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에는 자작 관련한 게 너무 많다.
중국의 이자율 변동이 있었고, 주변국 주식 시장이 요동쳤다. 그래서 한번 더 내리쳐서 바닥을 확실히 치게 만들려면 어떤 뉴스가 필요할까?
요즘, 보복 운전 이야기가 많다. 하나 같이 그걸 보는 사람들의 발언은 이해 되지 않았다.
보복 운전의 피해자가 있다면, 가해자가 있었을 것이다. 왜 가해자 측 영상은 한번도 보여주려 하지 않을까? 이런 뉴스를 보면서 누구누구의 정신 상태가 온전하지 못 할까?를 생각해본다. 먼저 자극을 해서 그 도발로 피해를 보는 사람이 어떻게 순진한 피해자가 되는 것일까?
보복이라면 이에 상응하는 또는 그 이상의 행위가 있었다는 추측이 가능한데, 이 부분 뉴스에서 탈락시킨 것은, 올바른 보도의 태도가 아니다. 이런 것도 '충격, 경악'류의 뉴스로 나는 이런 제목이 나오면 아예 읽지 않는다.
개선의 노력이 너도 없고 나도 없는 상황이라면, 불편을 감수해야 할 것이다. 면허를 미국에서 수입할 수도 없을 테니 말이다. 내가 판사라면 그만큼 넉넉하게 똑똑해졌을까?
뼈가 부러지고, 사람이 죽어야 판결이 가능하다면, 정신이 올바르지 못한 것은 그 최종 판결자일 것이다. 국민은 그 엉터리 판결에 불만이 없다. 모두 동류항에 있으므로 그렇다.
자국 상표가 붙으면 자기 나라 소득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국민의 대부분일 것이다.
어느 기업은 일본의 5%로 한국의 95%를 지배한다. 관련자들은 한국어를 거의 사용하지 못한다. 국민의 거의 모두는 그 기업이 자국 기업이라고 믿고 있다.
같은 논리라면, 코카콜라도 한국의 기업에서 만든다. 국내 생산이니 상표를 붙일 필요도, 확인할 이유도 없겠지..
더 큰 회사라도 상당 부분의 이익이 외국으로 빠져나간다. 선진국에서 확보하고 있는 특허료, 지적재산료, 로열티를 빼고나면 기업 활동만 있었지 이익이랄 것도 없다.
또, 큰 나라에는 반 값에 수출하고, 국내에서는 두 배로 쳐서 사주니 모든 수출 비용은 적어도 가격의 반은 국내 소비자가 대신 내주고 있는 것이 될 것이다. 이런 내용을 소비자가 안다고 해도 '애국심'으로 마비되고 곧 잊어버린다. 언젠가 되돌려지겠지.. 그래서 경부고속도로 통행료는 아직도 받고 있다. 아무도 묻지 않는다. 정직하게 요긴하게 쓰고 있으시겠지..
일본은 2차대전 때 유태인으로부터 전쟁비용을 지원 받았다. 이 전쟁에서 시베리아철도의 역할이 컸지만, 러시아는 재정적으로 곤란을 겪고 있었고, 또 그 철도가 완성되었다 해도 공중 폭격에 의한 보수 비용이 처음 철도 시설비용만큼 들어갔을 것이다. 이 모습을 미국은 멀리서 지켜보고 있었다.
전쟁이란 어디서든 지켜보는 이가 있을 것이다. 어떤 행동이 각 나라에 이익인 지 생각하면서 말이다..
전쟁이든, 정치든, 또 그 무엇이든..
비용의 지불 능력이 없으면 애초부터 승산이란 없다. 도저히 비빌 언덕이 없으면 마모쩌퉁처럼 하겠지.. 불쌍한 농민들 시베리아 국경까지 끌고다니면서 굶겨죽였다. 마오쩌퉁도 미국의 군수 지원을 받기는 했으나 상대(적)만큼은 아니었을 것이다.
역사상 자국민을 가장 많이 죽인 나라는 러시아와 중국이다. 가련한 국민이다. 그게 왜 슬프지 않은 거지?
