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howing posts with label 동조. Show all posts
Showing posts with label 동조. Show all posts

Tuesday, 12 July 2016

정말?

고위직 공무원들을 보면,  천생이 딸랑인 지..  이상한 말을 하고 만다.

고위직 누군가가 히잡을 쓰고 사진을 찍었더니,  그 부하가 국민에게, 문화를 존중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럼, 당나라나 조선 때의 태형도 문화니 소중한 것으로 삼아 유네스코에 등재라도 하려나?  모든 나라의 모든 풍습이 존중의 대상일 수가 있겠는가?  그럼,  북한의 인권 문제도 존중의 대상이 된다는 '놀리 (놀랄 논리)'가 되는 것일쎄?

얼마 전 '미개인' 파동이 있더니,  이젠 개, 돼지란다.

이 단어는 소속되는 모든 사람이 천대를 받아온 인생이라는 말을 하고 있다.  천대를 받을 뿐만 아니라 스스로 천대한다.  그 많은 말 중 무슨 말을 해도 버릇 나쁜 말이고 행동이다.  마트에만 나가도 물건을 내팽쳐 폭탄 터지는 소리는 내는 직원이 있는가 하면 (논산 홈플러스 김치 매장 옆), 귀 옆을 스치는 파리처럼 위협적으로 옆을 지나치는 사람도 있다.  한글로 된 comment는 거의가 독설이다.  comment에 대고 욕하는 comment로 난장판이다.  이 건 남 욕하는 것을 빼면 사는 재미가 없다는 이야기가 된다.  자동차를 타고 나가도 아무 이유도 없이 뒤에서 빵빵거리는 택시도 있다.  (횡단보도 보행 신호에 우회전로를 비켜달라는 소리)

나는 인터넷 사용료가 너무 비싸서 인터넷을 끊으려고 한다.  지방에서는 kt를 써야하는데 인터넷을 신청하려면 유선 전화가 있어야 한다.  나는 이 유선 전화도 끊으려고 하는 중이다.

youtube도 몇년 하고나니,  이젠 호기심도 없어졌다.  인터넷으로 하는 일이란 게, e-mail 확인하고, 장마철에 일기예보 보는 정도..  이렇게 할 일이 없는 인터넷인데 내겐 너무 비싸다.  이민을 간다면 생각해볼 게,  지불하지 않는 프로그램 삭제..  pc를 버리고가서 현지에서 새 pc를 사용할 테지만,  혹시 하나라도 갖고 간다면..  이것저것 차단하고 감시하고 다운로드가 불법이니 적법이니를 따져봐야 하는 시대에 인터넷의 용도가 무엇일까?  뉴스도 막장 dna 드라마처럼 되어있다.  배울 내용은 없고 게거품만 있다.

인터넷이 세계 최고라고 야단이다.  인터넷은 인터넷 속도라는 말이겠지만,  이 속도가 남북으로 긴 일본에서 꼭 필요한 것일까?  러시아처럼 광대한 나라에서도 통하는 말일까?  역도산이 말했 듯,  사흘 밤낮을 차로 달렸는데 집 한 채가 안 보이는 미국 같은 나라에 이 속도를 내기 위해서 얼마나 많은 전봇대가 필요할까?  마치 닭장처럼 아파트에 사람을 가둬놓은 주택형태,  한 도시에 천만명씩이나 되는 전 인구의 1/4을 압축해놓은 주거형태에서만 가능한 속도라는 이야기이다.  이러면 이 최고의 인터넷이 슬퍼진다.  좋은 이야기가 아니었던 것이다.  그런데 이런 걸로도 자부심을 느끼는 사람들이 많다.  상대적으로 다른 자랑거리라는 게 전무하다는 말도 된다.  (유럽 선진국은 소도 헥타아르당 한 마리만 기르도록 하는 나라도 있다.  아시안보다 행복할 것 같다.)

