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촌에는 빈 집이 많다. 김제의 경우 900채가 넘는 빈 집 리스트가 있다. 집 주소, 소유자 전화번호, 언제쯤 폐가할 것인 지의 내용.
엊그제 집을 두 채 보고왔다.
처음 간 집은 자리가 좋았다. 집 일부가 남의 땅에 들어가 있다. 집 뒤로는 경계선에 딱 붙어있다. 농촌에서는 볼 수 없는 1.5m 높이의 콘크리트 벽이 설치되어 있다. 그 벽 높이로 이 집의 바닥이다. 보통 돌담을 쌓는데 이러면 그 아래 땅 주인이 돌담을 헐어내고 자기 쪽으로 남의 땅을 확보해간다. 어렸을 때 놀던 땅따먹기 게임이다.
노인이 나왔다. 이 집 마당을 보니 그 노인이 밭을 갈고 있었다. 그런데, 그 것은 이 집의 마당이다.
'저 쓰레기 언제 가져가?'
(집 앞에 쓰레기가 많이많이 쌓여있다.)
이 마당은 자기네가 구입한 지 벌써 몇 년 된다고 한다.
'아들 이름이 누군데 나오라고 할까?'
아들 이름이 그 채무자이다.
채무자는 이 땅의 소유자인 그 노인의 아들이다. 개가 심하게 짖자, 아들이 황토색 옷을 입고 모른 척 하고 다른 방으로 건너갔다. 사람 통행이 없는 끝 집. 인기척에도 눈도 돌리지 않은 것은 시선을 피한 것이다.
노인 눈빛이 뭔 지 불안하다.
뭔가 진행되고 있는 것은 알고 있는 모양이다.
벌써 여러 사람이 다녀 갔을 것이다.
이 집이나 그 집이나 나가는 길은 하나 뿐인데, 그 게 또 제삼자의 땅이다. 보통 시멘트 포장도로가 있는데, 없는 것으로 보아 소유의 표식을 한 것으로 보인다. 땅을 쓰지도 않는데 잡초도 없다. 타인이 농작물을 심지 못하게 DDT 같은 독약을 살포했을 수도 있겠다.
맹지는 살던 사람들에겐 어쩔 수 없지만, 외지인에겐 넘어서면 곤란한 선이다. 어디가나 시멘트 포장도로에 자기 땅이 있네없네라는 말을 잊지 않고 한다. 못 들은 척하면 언젠가 큰 소리를 듣게된다. 잠시 차를 대는 것도 서울 주차 인심보다 독하다. 종로의 골목길을 막았다는 뉴스를 본 사람이라면 통행을 막는 것에 거리낄 것이 있겠는가? 요샌 이런 소리를 동네 사람들끼리 하는 걸 자주 듣는다. 좋게 살면 재미 있는데, 심심한 것보단 싸움 끝에 외로운 것이 나은 모양이다.
곧 노인도 그 사실을 알게 될 것이다. 노인이 이루어놓은 재산이 이렇게 허망하게 남에게 건너가는 것을 지켜봐야 하겠지.
다른 집으로 갔다. 바다 옆이고 물을 받아두는 시설이 있었다. 100 헥타아르로 표기 돼 있다. 근처에 높은 산이 없어 물이 깨끗하진 않겠다. 빗물 받아둔 곳이고 호수라고 하기엔 운치도 없다. 그나마 악취가 나지 않아서 이상했다.
집은 산만했다. 동네 전체가 그랬다. 빈 집 앞에 농기구로 막아놓고, 곳곳에 쓰레기 태운 흔적, 무너져도 보수 않는 담, 유난히 많이 비틀어진 골목, 생각도 없이 남의 집 바로 위로 지나가는 전선, 폐가도 많았다.
할머니 눈이 슬펐다. 땅은 넓은데 대지는 10평 정도였다. 10평이나 50평이나 차이가 없을 텐데 10평이다. 폐가가 많은데 철거하지 않고, 동네는 어지럽고, 정리되지 않은 살림살이들..
