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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nday, 20 November 2016

생각

사람들은 자기의 생각이 얼마나 위험한 지 모른다.
거의가 오류 투성이이고,  검증도 하려하지 않고,  절대적으로 믿어버리는 데 문제가 있다.
아무리 쓰레기 (이 단어도 ㅔ 모음을 없애고 쓰래기로 표기하자.)이고 쓸 모가 없어도 자기 소유라서 대단한 보물이 된다.

뇌 안에서 문득 떠오르는 단어,  그 것이 생각을 지배한다.

오비이락,  어느 누구도 전 우주에 대해 이 것을 아니라고 증명할 시간도 돈도 에너지도 궁하다.  '아니다.'라는 것을 어떻게 입증하나?

사람들이 하고 있는 생각은 이런 것이다.

문제) 다음 중 서로 관련이 있는 것 끼리 선을 이어라.

1)학교                                      공부
2)운동장                                   비행기
3)절                                         운동화
4)외국                                      신앙

자신이 처한 상황에 따라 이 값은 바뀔 수 있다.  그런데 이 값이 바로 확신으로 검증 없이 바뀌고 그에 따라 행동이 결정되는 결함이 있다.  사람의 생각은 현재 72억가지의 경우가 가능하다.  남의 의사를 존중하지 않고 자기의 각도에서만 보는 세상을 자식에게 강요하는 우리들은 남의 말은 다 틀리고 (현실에선 '다르다'라는 표현을 쓰지 않는다.), 나의 말은 언제나 옳다는 생각이 집안을 망치고 나라를 망친다.  그래서 남에게 이래라 저래라 하는 것은 대단히 잘못된 행동이다.

생각이 그렇게 논리적이지 않다.  감정에 심하게 휘말리면 틀린 것을 알면서도 행동을 반복한다.  중간 중간 매번 행동을 논리적으로 판단하지 못하고 수순에 따라 가던 방향으로 멈추지 못하고 가버린다.

집에서 시간 날 때,  가족들의 행동의 연관성을 깊게 생각해보면,  우리 집이 결코 따뜻한 공간이 아니었다는 것과 한 식구나 다른 식구나 전혀 차이 없이 행동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된다.  막연히 믿고 의지했던 것이 내가 편중되어 스스로 안심되었던 것이지,  종합적인 사실과도 아무런 관련이 없었다.  가족사를 깊이 들여다보면 누구나 크게 실망하게 될 것이다.  자신을 아는데는 반드시 필요한 과정이지만,  의지가 약한 사람은 폐인되기 좋은 코스이다.

Monday, 24 October 2016

나 2

생각해보면, '나'라는 것보다 골치 아픈 게 없다.
자신을 나무랠 수도 없고,  자책한다고 해도 실감도 나지 않는다.  얼렁뚱땅..
실수했는 지도 모른다.  자기 행동이라 나빠보이지도 않는다.  이 것을 아는데도 수십년이 걸렸다.  처벌 같은 것도 못한다.

실수는 끝도 없이 반복된다.  누가 지적이라도 해주면 감사하다는 생각은 들지 않고 화부터 낸다.  단어 한 자를 듣는 순간 화낼 준비를 하고 있다.  '화'의 효과는 대화의 단절이고 나의 발전의 지체이다.  정말 터무니 없는 인생을 운영하고 있다는 것,  그 대상이 남도 아니고 자신의 인생이라는 것을 아는 시간이 그렇게도 많이 걸린다.  죽을 때까지 모르고 가는 사람이 훨씬 많긴 하지만..

자기 생각과 자기 행동을 비교해보면 딱 맞는다.  합동이다.  그래서 100점이고 완전한 가치이다.  그래서 습관을 버리지 못한다.  담배도 남이 피우면 공해지만,  자기에게는 낙이다.  담배 끊은 뒤의 몸에 일어나는 변화에 대해서 가족이 아무리 설명을 해줘도 끊으려고 하지 않는다.  처칠 효과 때문이다.  그래서 처칠은 나쁜 놈이다.  처칠의 사진은,  생각이 많은 것처럼 보여준다.  위장이다.  술도 자기가 마시면 위로이지만, 남이 마시면 추태의 입구에 서있는 상상이다.

