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uesday 27 September 2016

신선

(남의 일기장에 답글 달지 맙시다.  그 것도 폭력이다.  요 하얀 네모 안으로 타인의 문자가 들어오는 것은 반칙이다.)


할아버니는 동그란 벽라디오로도 잘 지냈다.
부모는 tv로 잘 지냈다.
우리는 pc로 잘 놀았다.
다음 세대는 셀폰으로 잘 논다.

문을 열자 모기 한 마리가 빨려들어온다.
올해는 파리가 잘 보이지 않는다.
파리는 몸매가 길쭉한 유선형이 아닌데 빠르며 방향 전환도 잘 한다.
누군가의 소설을 떠올리면,  파리도 연습을 하면 배면 비행을 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
파리의 생이 길지 않으면 그런 여유는 없겠지

밖에 나가 서 있는데 모기가 내 발등 위에 앉았다.
손이 가까이 가자 당황해서 슬리퍼 걸이 (발등 부분을 덮고 있는 부분) 안 쪽에서 이리저리 짧은 순간 당황하다 V자 모양의 궤적을 끌다 사라진다.

격이 같다고 인간은 생각 안 할 테지만, 저나 나나 자연의 원소를 가져다 몸을 부풀리고 있다.  내가 마셨을 이 맥주 한 잔을 니가 마시면,  그 일부는 너의 몸 어디에 배치받고 대기 중인 원소가 된다.  그리고는 얼마간 인생을 같이하고 같이 자고, 어딘가에 같이 간다.  와인을 마시는 기쁨도 같이 한다.

늘 이상하게 생각해오던 일이지만, 홍길동이가 박길순과 결혼하지 않고, 김길순과 결혼했더라면 세상이 어떻게 바뀔까?  결혼 연쇄 반응이 일어나면 100년 뒤에 사는 많은 사람의 얼굴이 딴 사람일 것이다.  이 뜻은 무생물을 포함한 낱개로 존재하는 모든 존재 진리값으로 매겨지는 게 아니라 진행값으로 매겨진다는 것이다.  스스로의 존재에게 절대값을 부여하지만, 상대값이 정확한 계산값이다.  내가 1,000년 전에 태어났더라면 칼, 창을 들고 죽을 때까지 돌아다니는 일이 전부였을 테지만, 지금은 쿠루즈 타고 극지방이나 가볼까?하는 생각을 하며,  뭐하러 귀찮게 창이나 들고 코를 씩씩거리며 우스꽝스럽게 살아야 되나라고 생각한다.

원소 하나의 이동은 나에게 또는 모기에게로 가서 한 단위가 된다.  가끔은 내 몸에 있는 원소를 모기가 가져가기도 하고 그런 모험 중에 맞아서 피투성이가 되기도 한다.  모기의 장례식 같은 건 없다.  아무도 그 것을 슬퍼하는 모기는 없어보인다.  죽은 개미 옆에서 웅성거리는 것을 보면, 간혹 개미들은 그런 느낌을 갖는 지 모르겠다.  어쨌거나 내가, 니가, 모기나 파리가 그 무슨 생각을 하든,  시간은 공평히 흐르고 또 흐른다.  그 시간 어느 한 줌도 나와 만난 적이 없지만, 생명체이고 아니고 간에 모두 세상에 존재도 하지 않는 시간이라는 것으로 설명된다.

태양빛은 점점이 또는 줄줄이 순간적으로 흩어지지만,  이 것 없이는 생명은 가능하지 않다.  그 생명이라는 것은 우리의 입장에서의 가치이다.  전기도 그와 같은 불특정한 특성이 있지만 인간은 잘 사용하고 있다.  불안한 상태로 있어보이는 이런 순간적인 것에 의탁하는 생명들이다.  왜 태양은 쉬지도 않고 그 많은 에너지를 순간순간 정직한 볼륨으로 정직한 질량으로 정직한 속도로 보내는 지는 알지 못한다.  내가 하늘을 올려다 보면 나는 자연의 방관자가 되고,  땅을 내려다 보면 현실의 투사가 된다.

나는 신선처럼 살거나 지금 같이 거지처럼 살거나 상관 없이, 80년 후면 내 스스로 나를 놓는다.  생각을 놓고 배려도 놓고 망각도 놓는다.  내가 베에토벤이었다면 사람들에게 오래오래 잊히지 못할 것이다.  그 순간에 스스로는 완전히 자신을 그리고 시끄러운 세상을 잊고 편할 것이다.  그리곤 다시 자연으로 돌아가, 다른 에너지를 위한 준비 상태에 들어갈 원소로 조용히 환원한다.