할머니도 많이 찾아오는 사람 때문에 뭔가 눈치는 챘을 것이다. 얼마나 답답할까? 큰 소리친다고 해결될 일도 아니고, 뭔가 수가 있는 것도 아니고..
열심히 농사한다고 몇 년 안으로 갚을 수 있는 액수가 아니다.
이런 사람들도, 외지인이 주변에 오면 잡아먹을 듯이 달려들 겠지?
전쟁은 나쁜 놈들이 하는 게 아니었고, 우리들이 원해서 시작한 것이었다.
처음 정부가 들어서고 일자리가 없어 막막하던 시대와 벼농사를 갈아엎고 비닐하우스로 고액 대출을 받더니 결국 주저앉은 자식들의 장래
눈 앞에 봉황이 곧 보일 것 같지만, 단 한 발작이라도 삐끗하면 끝도 없이 추락한다. 수억 들여 비닐하우스를 만들어 장미를 심었는데, 일본에서 수입을 않는다면? 장미 한 송이 팔 때마다 내야하는 로열티는?
노인들이 6년치 쌀이 창고에 쌓여도 꿋꿋이 벼농사를 포기 못하는 이유를 생각해봐야 한다. 바보라서가 아니라 주저앉을 수 없어서일 것이다. 바보는 노인들이 아니고 이쪽인 것이다. 왜 나는 바보가 아닐 것이라는 망상에서 못 벗어나고 평생 가난을 거북이 등처럼 딱지 붙이고 살기를 원하는가? 소매가 기계에 말려들어가면, 보통은 소매를 자르지 못한다. 옷이 아까워서 팔까지 빨려들어가게 내버려둔다. 계약금을 줘버리면 계약금이 아까워, 실패알 것을 감지하면서도 운을 하늘에 맡기고 잔금을 치른다. 노모는 뒤로 돌아가 물 떠놓고 두 손을 비벼도 될까? 그렇게 해서 풀릴 일이라면, 자식을 대통령 시켜달라고 비는 사람들이 늘어날 덴테? 이런 사람들은 절대로 가족과도 상의하지 않는다. 그리고 세상에 한번 제대로 큰 소리치고 나아가서는 제대로 눈탱이 한번 맞고는 생존이 흔들린다. 빚은 이자가 확실히 붙지만, 비닐하우스 소득은 절대로 확실하지 않다. 그럼, 농협은 바보라서 돈만 꿔주고 남이 돈 버는 걸 구경만 하고 있겠냐? 농협사업단을 꾸려 자기들이 직접하지? 남의 밑에 취직해서 월급을 받아야 제일 많이 버는, 일개미 계급이 사업을 한다고 나서면 직원으로 일하는 산업연수원 월급 대기도 어려워진다. 자본 투입은 확실하지만 어떤 것도 자본 이익은 확실한 게 없다. 고도의 계산 능력이 있어야 이익을 남긴다.
오는 길에 전주를 지나다, 식사를 했다. 전주 신도시란다. 전에 두번 전주에 갔다 다시는 전주에 가지 않겠다고 생각했는데, 신도시라니 이해가 가지 않았다. 거대한 단지가 모두 새로 지어지고 있었다. 중국 자본은 이런 식으로 투자할 리 없다. 완전히 계획된 도시였다. 길은 역시 한국적으로 좁았다. 나란히 주차를 하고나면 왕복 2차선만 남는다. 길과 수직으로 주차하도록 해야 편하게 상가를 방문할 수 있다. 주차 방향, 주차 수용량은 대단히 중요한 사항이다. 양식을 시켰는데, 서빙하는 사람들은 다 20대의 젊은이들이었다. 맛을 내려면 적어도 이탈리아, 프랑스 같은 데서 몇년은 공부해야 하는 것 아닌가? 매뉴얼대로 하는 장사는 중국집 짜장면보다 맛을 내기 어려울 텐데.. 역시 맛은 없었다. 셀프라는 음료수도 맛이 없었다. 컵만 씻기 어렵게 키가 높았다. 서빙은 서양을 흉내냈는데 기계음이 난다. 옆에선 식탁을 치우는데, 계속 의자를 끌고있다. (손님 얼른 먹고 꺼지세요.) 서빙 또는 식탁을 정리를 하던 사람이 카운터까지 본다.