씩씩거리며 자기 말이 맞다는 것을 입증하려고 애쓰는 사람이 많다.  아무도 그 말에 관심이 없는데 혼자 그 애를 쓴다.  이런 신과도 같은 완벽한 사람이 어디에 있을까?  나이가 많으면 지식이 풍선처럼 늘어나지 않는다.  나이 많은 것으로 경험치가 올라갔다는 자기 신앙이 생겨난다.  일을 처리하는 방법, 생각은 수천억 가지가 된다.  그런데 무슨 재주로 평범한 사람의 생각 하나가 그 중 가장 우수하다는 생각을 할 수 있을까?

인생을 돌이켜보면,  사람은 싸우는 일 외에 실감나게 할 일이 없었던 것이다.  자존심이고 감정이고 하는 것들 흙으로 되돌아 갈 때는 흔적도 없이 증발해버린다.  증발이란, 어딘가에 잘 안 보이는 형태로 존재한다는 말인데,  이 우주 안에 아예 처음부터 끝까지 존재도하지 않는 게 '생각'이니까,  엄밀히 증발이라는 단어도 쓸 수 없다.  곤란하게도,  이 존재하지도 않는 것 (생각)으로 존재를 입증하려는 사람도 있다.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

밖에 나가면 모기만 나를 반겨준다.  낮이든, 불빛도 없는 밤이든, 새벽이든, 몇 초 안에 몸 어딘가에 달라붙는다.  목숨을 건 대범한 밀착이다.  처음부터 왜 그런 생식을 택했는 지 모르겠지만 잘못된 선택이다.  그런데 모기류는 그 것을 알고 있을까?  후회할까?  뉘우칠까?  안다고 해도 1,000년 안에 DNA 개조가 이루어질 수 있을까?  생각 많이 한다는 사람도 스스로를 이렇게 방치하는데..





......
독재의 기술에서 중요한 내용 중에 '성 차단'이라는 게 있다.  성적인 금지 사항이다.  오래 써온 정치 기술에서도 아시아인들이 대부분 경험한 '남녀 칠세 부동석'이 있다.  자신은 그 성이라는 것을 통해서 태어났으면서도 성을 금기 시 한다.  정치적으로도 크게 이용 당해왔다.  그래서 남의 성에 호기심이 넘친다.  질투도 강해진다.  뉴스의 대부분이 그 것으로 채워진다.  이제는 스스로를 놓아줄 때가 되었다.  스스로를 새장에 그만 가두어도 된다.  2세를 생산하지 않는 성은 남용이다.  그 것은 질환이기도 하다.  조용히 치료할 수 있도록 사회나 가족이 도와줘야 한다.  인재가 자기 길을 갈 수 있도록 길을 열어주어야 한다.  사회에서 매장하려는 지금 사회 분위기에서는 강도나 도둑 말고는 할 일이 없어진다.  우리는 도둑을 기르는 것인가?  사회가 손해보는 짓을 강요한다면 사회는 개선되어야 한다.

Thursday, 6 October 2016

생각

같은 말을 해도 타인의 잘못을 예로 들면 잘 듣던 사람이,  같은 내용을 듣는 사람을 예로 들면 화를 잘 낸다.  자신을 개선할 의사가 없는 사람에게는 더 심한 일이다.

생각이 꼭 필요해서가 아니고, 그 것이 내 생각이라 남의 것보다 중요해서도 아니다.  그 상황에서 떠오른 데이터(생각)가 오직 그 것 뿐이라서 그 것을 행동으로 채택한 것이다.
이 것은 데이터(생각)가 부족할 수록 당연히 잘못될 것이고,  심각한 데이터 부족 상태인 사람은 선택 시점에서 아무 거나 선택하는데,  하필 잘못된 유일한 1%를 선택하기 쉽다.

이 생각 과정은 평생을 그 사람들 따라다녔고 패턴으로 굳어버린다.  남의 생각을 쓴 책을 많이 읽지 않거나,  자료 찾기에 소홀한 사람은 실패를 하고도 그 원인을 찾지 않고,  운이 없었다거나, 바로 옆에 있는 사람 잘못이라고 소문내고 다닌다.  이래서 남을 비방하면 자신이 추락하는 과정만 남았다는 말이 이해가 된다.