(사람의 말 한 조각을 떼어다가 모함을 하는 데 쓰는 사람이 많다. 이 내용은 러시아와 중국의 약점을 꼬집는 내용이 아니다. 같은 내용을 자국에 대해서 말하지 못할 뿐이다. 만약 우리가 중국에서 태어났다면, 러시아와 한국, 일본의 예를 들었을 것이다. 내가 러시아인이라면, 중국, 한국, 일본의 예를 들었을 것이다. 사람은 다 고만고만한 정신 상태로 초라하다. 타국은 건전해야 하고, 아국은 대충 얼버무려도 되고.. 이런 태도로 사는 것 아니었던가? 피부색이 자기보다 어둡다고 하던 사람이, 바로 그 어두운 피부를 하고 태어났더라면 지금의 자신과 같은 인종을 놀려대고 있었을 것 아닌가? 아무리 애써도 사람은 다 정상은 아니다. 나라가 무슨 차이라고 외국의 중고등 학생이 생각 없이 한 말들을 꾀다 바치는 뉴스가 정상 상태로 보이는가? 거짓말쟁이를 선출할만큼 국민의 수준이 낮으면 뉴스가 온통 '일러바치기'이다.)
그래서 돈 없이 한다는 게 고작해야 '애국심'으로 국민을 쥐어짜고, 거짓말로 꿈의 나라의 환상을 보여줘야 하고, 이간질로 국민이 지성을 깨우지 못하게 해야한다. 북한에서는 그것을 '강성대국'이라고 한다. 세계에서 제일 가난한 연습을 50년이나 넘게 해온, 가난이라는 것으로는 세계 최강으로 단련된 체질이므로 이제는 지겨워서라도 부자가 될 법도 한데 그 걸 못한다.
그 가난도 미국 탓이란다. 언제나 가난한 사람은 누군가를 탓만 하고 있다. 죽고나서도 완전히 죽지 못하고 유령으로 떠돌면서 남 탓하기를 멈추지 못할 것이다. 그러는 동안에도 남들은 차 사고 집 사고 할 것 다하는데 말이다.. 더구나 종교도 없어 '내세'라는 것도 없어, 아낌 없이 현재를 껴안고 있어야 할 현존 사상들이 그 모양이다.
정말 잘 살고 싶었으면, 미국을 우회해서 달리 방도를 찾았을 70년 세월이다. '강성대국'이란 걸 물을 주며 키웠는데, 어찌하여 70년 동안이나 그 싹을 보지 못한단 말인가? 이 질문을 7살 이하의 아이들에게 하는 게 아니다. 외교관이라고 유엔에 나아가서 영어로 뭐라고 하는 사람들에게 하는 말이다. 그 사람들의 표정은 어떻게 지어도 왜 그리도 불쌍해 보이는 걸까?
(왜 북한 외교관의 말투는 버릇이 없을까? '나 겁 안 먹었소.'라고 표정이 말하고 있다. 그 표정은 잔뜩 겁내고 있어서 나오는 표정인 것을 모르는 사람들만 모르는 바로 그 내용이다. 한국도 별 차이 있나? 초등학생 글 읽는 소리? 숨을 헐떡이며 외우 둣 읽는다. 누가 겁을 줬을까? 뉴스에 나오는 소대장 목소리도 이상하다. 애들 연설문 외우 듯이 한다. 항상 누군가의 눈치를 보는 습관이라 그런다. 남이든 북이든.. 미국 군인들 보면 좀 멋 있다는 것 못 느끼나?)
(포로 수용소에서 북한쪽으로 돌아가는 병사들, 모두 입고 있던 옷을 찢어버리고 분계선을 건너갔다. 세계 사람들은 그 장면을 어떻게 기억하고 있을까? '결백을 증명해서 살아내려고 하는 발버둥' 이 것은 거지보다 불쌍한 모습이었다. 그런데, 70년이 된 지금도 그러고 있다. 장병이 아닌 영어를 사용할 줄 아는 외교관 계급이.. 인생이라는 게 어떻게 결백의 입증으로 시작해서 결백의 입증으로 끝난다는 말인가? 그게 무슨 인생이랴? 우리 집 개도 그런 건 없다.)
가난한 사람들은 '논리 놀이'가 인생의 중요한 부문이겠지만, 부자들에겐 '인생을 누리는 게' 중요하다. 언제? 지금!
가난에게 내일?은 무엇이 기다릴까? 여러분의 손자가 모든 부채를 짊어지고 괴로워할 테지..
