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딧물은 해충인가?
개미는 해충인가?
농부들은 진딧물이 있으면 농약을 뿌린다.
과실 속으로 들어간 농약은 국민이 열심히 대신 먹어준다.
되도록 많이 먹고 차라리 dna를 수정하자.
농약 검사? 아니라고 하지, 그렇다고 할까?
가짜 백수오 사건에서 보았 듯이..
나라도 ~청에 아는 친구 있으면 그리 부탁하지 않았을까?
여긴 미국이 아니다. 머리 복잡하면 gdp로만 비교해보자. 효율이 없잖아..
독일 것을 보면 화까지 날 수도 있으니, 대충..
과실이 열리지 않으면, 나는 먹지 않기로 하고 농약은 뿌리지 않는다.
진딧물의 업무를 보호하는 수호대가 있다.
개미.
충주에 살 때, 실내에 개미가 많았다. 처음으로 개미약이라는 것을 썼다.
6개월 정도 개미가 보이지 않는다. 지금 사는 곳은 개미가 작아서 그 약을 먹지 않는다.
진딧물은 다른 곤충에 의해서 자연스럽게 제거될 수 있지만, 개미는 그럴 수 없다.
따라서 내 밭의 제 1의 해충은?
개미.
시민은 진딧물인가? 개미인가? 향토예비군인가?
진딧물이 기생하지 않고는 살 수 없다면, 보호해야 하는가?
권력이 기생하지 않고는 살 수 없다면, 보호해야 하는가?
감정과 버무려진 말은 이상하게 들릴 수 있다.
'아직 어린 앤데..'
의미를 확대해보면, 어린 불곰도 불곰이고, 어린 진딧물도 진딧물이고, 어린 구더기도 구더기이다.
언제든지 나나 가족을 해롭게 할 수 있다.
집에 두 마리의 개가 있다.
두 마리 개 사이에는 '가까이 있는 먹이의 주인' 규칙이 정해져 있다.
처음에는 큰 먹이(1)를 먼저 차지하려고 경쟁했는데, 나중에는 작은 먹이(0.5)를 먼저 선택한다.
작은 먹이를 빨리 먹고 큰 먹이를 노리기 위해서이다. 큰 먹이는 어떻게든 1로 끝날 가능성이 높은데, 0.5를 빨리 먹은 뒤, 나머지 0.5~1의 이익을 기대하고 그리 한다.
시간을 끌고, 시선을 분산시킨 뒤에 큰 먹이를 가져다 먹는다.
사람이 감정을 빼버리면 얼마나 편할까 하는 생각을 하고 산다.
살고보니,
그 것이라는 게:
밥 통 안에 대가리들 쳐박고 싸울만한 가치가 있는 것이 아니었다.
내 거라고 상정하고 되찾으려 해서 쉴 틈 없이 자기 꼬리만 물고늘어지다 다 가버린 인생이 된다.
80년이나 되는 많은 시간을 받아놓고도, 자신에게 순수하게 헌사한 시간은 도토리 껍질만큼이나 될까?
발레나 음악이 대단한 고급 향수 같지만, 공작새의 깃털 같은 것이다.
베에토벤이 대단한 것 같지만, 에릭 사티나, 비틀즈나 내 달콤한 연인이나, 다 섞어놓고 찾으라면 못 찾는다. 그저 그런 'sexy'의 전주곡이고 뚜껑 같은 것이고 하품 제거제이다.
내 생각은 아무리 하고 또 해도 1g 늘었나 하지만, 그것이 머리 밖 세상을 휘젓고 다닐 때면, 에디슨 같이 유명해지기도 한다. 그래서 내 자신, 뭐 대단한 건가보다 하고 우쭐해 하기도 한다. 사람은 착각의 동물이어서 평생 죽을 때까지 100만가지 이상 착각을 하고 산다.
