 있다.  스스로 이해하고 판단하는 과정이 인생이다.

아래의 글을 미리 써버리니 위의 글이 생각나지 않는다.

나는 인터넷 사용을 금지하려고 한다.  인터넷에서 많은 시간 삿대질이나 하면서 노닥거리는 생활이 기쁜 일일 수 없다.  인생의 시간이 통째로 사라지는 것도 있지만,  먼저 스스로 뇌가 망가지는 것을 느낀다.  나의 인터넷 계정도 소멸될 것이다.  다음 단계로 은행 계좌도 소멸시키려고 한다.  버스를 타고 다리를 건너고 보니 자동차 의무 보험도 필요 없이 세상을 다닐 수 있다는 것을 다시 알 게 되었다.  나는 걸어서 세계 여행하기로 방향을 잡았다.  한국을 떠나면 같은 땅을 밟을 일은 없을 것이고,  동시에 언어도 버릴 생각이다.  영어는 너무 흔해서 제 2 언어로 하고 비교적 언어 자동 번역이 어려운 독일어를 제 1 언어로 선택하였다.  외국에 학습에 반드시 Youtube가 필요하고 구글 계정이 필요하다는 것은 안다.

정의의 용도는 무엇일까?  가난한 사람 가슴 깊이 언제나 존재하고 부유한 권력에게서는 찾아볼 수 없다면?  짐작이 갈 것이다.  정의는 신앙 같은 것이다.  고지능의 인간을 부리는 기술이다.  목화밭에 흑인 노예를 잡아두는 방법으로 처음에는 쇠고랑을 사용했다.  그리고 높은 망루를 세우고 총을 들고 탈출 노예를 감시하게 하였다.  그 다음으로 사용한 방법이 달이 인력 법칙이다.  쇠고랑이 없어도 도망가지 못하게 하는 방법이 있었던 것이다.  죄의식이다.  이 것을 논리적으로 둔갑시키는데 꼭 필요한 것이 '원죄'이다.  종교는 '아들이 아버지를 낳는 괴상한 신앙이고 다수의 인간을 꿰어 행동을 제약하는 오래된 인간 착취 기술이다.  이 것을 각자 제 입맛에 맞게 번형하여 사용하고 있다.  아시아에서는 사후 세계의 보장용으로 사용되고 있다.  그래서 인생이 없고 개미 같은 노동과 복종의 80년만 인생으로 알려져 있다.  독일에서 공부하고 왔다는 사촌의 입에서 이런 말이 튀어나왔다.  '내생이 없다니 말도 안 돼'  이 사람은 지금 생이 없고 나는 내 앞의 유령을 보고 있었다.  인생은 어떻게 살아내도 누가 뭐라는 사람이 없지만, 인생은 제대로 살아봐도 괜찮은 경험이다.

저 위 말 이어가야 하는데..  나는 내 글을 다시 보기 싫다.  너무 조악하다...

오자 타이핑이 점점 증가하는 것을 느낀다.

걸으면서 생각해야 한다.  우선 인생이 무엇인 지에 대하여..  이 것이 인간에게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이다.  이 생각에 도달하는데도 80년은 충분히 걸린다.  뇌 속에 잡음이 많다면..





No comments:

Post a Comment

Note: only a member of this blog may post a com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