정치가 건강하지 못하면 저런 이상한 기업들이 꼭 필요하다. 요새 말들 해대는 '지배구조'라는 것이다. 건강한 정치 경제 구조 안에서 나라가 운영된다면, 왜 뒷 돈이 필요하고, 특혜가 필요하고, 초범 개전의 정이라는 핑계로 집행유예가 필요하고, 환율을 흔들고 이자율을 흔들고, 뉴스를 자작하겠는가? (나도 정치를 했으면 저런 모습이었을 게 분명하다. 그래서 굳건하지도 않을 나의 가치관이라는 건 쓸 의미도 없다.)
그래서 5%가 95%를 집어 삼키는 지구 역사상 이해할 수 없는 '한류'가 이 세상 유행어로 떠다닐 수 있는 것이다. ('애국, 한류'의 허풍 뒤에서 사라지는 눈 먼 돈들)
'나는 이 정치와 이 경제가 잘못이오 !'라고 말할 근거가 없다. 올바른 정치라는 것이 규칙으로 정해진 것도 아니다. 문구가 없는 것은 아니나, 그 걸 누가 지키고 있나? 아무도 안 지키면서 가난한 사람의 머릿 속에서만 유령처럼 떠도는 연기 같은 것이다.
특정 종교를 안 믿는 것도 빨갱이라고 말하는 팔갱이의 올바른 행동의 근거는 무엇인가?
'우리'라고 하는 말이 요즘 세상에 쓰이는 대로의 정확한 뜻은 '니 거냐 내 거냐? 주인이 따로 있더냐'이다.
삿대질 하는 사람은 존경받는다. 이것도 굳이 문화라고 말하자면, 특이한 문화이다. 이제 이 시점에서 누구도 차분한 세상으로 돌아갈 수는 없다. 쉬지 않고 싸우는 일만 남았다.
대학교수들마저 자신이 빨갱이 아님을 강조하기 위해서 누군가를 지목하고 삿대질 해야한다.
중국의 어느 드라마에 나온 대목에 이런 게 있다.
사상 비판 시간이다.
동네 사람들이 강당에 둘러앉아 있다.
누군가를 비판해야 한다.
서로들 눈치를 보느라 말을 못하고들 있다.
교사인 사람이 분위기도 이상하고 하여 화장실에 잠깐 다녀온다고 하고 밖에 나갔다 왔다.
그리고는 이 교사는 사상 비판을 받고 강제 노역장으로 끌려갔다.
어느 나라는 (이게 어찌 한 나라 안에서만 일어나는 일이겠는가?) 아이를 낳고, 손자를 낳아 살아가면서 철조망 건너 사람들을 원수라고 가르치고 있다.
(어느 나라의 역사를 보나 건전한 역사는 없다. 황색인과 흑인이 그 피부 때문에 피해를 보는 것은 누가 책임져야 할까? 신이 아니면 누가? 이 질문에 신은 결코 대답을 못한다.)
왜, 누군가를 욕하는 사람은, 깨끗하다고 믿어줘야 하는 것일까? 늑대 소년은 늑대보다는 항상 나은 것일까?
이 땅의 사람들도 아이를 낳고, 배울 것도 없는 학교에 수용해서 시간을 보내게 하고, 스트레스를 몸통 가득 채우게 하고, 또 똑 같은 것을 손자에게 대물림 하게 한다.
세상에 '옳다는 것'은 없다.
그 비슷한 게 있다면, '그리 하지는 말자'는 것은 있다. 그 것도, 권력에게는 아무 제한이 소용이 없다.
권력은 아무 때나 법을 만들 수도 있고, 유예도 할 수도 있다.
국민 모두가 그것을 모른다고 가정한다면, 왜 국민 모두 출세하려고 그 안달들인가?
아주 선명한 것은..
그 국민에 그 정치이고 그 경제이다.
권력은 그것을 전혀 고칠 생각이 없다. 불편을 못 느끼고 오히려 유용한 것을 왜 그만 두겠는가?
조용한 국민은 그동안 많이 참고 있었던 것일까?
어부지리를 바라면서, 누군가 내 대신 피해를 몽땅 뒤집어쓰기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피해를 보면서도 그 긴 세월을 견뎌왔던 국민의 이익은 무엇인가?
한 마디 한 마디에 속아 핏대 세우는 순진한 국민은 아무 잘못이 없다고?
이 모든 게 그 국민의 작품인 것을 언제쯤 알게될까?
듣기에 중국에서 서열이 없다고 한다. 군대도 계급이 없었다고 한다.
