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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nday, 10 June 2019

나 (5)

'나는 나다?'가 맞을까?
(뭔가 썼는데 두어번의 클릭으로 다 사라졌다)

나의 머리는 내 몸에게 어떤 명령을 내린다
어디로 가고 맛 있는 것을 먹어라

내가 황제도 아니고 왜 내가 그대의 명을 따라야 하죠?
보통 사람은 이 질문을 하지 않는다
몸과 마음을 분리할 필요가 없는, 내가 나이기 때문이다

나의 몸은 황제인 나의 머리의 지령을 수행해야 한다
그 것이 평범한 인구 72억으로 설명된다
그런데 그 것이 지구상의 진리값은 아니다
내가 정말로 충실한 나이더라도 아무 것도 아니다
혼자 안에서 가득 찬 비누 방울이다

Thursday, 20 July 2017

나 4

오늘,
뉴스나 기웃거린다면 나는 할 일이 없는 것이다
tv 채널이나 돌리고 있다면 나는 나를 잘 못 사용하고 있는 것이다

나의 몸은 바보 같은 나의 정신의 신하가 아니고 노예도 아니다
이 몸을 간직해 늙어 죽어갈 때까지 고통 없이 하려면 공들일 것도 참으로 많다
치통으로 많은 돈을 빼앗기고 나면 이 닦고 치간 치솔질 하는데 소홀할 수도 없다  그 것 참 귀찮은 일이다
그런 노력을 술 한 잔에 폭삭 주저앉게 만든다면 이 나라는 것도 이미 나와 공동 운명은 아닌 것이다
마치 내 정신은 남의 몸을 도둑질 해서 함부로 부려먹고 있는 것과도 같아 보인다

땅 굴을 파고 여름에 시원하고 겨울에 따뜻한 곳에 앉아 와인이나 보드카를 만들어 쌓아둘 생각을 하고있다면 역시 나는 이 세상에 별 쓸모를 찾지 못 하고 있는 것이다

스스로 잘 못된 기질도 바꾸지 못하고 정신 작용의 방향도 잡지 못 한다면
도대체 왜 나는 숨 쉬고 있는 지 궁금해진다

대전 건양대 병원 응급실로 환자를 넘기는데 시간을 끌고 밤 열 두 시를 넘기는 백제 병원 응급실에서 몇 시간 있었다고 18 만 원 가까이 되는 돈을 빼앗긴 것과 혈압계 클립도 떨어진 침대 위에 잠깐 있었다고 부여 건양대 병원에서 5 만 원 가까이 빼앗긴 것이 이토록 가슴 아프다면,  나는 정말로 하는 일이 없는 걸까?  나 같은 가난뱅이를 도울 생각이었을까?

공단에서 몇 천 원 환급 받은 게 다다  건양대 병원 가면서 사설 구급차 사용했다고 18 만 원 빼앗겼다  공단도 같은 알리바바 무리에 들었다고 보는 게 속 편하겠다

병원 응급실에서 초과다 청구 금액으로 다툴 수 있을까?  현행범으로 체포되면 어머니는 응급실이나 병실에 홀로 남아 병원비는 괘씸죄까지 덤으로 안고 치료비는 상상을 넘어선 초월이 있을 것 같은데..




......
눈탱이 치기 위해 미울거리를 찾는 사람?  그런 것 없이 바로 눈탱이 치는 사람?
나야 이 세상 털고가면 그만이지만,  남아서 '눈탱이 치기'를 애용해야 하는 사람들은..

Sunday, 2 July 2017

나 3

(상상은 계속 되도다  그러나 그만 좀 끄적이고 싶다)

내가 지금 무슨 말을 왜 하나 싶다
아마 어린 시절의 나에 대한 인생 설명서인 것도 같다
인생이 무엇인 지 찾아다니고 책을 보았지만 그 어디에도 세상을 설명하는 것은 없었다
길을 잃은 그 때의 나 자신에 대한 도움일 것이다
희망 가득한 내용이 아니라서 그 때의 어린 나에게 미안하기도 하다  그 때의 맑은 눈으로 세상을 볼 수 없게 된 것도 미안하게 생각한다

이 세상 (우주)에 최초 최후의 주인공으로 나를 세우는 방법은 세상에서 독립하는 방법 하나가 있다

자신의 D.N.A.에 얽혀있는 모든 미신들을 떨어내어 버릴 때 스스로 독립하게 된다
이 끈은 집요하게 가족 관계에서 다시 반복된다
사회에서 또 다시 반복된다
인간은 그래서 절대로 홀로 생각에 잠길 여유가 없다

생각 수준이 비슷한 사람끼리 친구가 되어 잡담하며 보내는 의미 없는 시간이 한 사람에게 80 년이란 길고 긴 시간이 배당돼있다  거의 모든 사람이 이 시간을 받아들고 어찌 할 줄을 모른다  잠 자고 밥 먹고 화장실 가는 시간을 빼고 학습지에 코박고 조는 시간들을 모두 빼버리면 자신에게 집중하고 자신을 인도할 마음이나마 가질 수 있는 시간은 죽을 때까지 단 몇 초 밖에 안 된다  80 인생이 이 몇 초의 가능성으로 세월을 끌고다니다 아무 것도 얻지 못하고 수 십 억년만에 어렵게 얻은 생명을 낭떠러지에다 쏟아버린다

사람은 잡념으로 가득 차있다  가족 관계의 미신  사회적 유대 관계의 미신  가족 부양의 미신  성취의 미신  손에 잡고 놓지 못하는 그 어떤 것도 세상에 자신을 주인공으로 내비쳐보지도 못하게 한다  남이 하는 것을 보고만 있다가 세월이 다 가고 만다