세상에는 베에토벤만 있는 게 아니다.  대부분 사람들은 어떻게 평생을 살까 싶게 한심한 생각들을 하고 산다.  비젼이 없으니 주변에 있는 사람을 아무나 붙잡고 스파링 상대로 삼고 살아간다.  그들의 신중한 선택은 '이 시간을 어떻게 버리느냐'에서 빛을 발한다.  방 안에서 식구들과 싸우는 일이 많고 술 취하면 세상 모르게 코골고 잠들어버리는 사람과,  조용한 새벽에 일어나 글을 써야하는 사람과는 아파트 바닥을 공유하기 어렵다.  가난한 나라에 살면,  맥주 컵에 아주 살짝 립스틱이 남아있다는 것을 알아도 모른 체 하는 게 편하다.  그럼 맥주 마실 데가 어디에 있겠는가?  맥주 컵은 생김새가, 깨끗하게 세척하기 어렵게 만들어져 있다.  손으로 세척하는 나라에서는 깨끗하게 씻을 방법이 찾기 어렵다.  브러시로 닦아야 하지만,  아마 자기가 사용할 맥주컵도 브러시로 사용 안 하는 사람이 많을 것이다.

보이는 것도 이리 하는 게 보통인데,  들여다 볼 수 없는 것 쯤이야.. ?

백제 병원에 있을 때,  보호자용 담요를 주지 않았다.  같은 병실에 있는 보호자가 받아다 주겠다고 했지만,  편법이라 거절했다.  편의점에서 비닐 우의를 사다 입었지만,  입으면 찜통이고, 벗으면 춥다.  결국 담요 한 장이 환자를 내쫓는 결과가 되었다.  새벽에 택시를 타고 집에 있는 얇은 이불 한 장을 가져왔다.
(간호사의 배치,  업무 배치, 비용의 통제 같은 들여다 보면,  병원 정책이 어느 쪽에 신경을 더 쓰는 지 알 수 있다.  백제 병원은 주사 (시간) 만큼은 정확했다.  전주고려병원이 절대로 따라 할 수 없는 서비스이다. 어떤 병원이든지,  비용의 총합은, 너무 비싸다는 소문이 안 날 정도로 비슷한 규모를 갖고 있다.)

환자의 생각은 이렇다.

세면장에 가는 길에 침대 아래에 있는, 집에서 쓰던 이불을 봤다.
세면장에서 한 사람을 봤는데,  가족 중 한 사람으로 알고 있다.  (환자가 다른 환자를 가족 중의 한 사람이라고 지목을 했지만, 보호자는 이 말을 흘려들었다.)
의사가 처방한 염증치료제는 모든 환자에게 심한 가려움증을 유발했고, 이 환자에게는 섬망이 계속 되었다.
환자의 집에는 봉투에 몇 만원이 들어있다.

주사를 맞고 섬망이 오면 저 데이터를 조합한다.  심한 오류가 있어도 이미 스스로 결정한 행동에서 벗어날 수 없다.  일단 결정되면 몸의 모든 부분은 그 방향으로 달리고 있다.  버스가 일단 달리기 시작하면 열심히 달리 듯..

집에서 쫓겨났다:
집에 있어야 할 이불이 여기 있다.  가족 중의 한 사람(환자복을 입은 사람)이 그 세면장에서 세면을 했다.  (환자복을 입은 사람의 복선은 나중에)

그래서 이 환자는 집으로 가서 봉투를 챙겨야 한다.

환자의 치료 거부는 계속 되었다.  잠도 자지 않고 주사기 뽑아버리는 데 온 정신을 집중했다.  환자복을 벗어버리고 손목에서는 피가 줄줄 흐르는데,  바닥을 기어다닌다.  죽어도 집에 가야한다.

남의 생각의 과정이야 이렇게 지켜볼 수 있다지만,  사람들 자신의 생각은 그럴 수 없다.  스스로 옳지 않은 걸 알면서도 상대방에 반대하기 위한 발언이 많다는 것을 알 것이다.  그러한 사회가 건전할 리 없다.

아주 작은 알약 하나를 환자의 입에 넣어줬다.  알약은 그냥 삼키면 된다.  환자가 뭔가를 썹더니 뱉어버린다.  반 정도가 나왔다.  수면제였던 것 같은데,  환자는 잠을 못 자고 날이 밝도록 전투를 하고 있었다.  집에 있는 화폐의 가치보다,  급한 퇴원으로 보는 손해가 훨씬 크다.  바닥의 100원 주우려다 주머니에서 10,000원짜리가 분실되는 경우와도 같다.  노인들은 이런 거 많이 한다.  감정에 있어서는 더욱 확실하게..

태어나면서 연약하게 태어난 생물이 있다.  평생 주운 조개 껍질 같은 것을 몸에 달고 다닌다.  사람에게서 모든 미신을 빼버리면 정말 맨 몸만 남는다.  미신은 어디에나 있다.  자신을 보호해야 한다는 신념, DNA 속, 부모로부터 승계,  사회적 분위기..

