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day, 30 June 2014

익산이라는데

익산이라는데



작은 집을 사기 위해 전국을 돌아다닌다.
비싼 곳은 안 다닌다.
서울, 경기, 대전이다.
하림과 관계되는 곳, 그리고 그 주변 도시도 안 다닌다.

그런데, 익산에 다녀왔다.
땅 생김은 너무나도 멋졌다.
어디나 절을 지어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으니까..

적당히 야산이 있고, 골짜기마다 아기자기 하고, 이런 멋진 곳을 구경하지 못했다.

그런데, 어느 야산이고 가장 멋진 곳에선, 소들이 살고 있었다.
심한 악취.. (벼의 수익성이 떨어지자 짚을 소 사료로 보충한다는 생각 - 논이 많은 지역은 소가 많겠다는 생각)

또 하나 이상한 것은..
마을 환경들이 너무 지저분하다.
어디서나 태우는 쓰레기,
밀집된 주택가 집 안에서 기르는 수십마리 큰 개들의 짖는 소리,
부여에서도 보기 드문, 함석 담,
그 함석 담이라는 것도 규칙이 없다.  반쯤 뜯어진 것, 가로로 세로로, 자동차가 구겨놓은 함석 담,
무너져가는 많은 블럭 담들,
여기저기 도로를 막고 있는 주차 정신
여기저기 담마다 자동차가 들이받은 자국
개인 물건을 공도에 아무렇게나 방치한 사람들
아무렇게나 쌓아두고 쓰려져가는, 길가의 비료 같은 것

이 사람들 모두가 자연에 대한 죄인들이라는 생각이 든다.




Saturday, 28 June 2014

농지

농지



농지 구입
이것은 도시 지역 사람들에겐 그림의 떡이다.

1,000 제곱미터 미만의 땅을 구입하기로 했다.
지목은 밭이지만, 주택과 창고가 있다.

지하수가 연결되어 있는지, 땅 속에 이상한 것은 없는지 (요샌 농촌에 땅 속에 쓰레기 묻는데가 많다고..), 토지 오염은 없는지, 공기 오염은 없는지, 이웃과는 분쟁이 없는지, (구분이 확실하지 않은 땅은 언제나 경계선 문제로 싸운다.)도 살펴야 하는데, 농지 구입자가 모두 원상복구 해야한다.  농지로 말이다.

서울에 인구를 집중시켜놓고, 하우스 게임하는 재미로 법은 만들어져 있다.
일단 농어촌을 떠나면 다시는 돌아올 수 없게 만들어놨다.

2~3,000 만원에 폐가나 다름 없는 건물 있는 농지를 구입해서 1,000만원 들여 원상복구를 해야한다면 농촌에 쓰레기 치워주러 가는 꼴이다.  밭에 건축물 들어서는게 불법이었다면, 군에서 도로포장비, 농협에서 건축비를 지원해주면서까지 왜 수십년을 방치하다가 전입자에게 책임지우는 법을 만들었는가?
거의 농어촌 수익의 반은 도시근로자의 세금으로 채워지고 있다.  그런데, 농어촌에 도시근로자가 와서 농지의 불량건축물을 치워달라니 이 세상을 어떻게 해석해야 옳은가?

1,000 만원짜리 농지를 구입해서 택지로 바꾸는데 주택은 빼고, 토지 관련 세금만 300만원 넘게 나온다.  이것은 해적이고, 산도적이다.
듣기에 각 군의 주민이 줄어 골치라고 하던데, 저런 것을 보면 세수 부족으로만 고민이었다는 것을 알겠다.

부동산중계업법에는 집 값을 부르는 만큼 중계료를 받게 돼 있다.
그래서 이런 말을 듣게된다.
'내가 받을 만큼 많이 받아드리리다.'  주인장은 가만히만 계십시오.'
그리고는 중계인이 부르는 게 집 값이 되어버린다.

그러니, 단군 이래 집 값은 오르고 또 올라, 도쿄나 뉴욕의 땅 값보다 더 오르려라다 살짝 머쓱한 상태, kbs TV에서만 떨어졌지 파는 사람은 얼마나 되나?
이 놀음을 100년은 더 하겠다는 것이다.