요즘 uhd로 말이 많다.  아날로그에서 디지털로 바꾼 게 얼마 되지 않았다.  됐다 이것으로 충분하다.  그런데 4배 훤해진 uhd의 용도는 무엇인가?  산 지가 얼마나 된다고, 또 tv 수상기를 버리라는 말인가?  uhd 사서 배우들 팔의 솜 털이라도 구경하라는 말인가?  아무리 경기가 어렵다고 서민들 주머니만 탈탈 터는 일을 언제까지 계속해야 하는가?  그렇게 채널이 많은 프랑스에서 hd가 왜 필요하냐고 했던 국민성이 나는 부럽다.  채널도 몇 안 되고, 시청료 받는 방법도 기막힌데,  tv에서 볼 게 단 하나도 없는 이 나라 현실에서 말이다.

세계 최고라는 말이 그렇게도 듣고 싶어서,  생산 라인 전체를 갈아치우는 일로 얼마나 생산성이 있을꼬?  그런 일이라면 장차 중국이나 인도에서 훨씬 더 잘 할 수 있다.  조선 산업을 빼앗기는 것에서 보았 듯이..  선진국에 꼬박꼬박 로열티 주고 애플에 소송할 때마다 져서 수천억씩 상납하고, 선진국보다 싸게 팔고,  수출 가격은, 국내 가격의 반 가격에 팔고 그것도 성이 차지 않았던 지,  현지 생산해서 국내보다 비싼 임금을 뿌리면, 남는 게 있다는 게 더 이상하다.  마치, 민자고속도로처럼 모두 국민이 내주는 이익금으로 버티고 있다고 봐야한다.  그런데 왜 국민은 자부심을 느낄까?  당장 구름만 지나가면 드러날 일인데..  거짓말 하는 대로 잘 믿고 따라가는 국민성 때문이다.

각 지방 정부가 독립을 해서라도 지방 자치를 실현해야 하는데,  이상하게도 이 국민은 지방자치에 대한 개념이 없다.  내 돈을 쓰고 그 돈이 다시 돌아올 기회가 없다는 게 하나도 이상하지 않은 모양이다.  지방에 사는 사람이 대기업 할인점에서 물건을 사면,  그 때 지불한 돈이 내게 다시 돌아올 기회가 있기는 할까?  내가 프랑스에 여행가서 1,000만원을 쓰고 왔다면 그 돈이 내게 다시 혜택으로 돌아올 길은 없어보인다.  그 때 쓴 1,000만원의 일부로 도로를 정비하고 대학을 세워도 그건 프랑스에서 일어날 일이다.

지금은 중앙정부에서 특정 지역으로만 돈을 쏟아붓고 있다.  상대적으로 빈곤한 나머지 지역이 있을 것은 당연하다.  (어느 지역은 시내버스 정기노선까지 줄이고 있다.)  먼저, 이 것은 다른 지역 출신이 대권을 거머쥐면 이 균형이 뒤집힐 것이다.  그리고, 그 어느 경우도 국가가 강해지는 것으로부터 영영 멀어지는 길이다.  극소수의 부자를 위해, 가난한 사람을 무수히 만들어내는 게 어떻게 부국과 관련성이 있을 수 있겠는가?  중소기업 위주로, 세계적인 기업이 없는 대만도 gdp가 한국을 앞서고 있다.

뉴스에 무슨 말이 나오면 '정말?'이라고 한번쯤을 생각해보는 것이 국가를 위하는 방법이다.
그들은 절대로 사실을 말하지 않는다.  싸드를 설치하면 그 설치한 곳은 40년대의 히로시마가 될 수 있다.  지금 싸드 설치를 지지한 모든 사람을 싸드 지역으로 강제 이주시켜야 한다.  한미 fta에서 잘 보았 듯이,  미국은 자국에 이익이 되지 않으면 언제든 웃으면서 취소할 수 있지만,  한국은 이제 돌아올 수 없는 다리를 건넜다.

한국의 현재 경제력은 어디서 왔을까?  케네디 때의 베트남이 망하지 않았다면 지금과 같았을까?  한국과 일본이 누구의 지원으로 이만큼 성장했을까?  모두가 미국이 volume을 높여줬을 때만 허용되는 사안이다.  모두 자력으로 성장한 줄로 알겠지만, 언제까지 한국과 일본은 미국의 보초가 되고,  북한은 또 언제까지 중국과 러시아의 국경견이 되어야 하는 걸까?  한국이 강대국의 광역 핵시험장이 된다고,  그들이 슬퍼하리란 기대가 가능이나 할까?  지금까지 지칠 줄 모르고 싸우는 한반도는, 얼마나 시간이 지난 뒤에 평화를 찾고 스스로의 인생을 구가하게 될까?  나라의 인생도 아니고, 식구의 인생도 아니고, 우리의 인생도 아니고,  조용히 내 인생을 살고 싶다.  차이가 있을 것 같지만, 북한의 군중의 표정과 남한의 그것은 점대칭이다.  멸치떼로 휘둘리는 자기 생각 없는 국민을, 존중하는 정부는 있을 수 없다.