흐느끼거나 슬퍼하면서 그 값의 위치가 우주 어디쯤인 지는 생각해볼 필요가 없다.  tv는 재미 있어야 한다거나 영화는 스토리가 있어야 한다거나 뮤직비디오는 볼 게 있어야 한다거나 하는 이야기들 옛날에는 소설은 질곡이 있어야 한다거나.. 이야기 했을 테지

사람들 이야기가 복잡하면, 열심히 일하는 일벌이나 일개미를 보면 좀 이해가 쉬울까?
지 능력으로 사는 것 같지만 99%의 DNA 프로그램으로 나머지는 상황으로 시간을 보낸다.  DNA가 스스로 결정하지 못하는 것은 위치이다.  내가 New York에 있을 지, 남극에 있을 지를 생각해보면 DNA 스스로도 우연적일 것이다.

어쨌거나, 우주에서 보이는 복잡한 과정의 결과는 무엇일까?  우주에는 결과는 없다.  모든 게 진행이다.  (아 ! 밥 먹으러 가자.)

중심 단어를 보면 짐작이 가겠지만,  내가 배불뚝이로, 보이는 세상마다, 아름다울 정도로 풍요를 누렸으면 좀 더 스케일을 가지고 이야기 하려 했을 것이다.  거드름 피우면서 말이다.  너는 왜 찡그리고 사니?  하면서 꼰지르면서 말이다.  (남의 속을 후벼파다의 의미로 알았는데, 고자질하다의 잘못된 표기라고..  이제 보니 사전 뜻이 맞았네.  잠시 착각, 아 이 것도 잘난 척하는 게 맞는 것이로고.)  모기, 파리가 등장하는 것을 보면,  그렇게 붕 떠있지는 않아 보이니 그나마 좀 낫다.  (밥 먹고 오니 말의 자전축이 틀어졌다.  밥은 연료 과정이다.)

언젠가 방 안에 나비 날개를 한 게 들어왔다.  수직으로 낙하하는 비행술도 연기했다.  크기나 나는 모습은 모기와 비슷했다.  뭔지 모르지만 좀 지켜보기로 했다.  어렸을 때 가끔 보던 것이다.  그에겐 이 방의 크기가 얼마나 될 지 모른다.  이동 속도가 빠른 것으로 짐작하면 그렇게는 크게 생각될 것 같지는 않다.  몇 초면 도착할 이쪽에서 저쪽 벽 간 거리에 크다고 생각할 개체라면?  발 다친 거북이 정도나 될까?  우리는 지금 공간 좌표, 시간 좌표가 일치하는 지점에 있다.  서로간 약간은 공격적인 운명으로 만났다.  나는 공간 소유 개념으로 있지만,  저는 공간 공유 개념으로 비행 중이다.  누군가 먼저 공격하면 반사 공격이 따를 것이다.  그가 내 비리를 모르고, 나도 그의 전력을 모르니 나는 거하게 공간 공유하기로 결정 하는도다.

심심해서 뮤직비디오 트와이스 cheer up을 계속해서 보고있다.  가사는 흉한 게 없어, 보는 게 그냥 이유이다.  그렇게 많이 본 화면인데,  미국 이야기를 하다 풍차가 미국 풍차가 아닌 것을 확인했다.  수백번 본 화면인데,  나도 그게 미국 풍차 아닐 것이라는 생각은 한번도 못해봤다.  이 소품의 키는 자연 바람에 움직이는 풍차다.  모터로 움직이는 것 말고..  그거 사람 눈이 모를 것 같아?  never..  그래도 웅?  소품 담당 때리지 마라.  검은 머리들 툭하면 사람 때리는 게 행복인 줄 알더라?  노란머리는 좀 덜 그러지 않나?  블랙핑크 나오고 views 카운트 속도가 1/4로 줄었다.  요즘 많이 속도가 회복됐다.

요즘 집을 보러다니면서 내가 달라진 것을 느낀다.  언젠가 youtube의 영상에서 아프리카 또는 동남아시아 어느 비포장 황토길이 왜 그토록 멋져 보였을까?  한참을 가도 도로에 차 한대가 없다.  좋다.  평화다.  내가 사는 곳은 가로수라는 게 없다.  이 사람들 수천년을 그렇게 살아온 DNA를 품고 있을까?  그럼 걱정인데?  (좀 놀다 오자.  내가 가물가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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