세상에서 사람은 아무리 노력해도 스스로 자유를 얻을 수 없다.  사람 눈으로도 잘 보이지 않는 작은 점 하나로부터, 크게 투영된 자신의 모습에 흡족해하며 열심히 사는 일 외엔 별달리 인생에선 할 일이 없다.

가족을 돌이켜보면, 계속적으로 반복되는 무의미한 행위들이 있다.  흔히 술, 담배 같은 것인데,  아주 나쁜 것이라는 것을 아는데,  이런 생각도 해본다.  그 것들이 이 생명을 유지시키는 한 줄기 위안일 것이라고..

차라리, '자랑'을 끊고, 드라마를 보지 마라고 충고하고 싶지만,  그게 가능했으면 모든 사람들이 모두 재벌이 돼 있어야 한다.









Tuesday, 3 May 2016

생각

퍽 !

개인용으로 사용하는 pc는 딱 두대면 충분하다.

조건은 이렇다.

youtube 720P를 끊김 없이 볼 수 있을 것

나머지 구형 pc의 역할은 그냥 저장 장치의 역할 밖에 못한다.
가끔 손님용으로 방을 내주고 인터넷 검색이나 동영상 시청을 할 수 있게 하려면 1080P 정도는 끊김 없이 볼 수 있게 해줘야 한다.

저 소리는 pc를 세팅한다고 pc를 여러 대 켜니, 멀티 콘센트에서 모락모락 연기와 함께 나는 소리다.  중국제 전선 중에는 전선 굵기는 아주 굵은데, 구리 실선이 열 몇 가닥 들어있는 것도 보았다.  그렇게 굵은 게 모두 전선 피복이었던 것이다.  선의 외피 굵기만 믿고 두꺼운 구리선이 들어있다고 믿지 않게 해준다.  누가?  중국이..  살아오면서 가짜 계란과 함께 이런 이상한 의문을 들게하는 나라는?  그 위대한 중국이 아니면 또 어느 나라일까?  옛날 한국에 대해서도 일본은 그렇게 느꼈을까?

나이 들면서 생각이 정밀해지지 않는다.  공유기 4port를 쓴다.  사용하는 pc는 한 두대이지만,  가끔 연결해야 하는 pc는 4port 공유기로는 랜 선을 뺐다 끼웠다 해야해서 바빠진다.  한 달에 한 두번 사용할까 말까 하는 무선 공유기 연결, 일주일에 한 두번 옆 방 pc의 data를 꺼내오기 위해 잠깐..

그러다 문득, 광고를 본 게 허브이다.  10 몇 핀 허브를 검색하다가 아니  24핀으로 하자 하고 구매를 했다.  4port 공유기를 치워버리고 모뎀에 24핀 허브 iptime sw2400을 연결했다.

인터넷이 연결된 모든 pc에서 다 된다.

그런데?  windows 10 파일관리자('네트워크'-왼쪽 창이 아닌 오른쪽 작업 창)에서는 이 모든 pc가 다 나타나지는 않는다.
내부 ip가 두 계층으로 나타난다.  192.168.0.X 일단 이 게 아니다.

첫 단계의 숫자가 같으면,  파일관리자에 나타나는데,  그 숫자가 다르면 파일관리자에 절대로 나타나지 않는다.  원격제어도 가능한데 파일관리자에만 나타나지 않는다.

이런 식이다.
내부 ip가 119로 시작하면 파일관리자에 다 나타난다.  그런데, 14로 시작하면 파일관리자에 나타나지 않는다.  한번 ip가 만들어지고 나면 그 다음엔 방법이 없다.  전엔 공유기로 들어가서 ip를 만들어준 기억이 있다.

지금은?  포기한다.  어떻게 해도 저 14로 시작하는 ip는 바뀌지 않는다.  mac address가 바뀌면 바꿀 수 있는 걸까?

무슨 말을 하려는 걸까?
port 많은 허브, 알아보고 구입하라는 말인데,  보는 사람에게는 1,000원의 가치가 있는 말이었을까?

어쨌든, 허브는 허브이고, 공유기는 공유기인가보다.

생각해보았다.  왜 이 걸 살 생각을 했을까?
회사에 있던 허브의 LED를 지켜보고 있노라면,  바쁘게 잘 산다는 생각이 들었다.
허브의 깜빡거리는 불빛 때문이었을까?
이 허브가 들어오면서부터 머리가 아파지기 시작한다.