인생은 예술이다

태어나고 책을 보기 위해 문자를 익히는 것은 세상을 이해하고 세상을 해석하고 세상을 표현하기 위한 수단으로의 필요성 때문이지 밥 먹고 아이 낳고 직장 다니고 집을 사고 자동차를 사기 위해서 그런 것은 아니다  사람들이 지금 하고 있는 모든 행위는 자신의 생명을 연장 시키기 위한 방편이지 자신을 이 세상에 스토리를 얹어 걸어가도록 인도하는 것이 아니다

인생은 표현이다  표현이라는 말이 난해하면 자신은 ART다  ART란 나 자신을 한 생명으로 태어난 신비로운 존재를 제대로 이해하고 이 세상 위에 얹혀진 자신을 설명하고 표현하는 것이다  이 우주 안에 나만 홀로 남으면 대화 상대는 '움직이는 나'와 '생각하는 나'와 생명의 바탕이 되는 우주, 이 셋이 남게된다

지금 이 시각, TV를 보거나 이동전화를 들여다보는 모든 사람은 이미 사망한 '유령'이다  이 세상에 수 십 억년 만에 나타난 신비로운 자신을 위해서 아무 것도 할 생각이 없다  우리는 이런 존재를 72억 명이나 지구에서 볼 수 있다  사람과 다른 사람과 나누는 대화는 아무 의미가 없다  자신이 자신과 대화할 때는 문자가 필요없다  제 1 의 '내'가 '저것'이라고 표현했을 때 제 2 의 나도 그 바로 '저것'이라는 것이 무엇을 말하는 지 정확히 알고 있을 것이다

사람이 자신만큼 천하게 대하고 학대하는 상대가 없다는 것을 알고는 있을까?
사람이 욕을 하는 것은, 자신을 귀하게 여기지 못한다는 설명이다
화를 낸다는 것은 세상을 이해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때린다는 것은 정서적으로 이미 자신을 파괴한 상태에 이르렀다는 것이다
폭력이라는 것은 어떠한 경우라도, 이미 자신을 파괴한 상태로부터 시작된다
이 폭력은 반드시 자신의 허락 아래 이루어지는 사안이라서 그렇다

세상을 계획하고 자신을 이 우주 위에 건립하고 80 년을 자신을 운영하는 것은 인간이 할 수 있는 가장 위대한 시간의 입증이다  인류는 옆을 볼 필요가 없다  자신 안에 모든 해답이 들어있고 가장 훌륭한 조언자도 자신의 몸 속에서 자신과의 대화를 기다리고 있다

그 누가 자신을 도와 자신을 이 세상을 향해 홀로 서서 걸어가게 할 수 있을 것이냐? 가 사람에게 주어진 route다

추:
수 십 억년 만에 지구에 와서 식물 인간으로 80 세월을 버티다 가버린다면 그 누구의 인생이든 너무 허무하다  그 것은 태어난 지 이틀 만에 사람의 박수침 안에서 눌려 죽은 모기의 생과 다르지 않다  내가 살다간 80도 우주 안에서는 약간의 진동도 아니다  아무도 남의 생을 우주에서는 기록해주지 않는다  슬픈가?  그러니 마음껏 그대를 즐길 수 있지 않겠는가?  남을 따르지 말고 그대 자신을 '실행'하라  사람은 사자 호랑이는 아닐지라도 정어리떼 멸치떼일 수는 없다  그러기엔 내 몸이 너무 억울하다  (또또 말 길어진다..  cut !)

추2:
100년 뒤엔 72억명 중 어느 누구도 다시 만나지 못한다  그나마 위안이 된다  그래야 인생 스토리가 이어진다면 말이지..  내가 아는 사람 중엔 어느 역사에도 기억되는 사람이 없다  지구 상에서 '베에토벤' 한 사람은 기억나겠지?



......
인간이 신봉하는 가장 어리석은 행동 하나
'미는 선이다'
미는 선이 아니고 구별자의 경쟁이다  아무도 그 것을 따를 필요가 없다  어떻게 30 년을 각기 다른 환경에서 자란 사람을 단 3 초만에 알아보고 지적 정서적 계산을 마칠 수 있다는 말인가?  그 것은 나도 어렵다  미 속에는 선이 들어있지 않다  약간의 경제성은 있을까.. 유용성도 없다  화폐는 인간의 모든 시간을 압류하는 재앙이고 개미 지옥이다  사람은 이런 이상한 폐기물을 '훌륭한 선택'이라고 잘 못 알고 낭떠러지로 걸어가고 있다  신기한 것은 떨어져도 아픈 줄을 모른다

여기까지 하고,  이제 그대들의 스승에게 자신을 묻도록..  나보다 훨씬 친절한 언어로 24 시간 함께하며 속삭여줄 사람은 우주가 닳아서 없어질 때까지도 오직 '자신' 뿐이라는 것을 잊어도? 누가 뭐랄 사람은 없지만..





Saturday, 1 April 2017

세상 아무리 전력 투구해도
좋은 모습으로 남아나지 않아
게으르고 스스로 만든 욕심에 만신창이가 되고
잘 못 된 것을 알고도 고칠 수도 없고
고집 피우고 큰 소리만 친다

나의 부족은, 세상의 불만으로 핑계대고
나는 변함 없고 72억이 바뀌길 바라며
몽롱한 미신으로 꽉 찬 자신은 패거리라는 정의에 줄 서야 안심이 된다

안개 걷히면 이 세상 어디에도 없었던 나를 발견하게 된다
내가 산 것은 나의 콧 바람으로도 알겠지만
내가 죽은 것은 그 어느 누구로부터도 듣지 못한다
싸우기 위해 언어를 배우고 평화를 누리기 위해서는 잔인해져야 한다

이 걸 인생이라고 굳이 말하려 한다면,
노력하지 않아도 이런 생은 한 마리 모기에서도 볼 수 있다
노력하지 않아도 한 송이 부추 꽃에서도 찾을 수 있다
실감은 나지만 이 인생은 전혀 나의 것이 아니다
생각한다고 내가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지구의 중력에서 탈출 할 수 없 듯
생명의 DNA로부터도 탈출 할 수 없다
그 어떤 생명체도 사회 언어와 물리 규칙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나는 나이기 이전에 99%의 물리 덩어리이다
오늘 태어나 희생된 들소 새끼가 후회를 알까?
10년을 연장하면 이 들소의 드라마는 달라질까?

