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uesday 19 May 2015

후회

대구의 한 쇼핑몰에서 압력 밥솥 뚜껑 패킹 하나를 주문했더니,  엉터리를 보냈다.
제목을 모델 번호로 해서 질문을 했는데 질문 제목 한 줄 바로 아래 모델 번호가 뭐냐는 답변 한 줄이 올라왔다.
전화를 해서 밥통 뚜껑이 100% 휘었다고 말한다.

몇 마디 더 하면 나보다 안과 치료를 받으라고 할 것 같다.

그런데, 그 불쾌감은 지금까지도 남아있다.

압력 밥솥 패킹을 바꾼다고 밥 맛이 나아지는 것은 하나도 없었다.
이제야 알았지만, 패킹으로 밥 솥 기능에 에러가 나는 경우가 있다.  이런 경우만 밥솥 제조자에 수리를 맡겨야 한다.  밥 솥 패킹은 쇼핑몰에서 구입하는 물건 자체가 아니었다.

에누리 닷 컴에 들어가 한 때는 많은 상품을 주문했다.  오래 전 냉장고, 세탁기까지 주문해서 구입했다.  지금은?  전혀 택배나 쇼핑몰로 구입하지 않는다.

택배 주문을 하지 않으니..
우선 택배 기사들에게 시달리지 않아서 좋다.  부여군 연화리 택배 기사는 3초를 못 기다리고 물건을 던져놓고 간다.  문 기둥 새로 눈이 마주쳤는데 그 3초를 안 기다린다.
이럴까봐 배달비를 후불로 했는데, 이 의도를 묵사발 내는 신 기술을 장착했다.  배달비를 다음 날이나 그 다음 날 따로 받아가는 신 기술..

충주 서운리의 경우는 택배 기사(옐로우 택배)가 인사도 안 받고 말 대꾸 한 마디 않는다.  (평생 처음 보는 퍼포먼스이다.) 다른 택배는 우체국 택배로 자비로 보내버리고 오지도 않는다.  주문품은 당연히 몇일 늦어진다.  이 말은 '식품'은 상해서 오게 될 거라는 이야기이다.  우체국 택배비 별도로 부담하겠다고 해도 계좌번호도 불러주지 않는다.

이런 기억들이 하나 둘 잊혀져 가지만 잊혀지지 않는 것도 있다.  용산이다.  기억을 더듬어 보면 가물가물해서 왜 그랬는지 생각도 안 나지만, 용산에서는 물건을 구입하지 않기로 했다.

뉴타운 개발 한다고 해서 용산역에 갈 일이 생겼다.  용산역은 높은 산 위에 있었다.  내가 나이가 더 들면 저 높은 계단을 어찌 오를까 겁이 났다.  따로 승강기가 있겠지만..

용산은 많이 갔었다.  처음 pc가 개발 될 때라 용산 갈 일이 많았다.  이상하게 못 쓸 물건을 새 제품이라고 많이 팔았다.  그리고 어린 학생들에게 강매(폭매)하고 고객 뒤에서 수신호로 다음 가게에 메시지를 보내고 하는 프로그램을 봐버렸다.

가족 중 한 사람이 용산에서 전자제품을 구입할 일이 생겼다.  여기서는 에누리를 검색해서 정보를 보내주었다.  하필 눈 나쁜 사림인 것을 알아서 같은 모델 제품의 최하 등급을 최상 등급으로 속여 팔고 있었다.  직접 구입자는 용산 사람들이 이렇게까지 사악할까? 하는 생각에 얼마간 믿으려고 애쓰고 있었다.  최하 등급과 최상 등급의 가격차는 제품 두개 값과 하나 값의 차이가 난다.  (평생 처음 보는 퍼포먼스이다.) 카드 할부로 지급하고, 나중에 지급 정지를 시키기는 했지만 큰 피해를 보았다.

