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riday, 8 May 2015

시골 집

어느 지역에 있는 주택을 검토해보라고 해서, 정보를 보니 처음에는 별 내용이 없었다.
여러번 찾아보니, 단서가 붙어있다.

임차인이 따로 존재하는데, 주택에 대한 권리(전세금 등)가 250만원으로 돼 있다.
임차인 존재 확인도 불확실한 것처럼 처음에는 알고 있었다.
사진을 보니 비료 포대 같은 게 출입구쪽에 쌓여있었다.
정상적이라면 출입구쪽에 가까이 쌓아둘 물건이 아니다.
옆 집의 누군가가 빈 집을 그런 용도로 사용하는 것은 흔한 일이다.

그 정보 중에 이런 말이 있었다.

선 순위 임차인이 경매 배당에 참여하지 않았으니, 본 주택의 구입자가 임차인에게 직접 별도로 지불하여야 한다.

최초 입주일이 1900년대로 돼 있다.  20년도 넘었다.

집들은 다 작았다.  높이도 낮고, 내부 공간도 좁다.  어느 집이나 다 이렇다.
건축법 제한이 있어 작은 규모 이상으로 집을 지을 때는 건축 허가가 있어야 한다.
그 제한 숫자가 너무 작아 전국의 시골 집은 높이도 조심스럽고, 크기도 용기가 없다.

농촌의 평범한 주택은 도서실, 음악실, 다실, 사랑방, 화실, 서재.. 이런 것들을 포기하게 돼 있었던 것이다. 60년대 후반부터는 호화주택이라 하여 마당에 풀장도 못 만들게 만들어놨다.  그래서 따로 물 저장 시설을 마련할 수 없게 됐다. 다 여유로운 삶을 제한한 술수들이다.
법이 공공의 이익을 규정하기보다는, 지시적 성격이 강해서 이렇다.
변태법은 툭하면 특별법으로 풀어주고, 또 일사부재리로 방어 하다가 사면으로 마무리 한다.

권리금 250만원은 어떤 의미가 있을까?

충주 서운리 권종구의 예를 들어보자.

주택을 구입했는데, 다운 계약서를 작성해달라고 부탁한다.  다른 땅도 매물로 내어놓았는데, 전체 가격(총 판매금액)이 낮아야 된다고 사정해서 1/3도 안 되는 낮은 계약서가 작성되었다.
훗날 이 주택에 재판이 있어, 이 계약서를 근거로 그 주택을 빼앗기는데, 돌려받은 금액은 계약서 상에 작성된 금액이었다.

엄청나게 많은 이삿짐이 있었는데, 몇달 째 집을 비워주지 않아, 내 차에 내 연료비에 내 노동력만으로 이삿짐을 옮겨주어야 했다.  그 집 주인은 그런 때면 전화도 못 쓰게 문 잠그고 시내버스 타고 나가버린다.  짐 옮길 곳이 좁다하여 증축을 하는데 그곳에서 오래오래 노동력을 무상 제공해야 하였다.

이삿짐은 5mX20m 크기의 비닐 하우스 두 동에 들어갈 많은 양이었다.

창고 벽의 벽지 속에 좀 벌레가 수만 마리나 되었다.  이삿짐 옮기면서 피부병으로 오래 고생했다.

전기요금 밀린 50만원 중에 5만원은 사용자가 직접 내고 나머지 45만원으로 경고장이 날아왔다.  나중을 생각해서 내가 현금으로 내줬지만 받을 수 없었다.

그런데, 이 주택의 전기를 자기 집에 연결해서 쓰고 있다.  전기를 끊을 방법이 없다.  자기 냉장고 음식이 상하면 책임지라고 협박까지 한다.

훗날, 이 전기는 모두 내가 사용한 것이라고 동네에 소문을 내고 다녔다.  마을 회관 같은데서 조용히 이런 소문을 퍼뜨릴 수 있다.

수도는 당시 두 개를 팠는데 70만원 줬다고 했다.  옮긴 집 근처에 있는 수도는 연결 비용(15m 거리)이 들어간다고, 판매한 집 수도를 사용하고 있는데, 나중에는 그 수도(지하수)가 자기 것이라고 우긴다.
이 것으로 동네에 소문을 낸다.  전기 끊고, 수도 끊어서 사람 못 살게 한다고..
당시에 수도(지하수)를 파도 보통 70만원씩 받던 것을 지금은 700만원씩 부른다.  물이 안 나오는 지역이라고 하면서 오지도 않는다.  전화도 여러둔데가 있기는 한데 보통 한 가게에서 여러 전화번호를 만든 경우가 많다.