여기는 그렇지 않다. 가정에서도 엄격히 서열이 존재한다. 직장에서는 또 여러 단계의 서열이 있다. 이 모든 서열을 겪는 사람들 입장에서는 인도의 다섯 계급보다 훨씬 복잡하다.
그래서 바보가 그 집단을 엉망으로 만드는 구조가 완성돼있다.
그래서 중국은 수천년 역사 속의 중국처럼 다시 군림하게 될 것으로 보인다.
이런 서열은 나라 발전의 큰 장애물이다.
지금처럼 아무 것도 스스로 고쳐질 게 없다고 한다면?
우리는 일벌이 되어서, 열심히 누군가를 삿대질을 하면서 한 평생을 망그러뜨리자..
또, 증손자 이후까지 영원히 대물림 하자.
인생이 재미 없는 것은 누구의 책임일까?
그들?
우리 부모?
그 답에 '나'가 없으면, 그 인생은 쓸모가 없다. 그 후세도 역시..
할아버지 대에 있었던 일이다.
북한군이 동네에 나타난 것 같으면, 인공기를 집 앞에 걸어두고, 한국군이 나타난 것 같으면, 한국기를 걸어둔다. 유엔군이 압록강까지 갔을 때, 북한 주민들도 이와 같이 국기 걸어달기를 했을 테지..
손자들아 이 목숨 건 국기 걸어달기가 재미 있을 것 같니?
사람은, 뒤통수로 하는 말을 이해하지 못한다.
북진통일이라는 말이 있었다.
공산당을 압록강 밖으로 몰아내자는 말이다.
얼마나 속 시원한 소리인가?
그럼, 뒤통수로 하는 말은 뭘까?
대가이다.
그래서 이런 말이 성립되는 것이다.
'당신의 남편과, 당신의 아들들을 압록강 총알받이로 써야겠소. 내놓으시오.'
'모든 재산을 몰수하겠소.'
이들은 절대로 모른다.
이 것이 특정 권력을 보호하기 위한 사망이고, 탈취인 것을..
또, 국가가 권력의 것이지, 단 한번도 국민의 것이 아니었다는 것을..
세상 일은 저울의 평형처럼, 이루는 것에 상응하는, 대개는 더 큰 손해가 함께한다.
이 것을 두고, 속았느니 하는 것이 맞는 말일까?
순진한 것은 모든 책임을 감당해야 한다면 억울할 것이다. 순진? 의타적이지 못하면 세상을 견뎌내기 힘들어질 것이다. 지금 세상에 '순진'은 적어도 공용어가 아닌 것은 알려줘야 할 것이다.
독일의 분할은 독일이 강하고 비범해서 그리 됐다.
한국의 분할은 한국이 미국, 소련, 일본, 미국의 국경이어서 그렇다.
그것도 한반도 스스로 자비로 순찰을 하고 있다.
서서히 미국은 일본을 치켜세우고 있다.
한국이 마지막에 붙들 바지가랭이라면? 미국일까? 중국일까?
일본은 미국의 믿을만한 사냥개 역할을 감당할 수 있지만,
한국에게서 기대하는 것은 아무 것도 없을 것이다.
어느 쪽으로 쏠리든, 그들은 한반도 위에서 불꽃놀이를 할 것이다.
한반도를 위해서 하는 일들 같지만, 우리 집만 부셔질 뿐이다.
한국의 부자들은 다 돌아갈 자기 나라가 있는데, 국민은 물에 빠져죽어도 여기서 견뎌야 한다. 그러면 걱정은 누가해야 하는 걸까? 스스로 해야지..
그 다음의 예고편은, 피난, 기근, 가난, 원조, 구걸, 사망 같은 휴식..
다시 70년 전으로 돌아가 쳇바퀴 돌리기..
(내가 완벽하고 견교하게 지켜낼 수 없는 도덕은, 내가 주장할 수 없다.)
(나는 왜 이렇게 끄적거릴까? 잘 나서? 잘 난 게 끄적거릴까? 천재여서? 천재가 끄적거릴까? 할 말이 있어서? 할 말이 있으면 미리 행동했겠지.. 가끔 스스로의 언어를 보면, 누군가 대신 짊어지길 바라는 고충을 살며시 흘리는 행위로 보여 비겁하다는 생각이 든다. 심심해서 끄적거리는 걸로.. 나도 이렇게 한심한 인생으로 남처럼 묻어간다.)