......
착한 일본인 뒷 모습엔 총을 들고 전쟁 준비를 서두르는 일본인의 본 모습이 있다.





Saturday, 31 October 2015

진딧물

진딧물은 해충인가?
개미는 해충인가?

농부들은 진딧물이 있으면 농약을 뿌린다.
과실 속으로 들어간 농약은 국민이 열심히 대신 먹어준다.
되도록 많이 먹고 차라리 dna를 수정하자.

농약 검사?  아니라고 하지,  그렇다고 할까?
가짜 백수오 사건에서 보았 듯이..
나라도 ~청에 아는 친구 있으면 그리 부탁하지 않았을까?
여긴 미국이 아니다.  머리 복잡하면 gdp로만 비교해보자.  효율이 없잖아..
독일 것을 보면 화까지 날 수도 있으니,  대충..

과실이 열리지 않으면, 나는 먹지 않기로 하고 농약은 뿌리지 않는다.
진딧물의 업무를 보호하는 수호대가 있다.

개미.

충주에 살 때,  실내에 개미가 많았다.  처음으로 개미약이라는 것을 썼다.
6개월 정도 개미가 보이지 않는다.  지금 사는 곳은 개미가 작아서 그 약을 먹지 않는다.

진딧물은 다른 곤충에 의해서 자연스럽게 제거될 수 있지만,  개미는 그럴 수 없다.

따라서 내 밭의 제 1의 해충은?

개미.

시민은 진딧물인가?  개미인가?  향토예비군인가?

진딧물이 기생하지 않고는 살 수 없다면, 보호해야 하는가?
권력이 기생하지 않고는 살 수 없다면, 보호해야 하는가?
감정과 버무려진 말은 이상하게 들릴 수 있다.
'아직 어린 앤데..'
의미를 확대해보면,  어린 불곰도 불곰이고,  어린 진딧물도 진딧물이고,  어린 구더기도 구더기이다.
언제든지 나나 가족을 해롭게 할 수 있다.

집에 두 마리의 개가 있다.
두 마리 개 사이에는 '가까이 있는 먹이의 주인' 규칙이 정해져 있다.
처음에는 큰 먹이(1)를 먼저 차지하려고 경쟁했는데,  나중에는 작은 먹이(0.5)를 먼저 선택한다.
작은 먹이를 빨리 먹고 큰 먹이를 노리기 위해서이다.  큰 먹이는 어떻게든 1로 끝날 가능성이 높은데,  0.5를 빨리 먹은 뒤, 나머지 0.5~1의 이익을 기대하고 그리 한다.
시간을 끌고, 시선을 분산시킨 뒤에 큰 먹이를 가져다 먹는다.

사람이 감정을 빼버리면 얼마나 편할까 하는 생각을 하고 산다.
살고보니,
그 것이라는 게:
밥 통 안에 대가리들 쳐박고 싸울만한 가치가 있는 것이 아니었다.
내 거라고 상정하고 되찾으려 해서 쉴 틈 없이 자기 꼬리만 물고늘어지다 다 가버린 인생이 된다.
80년이나 되는 많은 시간을 받아놓고도,  자신에게 순수하게 헌사한 시간은 도토리 껍질만큼이나  될까?

발레나 음악이 대단한 고급 향수 같지만,  공작새의 깃털 같은 것이다.
베에토벤이 대단한 것 같지만,  에릭 사티나, 비틀즈나 내 달콤한 연인이나,  다 섞어놓고 찾으라면 못 찾는다.  그저 그런 'sexy'의 전주곡이고 뚜껑 같은 것이고 하품 제거제이다.