언젠가 삼성 전자 제품을 수리를 부탁했더니 하청 삼성이 왔다.  수리 서비스는 지역마다 다르다.  충주 서운리에서는 김치 냉장고 수리비를 새 김치 냉장고 가격을 요구했다.  (평생 처음 보는 퍼포먼스이다.) 부여 연화리에서는 삼성 김치 냉장고 온도계를 뚜껑을 열면 보이게 김치 냉장고 밖으로 노출되게 설치했다.  (평생 처음 보는 퍼포먼스이다.) 나는 차라리 삼성 김치 냉장고를 버리고 수리 받지 않겠다고 했는데 가족 의견을 따라 그 이상한 상태로 쓰기로 했다.

kt는 처음 인터넷 설치를 부탁하면 kt 정식 직원이 나오는 것 같다.  이 것을 어찌 짐작하느냐면, 두번째 수리차 오는 사람과 첫번째 설치차 오는 사람은 분명히 말투가 다르기 때문이다.  김제에서는 누렇게 때가 낀 케이블을 빈 집에서 거둬다 덜렁덜렁 걸리적거리게 설치해두고 가벼렸다.  (평생 처음 보는 퍼포먼스이다.)  그것도 그 케이블 걷어오느라 몇 시간이나 기다리게 한 것이 그 모양이었다. 가족들 누구도 항의할 의욕 자체를 날려버릴만큼 한심했다.  그리고는 100번 전화를 받더니 고래고래 소리를 지른다.  다음 고객에게 전화를 백번도 더 했는데 안 받는다는 것이다. 사과 전화를 어디에 하는 것을 한번도 못 봤다.  마음 속으로 많이 사과 했던 모양이다.
그런데 이 사람은 kt 정식 직원 맞는 걸까?

오늘은 오수관 점검을 나온다고 한다.  서울과 달리 스피커로만 예고를 해줘도 감지덕지이다.  '너무나도 주문이 많다.  물을 틀어라.  싱크대에 물을 흘려라.  변기물을 내려라.  고무 장갑을 가져와라.  수도 호스를 연결해 달라.  차를 빼라.  휘는 긴 파이프를 달라.'

그리고는 긴장 시키는 말을 잊지 않고 한다.
'조금만 늦었어도 사망' 식의 언사가 기술자들의 상투어이다.
집 안에서 배수관이 막히면 사용자 책임이라는 것인데, 그 많은 말 중 듣는 사람을 긴장시키는 단어만 골라 뱉는다.  '생활배수로가 막혔다.'  '원래는 안 해주는 것인데 해준다.'

그런데, 한번도 경험하지 못한 것을 겪게된다.
차가 대문 밖을 나갈 때 문 기둥이 좁아서 여유가 없다.  그래서 차를 들여놓는 게 쉬운 일이 아니다.  차를 왜 집 안에?  부여 연화리 인심이 그렇다.  내 집 앞에 차를 못 세우는 게 이 동네 인심이라는 것이다.  이 동네 사람들은 그럴 운명으로 태어나고 죽는다.  살아서도, 죽어서도 사람 미워하는 즐거움으로 산다.

문이 잘 열리지 않기 때문에 대문 열 때 쓰려고 1m짜리 쇠막대(빠루)를 문 옆에 두었는데 그걸 가져갔다.  식구들 속만 상하는 일이 생겼다.  딱 잡아떼고 절대 안 가져갔다고 말한다.   뻔뻔스런 것들만 발을 뻗고 자는 멋진 세상이 되어 버렸다.  사람이 많았는데, 다 지켜봤다는 듯이..

이 일로 공사자에게 친절할 이유를 삭제했다.  그리고 뒷짐 지고 편한하게 지켜봐야 한다는 것을 알게되었다.  잘 해 주니까 무시하는 세상이 되었다.  나이 어린 사람이 아랫 직원 다루듯이 하대를 한다.  저런 무지는 도대체 왜 달고 다니는 것이냐?
공사 인부가 뭘 훔쳐가는 지도 지켜봐야 하는 세상이다.  재판으로도 찾을 수 없는 세상이라 이런 불쾌감은 서민들에게 늘 용인되는 현상이다.

도둑질은 전주역에서도 일어나고, 전주 터미널에서도 일어나고, 전주 대형면허 시험장에서도 일어나고, 부여 초촌면에서도 일어나고 있다.  누구를 손가락질 할 때이겠는가?  권력에게는 모든 서민이 편이 되는 수 있지만, 서민의 편은 서민이 아니다.  '국민'으로 말을 바꿔써도 결과는 같다.

전주 시청 뒤에 가면 무슨 클리닉이 있다.  경기도만 가도 입 벌려 고정시키는 작은 플라스틱을 사용한다.  값으로 쳐도 100원이 될까말까한 턱 고정 플라스틱이다.  돈 아낀다고 큰 클리닉에서 그것을 안 쓴다.  그러면 치과 환자만 고생을 한다.  왜 그렇게 시달리게 했을까?  나는 몸이 축 늘어진 상태에서(치석 제거 작업 하나로 사람을 이렇게 만든다.) 생니를 뽑자하니 그러자고 했다.  나는 어금니 생니 뽑은 것을 아직도 후회한다.