우주와 나 사이에 어떤 매개를 채우려는 자와의 대화는 시간 낭비이다
우주가 각자에게 남긴 말이 있다
80년 세월, 그 것을 찾는 게 인간으로 운명지어진 각자가 할 일이다
멸치떼 속에 들어가 무리를 따라다니다 인생이고 뭐고 내 것이란 없다

어느 날, 자신이 우주 어디에도 없었다는 것은 아는 날은
내 안의 존재가 명확히 해 줄 '생각'이라는 게 사라진 날로부터일 것이다

안다고 하면서, 아는 척 하면서 지탄만 하는 것은 객체와의 등가라는 것도 안다
오류는 선행하고 룰이 되지만, 善行은 저절로 先行하지 않는다

증오하는 것은 어떤 생명체도 할 수 있다  그런데 이 것은 고상한 지능 작용은 아니다
사람의 능력은 더구나 아니다  권력의 출발은 경계에 있지 않고 증오에 있다
행위 능력이 없으면 책임 능력도 없다  모른다고 자신이 한심하지 않은 것이 될 수는 없다

Monday, 6 February 2017

인생 3

인생은 표현이다
인생은 시간 위를 나는 연과 같다
바람따라 그냥 묶여만 있다면 흔히 보는 보통 인생이다
삼겹살 구워 친구들과 어울려 술 한 잔 하고...
내일은 오랫만에 순대국 맛 있는 집을 순X (체크해두고 한 곳 한 곳 찾아나서는 것을 표현하는 말이 생각이 안 난다) 하고
이 것도 인생이라 한다
어떻게 살아도 자동 진행이니까
시간이 인생이라는 주머니에 들어왔다가 터닌 틈으로 줄줄이 새는 것과 같다

나는 물리를 설명할 때 '시간'을 뺀다
시간은 우주 상에 존재하지 않는 것이지만 처음 태어날 때와 현재를 설명하고 계산하는 도구는 시간 밖에 없다
생명체의 몸에는 많은 기생충이 산다  100% 그 생명체만을 위해서 활동하지는 않는다
두 사람이 대화하는 작은 공간 안에도 보이지 않는 많은 생명체가 있다  그 생명체 각자에게도 이 시간이라는 것은 공평하게 지나가고 있다

일주일 지구에 왔다 몸을 다시 자연에 돌려줄 생명체라면 굳이 '시간' 개념을 받아들일 이유가 없다  80년 씩이나 긴 인생을 살아가려면 시간 뿐만 아니라 언어도 필요해진다
술 마시고 패거리를 몰고 다니고 나라를 세우고 국경을 침범해서 옆 나라를 침몰시키고 역사에 기록하여 자랑하고..  이렇게 소란 피우지 않아도 인생은 충분하다  가치는 스스로 판단하는 것이라서, 좋다 나쁘다의 충고가 의미 없다

어쨌든 시간은 때웠다  이게 대부분의 인생이다  좀 더 고급스러운 것을 찾기 전까지는 지저분한 옷을 걸치고 다녀야 한다  인생이라는 것도 방법이 있다  인생은 우주의 이해와 생각의 표현이다  생각에서 홀로 서지 못하고 남에 의존하는 것은 제대로 된 인생은 아니다  그냥 묻어가는 것인데 소유자가 자신이라고 말 할 수는 없다

학교는 의미가 없다  남들이 그렇게 하니까 대안이 없어서 따라다니고 있다  '자신은 자신의 최고의 스승' 이 말을 제대로 설명하는 사람이 없었는데, 나는 100억년이 넘는 우주의 경험이 내 D.N.A.에 데이터로 저장된 것으로 설명한다  대화를 하려면 언어가 필요하다  자동적으로 익히는 것은 국경 안 언어이다  국경 밖에 기웃거릴 만한 지식들이 많으면 그 언어도 중요하다  영어, 프랑스어, 독일어는 꼭 알아두어야 할 중요한 언어이다  언어를 익힌 다음에는 철학을 배워야 한다  이 것은 생각의 틀을 만들어준다  생각을 위하여 길을 만드는 것과 같다  자연을 설명하려면 수학도 알아야 한다  인생을 표현하려면 문학, 음악, 미술도 알아야 한다  이 게 어렵다면 타 인생을 도둑질 할 수 밖에 없다  전적으로 남의 말에 의지해야 하고 옳은 지 그른 지 엉터리인 지 사기인 지 아는 방법이 없다  같은 언어를 사용하는 것 같지만 완전히 다른 세상에서 살고 있는 것이다

내가 죽었거나 살았거나 점프롤 30cm 했거나 이 우주에서는 그 것을 기록하지 않는다  인간은 신을 믿지만 내가 굳이 신을 허용한다면 지구에 살다가는 모든 인간에게 신을 허용할 것이다  각자 80년 생짜리 신이다  내가 전체 우주를 만들었다면 변덕 심한 인간에게 애정을 품지 않는다  집에 기르는 개가 나와 애정이 있고 나를 신처럼 따르는 것 같지만 개에게 나는 먹이를 제때 주는 그냥 사람이다  현재만 해도 72억이나 되는 시시콜콜 인생사를 참관할 이유가 없다  거기에 10억년을 살다간 인생을 모두 나에게 기억하고 돌봐줘야 한다면 내가 바보이지 이리도 재미 없는 의무를 지고 여기서 노닥거릴 이유가 없다  그럼 그 동안 내가 인간의 꼬붕이 되고 마는 것이지 나의 신으로서의 존재가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모든 물음표를 신의 행동이라고 표현하면서, 지 마음대로 우주를 엉터리로 해석하는 짓은 하지 말아야 한다  문자는 인간 사이에 중요한 매개물이다  모든 문자는 신으로부터 나와야 하는데 그렇게 말하는 역사는 없다

