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dnesday 24 June 2015

'사과'의 뜻도 모르는 매스컴

철이 들면서 나는 한국 드라마를 볼 수 없었다.
철 들기 전에는 한국 작가의 글을 읽을 수 없었다.

철이 든 뒤라 함은, 유흥거리라는 게 그것 뿐이었으니까..
철 들기 전이라 함은, 책 살 돈이 없어 한국 작가의 얄팍한 속내를 알고는, 돈으로 기부할 여유가 없었으니까..

한국 드라마는 지금 난장판이 되어있고,
한국 작가의 글은, 어렸을 때 읽어도, 왜 그리도 많은 '해야한다.'와 근거도 없는 주장들로 아까운 지면을 꽉 채우는 지 그 이유를 알 수가 없었다.

요즘, 번역 작가가 작가 행세를 했다고 해서 말이 많다.
그거라도 없는 것보다 나은 걸까?
별명이 복사기 상호를 땄다해서 기사를 읽어보니, 별명 참 잘 지었다.

뉴스가 수상하다.
사과 안 했는데, 사과했다고 거짓말을 한다.

이런 식의 말은 했다.
'뉴스가 때리니 아파서, 미안하다고 해야겠다.  그러니 절필은 못한다.'
아직도 많은 copy (ms-dos의 xcopy 표현이 더 어울리겠다. - '무지막지하게 복사')의 기술들을 보여줄 능력이 있다는데, 이 능력이라도 한국은 아쉬운 걸까?

뉴스는 사과한 걸로 치고 빨리 덮자는 이야기를 한다.
뉴스는 왜 이런 재판에 집행유예까지 서둘러 마쳐주는가?

왜 그리도 간이 클까?
백그라운드가 그리도 든든했을까?

가난한 글쟁이들아
글 도둑하면 이렇게 부자된다?

그동안 저작권 처벌 받은 사람들은 다 어찌 구제하나?
저작권은 입맛가는대로?

중국 사람도 받는 노벨상이라는 것
그런 게 있다는 것을 아는 사람이 한국엔 서너명쯤은 있는 지 모르겠다.

학교가 시원찮은 것은, 그렇게 덮어두니까 그런 것이려니..
정치가 시원찮은 것은, (이하 동문)
축구가 (이하 동문)
스포츠가..
한국이..

국민도 이런 일로 속 터지지 말고, 덮는 기술을 xcopy 하자.
나라는 알리바바족, 저 놈들 소유이지, 국민의 소유였던 적은 단 한번도 없었다.

한반도처럼 '편협주의'가 이미 국민성이 되어버린 (아시아의 공통 문제이긴 하지만..) 마당에 어느 구석에서, 어느 누가 노벨상을 꿈이라도 꿔보겠는가..

'바깥의 큰 것은 중요하지 않다.  안에서 우리끼리 머리 터지도록 싸워보자.'  이 것은 한반도 고유의 국민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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