인터넷 모뎀 - 허브 - pc

모든 pc는 허브에 연결한다.  모뎀에서 나오는 한 가닥 lan 선도 허브 아무 데나 연결한다.

이 상태로 각자의 pc는 인터넷도 된다.  전에 쓰던 공유기의 port 별 인터넷 속도를 측정해보니, 다 달랐다.  더 구형 공유기는 속도가 1/3도 안 되었다.  공유기 없이, 허브를 모뎀에 바로 연결하니 속도가 빨라진 느낌이다.

각 pc의 ip를 확인하니 첫 칸의 숫자가 다르다.  첫 칸의 숫자가 같으면,  전에 하던 것을 그대로 승계해서 쓸 수 있다.  vpn도 되고, 그래서 저쪽 모니터, 키보드, 마우스 없는 pc를 원격으로 끌 수도 있다.  그런데 첫 칸의 숫자가 다르니 파일관리자 창에 컴퓨터 이름이 뜨지를 않는다.  vpn은 된다.  vpn으로 원격 제어 끌 수도 있다.  이제부터 ip로 머리가 아파지기 시작한다.

그래서, 다음과 같이 연결 상태를 바꿨다.

인터넷 모뎀 - 4port 공유기 - 허브 - 각 pc

google에서 myip 하니, 모든 ip가 동일하게 나온다.  그리고 좀 전에 ip 첫 자리 수가 달랐던 pc는 vpn이 안 된다.  이런 모든 문제 뒤에 처음으로 켠 pc는 vpn이 되고 원격으로 끄기가 된다.

전에 쓰던 192.168...은 마지막 숫자만 알고 있으면 되니,  pc 관리가 쉬웠다.

모뎀을 끄고, 공유기를 초기화 하고, 허브를 끄고, 그렇게 계속 반복되는 pc booting...

아, 4port 공유기 하나 쓸 때처럼 편하지는 않다.  그 때의 불편함이란?  안 쓰는 pc 선을 공유기 port에서 빼고, 쓰는 pc를 연결하는 일.. 이게 싫어서 허브를 샀는데,  현기증이 날 정도가 된다.

아 ! 사람들.  힘들게들 살았구나..

vpn 설정을 아무리 바꿔도 원격제어가 되지 않는다.  모두 삭제하고 다시 설치하면서 보니까,  이 vpn은 C: 드라이브에다만 설치가 되나보다.  그런데, 처음 문제가 되었던 pc는 lan 선은 네 개의 선이 연결된 것이었다.  kt 직원(A/S)이 네 선만으로도 인터넷이 된다고 하면서 2m짜리 한 가닥을 만들어준 것이었다.  기가 인터넷 하려면 그 선만으로는 안 된다고 한다.  선을 8선이 모두 연결된 선으로 바꾸고, C: 파티션에 여유 공간이 없어,  공간을 여유있게 하고 vpn을 다시 설치하였다.  공유기 설정에서 mac 뭔가를 건드렸더니 mac 주소가 바뀐 모양이다.  google에서 myip 검색하니 ip 끝자리만 바뀌어있다.  그게 허브 ip인 모양이다.  이러면 분명,  외부에서 이쪽의 각 pc를 읽어드릴 방법이 없을 것이다.

vpn으로 원격제어가 된다.
pc를 껐다 켤 때마다,  ip 끝자리가 바뀐다.  이러면, 공유기 설정을 불러 각 ip를 확인하고 vpn에서 ip를 바꿔줘야 한다.  공유기 설정을 보니 이런 게 있다.

공유기 아래 허브를 연결했더니,  ip가 앞쪽에서부터 순차적으로 바뀐다.  ip 끝자리가 3번이었던 pc가 꺼지면, 다른 처음으로 켜진 pc가 3번이 되는 식이다.  이 것도 전에 못 보던 것이다.  모뎀에 허브를 직접 연결했을 때보다 인터넷 속도가 느려진다.  youtube 동영상 싱크가 맞지 않는다.

내부 LAN 설정 - 자동 설정 (체크) - 그러면, mac 주소와 ip가 뜬다.  이 것은 각 pc에서 해줘야 한다.  여기서 '추가'
이 메뉴의 이름은 'DHCP 고정 IP 주소 설정'
내부 ip를 고정하겠다는 뜻 같다.  일단, '설정 저장'.
다른 pc를 꺼도 '내부 PC IP 정보'에서 ip가 사라지지 않는다.
여기에 등록 안 된 pc를 켜면 어떻게 될까?  그리고 그 pc까지 등록을 하면?
내부 ip가 고정이 된다.  이 작업은 vpn으로 원격으로 할 수 있다.
이와 같은 방법으로 내부 ip를 고정 할 때,  입구에서 첫번 pc부터 작업을 한다든 지, 동쪽 pc부터 작업을 한다든 지 하면,  대충 pc 내부 ip 끝 자리를 짐작할 수 있겠다.