중국의 이자율 변동이 있었고, 주변국 주식 시장이 요동쳤다. 그래서 한번 더 내리쳐서 바닥을 확실히 치게 만들려면 어떤 뉴스가 필요할까?
요즘, 보복 운전 이야기가 많다. 하나 같이 그걸 보는 사람들의 발언은 이해 되지 않았다.
보복 운전의 피해자가 있다면, 가해자가 있었을 것이다. 왜 가해자 측 영상은 한번도 보여주려 하지 않을까? 이런 뉴스를 보면서 누구누구의 정신 상태가 온전하지 못 할까?를 생각해본다. 먼저 자극을 해서 그 도발로 피해를 보는 사람이 어떻게 순진한 피해자가 되는 것일까?
보복이라면 이에 상응하는 또는 그 이상의 행위가 있었다는 추측이 가능한데, 이 부분 뉴스에서 탈락시킨 것은, 올바른 보도의 태도가 아니다. 이런 것도 '충격, 경악'류의 뉴스로 나는 이런 제목이 나오면 아예 읽지 않는다.
개선의 노력이 너도 없고 나도 없는 상황이라면, 불편을 감수해야 할 것이다. 면허를 미국에서 수입할 수도 없을 테니 말이다. 내가 판사라면 그만큼 넉넉하게 똑똑해졌을까?
뼈가 부러지고, 사람이 죽어야 판결이 가능하다면, 정신이 올바르지 못한 것은 그 최종 판결자일 것이다. 국민은 그 엉터리 판결에 불만이 없다. 모두 동류항에 있으므로 그렇다.
자국 상표가 붙으면 자기 나라 소득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국민의 대부분일 것이다.
어느 기업은 일본의 5%로 한국의 95%를 지배한다. 관련자들은 한국어를 거의 사용하지 못한다. 국민의 거의 모두는 그 기업이 자국 기업이라고 믿고 있다.
같은 논리라면, 코카콜라도 한국의 기업에서 만든다. 국내 생산이니 상표를 붙일 필요도, 확인할 이유도 없겠지..
더 큰 회사라도 상당 부분의 이익이 외국으로 빠져나간다. 선진국에서 확보하고 있는 특허료, 지적재산료, 로열티를 빼고나면 기업 활동만 있었지 이익이랄 것도 없다.
또, 큰 나라에는 반 값에 수출하고, 국내에서는 두 배로 쳐서 사주니 모든 수출 비용은 적어도 가격의 반은 국내 소비자가 대신 내주고 있는 것이 될 것이다. 이런 내용을 소비자가 안다고 해도 '애국심'으로 마비되고 곧 잊어버린다. 언젠가 되돌려지겠지.. 그래서 경부고속도로 통행료는 아직도 받고 있다. 아무도 묻지 않는다. 정직하게 요긴하게 쓰고 있으시겠지..
일본은 2차대전 때 유태인으로부터 전쟁비용을 지원 받았다. 이 전쟁에서 시베리아철도의 역할이 컸지만, 러시아는 재정적으로 곤란을 겪고 있었고, 또 그 철도가 완성되었다 해도 공중 폭격에 의한 보수 비용이 처음 철도 시설비용만큼 들어갔을 것이다. 이 모습을 미국은 멀리서 지켜보고 있었다.
전쟁이란 어디서든 지켜보는 이가 있을 것이다. 어떤 행동이 각 나라에 이익인 지 생각하면서 말이다..
전쟁이든, 정치든, 또 그 무엇이든..
비용의 지불 능력이 없으면 애초부터 승산이란 없다. 도저히 비빌 언덕이 없으면 마모쩌퉁처럼 하겠지.. 불쌍한 농민들 시베리아 국경까지 끌고다니면서 굶겨죽였다. 마오쩌퉁도 미국의 군수 지원을 받기는 했으나 상대(적)만큼은 아니었을 것이다.
역사상 자국민을 가장 많이 죽인 나라는 러시아와 중국이다. 가련한 국민이다. 그게 왜 슬프지 않은 거지?