어떤 행동을 하기에 앞서 지식은 완전하게100% 습득할 수는 없다  그래야 한다면 어떤 생명체도 그 자리에서 움직이지 못한다  지식이 1이거나 0이거나 어떤 행동을 해야한다면 첫 걸음이 나가야 한다  지갑을 두고 집 밖을 나서더라도 일단 부족한 상태이지만 나서는 행동은 필요하다  말이나 행동은 이런 상태에서 이루어진다  데이터가 전무한 상태라도 밭에 씨를 뿌리고 수확을 기대한다  농협에서 씨앗을 권하니까 구입하고 몇 일에 씨를 뿌리면 좋다고 하니까 뿌리고..  이슬라엘에서 유리 온실을 짓고 배추 6모작을 하는 것과는 다른 모습이기는 하다  아직도 수경재배라는 개념을 못 잡는 것,  독일의 밭 가장자리 5m 유휴지 개념은 들어본 적도 없다  선진국은 100제곱미터 당 소 한 마리만 허용되는 나라도 있다  고속도로를 달려 익산 지역을 지날 때의 가축 분뇨 냄새는 잔명(남은 인생) 여건이 얼마나 고통스러울 지 걱정스럽다  일본의 공출 문화 때 보고 들었던 농법, 안에 뭐(아질산염)가 들었거나 상관 없이 빨리 수확만 하뎐 되니까 농약 제초제 외에는 농사 방법이라는 게 없다  연구 기관이 있기는 하지만 소농 생산자에게 너무 어려운 수경재배를 권할 수는 없다  낱개로 파는 사과는 덜하지만 상자 단위로 파는 사과는 몇 개는 썩어있다  나 어렸을 때부터 보아온 상술이다  자동차 공업사나 병원을 가면 많이 듣는 소리가 '조금만 늦었어도 큰 일 날 뻔 했다'이다  그럼 이제부터 이 말은 들은 사람은 눈탱이 맞을 준비를 하고 있어야 가슴이 덜 아프다

쇠고기 수입을 한다 미국산 호주산  호주에서는 한국식으로 밀집 사육하고 옥수수로 기른 소를 한국에 수출한다  한국에서 미국으로 갈 수 없는 소가 미국에서 한국으로는 올 수 있다는 규약을 어떻게 이해할까?  한국에서는 닭은 비닐 하우스 위에 차광막을 덧씌운 시설에서 가금류를 기른다  닭장에서 기르지 않고 땅 바닥에서 기르면 그나마 낫다  미국에도 이와 똑 같은 시설이 있다  근로자도 한국인이다  이 시설물의 생산품을 미국인이 사먹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을까?  이번 계란 수입 조치는 건전하지 못한 강제 수입 조치로 나는 보고 있다  그 것을 위해서 저지르는 선행 작업은 내가 이야기 할 게 못 된다

5,000만 명의 생각의 총합이 1보다 못 할 때가 많다  자국의 이익이라고 해서 사투하는 경우가 있지만 냉철한 판단으로 오랜 시간 대화를 통해서 결론에 도달한 적은 없다  동네 유지가 옳다면 그냥 옳은, 감정의 하수인들이다  쓰레기 종량제? 합리적인 행정 같지만 전에 없이 전국에서 쓰레기를 태우고 있고 말을 해줘도 지자체에서는 심하게 단속하지 못한다  어디가 공기가 제일 좋냐고 묻는다면 자동차 공해가 싫어서 떠나게 된 '서울'이라고 밖에 말 할 수 없다

사람은 스스로 뭘 할 지, 어디로 가는 지 모르고 배회하고 있다  서로 비방해야 하고 삿대질 하고 다음 날 전투를 위해서 일찍 자둬야 한다  이 말들은 다 자기 인생을 못 살고 시간만 죽이고 있다는 것을 감추지도 못하고 노출시키고 있는 것을 알게 해준다

여기서 인생에 대해서 누가 누구에게 새롭게 건네 줄 책 한권이 있을 수 있겠는가?
대충 개 같이 아무렇게나 자신의 인생을 팽개치는 것,  그 것이 오늘 지구 위를 걸어다니는 우리들의 인생이라는 것이다  개도 하고 소도 하고 파리도 모기도 같은 길을 가고 있다면?  안다고 알아버렸다고 그만 둘 수 있나?





Saturday, 4 February 2017

한국에 사는 내가 나에게

3층 이상 아파트에 가지 마라
바다나 강 가까이 가지 마라
레미콘 가까이 가지 마라
청와대 근처에 가지 마라
번개탄 사지 마라
은행에서 돈 찾아서 태우지 마라
마트에 가서 튼튼한 줄 사지 마라
달리는 열차 근처에 가지 마라
고속도로에 들어가지 마라

최그네 멀쩡하다 인터넷에 글 남기지 마라

Saturday, 12 November 2016

나는 누구냐?

DNA 조합에 따라,
내 안에서 나를 연기하는 사람들은 다음과 같다.
누가 언제 내 안에 튀어나올 지는 아무도 모른다.

아버지, 어머니, 할아버지, 할머니, 외할아버지, 외할머니, 삼촌, 외삼촌, 고모, 이모..
그리고 곁에 오래 같이 살아 나의 행동에 끼어드는 배우자나 자손들까지..

나는 어디서 어디까지이냐?
왜 나는 나냐?
너와도 별 차이 없고, 구분의 미학도 없다.
내가 너이거나, 니가 나이거나도 지구 중력에 조금도 영향을 주지 않는다.

Monday, 24 October 2016

나 2

생각해보면, '나'라는 것보다 골치 아픈 게 없다.
자신을 나무랠 수도 없고,  자책한다고 해도 실감도 나지 않는다.  얼렁뚱땅..
실수했는 지도 모른다.  자기 행동이라 나빠보이지도 않는다.  이 것을 아는데도 수십년이 걸렸다.  처벌 같은 것도 못한다.