근처에 호화 아파트들이 들어서고 있다. 전라도 물류를 생각한다면 전남과 전북의 중심쯤이 좋은 장소 같다. 쌀을 팔고 소를 팔아서 모은 돈으로 아파트를 사둘 일 있을까? 일본 자본은 일본 투자가 어둡다고 생각되어져 이리 몰리는 것일까?
직업이 있든 없든, 서울만큼 사람이 많은 것도 아니고, 유통의 한 중심도 아니며..
한 번 지어놓고 쓸 일도 없을 전주 올림픽 경기장을 보면서..
무슨 때 늦은 아파트 투길까? 하는 생각.. 엔진 하나 팔면서 반은 로열티로 내면 파는 게 노동력 뿐이라는 사실. 그 오랜 세월을 만들었으면서 엔진 하나 내 손으로 못 만든다면 아파트 카드 게임 밖에 뭘 더 해볼 게 없겠다는 생각은 든다. 게다가 소 키우고 돼지 키우고 닭 키우고.. 고속도로를 가다 익산을 통과하면 언제나 나는 냄새. 그 속에서 사람이 산다고 하면 그 말한 사람이 정상은 아니겠지?
뭐라고 말할까? 두 노인의 슬픈 눈빛. 나나 나의 어머니에게서도 볼 수 있겠다. 나의 가족 중의 한 사람이 내 이름으로 대출을 받았다. 그 돈이 공기처럼 가벼이 사라질 것을 나는 안다. 이젠 좀 정신을 차리나 싶었는데 병이 더 커졌다. 모르는 곳으로 이사가고 연락을 끊어야 할 지 고민이다. 어머니를 생각하면 함부로 그럴 수도 없어 진퇴양난이다. 발설하면 뜻은 이루어지겠지만, 어머니의 본심이겠는가? 이 세월을 어떻게 해야 마하 10으로 보내버릴까?
신고? 고소? 약자만 다친다. 불법대출한 사장이 구속될까? 명의 도용해서 대출을 시도한 내 가족이 구속될까?
어머니께 감사한다. 어머니가 어렵게 담은 열무김치 하나로도 식사 잘 하시는 게 눈물겹다. 박수치면서 허준 보시는 것도 고맙다. 나도 아프다. 허준을 본 게 열번도 넘었다. 질려야 정상이라서 말이다. 나는 나를 뭐라고 설명할까? 있는 존재? 없는 존재? 없고 말지 존재? 어머니가 나를 살리는 힘이다. 오랜 시간 내가 어머니를 모시는 줄 알았는데 알고보니 거꾸로 돼 있었다. 어머니는 1920년대를 살고 계시고 나는 현대라는 미신을 믿고 있다. 내가 지금을 믿는 것처럼 어머니도 태생년을 신봉하고 있다.
빈 집 찾기..에다 뭔가 3.0인가를 찾아보니, 서른평짜리 대지 공터를 3,000만원 달라고 한다. 위치를 고려하면 감정평가로 900만원도 안 되는 땅이다. 팔다팔다 안 되는 땅들만 빈 집 찾기에 등록이 돼 있다. 거의가 다 농지인데 도시인이 감히 꿈도 꿀 수 없는 땅이다.
자식을 잘못 뒀다는 것, 선량한 척 대충 살아온 인생을 되돌아보는 기회가 되었으면 좋겠다. 노인들은 바닥치고 통곡하면 분이 풀릴 지 몰라도 젊은 인생들은 이를 어찌하랴. 일심히 옆 사람 (가족)에게 화풀이한다고 될 일이라면.. 타인에겐 대충해도 되지만, 가족에겐 그런 것이 절대로 용납되지 않는다. 어머니도 그런 사람이라 애처롭다.
......