어금니 하나를 빼버리면 이가 하나가 부족한 것일까?
안쪽 어금니는 커서 이가 두개분의 일을 한다.  또 아랫니가 없으면 윗니가 있어도 쓸모가 없다.  한쪽으로만 씹을 수는 없으니까..  어금니 하나를 없애면 이가 네개가 사라지는 효과를 느낀다.

충주 서운리에서 전엔 70만원이면 우물(지하수) 하나를 파줬다. (정확히는, 덤으로 하나 더 파줬다.) 지금은 전화를 하면 '거긴 암석이 많아서 700 만원은 줘야 한다.'고 한다.  여러군데 전화를 해도 이상하게 같은 곳에서 받는다. (이것도 정경유착의 한 형태인가?) 또, 요즘은 지하수에 계량기까지 붙는다.  내가 내 돈 주고 판 우물에 붙는 계량기이다. (그럼 이 수수료는 간판 설치비는 누가 부담하는 것일까?  내 생각은 이 우물은 정부에서 당연히 파줘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수질 검사 한 번 하려고 전화를 해보면, 깨끗한 용기를 어디서 구입해서 시료를 건대 병원 옆 어디에 제출해라..  끝.) 어디에 우물 사용료를 내라는 것인가?  이러니 70만원짜리 우물이 700만원으로 바뀌지 않을 방법이 없겠다.

나는 후회 한다.  무엇을?
이 말을 후대에게 말하는 것은 어리석다.  후대를 만드는 그 행위가 천치 같은 행위였던 것이지..

시골은 배양지이다.  사악한 마음들을 기르고 걸러 서울로 보낸다.  한 여름에도 악취 때문에 문도 열 수 없는 환경을 어디에나 가면 호소라도 해 볼 수 있을까?
'시골 살면 그런 줄 알아야 한다'는데..
시골에서는 무슨 이야기를 해도 새로 흉이 잡힌다.

투표하라고 가 보면 다 최저 수준인 몇 사람만 등록 돼 있다.  관리소는 이 중 누군가를 뽑으라고 한다.  아무 것도 아닌 것 같지만, 이 웃기는 작업은 앞으로 발생할 수 많은 부당함에 대한 권리 포기를 포함한다.  '니가 뽑았으니 잘못은 뽑은 너에게 있다.'
거기에는 반대표라는 것도 없다.

얼마나 큰 구멍이 난 지도 모를, 밑 빠진 독 안에서 씩씩함과 의욕은 언제까지 전해줘야 하는 걸까?  인생은 거짓과 도둑으로 살면 횡재한다는 말을 누구에게 전해야 할까?
'진실은 승리한다.'는 말을 하는 바보의 곁에도 가지 말기를 바랄 뿐이다.

플라톤의 국가론에 망령 같은 이상한 말이 나온다.  종족을 솎아내자는 이야기..
이제는 그 말도 이해가 된다.

정직병, 사실병
내가 처음 쓰는 말이니, 아무도 들어본 적 없을 것이다.
누군가가 살며시 다가와 거짓말을 하려고 할 때 느끼는 기분이 있을 것이다.
이 기분을 이 사회는 질병이라고 말한다.
이런 사회에서 정직병, 사실병의 고통을 감쇄하는 방법은 무엇일까?
모두가 아는 저 처방전을 따르느니, 차라리 그만 사는 게 오히려 편한 일이다.

처음 오수배관 공사를 한다고 문을 열어주고 연기접합점검한다고 또 문 열어준 것을 후회한다.

동네 아주머니 하나가 어느 집 학교 선생이 그 공사를 거부했다고 머리 나쁘다고 수십분을 앉은 자리에서 욕을 했었는데, 이제 그 교사의 거부 이유를 이해할 것 같았다.

연기접합검사를 한다고 해서, 장기적인 싱크홀 사고에 대비하는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다.  배수관 공사할 때 옆에서 지켜보니 본드 통을 열어두고도 배관 연결점에 본드를 바르지 않았다.  한 바퀴 돌려 바르는데 100원어치나 될까?  그 걸 아끼는 사람들이다.  그래서 그 확인을 하는 게 오늘 연기 시험인 줄 알았는데 사용자 부주의에 대해서만 경고를 하명하고 있었다.





(한국은 '우리' 때문에 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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