사나운 놈이 보기엔, 차분한 놈은 좀 멍청해 보인다. 그래서 건드려보고 자극도 해본다.
뭐 그렇게까지 할 필요 있나 하지만, 다들 어떤 식으로든 옆 사람 깔아뭉게고들 산다.
흔히 주변에서 못 보는 것들 중, 선진국에서는 보기 힘든 것들이 많다.
언젠가 내게 어떤 제안을 해온 사람이 있어 그 회사 사무실이 있는 산타 모니카를 구글 지도 로드 뷰로 여행을 해보았다. 전에 구글로 센트럴 파크를 로드 뷰로 여행하고 지리를 외워두려고 내 자신과 약속했는데 지키지 못해서 이번은 그 시늉을 좀 내보았다. 로드 뷰로 도로를 누비면서 내가 찾는 것이 있었다. 흔하게 보는 것들..
폐타이어, 배에 달고다니는 폐타이어, 비닐 하우스, 샌드위치패널, 스레트 지붕, 함석 담, 쓰레기 태우는 연기..
오래된 그리스 영화에서는 '함석 담'을 보았다.
캐나다 북부 지방 어느 쓰레기장에서 나는 연기도 본 적이 있다.
'골목'이란 것도 찾지 못 했다. 도로 구조 상 골목이라는 게 없었다.
나는 개 두 마리를 보면서, 뭐 하면서들 사나하고 지켜본다. 그 모습들이 내 모습들이라서 그렇다.
어리고 지능이 낮으면 물어뜯고 장난한다. 자기를 아프게 하면 혀로 핥는다. 화해의 표시이다.
사람이라고 크게 다르지 않다. '깨물어주고' 싶을 정도로 예쁘다? 개들도 그렇게 한다.
개들도 좁은 공간에 있으면 따로 할 게 없다. 개가 방 안에 있으면 사람 비위 서열에 드는 것과 제일 앞 순위의 호감을 얻으려고 한다. 그리고는, 시간 보내는 일이 나머지 할 일이다. 마치 사람들이 시간을 어쩌지 못해 스스로 외롭거나 괴로운 것처럼.. 개들이 사람 말귀를 알아듣고 꼬리를 흔드는 일은 사람이 가진 먹이 버튼을 누르는 작업이다. 사람은 착각을 하고 동물과의 교감을 얻은 것처럼 생각하고 군주가 된 것처럼 흡족해 한다. 사람은 머리가 굵어서 혼자서도 그럭저럭 지내지만, 그럴 수 없게 갇힌방 안의 개들은 개들끼리 세상을 알아서 살아내도록 도와주어야 한다. 모든 생명체의 생명권은 각자 자신에게 돌려주어야 한다. 풀 한 포기라도.. 두 마리의 개가 매일 먹이를 주는 나를 신처럼 또는 부모처럼 생각할 지도 모르지만, 나 자신에게는 내가 교도관처럼 여겨진다.
무엇보다도 나로부터 온통 나의 '시간'을 빼앗아간다. 적어도 나 자신은 '저능'하지 않다거나, 정신 연령이 일곱살은 넘은 것처럼 생각을 하고 살아오고 있다.
개가 방 밖으로 나가 자기들끼리 지내면, 그나마 방보다는 넓은 세상이지만, 내가 무슨 욕심이 그리도 많아서 온 우주를 그들에게서 가리고, 훔친단 말인가? 그들의 우주는 그들에게 돌려준다.
오늘도 나에게는 왜 남들의 세상에 관심이 가는 지 모르겠다. 아직 철이 덜 들어서 그렇고, 시간이 많이도 남아돌아서 그렇다. 암과도 같은 '감정(일반 감정, emotion)'은 처치곤란 상태이다.
들에 아무렇게나 핀, 한 송이 코스모스에 견줄 수도 없는 내 조잡한 단어들이 분해되고 사라져, 어느 누구의 기억에도 없을만큼 많은 시간이 지나가버렸으면 좋겠다.