내 파일은 공유를 안 했는데, 어떻게 comment가 달리 지? 부탁인데 남의 개인 글에 comment 하지 맙시다. 국밥집 지권들인가? 아바 대학생인가? (정확히 쓰면 불려갈까봐 하는 소심증 - 정신 통제국에 사는 사람 이해해주길)
엊그제 집을 두 채 보고왔다.
처음 간 집은 자리가 좋았다. 집 일부가 남의 땅에 들어가 있다. 집 뒤로는 경계선에 딱 붙어있다. 농촌에서는 볼 수 없는 1.5m 높이의 콘크리트 벽이 설치되어 있다. 그 벽 높이로 이 집의 바닥이다. 보통 돌담을 쌓는데 이러면 그 아래 땅 주인이 돌담을 헐어내고 자기 쪽으로 남의 땅을 확보해간다. 어렸을 때 놀던 땅따먹기 게임이다.
노인이 나왔다. 이 집 마당을 보니 그 노인이 밭을 갈고 있었다. 그런데, 그 것은 이 집의 마당이다.
'저 쓰레기 언제 가져가?'
(집 앞에 쓰레기가 많이많이 쌓여있다.)
이 마당은 자기네가 구입한 지 벌써 몇 년 된다고 한다.
'아들 이름이 누군데 나오라고 할까?'
아들 이름이 그 채무자이다.
채무자는 이 땅의 소유자인 그 노인의 아들이다. 개가 심하게 짖자, 아들이 황토색 옷을 입고 모른 척 하고 다른 방으로 건너갔다. 사람 통행이 없는 끝 집. 인기척에도 눈도 돌리지 않은 것은 시선을 피한 것이다.
노인 눈빛이 뭔 지 불안하다.
뭔가 진행되고 있는 것은 알고 있는 모양이다.
벌써 여러 사람이 다녀 갔을 것이다.
이 집이나 그 집이나 나가는 길은 하나 뿐인데, 그 게 또 제삼자의 땅이다. 보통 시멘트 포장도로가 있는데, 없는 것으로 보아 소유의 표식을 한 것으로 보인다. 땅을 쓰지도 않는데 잡초도 없다. 타인이 농작물을 심지 못하게 DDT 같은 독약을 살포했을 수도 있겠다.
맹지는 살던 사람들에겐 어쩔 수 없지만, 외지인에겐 넘어서면 곤란한 선이다. 어디가나 시멘트 포장도로에 자기 땅이 있네없네라는 말을 잊지 않고 한다. 못 들은 척하면 언젠가 큰 소리를 듣게된다. 잠시 차를 대는 것도 서울 주차 인심보다 독하다. 종로의 골목길을 막았다는 뉴스를 본 사람이라면 통행을 막는 것에 거리낄 것이 있겠는가? 요샌 이런 소리를 동네 사람들끼리 하는 걸 자주 듣는다. 좋게 살면 재미 있는데, 심심한 것보단 싸움 끝에 외로운 것이 나은 모양이다.
곧 노인도 그 사실을 알게 될 것이다. 노인이 이루어놓은 재산이 이렇게 허망하게 남에게 건너가는 것을 지켜봐야 하겠지.
다른 집으로 갔다. 바다 옆이고 물을 받아두는 시설이 있었다. 100 헥타아르로 표기 돼 있다. 근처에 높은 산이 없어 물이 깨끗하진 않겠다. 빗물 받아둔 곳이고 호수라고 하기엔 운치도 없다. 그나마 악취가 나지 않아서 이상했다.
집은 산만했다. 동네 전체가 그랬다. 빈 집 앞에 농기구로 막아놓고, 곳곳에 쓰레기 태운 흔적, 무너져도 보수 않는 담, 유난히 많이 비틀어진 골목, 생각도 없이 남의 집 바로 위로 지나가는 전선, 폐가도 많았다.
할머니 눈이 슬펐다. 땅은 넓은데 대지는 10평 정도였다. 10평이나 50평이나 차이가 없을 텐데 10평이다. 폐가가 많은데 철거하지 않고, 동네는 어지럽고, 정리되지 않은 살림살이들..