실수는 끝도 없이 반복된다.  누가 지적이라도 해주면 감사하다는 생각은 들지 않고 화부터 낸다.  단어 한 자를 듣는 순간 화낼 준비를 하고 있다.  '화'의 효과는 대화의 단절이고 나의 발전의 지체이다.  정말 터무니 없는 인생을 운영하고 있다는 것,  그 대상이 남도 아니고 자신의 인생이라는 것을 아는 시간이 그렇게도 많이 걸린다.  죽을 때까지 모르고 가는 사람이 훨씬 많긴 하지만..

자기 생각과 자기 행동을 비교해보면 딱 맞는다.  합동이다.  그래서 100점이고 완전한 가치이다.  그래서 습관을 버리지 못한다.  담배도 남이 피우면 공해지만,  자기에게는 낙이다.  담배 끊은 뒤의 몸에 일어나는 변화에 대해서 가족이 아무리 설명을 해줘도 끊으려고 하지 않는다.  처칠 효과 때문이다.  그래서 처칠은 나쁜 놈이다.  처칠의 사진은,  생각이 많은 것처럼 보여준다.  위장이다.  술도 자기가 마시면 위로이지만, 남이 마시면 추태의 입구에 서있는 상상이다.

씩씩거리며 자기 말이 맞다는 것을 입증하려고 애쓰는 사람이 많다.  아무도 그 말에 관심이 없는데 혼자 그 애를 쓴다.  이런 신과도 같은 완벽한 사람이 어디에 있을까?  나이가 많으면 지식이 풍선처럼 늘어나지 않는다.  나이 많은 것으로 경험치가 올라갔다는 자기 신앙이 생겨난다.  일을 처리하는 방법, 생각은 수천억 가지가 된다.  그런데 무슨 재주로 평범한 사람의 생각 하나가 그 중 가장 우수하다는 생각을 할 수 있을까?

인생을 돌이켜보면,  사람은 싸우는 일 외에 실감나게 할 일이 없었던 것이다.  자존심이고 감정이고 하는 것들 흙으로 되돌아 갈 때는 흔적도 없이 증발해버린다.  증발이란, 어딘가에 잘 안 보이는 형태로 존재한다는 말인데,  이 우주 안에 아예 처음부터 끝까지 존재도하지 않는 게 '생각'이니까,  엄밀히 증발이라는 단어도 쓸 수 없다.  곤란하게도,  이 존재하지도 않는 것 (생각)으로 존재를 입증하려는 사람도 있다.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

밖에 나가면 모기만 나를 반겨준다.  낮이든, 불빛도 없는 밤이든, 새벽이든, 몇 초 안에 몸 어딘가에 달라붙는다.  목숨을 건 대범한 밀착이다.  처음부터 왜 그런 생식을 택했는 지 모르겠지만 잘못된 선택이다.  그런데 모기류는 그 것을 알고 있을까?  후회할까?  뉘우칠까?  안다고 해도 1,000년 안에 DNA 개조가 이루어질 수 있을까?  생각 많이 한다는 사람도 스스로를 이렇게 방치하는데..





......
독재의 기술에서 중요한 내용 중에 '성 차단'이라는 게 있다.  성적인 금지 사항이다.  오래 써온 정치 기술에서도 아시아인들이 대부분 경험한 '남녀 칠세 부동석'이 있다.  자신은 그 성이라는 것을 통해서 태어났으면서도 성을 금기 시 한다.  정치적으로도 크게 이용 당해왔다.  그래서 남의 성에 호기심이 넘친다.  질투도 강해진다.  뉴스의 대부분이 그 것으로 채워진다.  이제는 스스로를 놓아줄 때가 되었다.  스스로를 새장에 그만 가두어도 된다.  2세를 생산하지 않는 성은 남용이다.  그 것은 질환이기도 하다.  조용히 치료할 수 있도록 사회나 가족이 도와줘야 한다.  인재가 자기 길을 갈 수 있도록 길을 열어주어야 한다.  사회에서 매장하려는 지금 사회 분위기에서는 강도나 도둑 말고는 할 일이 없어진다.  우리는 도둑을 기르는 것인가?  사회가 손해보는 짓을 강요한다면 사회는 개선되어야 한다.

Wednesday, 19 October 2016

세상에 대하여 할 말이 많다며
아무런 행동도 못하는 나 자신에게도
책임이 있다.

나 자신을 용서하지 않는 방법을 생각해야 한다.

바로 내 자신이 '개' 같다.

생각해보니, 내가 세상의 원흉이었다.  나만 사라지면 조용해질 세상이었다.  내가 무슨 세상을 구하겠다고.. 그 고생이니?

Tuesday, 27 September 2016

신선

(남의 일기장에 답글 달지 맙시다.  그 것도 폭력이다.  요 하얀 네모 안으로 타인의 문자가 들어오는 것은 반칙이다.)


할아버니는 동그란 벽라디오로도 잘 지냈다.
부모는 tv로 잘 지냈다.
우리는 pc로 잘 놀았다.
다음 세대는 셀폰으로 잘 논다.

문을 열자 모기 한 마리가 빨려들어온다.
올해는 파리가 잘 보이지 않는다.
파리는 몸매가 길쭉한 유선형이 아닌데 빠르며 방향 전환도 잘 한다.
누군가의 소설을 떠올리면,  파리도 연습을 하면 배면 비행을 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
파리의 생이 길지 않으면 그런 여유는 없겠지

밖에 나가 서 있는데 모기가 내 발등 위에 앉았다.
손이 가까이 가자 당황해서 슬리퍼 걸이 (발등 부분을 덮고 있는 부분) 안 쪽에서 이리저리 짧은 순간 당황하다 V자 모양의 궤적을 끌다 사라진다.