아래 700평 수자원공사 땅을 사용하고 있었다.  몇년 농사를 지었는데, 어느 날 가보니 교회 대학생들이 들어와 옥수수를 뽑고 있었다.  대학생 근로 봉사를 그쪽으로 끌어온 것이다.
그 땅의 권리도 권종구에게 사용료를 주고 사용권을 넘겨받았는데, 자기 땅이라고 온동네 아뢰고 다닌다.  동네 친구 몇 사람에게 그 땅을 쓰라고 아량을 베풀어 이쪽과 그 동네 사람 사이에 또 싸움이 붙도록 만든다.

훗날 이 주택 소유자, 땅 소유자, 전 세입자 사이에 끼어 모든 사람들로부터 한번도 좋은 소리를 못 들었다.  주택 소유자는 재판에서 집을 빼앗기는 상황이 되자, 다운 계약서의 다운된 금액을 근거로 '사기꾼'이라는 소리까지 들어야 했다.  주택 보수비만도 내 돈으로 수백만원이 들어갔는데, 이 것은 입증할 필요성을 미리 알지 못했다.  재판에서 진 이유 중에 큰 역할을 했던 것은, 얼마든지 동원할 수 있는 가짜 증인들이다.  판사가 이런 가짜 증인들로 해서 짜증을 부리기는 했지만, 패소했다.

집 뒤로 10m 내의 거리에 물 저장 시설(작은 연못)이 있어 그 물이 집 쪽으로 흘러 집 벽이 벌어지고 있어서 그 조치를 하려는데 모든 사람들이 나서서 방해를 한다.

집이 비어있는 시간이 많아 외부 사람들이 자주 드나드는데, 쓰레기 보따리 같은 것을 버리고 가는 일이 많은데, 다 내가 버린 것으로 동네 사람들은 알고 있다.

수십년된 벽돌 하나 없어져도 내 이름이 오르락거린다.  가서 따지면 다른 사람이라고는 하지만, 이제는 말 하는 사람이나, 듣는 사람이나 자동적으로 그리 생각한다는 것이 문제이다.
시골에서는 멍청이 벽돌이라고 하는데, 오래 전 개인들이 집에서 흙이나 시멘트를 섞어 만든 벽돌인데 오래 돼서 쉽게 부스러진다.  이런 걸 가져갔다고 동네 사람들이 오래도록 알고 있었다.

이런 소문 활동이 종교 단체와 결합되어 심심하던 시골 생활에 매일 뉴스 거리를 제공한다.

저 250만원짜리 권리는 얼마로 커질 지 상상할 수도 없다.  이삿짐도 옮겨주어야 한다?  한 동네로 간다면 모를까 100km나 되는 곳으로 간다면?
이사를 안 간다면?  병이 심하다면?  돈이 한 푼도 없다면?
늘 하는 말이다.
결국 권리금은 몇 배의 금액으로 불어난다.

땅만 매매의 대상 물건이라, 아직 건축물이 남아있다.  거기에는 비닐하우스 등 별 쓸모 없는 것도 많은데, 다 설치 시 사용된 금액으로 계산들을 한다.  즉, 다시 만들 비용을 달라는 것이다.
또 세입자 교체를 집 주인이 몰래한다면?  시골 집을 구입하러 다니면 집 입구 쪽에 비료, 컨테이너 같은 것을 쌓아두고 있다.  오래 빈 집이었으면, 집 안에까지 쌓아두곤 하는데, 이 일을 처리하는게 그리 만만하지 않다.  붠가 저항을 하는 것처럼 보이면 바로 군기 잡힌다.  물렁하게 보여도 마찬가지이다.  솔로몬의 지혜?  여기서는 권력이 그 역할을 한다.

땅 신소유자는 주택 소유자, 주택 임차인, 동네 사람들과 외로운 싸움을 해나가야 한다.
집에 노인이라도 계시면 밖에 나가서 친목활동을 할 수 없는 상황에 처하게된다.  동네 사람과 어울리지 못하는 것은 말할 것도 없고, 노인회관 같은데도 가기 어렵다는 이야기이다.

바로 첫 마디에 90 노인에게서도 비꼬는 말이 튀어나온다.
이제는 감시자가 많아져서 집 수리로 뭔가를 하려하면 바로 신고가 들어간다.
이쪽에서는 큰 불편이 있어도 신고 못한다.  동네 사람들 나쁜 짓은 상상할 수 그 종류도 많다.

매일 쓰레기를 바람의 방향에 맞춰 태우는 일, 개를 이쪽 방향으로 짖게 만드는 일, 개를 수백마리씩 키우는 일, 새벽 두 세시에 피아노를 치고 노래를 부르는 일, 그리고 5미터 내의 거리에 소 분비물을 4m 높이로 쌓는 일..  이 때는 한 여름에도 창문을 열지 못한다.  유폐이다.