(사람의 말 한 조각을 떼어다가 모함을 하는 데 쓰는 사람이 많다. 이 내용은 러시아와 중국의 약점을 꼬집는 내용이 아니다. 같은 내용을 자국에 대해서 말하지 못할 뿐이다. 만약 우리가 중국에서 태어났다면, 러시아와 한국, 일본의 예를 들었을 것이다. 내가 러시아인이라면, 중국, 한국, 일본의 예를 들었을 것이다. 사람은 다 고만고만한 정신 상태로 초라하다. 타국은 건전해야 하고, 아국은 대충 얼버무려도 되고.. 이런 태도로 사는 것 아니었던가? 피부색이 자기보다 어둡다고 하던 사람이, 바로 그 어두운 피부를 하고 태어났더라면 지금의 자신과 같은 인종을 놀려대고 있었을 것 아닌가? 아무리 애써도 사람은 다 정상은 아니다. 나라가 무슨 차이라고 외국의 중고등 학생이 생각 없이 한 말들을 꾀다 바치는 뉴스가 정상 상태로 보이는가? 거짓말쟁이를 선출할만큼 국민의 수준이 낮으면 뉴스가 온통 '일러바치기'이다.)
그래서 돈 없이 한다는 게 고작해야 '애국심'으로 국민을 쥐어짜고, 거짓말로 꿈의 나라의 환상을 보여줘야 하고, 이간질로 국민이 지성을 깨우지 못하게 해야한다. 북한에서는 그것을 '강성대국'이라고 한다. 세계에서 제일 가난한 연습을 50년이나 넘게 해온, 가난이라는 것으로는 세계 최강으로 단련된 체질이므로 이제는 지겨워서라도 부자가 될 법도 한데 그 걸 못한다.
그 가난도 미국 탓이란다. 언제나 가난한 사람은 누군가를 탓만 하고 있다. 죽고나서도 완전히 죽지 못하고 유령으로 떠돌면서 남 탓하기를 멈추지 못할 것이다. 그러는 동안에도 남들은 차 사고 집 사고 할 것 다하는데 말이다.. 더구나 종교도 없어 '내세'라는 것도 없어, 아낌 없이 현재를 껴안고 있어야 할 현존 사상들이 그 모양이다.
정말 잘 살고 싶었으면, 미국을 우회해서 달리 방도를 찾았을 70년 세월이다. '강성대국'이란 걸 물을 주며 키웠는데, 어찌하여 70년 동안이나 그 싹을 보지 못한단 말인가? 이 질문을 7살 이하의 아이들에게 하는 게 아니다. 외교관이라고 유엔에 나아가서 영어로 뭐라고 하는 사람들에게 하는 말이다. 그 사람들의 표정은 어떻게 지어도 왜 그리도 불쌍해 보이는 걸까?
(왜 북한 외교관의 말투는 버릇이 없을까? '나 겁 안 먹었소.'라고 표정이 말하고 있다. 그 표정은 잔뜩 겁내고 있어서 나오는 표정인 것을 모르는 사람들만 모르는 바로 그 내용이다. 한국도 별 차이 있나? 초등학생 글 읽는 소리? 숨을 헐떡이며 외우 둣 읽는다. 누가 겁을 줬을까? 뉴스에 나오는 소대장 목소리도 이상하다. 애들 연설문 외우 듯이 한다. 항상 누군가의 눈치를 보는 습관이라 그런다. 남이든 북이든.. 미국 군인들 보면 좀 멋 있다는 것 못 느끼나?)
(포로 수용소에서 북한쪽으로 돌아가는 병사들, 모두 입고 있던 옷을 찢어버리고 분계선을 건너갔다. 세계 사람들은 그 장면을 어떻게 기억하고 있을까? '결백을 증명해서 살아내려고 하는 발버둥' 이 것은 거지보다 불쌍한 모습이었다. 그런데, 70년이 된 지금도 그러고 있다. 장병이 아닌 영어를 사용할 줄 아는 외교관 계급이.. 인생이라는 게 어떻게 결백의 입증으로 시작해서 결백의 입증으로 끝난다는 말인가? 그게 무슨 인생이랴? 우리 집 개도 그런 건 없다.)
가난한 사람들은 '논리 놀이'가 인생의 중요한 부문이겠지만, 부자들에겐 '인생을 누리는 게' 중요하다. 언제? 지금!
가난에게 내일?은 무엇이 기다릴까? 여러분의 손자가 모든 부채를 짊어지고 괴로워할 테지..