개미는 해충인가?
농부들은 진딧물이 있으면 농약을 뿌린다.
과실 속으로 들어간 농약은 국민이 열심히 대신 먹어준다.
되도록 많이 먹고 차라리 dna를 수정하자.
농약 검사? 아니라고 하지, 그렇다고 할까?
가짜 백수오 사건에서 보았 듯이..
나라도 ~청에 아는 친구 있으면 그리 부탁하지 않았을까?
여긴 미국이 아니다. 머리 복잡하면 gdp로만 비교해보자. 효율이 없잖아..
독일 것을 보면 화까지 날 수도 있으니, 대충..
과실이 열리지 않으면, 나는 먹지 않기로 하고 농약은 뿌리지 않는다.
진딧물의 업무를 보호하는 수호대가 있다.
개미.
충주에 살 때, 실내에 개미가 많았다. 처음으로 개미약이라는 것을 썼다.
6개월 정도 개미가 보이지 않는다. 지금 사는 곳은 개미가 작아서 그 약을 먹지 않는다.
진딧물은 다른 곤충에 의해서 자연스럽게 제거될 수 있지만, 개미는 그럴 수 없다.
따라서 내 밭의 제 1의 해충은?
개미.
시민은 진딧물인가? 개미인가? 향토예비군인가?
진딧물이 기생하지 않고는 살 수 없다면, 보호해야 하는가?
권력이 기생하지 않고는 살 수 없다면, 보호해야 하는가?
감정과 버무려진 말은 이상하게 들릴 수 있다.
'아직 어린 앤데..'
의미를 확대해보면, 어린 불곰도 불곰이고, 어린 진딧물도 진딧물이고, 어린 구더기도 구더기이다.
언제든지 나나 가족을 해롭게 할 수 있다.
집에 두 마리의 개가 있다.
두 마리 개 사이에는 '가까이 있는 먹이의 주인' 규칙이 정해져 있다.
처음에는 큰 먹이(1)를 먼저 차지하려고 경쟁했는데, 나중에는 작은 먹이(0.5)를 먼저 선택한다.
작은 먹이를 빨리 먹고 큰 먹이를 노리기 위해서이다. 큰 먹이는 어떻게든 1로 끝날 가능성이 높은데, 0.5를 빨리 먹은 뒤, 나머지 0.5~1의 이익을 기대하고 그리 한다.
시간을 끌고, 시선을 분산시킨 뒤에 큰 먹이를 가져다 먹는다.
사람이 감정을 빼버리면 얼마나 편할까 하는 생각을 하고 산다.
살고보니,
그 것이라는 게:
밥 통 안에 대가리들 쳐박고 싸울만한 가치가 있는 것이 아니었다.
내 거라고 상정하고 되찾으려 해서 쉴 틈 없이 자기 꼬리만 물고늘어지다 다 가버린 인생이 된다.
80년이나 되는 많은 시간을 받아놓고도, 자신에게 순수하게 헌사한 시간은 도토리 껍질만큼이나 될까?
발레나 음악이 대단한 고급 향수 같지만, 공작새의 깃털 같은 것이다.
베에토벤이 대단한 것 같지만, 에릭 사티나, 비틀즈나 내 달콤한 연인이나, 다 섞어놓고 찾으라면 못 찾는다. 그저 그런 'sexy'의 전주곡이고 뚜껑 같은 것이고 하품 제거제이다.
내 생각은 아무리 하고 또 해도 1g 늘었나 하지만, 그것이 머리 밖 세상을 휘젓고 다닐 때면, 에디슨 같이 유명해지기도 한다. 그래서 내 자신, 뭐 대단한 건가보다 하고 우쭐해 하기도 한다. 사람은 착각의 동물이어서 평생 죽을 때까지 100만가지 이상 착각을 하고 산다.