격이 같다고 인간은 생각 안 할 테지만, 저나 나나 자연의 원소를 가져다 몸을 부풀리고 있다.  내가 마셨을 이 맥주 한 잔을 니가 마시면,  그 일부는 너의 몸 어디에 배치받고 대기 중인 원소가 된다.  그리고는 얼마간 인생을 같이하고 같이 자고, 어딘가에 같이 간다.  와인을 마시는 기쁨도 같이 한다.

늘 이상하게 생각해오던 일이지만, 홍길동이가 박길순과 결혼하지 않고, 김길순과 결혼했더라면 세상이 어떻게 바뀔까?  결혼 연쇄 반응이 일어나면 100년 뒤에 사는 많은 사람의 얼굴이 딴 사람일 것이다.  이 뜻은 무생물을 포함한 낱개로 존재하는 모든 존재 진리값으로 매겨지는 게 아니라 진행값으로 매겨진다는 것이다.  스스로의 존재에게 절대값을 부여하지만, 상대값이 정확한 계산값이다.  내가 1,000년 전에 태어났더라면 칼, 창을 들고 죽을 때까지 돌아다니는 일이 전부였을 테지만, 지금은 쿠루즈 타고 극지방이나 가볼까?하는 생각을 하며,  뭐하러 귀찮게 창이나 들고 코를 씩씩거리며 우스꽝스럽게 살아야 되나라고 생각한다.

원소 하나의 이동은 나에게 또는 모기에게로 가서 한 단위가 된다.  가끔은 내 몸에 있는 원소를 모기가 가져가기도 하고 그런 모험 중에 맞아서 피투성이가 되기도 한다.  모기의 장례식 같은 건 없다.  아무도 그 것을 슬퍼하는 모기는 없어보인다.  죽은 개미 옆에서 웅성거리는 것을 보면, 간혹 개미들은 그런 느낌을 갖는 지 모르겠다.  어쨌거나 내가, 니가, 모기나 파리가 그 무슨 생각을 하든,  시간은 공평히 흐르고 또 흐른다.  그 시간 어느 한 줌도 나와 만난 적이 없지만, 생명체이고 아니고 간에 모두 세상에 존재도 하지 않는 시간이라는 것으로 설명된다.

태양빛은 점점이 또는 줄줄이 순간적으로 흩어지지만,  이 것 없이는 생명은 가능하지 않다.  그 생명이라는 것은 우리의 입장에서의 가치이다.  전기도 그와 같은 불특정한 특성이 있지만 인간은 잘 사용하고 있다.  불안한 상태로 있어보이는 이런 순간적인 것에 의탁하는 생명들이다.  왜 태양은 쉬지도 않고 그 많은 에너지를 순간순간 정직한 볼륨으로 정직한 질량으로 정직한 속도로 보내는 지는 알지 못한다.  내가 하늘을 올려다 보면 나는 자연의 방관자가 되고,  땅을 내려다 보면 현실의 투사가 된다.

나는 신선처럼 살거나 지금 같이 거지처럼 살거나 상관 없이, 80년 후면 내 스스로 나를 놓는다.  생각을 놓고 배려도 놓고 망각도 놓는다.  내가 베에토벤이었다면 사람들에게 오래오래 잊히지 못할 것이다.  그 순간에 스스로는 완전히 자신을 그리고 시끄러운 세상을 잊고 편할 것이다.  그리곤 다시 자연으로 돌아가, 다른 에너지를 위한 준비 상태에 들어갈 원소로 조용히 환원한다.

흐느끼거나 슬퍼하면서 그 값의 위치가 우주 어디쯤인 지는 생각해볼 필요가 없다.  tv는 재미 있어야 한다거나 영화는 스토리가 있어야 한다거나 뮤직비디오는 볼 게 있어야 한다거나 하는 이야기들 옛날에는 소설은 질곡이 있어야 한다거나.. 이야기 했을 테지

사람들 이야기가 복잡하면, 열심히 일하는 일벌이나 일개미를 보면 좀 이해가 쉬울까?
지 능력으로 사는 것 같지만 99%의 DNA 프로그램으로 나머지는 상황으로 시간을 보낸다.  DNA가 스스로 결정하지 못하는 것은 위치이다.  내가 New York에 있을 지, 남극에 있을 지를 생각해보면 DNA 스스로도 우연적일 것이다.

어쨌거나, 우주에서 보이는 복잡한 과정의 결과는 무엇일까?  우주에는 결과는 없다.  모든 게 진행이다.  (아 ! 밥 먹으러 가자.)

중심 단어를 보면 짐작이 가겠지만,  내가 배불뚝이로, 보이는 세상마다, 아름다울 정도로 풍요를 누렸으면 좀 더 스케일을 가지고 이야기 하려 했을 것이다.  거드름 피우면서 말이다.  너는 왜 찡그리고 사니?  하면서 꼰지르면서 말이다.  (남의 속을 후벼파다의 의미로 알았는데, 고자질하다의 잘못된 표기라고..  이제 보니 사전 뜻이 맞았네.  잠시 착각, 아 이 것도 잘난 척하는 게 맞는 것이로고.)  모기, 파리가 등장하는 것을 보면,  그렇게 붕 떠있지는 않아 보이니 그나마 좀 낫다.  (밥 먹고 오니 말의 자전축이 틀어졌다.  밥은 연료 과정이다.)

언젠가 방 안에 나비 날개를 한 게 들어왔다.  수직으로 낙하하는 비행술도 연기했다.  크기나 나는 모습은 모기와 비슷했다.  뭔지 모르지만 좀 지켜보기로 했다.  어렸을 때 가끔 보던 것이다.  그에겐 이 방의 크기가 얼마나 될 지 모른다.  이동 속도가 빠른 것으로 짐작하면 그렇게는 크게 생각될 것 같지는 않다.  몇 초면 도착할 이쪽에서 저쪽 벽 간 거리에 크다고 생각할 개체라면?  발 다친 거북이 정도나 될까?  우리는 지금 공간 좌표, 시간 좌표가 일치하는 지점에 있다.  서로간 약간은 공격적인 운명으로 만났다.  나는 공간 소유 개념으로 있지만,  저는 공간 공유 개념으로 비행 중이다.  누군가 먼저 공격하면 반사 공격이 따를 것이다.  그가 내 비리를 모르고, 나도 그의 전력을 모르니 나는 거하게 공간 공유하기로 결정 하는도다.