내 생각은 아무리 하고 또 해도 1g 늘었나 하지만,  그것이 머리 밖 세상을 휘젓고 다닐 때면,  에디슨 같이 유명해지기도 한다.  그래서 내 자신, 뭐 대단한 건가보다 하고 우쭐해 하기도 한다.  사람은 착각의 동물이어서 평생 죽을 때까지 100만가지 이상 착각을 하고 산다.

사나운 놈이 보기엔,  차분한 놈은 좀 멍청해 보인다.  그래서 건드려보고 자극도 해본다.
뭐 그렇게까지 할 필요 있나 하지만,  다들 어떤 식으로든 옆 사람 깔아뭉게고들 산다.

흔히 주변에서 못 보는 것들 중,  선진국에서는 보기 힘든 것들이 많다.
언젠가 내게 어떤 제안을 해온 사람이 있어 그 회사 사무실이 있는 산타 모니카를 구글 지도 로드 뷰로 여행을 해보았다.  전에 구글로 센트럴 파크를 로드 뷰로 여행하고 지리를 외워두려고 내 자신과 약속했는데 지키지 못해서 이번은 그 시늉을 좀 내보았다.  로드 뷰로 도로를 누비면서 내가 찾는 것이 있었다.  흔하게 보는 것들..
폐타이어, 배에 달고다니는 폐타이어, 비닐 하우스, 샌드위치패널, 스레트 지붕, 함석 담,  쓰레기 태우는 연기..

오래된 그리스 영화에서는 '함석 담'을 보았다.
캐나다 북부 지방 어느 쓰레기장에서 나는 연기도 본 적이 있다.
'골목'이란 것도 찾지 못 했다.  도로 구조 상 골목이라는 게 없었다.

나는 개 두 마리를 보면서,  뭐 하면서들 사나하고 지켜본다.  그 모습들이 내 모습들이라서 그렇다.
어리고 지능이 낮으면 물어뜯고 장난한다.  자기를 아프게 하면 혀로 핥는다.  화해의 표시이다.
사람이라고 크게 다르지 않다.  '깨물어주고' 싶을 정도로 예쁘다?  개들도 그렇게 한다.
개들도 좁은 공간에 있으면 따로 할 게 없다.  개가 방 안에 있으면 사람 비위 서열에 드는 것과 제일 앞 순위의 호감을 얻으려고 한다.  그리고는, 시간 보내는 일이 나머지 할 일이다.  마치 사람들이 시간을 어쩌지 못해 스스로 외롭거나 괴로운 것처럼..  개들이 사람 말귀를 알아듣고 꼬리를 흔드는 일은 사람이 가진 먹이 버튼을 누르는 작업이다.  사람은 착각을 하고 동물과의 교감을 얻은 것처럼 생각하고 군주가 된 것처럼 흡족해 한다.  사람은 머리가 굵어서 혼자서도 그럭저럭 지내지만, 그럴 수 없게 갇힌방 안의 개들은 개들끼리 세상을 알아서 살아내도록 도와주어야 한다.  모든 생명체의 생명권은 각자 자신에게 돌려주어야 한다.  풀 한 포기라도..  두 마리의 개가 매일 먹이를 주는 나를 신처럼 또는 부모처럼 생각할 지도 모르지만,  나 자신에게는 내가 교도관처럼 여겨진다.

무엇보다도 나로부터 온통 나의 '시간'을 빼앗아간다.  적어도 나 자신은 '저능'하지 않다거나,  정신 연령이 일곱살은 넘은 것처럼 생각을 하고 살아오고 있다.

개가 방 밖으로 나가 자기들끼리 지내면,  그나마 방보다는 넓은 세상이지만, 내가 무슨 욕심이 그리도 많아서 온 우주를 그들에게서 가리고, 훔친단 말인가?  그들의 우주는 그들에게 돌려준다.

오늘도 나에게는 왜 남들의 세상에 관심이 가는 지 모르겠다.   아직 철이 덜 들어서 그렇고,  시간이 많이도 남아돌아서 그렇다.  암과도 같은 '감정(일반 감정, emotion)'은 처치곤란 상태이다.

들에 아무렇게나 핀, 한 송이 코스모스에 견줄 수도 없는 내 조잡한 단어들이 분해되고 사라져,  어느 누구의 기억에도 없을만큼 많은 시간이 지나가버렸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