387㎡의 농지에 248.2㎡의 건축물이 들어서고, 길 옆에 번호판 없는 녹슨 고철 트럭을 버려두고, 10 필지에 걸쳐 맹지에 22mx7m 짜리 돈사 건물 3동, 29mX8m, 23mX6m, 13mX5m, 12mX6m, 2mX5m 짜리 건축물, 불과 20m 거리에 마을 상수원이 있다. 그리고 약 600㎡의 콘크리트 포장 하는 등, 농지의 거의 절반이 포장되고, 건축물이 들어서는데, 아무 조치도 없다가 전입자에게 이 모든 책임을 전가하는 이상한 행정의 나라.

군청에서 전화가 왔다.  길 옆에 버려둔 자동차는 어쩔 수 없다고..
이장에게 그 이야기를 했더니 '좋아하시라고 반복한다.'
대신 누군가가 전화해줬는데 '좋아하시더라?'
큰일 날 소리다.
사소한 일로 큰 싸움이 나면, 그곳에 살 수 없어 집을 버려두고 나와야 되는 경우가 많다.
그것이 30년씩 가는 전쟁의 시작일 수도 있다.
농업후계자에 상도 많이 탄 사람이, 7필지에 걸쳐 돈사를 건축하고, 맹지며 건폐율도 전혀 개의치를 않았다면, 이장으로서도 어찌해볼 방법이 없었던 것이라면, 내 이름이 몇사람 건너 알려지는 것은 아주 쉬운 일이다.

'차는 안 치우겠다.  건축물은 제거하고 농사만 지어라.'
'군에서는 할 일이 없고, 주민만 잘 하면 된다.'
임야를 파서 평탄하게 만들어졌으니까, 3m 높이로 흙을 쌓아올려야 하는걸까?
이 군은 어느 군일까?

그 군에 말했다.  서울 경기 지역은 일단 견인하고 게시판 공고하고 폐차절차에 들어간다고, 그 군 말씀, 아쉬울 것 하나 없으니, 별로 신경 쓸 일이 아니었다.

서울지역에서는 버려둔 오토바이가 많이 보인다.  어린 애들이 훔쳐타다 망가지면 그자리에 버려두고 간다.  구청에 전화하면 몇일만에 사라지고 없다.

농가와 관공서가 얼마나 친밀하게 지내는가를 못 본 사람이라면 무슨 말인지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일 것이다.  예를들면, 지나다닐 일도 없는데, 작은 다리를 만들어달라고 해놓고 저녁에 해떨어질 때쯤, 레미콘이 다리로 가지않고, 문중 대표 집 앞으로 다섯차가 몰려간다.  문중 대표 집 앞 개인도로 포장을 시에서 해주고 있었다.

충주에서, 거업하기 좋은 도시라고 한다.
주말만 바라보고 하는 장사를 하는데, 주말이면 롯데마트 옆 터미널에 가는 사람들이 회사 입구를 주차로 막아버린다.  그러면 그날은 영업을 할 수가 없다.  충주시청이나 경찰서에 전화하면 '담당자가 퇴근했다.  또는 견인제도라는 게 없다.' 라는 소리를 듣는다.  견인이 없다?  롯데마트 주변을 순찰하는 청색견인차는 뭔가?  롯데마트에서 사준 시청견인차인가?







(이 땅에 살면 다 능력이 없다.  판사?:  그냥 판사에겐 그런 이해 판단 능력이 있는 것으로 하고 권력을 주자.  검사?: 지능은 없지만, 그냥 조사할 권한을 줘버리자.  뭐 이런 것.  한국은 이런 것으로 대단히 분주하다.  이런 걸 혁신이라고, 또는 창조라고 말한다.  왜 내겐 '창조'라는 말에 구역질이 날까?  일본의 - 헌장을 베껴온 탓인가?  모델 삼을 게 없어 하필 일본이냐?)




(법은 법 안에 있지 않고, 그들의 위에 있었다.)

(텃새란, 10:1로 이기고 있어도, 1 때문에 이긴 게 아니라고 하는 생각, 그것은 주민에게만 있지 않고, 군청에도 있다.)


Thursday, 26 June 2014

사망 조건

사망 조건



가족 중에 (한국) 드라마만 보는 사람이 있다.
나는 이 사람이 살아는 있지만, 전혀 그러지 않는 상태로 느낀다.
말하자면, 살아는 있지만 그러지 못한 상태이다.

우리는 '살아서 사망'한 대가를 받는다.
업무를 보고 돈을 받는 시간이 하루에 여덟시간이라고 하면,
24시간 중 8 시간을 사망하는 댓가로 급료가 발생한다.

그 가족은 이 8 시간 사망에 참여하고 있다.