심심해서 뮤직비디오 트와이스 cheer up을 계속해서 보고있다.  가사는 흉한 게 없어, 보는 게 그냥 이유이다.  그렇게 많이 본 화면인데,  미국 이야기를 하다 풍차가 미국 풍차가 아닌 것을 확인했다.  수백번 본 화면인데,  나도 그게 미국 풍차 아닐 것이라는 생각은 한번도 못해봤다.  이 소품의 키는 자연 바람에 움직이는 풍차다.  모터로 움직이는 것 말고..  그거 사람 눈이 모를 것 같아?  never..  그래도 웅?  소품 담당 때리지 마라.  검은 머리들 툭하면 사람 때리는 게 행복인 줄 알더라?  노란머리는 좀 덜 그러지 않나?  블랙핑크 나오고 views 카운트 속도가 1/4로 줄었다.  요즘 많이 속도가 회복됐다.

요즘 집을 보러다니면서 내가 달라진 것을 느낀다.  언젠가 youtube의 영상에서 아프리카 또는 동남아시아 어느 비포장 황토길이 왜 그토록 멋져 보였을까?  한참을 가도 도로에 차 한대가 없다.  좋다.  평화다.  내가 사는 곳은 가로수라는 게 없다.  이 사람들 수천년을 그렇게 살아온 DNA를 품고 있을까?  그럼 걱정인데?  (좀 놀다 오자.  내가 가물가물한다.)




Friday, 24 June 2016

나를 생각해보네
세상에서 제일 다루기 어려운 게 나이고,
혼자 있고 싶어도 떨어져 나가주지 않는 게 나이고,
나에게서 '우리'를 떨쳐내지도 못하고

나는 나에게 파묻혀 산다.
나는 수 많은 나 중에서 이상한 나를 만난다.

나 자신에게도 나의 결함은 비밀이고
허황되고 허풍으로 가득 채워져 있다.

그렇게도 많은 비리는 내 자신에게도 있지만
그 누구도 그것을 모른다.

나의 가장 큰 실수는
내게 잡힌 '시간'을 휴지조각처럼 구겨버린 것..

Saturday, 7 May 2016

우주의 중심을 한 축으로 모든 우주가 돌고 있다면?
우주의 끝에 있는 어떤 별은 그 이동 (공전) 속도가 빛의 빠르기와 같아야 한다.
즉, 어떤 측정기로도 그 궤적을 밝힐 수 없게 된다.
확률로 보아도,  있으면서 동시에 없는 모양이 된다.

이 가정은 빛보다 빠른 운동은 없다는 전제 하에 그렇다.

라면을 끓이기 위해 크레잎(말린 채소 가루)를 물에 넣으면 어떤 '운동'이 보인다.
라면을 끓이기 위해 물에 라면 스프를 넣을 때도 보는 것이고,  식기를 닦다가 물 위에 주방 세제를 한 방울 떨어뜨려도 보게 되는 어떤 것이다.
(크레잎을 두번 째 넣으면, 그게 안 보인다.  그것은 수면 위 투하의 순간 위상차와 구분)

꽃가루를 물에 떨어뜨리면 물의 표면에서 확산된다는 소리를 듣고 아인시타인이 '브라운 운동'이라고 말했다고 한다.

모든 단위 물질은 팽이처럼 끝 없이, 이유 없이 돌고있다가 서로 충격을 가하며 서로 튕긴다.

지구가 돌고, 달이 돌고 태양이 돌고..
이 것들은 사람의 눈 크기보다 커서 (그 먼 거리에 있어도 눈의 크기보다 큰) 잘 보이고, 느리게 진행한다.  사람의 눈으로도 충분히 볼 수 있게 움직인다.

태양은 우리 은하의 가장자리에 있다.  우리 은하를 중심으로 돌고있는데,  끝에 있기 때문에 그 속도가 어마어마 하다.  그 태양을 지구가 따라가며 돌고 있고,  그 지구를 달이 따라가며 돌고있다.  지구 상에 있는 모든 단위 물질도 보이지는 않지만 끝도 없이, 이유도 없이 돌고 있다.

우주 공간에는 열도 운동 저항체도 없어서 그렇다고 해도,  지구 상의 각 물질의 움직임은 중력과 저항력을 견디면서도 운동을 한다.  더구나 쇠덩이나 나무 같은 것들은 완전 고정체처럼 보인다.

나의 몸도 그러한 돌고 있는 물질들의 결합이다.  손에 든 망치나, 연필도 정신 없이 돌고있는 물질들의 결합체이다.  이 물질들은 내가 죽어도 그 움직임을 멈추지 않는다.  지구가 사라져도 어디선가 계속 돌고 있게 된다.

나의 영혼은 이 오랜 우주의 시간 안에서 잠깐, 나의 몸을 형성하고 있는 그 물질들을 배경으로 찍은 사진 한 컷에 불과하다.  동일한 생명체들의 기억 속에 얼마간 존재하다 영원히 잊혀지는, 망각체이다.

The helical model - our solar system is a vortex
https://www.youtube.com/watch?v=0jHsq36_NTU

방금 내 몸 속으로 들어간 산소 알갱이 하나,  내 몸 속을 빠져나온 이산화탄소 한 알갱이의 만남까지..
존립 자체가 기적인, 이런 우주에서 고작 80을 사는 사람들의 머리를 꽉 채우고 있는 생각들은 무엇이었던 것인가?  Beethoven이나 돼야 겨우 본전 찾는 게 인간이다.