사나운 놈이 보기엔, 차분한 놈은 좀 멍청해 보인다. 그래서 건드려보고 자극도 해본다.
뭐 그렇게까지 할 필요 있나 하지만, 다들 어떤 식으로든 옆 사람 깔아뭉게고들 산다.
흔히 주변에서 못 보는 것들 중, 선진국에서는 보기 힘든 것들이 많다.
언젠가 내게 어떤 제안을 해온 사람이 있어 그 회사 사무실이 있는 산타 모니카를 구글 지도 로드 뷰로 여행을 해보았다. 전에 구글로 센트럴 파크를 로드 뷰로 여행하고 지리를 외워두려고 내 자신과 약속했는데 지키지 못해서 이번은 그 시늉을 좀 내보았다. 로드 뷰로 도로를 누비면서 내가 찾는 것이 있었다. 흔하게 보는 것들..
폐타이어, 배에 달고다니는 폐타이어, 비닐 하우스, 샌드위치패널, 스레트 지붕, 함석 담, 쓰레기 태우는 연기..
오래된 그리스 영화에서는 '함석 담'을 보았다.
캐나다 북부 지방 어느 쓰레기장에서 나는 연기도 본 적이 있다.
'골목'이란 것도 찾지 못 했다. 도로 구조 상 골목이라는 게 없었다.
나는 개 두 마리를 보면서, 뭐 하면서들 사나하고 지켜본다. 그 모습들이 내 모습들이라서 그렇다.
어리고 지능이 낮으면 물어뜯고 장난한다. 자기를 아프게 하면 혀로 핥는다. 화해의 표시이다.
사람이라고 크게 다르지 않다. '깨물어주고' 싶을 정도로 예쁘다? 개들도 그렇게 한다.
개들도 좁은 공간에 있으면 따로 할 게 없다. 개가 방 안에 있으면 사람 비위 서열에 드는 것과 제일 앞 순위의 호감을 얻으려고 한다. 그리고는, 시간 보내는 일이 나머지 할 일이다. 마치 사람들이 시간을 어쩌지 못해 스스로 외롭거나 괴로운 것처럼.. 개들이 사람 말귀를 알아듣고 꼬리를 흔드는 일은 사람이 가진 먹이 버튼을 누르는 작업이다. 사람은 착각을 하고 동물과의 교감을 얻은 것처럼 생각하고 군주가 된 것처럼 흡족해 한다. 사람은 머리가 굵어서 혼자서도 그럭저럭 지내지만, 그럴 수 없게 갇힌방 안의 개들은 개들끼리 세상을 알아서 살아내도록 도와주어야 한다. 모든 생명체의 생명권은 각자 자신에게 돌려주어야 한다. 풀 한 포기라도.. 두 마리의 개가 매일 먹이를 주는 나를 신처럼 또는 부모처럼 생각할 지도 모르지만, 나 자신에게는 내가 교도관처럼 여겨진다.
무엇보다도 나로부터 온통 나의 '시간'을 빼앗아간다. 적어도 나 자신은 '저능'하지 않다거나, 정신 연령이 일곱살은 넘은 것처럼 생각을 하고 살아오고 있다.
개가 방 밖으로 나가 자기들끼리 지내면, 그나마 방보다는 넓은 세상이지만, 내가 무슨 욕심이 그리도 많아서 온 우주를 그들에게서 가리고, 훔친단 말인가? 그들의 우주는 그들에게 돌려준다.
오늘도 나에게는 왜 남들의 세상에 관심이 가는 지 모르겠다. 아직 철이 덜 들어서 그렇고, 시간이 많이도 남아돌아서 그렇다. 암과도 같은 '감정(일반 감정, emotion)'은 처치곤란 상태이다.
들에 아무렇게나 핀, 한 송이 코스모스에 견줄 수도 없는 내 조잡한 단어들이 분해되고 사라져, 어느 누구의 기억에도 없을만큼 많은 시간이 지나가버렸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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