또, 드라마를 보느라고 사망에 참여한다.
특히 한국 드라마에는 정보가 없다.  스포츠 같은 것이다.
뉴스도 의미 없지만, 차라리 뉴스만 못하다.

책을 보는 일도 없고, 연구를 하는 일도 없고, 1년 10년이 지나도 지적인 발전이 없다.
부지런히 퇴보만 하게 된다.
아직도 컴퓨터 포맷 개념이 없고, MBR(Master Boot Record)에 대해 생각해본 적도 없다.

잠깐 몇마디 할 수 있을 뿐이다.  전화 하듯이..
드라마는 보는 사람에게 있어서는 완전한 시간 소비 작업이다.
생산이 아니고 소비 또는 배설에 하루 8 시간씩이나 투자를 해야 한다는 말인가?

성적 배설, 시간적 배설, 감정적 배설
다 정화가 안 되는 독극물이다.
슬퍼해야 할 일을 벌려두고 기뻐하고 있다면, 우리는 정신적 장애라고 말한다.
치매 상태에서 분비물로 벽에 그림을 그리는 모습이다.

시간은 인간에게 주어진 가장 큰 영토이다.
사랑, 슬픔, 환희, 절망.. 모든 것이 이 시간 위에서만 가능하다.
이 시간은 정확하고 엄격한 메머리 관리자이다.
시간은 간접 상속할 수는 있지만, 직접 물려주는 방법은 없다.




(드라마 중독)








Wednesday, 25 June 2014

인생

인생



인생에 대해서 확실히 보여줄 게 있는 사람이 아니면,
'인생'을 희롱하지 마라.

그것은 일정 시간 후에 보이게 되는 것이며,
그 인생 밖에서만 보이는 것이다.

어려운 것은 아니지만,
뭐라는 사람 없지만, 가벼이 다룰 것은 아니다.



(셰익스피어를 믿지 않는다.  그것은 수준이다.)

Tuesday, 10 June 2014

사원 (등급)

사원 (등급)




오산의 물류센터

한 계약직 직원이 질문을 한다.
너댓명 있는 농심 직원(본사 직원)은 한마디도 대꾸를 안 한다.
질문 내용은 간단한 업무 사항이다.

질문 목소리가 작았나?
좀 더 크게 물어본다.
여전히 대답이 없다.
더 크게 말하면 실례되겠지라는 생각..

이런 질문했던 사람은 이 내용을 잘 안다.
'불가촉천민이란다.'

즉, 지시는 받지만, 질문은 안 된단다.

계약직이 조금만 못마땅하면 바로 수사의 대상이다.
물건을 다 들어내 팽개치고 조사한다.
복구의 업무는 공짜로 해야한다.

이런 추악한 세상에 아이를 낳아 행복한 마음이라면 이해할 수 없다.
또 이런 회사의 상품으로 즐거워진다는 것도 이해할 수 없다.

큰 기업은 이런 형태로 발전한다.
기생충의 형태로..
공권력의 형태로..



(태양이 저렇게 큰데, 사람은 자기가 태양보다 크다고 생각한다.  일부가?  전부가.)

(네덜란드 소총 일본 수입 - 시모노세키조약 - 미국 남북 전쟁 후 남은 전쟁물자 처리 - 일본 수출 - 일본의 아시아 지배 - 일본의 미국 영토 침략)

('쇄국' 하다 나라가 일본에 망하더니, 이젠 '쇄국'에다 '반동'을 추가했으니 나라는 반드시 망한다.  또 다시 일본에..)

(공중파 방송도 지방방송화, 국회도 지방국회화, 군대도 지방군대화, 대통령도 지방대통령화, 표준어도 지방표준어화.. 나라에 대해선 논할 가치도 없다. )

(인간은 이상한 종족이다.  지배하고 지배되는 온당치 못한 사회 구조이다.)









Thursday, 5 June 2014

우리가 먹는 음식

우리가 먹는 음식



1. 육식

가축 사료 주성분: 옥수수

옥수수를 사료로 쓰는 이유: 다른 사료(풀) 같은 것을 먹였을 때와 비교해, 같은 기간에 무게가 2배정도 많아진다.  횡성한우라고 자랑을 하던 어느 축산농가에서 사료의 반을 (가루로 만들지 않은) 통 옥수수를 섞여먹였다.