빨래를 널어두면 가장 친하다는 사람이 갑자기 옆에서 농약을 뿌려댄다.  빨래, 무우 말랭이, 호박 말랭이도 마음 놓고 널어두고 외출할 수 없다.  늦잠도 못 잔다.

탈곡을 도와줘도 왜 그러는지 경운기 매연을 우리쪽으로 꺾어놓는다.  사람 없는 반대쪽으로 왜 안 하는 지.. 폐 질환으로 오래 고생했다.

집 짓는 데 도와주러 간다.  수박을 내오더니, 스티로폼을 바닥에 깐다고 던지니 온 방에 먼지가 날려 수박 위로 쌓인다.  그걸 먹으라고 한다.

일 거들어주니 고구마를 먹으라고 해서 가보니 흙 묻은 그대로 물에 졌다.  그릇은 몇년 사용한 쪼그라진 개밥그릇 같은 모양 그대로이다.

버섯 막사를 짓는데 도와줬다.  구식 화장실을 지나가야 하는데, 버섯 나무가 물이 먹어 너무 무겁다.  땅 속에 쌓인 인분을 밟고 가서 옮겨줬다.  그것도 혼자..  버섯 수확철이 되니 잊고 있던 버섯을 가져왔다.  버섯 갓 아래 모래가 얼마나 많은 지 모른다.  모래 박힌 버섯만 골라 우리에게 가져왔다.  얼마 후 다른 집에 가서 보니 다 멀쩡한 버섯들이었다.

뭘 주겠다고 말 할 때는 우리가 일을 도와줬을 때 뿐이다.
산에 송이 버섯 나는 데를 알려준다고 따라 오라고 하더니 중간에 사라지고 대답을 안 한다.  몇 번을 그리 속았다.

토지 사용료는 갑자기 두 배 또는 수십배씩 오른다.  서울의 주차요금 계산법을 그대로 쓴다.  빈 땅 노는 땅이라도 차 한 대 주차하면 뒷 소문이 무섭게 돈다.  다른 사람이라면 전혀 문제가 안 되는 일들이다.  서울에서 오면 이런 피해를 피할 수 없다.  서울 사람들 작은 일에도 여기저기 신고한다고 미리 공격하는 습성이 있다.

시골에 가서 함부로 도와주는 친밀감 쌓으려는 태도는 해서는 안 된다.  크게 손해 본다.
나는 할 수 없이 그 집을 버려두고 나왔다.  집 천정에 값 나가는 게 있는데 가져오지도 못 했다.

주의 할 일은, 토지 사용료 현금으로 주면 나중에 한 번도 받은 적이 없다고 말한다.
시골은 인심도 인심이지만, 공해, 소음, 악취, 생활 불편(방벽 주차해서 차를 못 다니게 하는..), 지하수 오염, 혐오 시설물 방치.. 같은 것은 참아낼 수 없다.

단 한 군데 담을 허물지 않은 곳이 없었다.  담을 허물면 경계선이 그쪽은 커지고 이쪽은 작아진다는 생각이다.  대답?  돌 담 제일 아랫돌을 몇개 빼버리면 돌이 그쪽으로 무너진다.  그러면 피해 보상 운운 하면서 그 돌을 경운기에 싣고 가버린다.  그러더니 맹렬한 쓰레기 소작장을 근처에 만든다.  평생 자기가 돌을 주워냈으니 땅을 쓸 수 있다.  그리고 여기까지 자기 땅이다 하고 말뚝도 손수 박아두고 그런다.  자기 아들이 고등학교 토목과 출신이라고 그리 해도 괜찮다고 말한다.  이런 것을 동네 사람들은 누구 하나 뭐라는 사람이 없다.
이런 경우도 있었다.  싸게 나온 집이 있어 가보니, 동네 사람이 트럭으로 밀어 담을 허물어놓았다.  자기 집이라고 들어가지 말라고 하던 옆 집 아주머니 생각이 난다.

늘 하는 생각이지만, 싸워도 서울은 그냥 잊지만, 농촌은 그게 수십년 입방에 오른다.  제도도 서울이 잘 돼 있다.  한국에서 제일 좋은 법률, 행정, 문화 서비스를 받는 곳이다.  시골은 차를 막아놓고 운전가가 사라져도 어쩔 방법이 없다.  그날 영업을 포기하거나 몇 일 뒤에나 일보러 가거나 해야한다.  견인 제도 자체가 없다고 말 하는 충주 시청이 있는가 하면, 롯데 마트 주변 도로에는 견인차가 매 시간 순찰을 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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