할머니도 많이 찾아오는 사람 때문에 뭔가 눈치는 챘을 것이다. 얼마나 답답할까? 큰 소리친다고 해결될 일도 아니고, 뭔가 수가 있는 것도 아니고..
열심히 농사한다고 몇 년 안으로 갚을 수 있는 액수가 아니다.
이런 사람들도, 외지인이 주변에 오면 잡아먹을 듯이 달려들 겠지?
전쟁은 나쁜 놈들이 하는 게 아니었고, 우리들이 원해서 시작한 것이었다.
눈 앞에 봉황이 곧 보일 것 같지만, 단 한 발작이라도 삐끗하면 끝도 없이 추락한다. 수억 들여 비닐하우스를 만들어 장미를 심었는데, 일본에서 수입을 않는다면? 장미 한 송이 팔 때마다 내야하는 로열티는?
노인들이 6년치 쌀이 창고에 쌓여도 꿋꿋이 벼농사를 포기 못하는 이유를 생각해봐야 한다. 바보라서가 아니라 주저앉을 수 없어서일 것이다. 바보는 노인들이 아니고 이쪽인 것이다. 왜 나는 바보가 아닐 것이라는 망상에서 못 벗어나고 평생 가난을 거북이 등처럼 딱지 붙이고 살기를 원하는가? 소매가 기계에 말려들어가면, 보통은 소매를 자르지 못한다. 옷이 아까워서 팔까지 빨려들어가게 내버려둔다. 계약금을 줘버리면 계약금이 아까워, 실패알 것을 감지하면서도 운을 하늘에 맡기고 잔금을 치른다. 노모는 뒤로 돌아가 물 떠놓고 두 손을 비벼도 될까? 그렇게 해서 풀릴 일이라면, 자식을 대통령 시켜달라고 비는 사람들이 늘어날 덴테? 이런 사람들은 절대로 가족과도 상의하지 않는다. 그리고 세상에 한번 제대로 큰 소리치고 나아가서는 제대로 눈탱이 한번 맞고는 생존이 흔들린다. 빚은 이자가 확실히 붙지만, 비닐하우스 소득은 절대로 확실하지 않다. 그럼, 농협은 바보라서 돈만 꿔주고 남이 돈 버는 걸 구경만 하고 있겠냐? 농협사업단을 꾸려 자기들이 직접하지? 남의 밑에 취직해서 월급을 받아야 제일 많이 버는, 일개미 계급이 사업을 한다고 나서면 직원으로 일하는 산업연수원 월급 대기도 어려워진다. 자본 투입은 확실하지만 어떤 것도 자본 이익은 확실한 게 없다. 고도의 계산 능력이 있어야 이익을 남긴다.
오는 길에 전주를 지나다, 식사를 했다. 전주 신도시란다. 전에 두번 전주에 갔다 다시는 전주에 가지 않겠다고 생각했는데, 신도시라니 이해가 가지 않았다. 거대한 단지가 모두 새로 지어지고 있었다. 중국 자본은 이런 식으로 투자할 리 없다. 완전히 계획된 도시였다. 길은 역시 한국적으로 좁았다. 나란히 주차를 하고나면 왕복 2차선만 남는다. 길과 수직으로 주차하도록 해야 편하게 상가를 방문할 수 있다. 주차 방향, 주차 수용량은 대단히 중요한 사항이다. 양식을 시켰는데, 서빙하는 사람들은 다 20대의 젊은이들이었다. 맛을 내려면 적어도 이탈리아, 프랑스 같은 데서 몇년은 공부해야 하는 것 아닌가? 매뉴얼대로 하는 장사는 중국집 짜장면보다 맛을 내기 어려울 텐데.. 역시 맛은 없었다. 셀프라는 음료수도 맛이 없었다. 컵만 씻기 어렵게 키가 높았다. 서빙은 서양을 흉내냈는데 기계음이 난다. 옆에선 식탁을 치우는데, 계속 의자를 끌고있다. (손님 얼른 먹고 꺼지세요.) 서빙 또는 식탁을 정리를 하던 사람이 카운터까지 본다.