정치가 건강하지 못하면 저런 이상한 기업들이 꼭 필요하다. 요새 말들 해대는 '지배구조'라는 것이다. 건강한 정치 경제 구조 안에서 나라가 운영된다면, 왜 뒷 돈이 필요하고, 특혜가 필요하고, 초범 개전의 정이라는 핑계로 집행유예가 필요하고, 환율을 흔들고 이자율을 흔들고, 뉴스를 자작하겠는가? (나도 정치를 했으면 저런 모습이었을 게 분명하다. 그래서 굳건하지도 않을 나의 가치관이라는 건 쓸 의미도 없다.)
그래서 5%가 95%를 집어 삼키는 지구 역사상 이해할 수 없는 '한류'가 이 세상 유행어로 떠다닐 수 있는 것이다. ('애국, 한류'의 허풍 뒤에서 사라지는 눈 먼 돈들)
'나는 이 정치와 이 경제가 잘못이오 !'라고 말할 근거가 없다. 올바른 정치라는 것이 규칙으로 정해진 것도 아니다. 문구가 없는 것은 아니나, 그 걸 누가 지키고 있나? 아무도 안 지키면서 가난한 사람의 머릿 속에서만 유령처럼 떠도는 연기 같은 것이다.
특정 종교를 안 믿는 것도 빨갱이라고 말하는 팔갱이의 올바른 행동의 근거는 무엇인가?
'우리'라고 하는 말이 요즘 세상에 쓰이는 대로의 정확한 뜻은 '니 거냐 내 거냐? 주인이 따로 있더냐'이다.
삿대질 하는 사람은 존경받는다. 이것도 굳이 문화라고 말하자면, 특이한 문화이다. 이제 이 시점에서 누구도 차분한 세상으로 돌아갈 수는 없다. 쉬지 않고 싸우는 일만 남았다.
대학교수들마저 자신이 빨갱이 아님을 강조하기 위해서 누군가를 지목하고 삿대질 해야한다.
중국의 어느 드라마에 나온 대목에 이런 게 있다.
사상 비판 시간이다.
동네 사람들이 강당에 둘러앉아 있다.
누군가를 비판해야 한다.
서로들 눈치를 보느라 말을 못하고들 있다.
교사인 사람이 분위기도 이상하고 하여 화장실에 잠깐 다녀온다고 하고 밖에 나갔다 왔다.
그리고는 이 교사는 사상 비판을 받고 강제 노역장으로 끌려갔다.
어느 나라는 (이게 어찌 한 나라 안에서만 일어나는 일이겠는가?) 아이를 낳고, 손자를 낳아 살아가면서 철조망 건너 사람들을 원수라고 가르치고 있다.
(어느 나라의 역사를 보나 건전한 역사는 없다. 황색인과 흑인이 그 피부 때문에 피해를 보는 것은 누가 책임져야 할까? 신이 아니면 누가? 이 질문에 신은 결코 대답을 못한다.)
왜, 누군가를 욕하는 사람은, 깨끗하다고 믿어줘야 하는 것일까? 늑대 소년은 늑대보다는 항상 나은 것일까?
이 땅의 사람들도 아이를 낳고, 배울 것도 없는 학교에 수용해서 시간을 보내게 하고, 스트레스를 몸통 가득 채우게 하고, 또 똑 같은 것을 손자에게 대물림 하게 한다.
세상에 '옳다는 것'은 없다.
그 비슷한 게 있다면, '그리 하지는 말자'는 것은 있다. 그 것도, 권력에게는 아무 제한이 소용이 없다.
권력은 아무 때나 법을 만들 수도 있고, 유예도 할 수도 있다.
국민 모두가 그것을 모른다고 가정한다면, 왜 국민 모두 출세하려고 그 안달들인가?
아주 선명한 것은..
그 국민에 그 정치이고 그 경제이다.
권력은 그것을 전혀 고칠 생각이 없다. 불편을 못 느끼고 오히려 유용한 것을 왜 그만 두겠는가?
조용한 국민은 그동안 많이 참고 있었던 것일까?
어부지리를 바라면서, 누군가 내 대신 피해를 몽땅 뒤집어쓰기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피해를 보면서도 그 긴 세월을 견뎌왔던 국민의 이익은 무엇인가?
한 마디 한 마디에 속아 핏대 세우는 순진한 국민은 아무 잘못이 없다고?
이 모든 게 그 국민의 작품인 것을 언제쯤 알게될까?
듣기에 중국에서 서열이 없다고 한다. 군대도 계급이 없었다고 한다.