섹터로 구분한다면, 1번 섹터의 세 pc는 끝 ip가 11, 12, 13.  2번 섹터에 1번에 신입사원이 올 것이고 아직 pc가 없으니까?  나머지부터 하면,  22, 23, 24, 25..  3번 섹터는 새로 부서가 생길 준비 중이고 pc는 없으므로..  4번 섹터도 같은 방법으로 41, 42, 43, 44와 같은 방법으로 하면 되겠다.

network 활성화에서 확인하는 것은 이렇다.

1. youtube를 볼 수 있는가? (각 pc에서 인터넷을 사용할 수 있는가?)
2. vpn으로 서로 원격으로 상대 pc를 끌 수 있는가?
3. 파일관리자에 상대방 pc 이름이 나타나는가?
4. 인터넷 속도의 down이 염려된다면,  속도 체크도 해보면 좋겠다.
느려진다면,  공유기의 남은 port에 직접 연결해도 되겠다.

인터넷 속도 측정
http://beta.speedtest.net/
kt에서는 이런 테스트를 하는데, 왜 아이디, 비밀번호까지 넣고 들어가야 되나?

리눅스에서 vpn 연결하거나, 공유 폴더 열어보기는 확인해봐야 한다.



Tuesday, 15 March 2016

우주

우주는 나를 비춰주는 거울이다.
우주를 바라볼 때 내 자신이 보인다.

날이 샐 때까지 학원에 오락가락 하는 사람은 죽은 뒤에도 자신을 볼 수 없다.
오늘 날과 같이,  세계 60억 인구가 모두 이웃의 도둑일 때,  단 한번도 자신의 인생에 대해서 어떤 물음도 가지지 못한다.

우주를 바라볼 때,  내가 보이기 시작하고,  내가 왜 지구에 와서,  무엇을 하고 결국 어디로 가는 지,  생각이나마 해 볼 수 있다.

자기 자신이 뭐 대단한 존재였다고,  쉴 새 없이,  목구멍에 밥 집어넣고 즐거워한다.
왜 그렇게 인간은 자신을 위한 노예가 되면서도 즐거워 할까?

섹스로 엑시터시에 오를 때,  거기에 내가 있었던 것처럼 생각되겠지만,  dna에 프로그램된 것을 그대로 따라가고 있는 것이다.  나는 무언가 다른 세상으로의 전달자처럼 생각되기도 하지만,  보람도 없이 어디론가 날려보내는 민들레 꽃씨 프로그램이다.  그것은 내가 느티나무로 600년을 살아도,  모기로 태어나 열흘을 이 땅에 살다가도 dna가 키워낸 하수인이다.

우리에겐,  '세상을 전달한' 미덕 같은 것이란 없다.  세상을 느낄 수는 있어도,  어떤 것도 나의 '것'이 있지 않다.  그 '느끼는 것'은 우주가 나에게 할당한 관용이다.  디오게네스를 알면 이 말이 이해가 되겠지..

폼페이에서 젊은 날에 생을 마감한 사람과 생생한 인생을 느끼고 있는 나 자신도 공기보다 가벼이 사라져서 모든 기억에서 지워지게 될 것이다.

아무도 자기 인생을 제대로 살고 가는 인간은 없다.



Friday, 8 May 2015

자연은 생각이 없어도 룰은 지킨다.
토네이도가 생기는 것은 그러한 연유다.
물이 끓는 것도 그러한 연유다.

룰이 어떤 상황에서든 정확히 지켜진다.
선과는 다른 의미가 있다.

고정되고 변하지 않는 것을 선으로 말한다면,
가장 적당한 대상으로 '무(nothing)'가 어울리겠다.
그것은 움직이는 것과 움직이지 않는 것과의 비교이므로 맞지 않다.

범위를 지정하거나, 높이를 규정한 것 안 어디에 선이라는 게 있다.
서민이 흔히 '선'할 것이라고 막연히 믿고 먼저 행동해버리는 것의 결과는 선에의 기대, 오해, 예측이지, 선은 아니다.

선은 인간 사이에서 가장 간소한 절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