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uesday 15 March 2016

우주

우주는 나를 비춰주는 거울이다.
우주를 바라볼 때 내 자신이 보인다.

날이 샐 때까지 학원에 오락가락 하는 사람은 죽은 뒤에도 자신을 볼 수 없다.
오늘 날과 같이,  세계 60억 인구가 모두 이웃의 도둑일 때,  단 한번도 자신의 인생에 대해서 어떤 물음도 가지지 못한다.

우주를 바라볼 때,  내가 보이기 시작하고,  내가 왜 지구에 와서,  무엇을 하고 결국 어디로 가는 지,  생각이나마 해 볼 수 있다.

자기 자신이 뭐 대단한 존재였다고,  쉴 새 없이,  목구멍에 밥 집어넣고 즐거워한다.
왜 그렇게 인간은 자신을 위한 노예가 되면서도 즐거워 할까?

섹스로 엑시터시에 오를 때,  거기에 내가 있었던 것처럼 생각되겠지만,  dna에 프로그램된 것을 그대로 따라가고 있는 것이다.  나는 무언가 다른 세상으로의 전달자처럼 생각되기도 하지만,  보람도 없이 어디론가 날려보내는 민들레 꽃씨 프로그램이다.  그것은 내가 느티나무로 600년을 살아도,  모기로 태어나 열흘을 이 땅에 살다가도 dna가 키워낸 하수인이다.

우리에겐,  '세상을 전달한' 미덕 같은 것이란 없다.  세상을 느낄 수는 있어도,  어떤 것도 나의 '것'이 있지 않다.  그 '느끼는 것'은 우주가 나에게 할당한 관용이다.  디오게네스를 알면 이 말이 이해가 되겠지..

폼페이에서 젊은 날에 생을 마감한 사람과 생생한 인생을 느끼고 있는 나 자신도 공기보다 가벼이 사라져서 모든 기억에서 지워지게 될 것이다.

아무도 자기 인생을 제대로 살고 가는 인간은 없다.



No comments:

Post a Comment

Note: only a member of this blog may post a com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