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dnesday 1 February 2017

베를린 광장

베르린 광장 1편 드라마를 보면
비버코프의 절규가 있다.
이 드라마는 장난감 총들고 나와 '삐용삐용'하는 대목이 없다.
이 드라마가 의미 있다기 보다,  이 드라마를 보지 못한 사람은 그 인생이라는 게 별 의미가 있어보이지 않는다.  여기엔 내 가족 전체가 포함된다.
나는 정치인도 아니고 국민 대리권을 행사한 적도 없으니까,  이 트집으로 이 사람 (어떤 애는 이 표현을 보니느은... 하더라만,  부시가 말하던 그 this man이다.  참 부시 꼬마도 푸틴과 더불어 참 아까운 세상 더럽게 살았다.  이 두 꼬마나 히틀러나 무슨 차이냐?  아 참 미안한 이야긴데, 박그네, 명박이는 꼬마도 못 돼,  그냥 애지..)

시테판이 등장한다.  출소한 비버코프가 절망하지 않도록, 랍비 분장이 등장해서 시테판의 성공담을 들려준다.  남자 여자에게 인기도 많고, 어린 나이에 남작도 되고..

랍비 분장 2가 등장해서 시테판이 도시 쓰레기 더미에 묻혔다고 말한다.  그 것도 그리도 어린 나이에,  감옥에서 자살한 뒤로..  가축 운반 카트에 실려..  도살자인 집행인에 의해..

비버코프의 절규는 여기서 터진다.
감옥 나오면 사람도 아니라는 거니?  다시 시작할 기회도 안 준다는 거야?
그리고 시체를 쓰레기 더미에 쳐박아?  같이 있던 놈들은 뭐 한 거니?
이런 개 같은 세상..  악수나 합시다.  나 비버코프요.  비도 오는데 이 방에 들여보내줘서 고맙소...

한국 드라마에 심취한 사람이라면 이 내용이 괴상할 것이다.  악 쓰고 빽빽거리는 것도 없고 잘 생겨야 하는데 그 것도 아니고, 화면은 칼라도 아닌 것 같고, 이 드라마 다 보고 도대체 나는 어느 팬미팅에 가야 하는 거니?

랍비가 등장하는 것은 유태인에 대한 우호적인 제스쳐이다.  이야기는 뒤집힌다.  길 거리에 갑자기 많아진 자동차에도 적응 못하는 비버코프를 몇 시간 만에 제정신으로 돌려놓은 것은 랍비 분장 1이다.  몇 분 만에 랍비 분장 2는 비버코프를 현실로 멀뚱하게 데려다줬다.  이 차원을 깨는 장면이 '절규'에서 설명된다.




......
비버코프의 주문이 옳지 않다는 것 (반은 맞지만 반은 틀리다.)을 설명하려고 했는데 생각이 안 난다.  이 문서 보류
출소자는 사회적 기회가 없냐는 대목

아마 이 페이지는 드물게도 내용이 추가 되어야 할 것 같다.

몇 자 더 적자
에밀이라는 게 있다.  두껍다.  교육 학도라면 꼭 봐야 된다는데,  그 책은 지금도 방 안 어딘가에 있을 것이다.  그런데 책을 읽기 전에 뒤를 봐버렸다.  하녀와 짝짜꿍 해서 나은 애들 줄줄이 고아원으로..  어린 나는 소변 처리하는 게 미숙해서 부모로부터 쫓겨나서 고약한 친 할머니 밑에서 자랐다.  그래서 부모와 떨어져 사는 고통을 안다.  이 통증으로 저 유명한 에밀을 읽지 못 했다.  에밀에 어떤 단어들이 춤을 추고 있는 지? 말은 해 줘야지?  헤밍웨이를 미워하지 말고 헤밍웨이를 보면 되 듯..

자유?  쉽지는 않아,  그런데 또 아주 쉬워,  그대가 당기면 오는 것이고, 밀면 가는 것이다.  자연은 규칙을 중시한다.

?
한국인이 이 드라마를 몇 명이나 볼까?  광주에서 했다는데 자막이 안 뜬다.  그래서 한글도 모르는 이 문맹이 1편 번역을 했다.  그 게 오죽할까?  5,000만 명이라는데 얼마나 볼까? 나머지 자막?  절대 안 보내준다.  youtube에 파일 수 천 개 올려도 자막 만들어 보내준 인간 군은 없다.  단 하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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