근처에 호화 아파트들이 들어서고 있다. 전라도 물류를 생각한다면 전남과 전북의 중심쯤이 좋은 장소 같다. 쌀을 팔고 소를 팔아서 모은 돈으로 아파트를 사둘 일 있을까? 일본 자본은 일본 투자가 어둡다고 생각되어져 이리 몰리는 것일까?
직업이 있든 없든, 서울만큼 사람이 많은 것도 아니고, 유통의 한 중심도 아니며..
한 번 지어놓고 쓸 일도 없을 전주 올림픽 경기장을 보면서..
무슨 때 늦은 아파트 투길까? 하는 생각.. 엔진 하나 팔면서 반은 로열티로 내면 파는 게 노동력 뿐이라는 사실. 그 오랜 세월을 만들었으면서 엔진 하나 내 손으로 못 만든다면 아파트 카드 게임 밖에 뭘 더 해볼 게 없겠다는 생각은 든다. 게다가 소 키우고 돼지 키우고 닭 키우고.. 고속도로를 가다 익산을 통과하면 언제나 나는 냄새. 그 속에서 사람이 산다고 하면 그 말한 사람이 정상은 아니겠지?
뭐라고 말할까? 두 노인의 슬픈 눈빛. 나나 나의 어머니에게서도 볼 수 있겠다. 나의 가족 중의 한 사람이 내 이름으로 대출을 받았다. 그 돈이 공기처럼 가벼이 사라질 것을 나는 안다. 이젠 좀 정신을 차리나 싶었는데 병이 더 커졌다. 모르는 곳으로 이사가고 연락을 끊어야 할 지 고민이다. 어머니를 생각하면 함부로 그럴 수도 없어 진퇴양난이다. 발설하면 뜻은 이루어지겠지만, 어머니의 본심이겠는가? 이 세월을 어떻게 해야 마하 10으로 보내버릴까?
신고? 고소? 약자만 다친다. 불법대출한 사장이 구속될까? 명의 도용해서 대출을 시도한 내 가족이 구속될까?
어머니께 감사한다. 어머니가 어렵게 담은 열무김치 하나로도 식사 잘 하시는 게 눈물겹다. 박수치면서 허준 보시는 것도 고맙다. 나도 아프다. 허준을 본 게 열번도 넘었다. 질려야 정상이라서 말이다. 나는 나를 뭐라고 설명할까? 있는 존재? 없는 존재? 없고 말지 존재? 어머니가 나를 살리는 힘이다. 오랜 시간 내가 어머니를 모시는 줄 알았는데 알고보니 거꾸로 돼 있었다. 어머니는 1920년대를 살고 계시고 나는 현대라는 미신을 믿고 있다. 내가 지금을 믿는 것처럼 어머니도 태생년을 신봉하고 있다.
빈 집 찾기..에다 뭔가 3.0인가를 찾아보니, 서른평짜리 대지 공터를 3,000만원 달라고 한다. 위치를 고려하면 감정평가로 900만원도 안 되는 땅이다. 팔다팔다 안 되는 땅들만 빈 집 찾기에 등록이 돼 있다. 거의가 다 농지인데 도시인이 감히 꿈도 꿀 수 없는 땅이다.
자식을 잘못 뒀다는 것, 선량한 척 대충 살아온 인생을 되돌아보는 기회가 되었으면 좋겠다. 노인들은 바닥치고 통곡하면 분이 풀릴 지 몰라도 젊은 인생들은 이를 어찌하랴. 일심히 옆 사람 (가족)에게 화풀이한다고 될 일이라면.. 타인에겐 대충해도 되지만, 가족에겐 그런 것이 절대로 용납되지 않는다. 어머니도 그런 사람이라 애처롭다.
......
내 파일은 공유를 안 했는데, 어떻게 comment가 달리 지? 부탁인데 남의 개인 글에 comment 하지 맙시다. 국밥집 지권들인가? 아바 대학생인가? (정확히 쓰면 불려갈까봐 하는 소심증 - 정신 통제국에 사는 사람 이해해주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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