......
입증 여력이 없기 때문에 '정확히'라는 표현을 쓸 수는 없지만, 팽이처럼 돌면서 튕긴다기보다는, 활동 공간만큼 확보하려는 척력..

Thursday, 7 April 2016

별은

내가 집을 짓고, 금 탑을 쌓는 것은
내 인생이라는 게, 쓸모도 없이 길기만 하다는 말이된다.

별은
너무 크고
얼마나 많은 지를 모를만큼 많아서
아무도 소유할 수 없다.

집은 아무리 커도, 작으며
아무리 튼튼하게 지어도 먼지로 날린다.
집 밖 세상으로 나아가면
전 우주가 나의 소유가 된다.

우주와의 대화는 태어나서 처음, 나와의 만남이다.
정말로, 내가 누구인 지 찾는 작업인 것이다.

Tuesday, 15 March 2016

우주

우주는 나를 비춰주는 거울이다.
우주를 바라볼 때 내 자신이 보인다.

날이 샐 때까지 학원에 오락가락 하는 사람은 죽은 뒤에도 자신을 볼 수 없다.
오늘 날과 같이,  세계 60억 인구가 모두 이웃의 도둑일 때,  단 한번도 자신의 인생에 대해서 어떤 물음도 가지지 못한다.

우주를 바라볼 때,  내가 보이기 시작하고,  내가 왜 지구에 와서,  무엇을 하고 결국 어디로 가는 지,  생각이나마 해 볼 수 있다.

자기 자신이 뭐 대단한 존재였다고,  쉴 새 없이,  목구멍에 밥 집어넣고 즐거워한다.
왜 그렇게 인간은 자신을 위한 노예가 되면서도 즐거워 할까?

섹스로 엑시터시에 오를 때,  거기에 내가 있었던 것처럼 생각되겠지만,  dna에 프로그램된 것을 그대로 따라가고 있는 것이다.  나는 무언가 다른 세상으로의 전달자처럼 생각되기도 하지만,  보람도 없이 어디론가 날려보내는 민들레 꽃씨 프로그램이다.  그것은 내가 느티나무로 600년을 살아도,  모기로 태어나 열흘을 이 땅에 살다가도 dna가 키워낸 하수인이다.

우리에겐,  '세상을 전달한' 미덕 같은 것이란 없다.  세상을 느낄 수는 있어도,  어떤 것도 나의 '것'이 있지 않다.  그 '느끼는 것'은 우주가 나에게 할당한 관용이다.  디오게네스를 알면 이 말이 이해가 되겠지..

폼페이에서 젊은 날에 생을 마감한 사람과 생생한 인생을 느끼고 있는 나 자신도 공기보다 가벼이 사라져서 모든 기억에서 지워지게 될 것이다.

아무도 자기 인생을 제대로 살고 가는 인간은 없다.



억지

평생을 뭔가 주장하다가 죽는 날까지 자기가 옳은 줄 아는 사람들

아인시타인: 자기 주장이 옳은 지 그른 지도 모르고, 무슨 말을 하고 있는 지도 모른다.

큐리 부인: 방사능이 몸에 해롭지 않다고 주장하다가 암으로 죽었다.  100년이 지난 지금도, 그녀가 작성한 문서(기념관 벽에 걸린 작은 종이)에서는 아직도 방사능이 나오고 있다.

에디슨: 가정용 전기는 직류 전기여야 한다고 주장 했으나 가정용 전기는 어디서나 교류를 사용한다.

각 분야에서 많은 연구 경력이 있는 사람들도 이런데,  몇 초 생각으로 평생을 우기고 사는 나 같은 사람은 얼마나 많은 오류를 범하고 죽어가는 걸까?  더구나, 나의 모든 것이 엉망이었다는 안다해도 절대로 억울해 할 줄도 모른다.

Wednesday, 8 April 2015

여러분의 '나'는 무엇인가?

60억 중의 하나?
60조 중의 하나?
60경 중의 하나?
40억년 중의 하나?

신기한 숫자 한 가운데 있는 '나'이다.

나는 '나'를 어떻게 관리하고 있나?

지하철 타고 한 시간?
자면서 여덟 시간?
남 모함하면서 세 시간?

'착한 나'로는 하루 중 몇 시간을 할당한 것인가?

아무리 착하게 살아도, 나는 '나'로서 자격이 없다.

Sunday, 16 November 2014

'나'를 피하면, 인생은 아주 가뿐해질 것이다.
이 인생이 나를 주제로 이야기 되어지는 게 유쾌한 일이 아니다.

'나'에 묶이면, 인생을 생각해볼 여유를 못 갖게된다.
'나'에 결박되면 내 인생은 자유를 잃게된다.

그 상태가 노예와 다르지 않다.

죽기 전에 적어도 10년간
우리가 여기에 왜 왔고, 왜 있는지 생각해볼 여유 정도는 있어야 한다.

적어도 들풀 한 포기와 다르게 보이려면,
적어도 바람을 바라보며, 자신을 생각(복수가 아닌)할 시간은 배당돼야 한다.

Monday, 2 June 2014





'나'라고 하는 의식

수 많은 타인들,
사자,
독수리,
매실,
들국화,
잡초,

다 알 것도 같은 생명체이다.

그러나,
나라면,

알 것 같지 않다.

언제부터 '나'라는 생각이 들었고,
타인과 다르다는 것을 알게되었고,
내가 '나'이어야 하는지 그 뜻을 모른다.

나를 숭앙하며,
내가 잘 때는, 나를 잠시 잊고,
언젠가 영원히 나로부터 기억되지 않을 '나'

왜 나를 '나'라고 알고 있는지
이에 대해서 내가 답을 언제 마칠지 모른다.




(소설 기사 - 기사의 가공시대)

(시간의 용도가 있을 것이다.  시냇물처럼 모두 앞에 놓여져 있는게 시간이긴 하지만, 적어도 동족을 착취하는데 쓰이는게 시간이라면, 설명으로 충분치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