옥수수: 오메가 6의 문제(옥수수를 익혀서 바로 먹어도, 옥수수 사료로 기른 가축에 의해서도 오메가 6를 사람이 흡수하게 된다.)

미국의 축산 농가에서도 한국에 판매할 가축은 따로 옥수수를 먹인다. (비육과 마블링을 위해서)

소, 돼지, 닭, 개 등 가축은 좁은 우리(흔히 말하는 닭장 구조)에 가둬서 기르므로 스트레스가 많아 질병에 약하다.  그래서 항생제를 가축에게 주기적으로 투여한다.  그 양도 정확하지 않고 대충한다.  가축들 몸에 있던 스트레스 호르몬과 항생제는 어디로 가게 되는 걸까?

좁은 우리에 가두는 이유는 공간비용 절약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많이 움직이지 못하게 해서 살 빠지는 것을 줄이려는 것.  항생제 값이 빠진 살 값보다는 싸다.
그런 시설에서 생산되는 계란, 메추리알, 우유 같은 것도 마찬가지이다.

선진국에서는 마블링(삼결살에서 보는 하얀 부분)이 없는 고기를 얻기 위해, 소의 경우 땅에서 자라고 있는 풀을 직접 먹게한다.  고기는 하얀 부분이 없이 전체가 빨간 색이다.

우리는 그런 고기를 사먹고 살이 찌니까, 이번에는 살을 빼는데 많은 돈을 또 들여야 한다.








(이 사진들은 본 내용과 관계 없음)

2. 채식

























(갑자기 서울 시민이 따개비처럼 느껴졌다.  그 엄청난 자동차 매연을 들이키고도 여전히 딱 붙어서 고민 없이 사는 걸 보면..)

(나는 한국 TV를 안 보기로 했다.  우연을 가장한 선동 뉴스, 아무 뜻도 없는 드라마에 질렸다.  마치 북한 중계 방송 같다.
한국 드라마엔 이런 내용이 담겨있다.  드라마 작가가 보수를 제대로 못 받거나, 시청자를 깔보고 있거나.. 둘 중 하나라고..
그래서 외국 TV를 보게된다.
일본 드라마(NHK), 재미는 없지만, 잘 쓴 드라마이다.  시간이 짧은 걸 보니, 아침 드라마였던가보다.
あまちゃん
스토리가 있고 불필요한 달리기 액션은 없다.  악쓰고 난타질 하는 장면도 없다.
한국도 '스토리 있는 드라마'를 쓸 수 있는 사람이 나와야 한다.  일본 거 베끼지 말고..)

(우쭐한 순간, 발전은 멈춘다.)

(한국 TV를 안 보면서, 속이 얼마나 편해지는 지 모른다.  한국 TV, 스트레스의 원흉이었다.)

Tuesday, 3 June 2014

따뜻한 시선

따뜻한 시선



어느날 농로를 따라가고 있었다.
길을 잘못들었다.
동네에서 만난 사람이 자기 집을 팔려고내놨다는 소릴 듣고 그 집에 가보는 중이다.

농로는 콘크리트 포장이 돼 있고, 승용차 한대와 리어커 한대가 교차할 수 있는 폭이 되었다.
처음 와보는 길이다.

앞쪽에서 리어커 한대가 온다.
차 번호가 서울 차였는데, 리어커 끄는 노인이 차 번호판을 눈으로 스캐닝하고 있었다.
동네에서 농산물이 없어지기라도 한 것일까?
'내가 너희 차 번호 알고있으니 허튼 짓 마라.'는 표정이다.

노인의 얼굴 표정으로 해서 받는 불쾌감은 감당하기 어려웠다.

사람들에게서 '따뜻한 시선', '따뜻한 말 한 마디'를 구경하기 힘들게 되었다.

우리는 모두 정열적으로, 이승에서 완벽한 '지옥'을 재현하고 있다.

집을 어렵게 찾아서 보았는데, 깨끗하게 잘 지어진 집이었다.  담 하나 너머로 대규모 축사가있었다.
집을 보고가다 동네사람을 만났다.
무슨 일로 왔느냐고 묻는다.
팔려고 내놓은 집 보러왔다고 하니까, 그런 거 없다고 한다.

나이 사십이 넘어가면, 거짓말이 수치라는 것은 알아야 한다.

도대체 어떻게 살아왔기에, 따뜻한 시선, 따뜻한 말 한 마디 못하고 살아가는 걸까?

아무런 보답도 없이 태양은 그리도 그대를 따뜻하게 보살피는가?