여기는 그렇지 않다. 가정에서도 엄격히 서열이 존재한다. 직장에서는 또 여러 단계의 서열이 있다. 이 모든 서열을 겪는 사람들 입장에서는 인도의 다섯 계급보다 훨씬 복잡하다.
그래서 바보가 그 집단을 엉망으로 만드는 구조가 완성돼있다.
그래서 중국은 수천년 역사 속의 중국처럼 다시 군림하게 될 것으로 보인다.
이런 서열은 나라 발전의 큰 장애물이다.
지금처럼 아무 것도 스스로 고쳐질 게 없다고 한다면?
우리는 일벌이 되어서, 열심히 누군가를 삿대질을 하면서 한 평생을 망그러뜨리자..
또, 증손자 이후까지 영원히 대물림 하자.
인생이 재미 없는 것은 누구의 책임일까?
그들?
우리 부모?
그 답에 '나'가 없으면, 그 인생은 쓸모가 없다. 그 후세도 역시..
할아버지 대에 있었던 일이다.
북한군이 동네에 나타난 것 같으면, 인공기를 집 앞에 걸어두고, 한국군이 나타난 것 같으면, 한국기를 걸어둔다. 유엔군이 압록강까지 갔을 때, 북한 주민들도 이와 같이 국기 걸어달기를 했을 테지..
손자들아 이 목숨 건 국기 걸어달기가 재미 있을 것 같니?
사람은, 뒤통수로 하는 말을 이해하지 못한다.
북진통일이라는 말이 있었다.
공산당을 압록강 밖으로 몰아내자는 말이다.
얼마나 속 시원한 소리인가?
그럼, 뒤통수로 하는 말은 뭘까?
대가이다.
그래서 이런 말이 성립되는 것이다.
'당신의 남편과, 당신의 아들들을 압록강 총알받이로 써야겠소. 내놓으시오.'
'모든 재산을 몰수하겠소.'
이들은 절대로 모른다.
이 것이 특정 권력을 보호하기 위한 사망이고, 탈취인 것을..
또, 국가가 권력의 것이지, 단 한번도 국민의 것이 아니었다는 것을..
세상 일은 저울의 평형처럼, 이루는 것에 상응하는, 대개는 더 큰 손해가 함께한다.
이 것을 두고, 속았느니 하는 것이 맞는 말일까?
순진한 것은 모든 책임을 감당해야 한다면 억울할 것이다. 순진? 의타적이지 못하면 세상을 견뎌내기 힘들어질 것이다. 지금 세상에 '순진'은 적어도 공용어가 아닌 것은 알려줘야 할 것이다.
독일의 분할은 독일이 강하고 비범해서 그리 됐다.
한국의 분할은 한국이 미국, 소련, 일본, 미국의 국경이어서 그렇다.
그것도 한반도 스스로 자비로 순찰을 하고 있다.
서서히 미국은 일본을 치켜세우고 있다.
한국이 마지막에 붙들 바지가랭이라면? 미국일까? 중국일까?
일본은 미국의 믿을만한 사냥개 역할을 감당할 수 있지만,
한국에게서 기대하는 것은 아무 것도 없을 것이다.
어느 쪽으로 쏠리든, 그들은 한반도 위에서 불꽃놀이를 할 것이다.
한반도를 위해서 하는 일들 같지만, 우리 집만 부셔질 뿐이다.
한국의 부자들은 다 돌아갈 자기 나라가 있는데, 국민은 물에 빠져죽어도 여기서 견뎌야 한다. 그러면 걱정은 누가해야 하는 걸까? 스스로 해야지..
그 다음의 예고편은, 피난, 기근, 가난, 원조, 구걸, 사망 같은 휴식..
다시 70년 전으로 돌아가 쳇바퀴 돌리기..
(내가 완벽하고 견교하게 지켜낼 수 없는 도덕은, 내가 주장할 수 없다.)
(나는 왜 이렇게 끄적거릴까? 잘 나서? 잘 난 게 끄적거릴까? 천재여서? 천재가 끄적거릴까? 할 말이 있어서? 할 말이 있으면 미리 행동했겠지.. 가끔 스스로의 언어를 보면, 누군가 대신 짊어지길 바라는 고충을 살며시 흘리는 행위로 보여 비겁하다는 생각이 든다. 심심해서 끄적거리는 걸로.. 나도 이렇게 한심한 인생으로 남처럼 묻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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